소설리스트

던전 성자-573화 (55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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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본심

    그런 답지 않은 바넷사의 반응에 나는 또 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얼굴을 바넷사의 얼굴 옆으로 가져다댄 후, 마치 볼을 비비듯 얼굴을 문질러서 그 귀를 덮은 머리카락을 헤치고 귀를 드러내게 만들었다.

    "으읏…."

    바넷사는 머리카락이 헤쳐지며 간지러운 건지, 아니면 그냥 내 행동이 부끄러운 것뿐인지 낮게 한숨 비슷한 소리를 흘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킨십을 거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 바넷사가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나만 소홀하게 대하는 것 같은 바넷사의 행동에 울컥울컥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런 행동들도 다 앙탈같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안 그래도 미인인 바넷사가 한층 더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앙탈 같은 게 아니라, 혹시 정말로 앙탈이었던 거 아니야?

    애초에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건, 얘가 날 꽤나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거라는 뜻이잖아?

    뭐, 어차피 장난칠 생각이기도 했고, 겸사겸사 잠깐 확인을 좀 해볼까.

    "하지만 너 말이야. 집사 신분에 주인님 몰래 이래도 되는 거야? 디아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디아나는 그렇게 널 믿고…."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바넷사가 갑자기 내 두 팔을 강하게 움켜쥐더니 그대로 자신을 끌어안고 있던 내 몸을 떼어냈다.

    "야. 아프다."

    살짝 엄살을 떨어보는 나였지만, 바넷사는 내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믿을 수 없는 걸 본다는 듯이 동요하면서, 그와 동시에 방금 전에 고백까지 했던 애가 이제는 적의마저 느껴질 정도로 강한 눈빛으로 날 노려봤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뭐, 뭐가?"

    "설마 디아나님께 아무 얘기도 못 들었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무슨…."

    "당신은! 디아나님께 사정도 듣지 않았는데! 제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까?!"

    "뭘 갑자기 화를 내고 그러냐? 결국 고백한 건 너잖아."

    "전…! 크윽…!"

    내가 그렇게 지적하자 바넷사는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대답을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화나는 건 마찬가지인지 내 팔을 잡고 있는 손에 더더욱 힘을 주면서 날 노려봤다.

    아니. 애초에 나도 노리고 말한 거긴 한데, 반응이 뭔가 훨씬 심각하네. 그냥 조금 당황하는 모습이나 보고 싶었던 건데 말이야.

    설마 이 무뚝뚝한 애가 이렇게까지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적의를 표출할 줄이야.

    자신의 마음을 받아준 것에 대한 기쁨보다, 내가 디아나를 배신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적의가 더 크다는 건가.

    얜 대체 디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야. 농담이야. 농담.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라."

    "…농담? 디아나님께 사정을 들었다는 얘기입니까?"

    "아니. 일단 못 들었기는 한…야. 아프다니까! 제대로 설명할 테니까 좀 놔봐라! 나 못 믿어?!"

    "네."

    "즉답?! 너 지금 일순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한 거냐?! 너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것과 이것과는 별개의 얘기입니다."

    너 내 말버릇은 또 어디서…!

    크윽. 생각해 보니 얜 그냥 뒤에서 가만히 서있기만 하니까 존재감이 별로 안 드러나서 그렇지, 식사 때라든가 은근히 나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젠장. 이 귀염성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만약 디아나님을 배신한 거라면…."

    그래도 일단 얘기를 들어볼 의향은 있는 건지, 바넷사는 내 팔에서 손을 떼고 정면에서 내 눈을 곧게 바라봤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끄러워서 대놓고 말을 안 할 뿐, 일단 나에 대한 믿음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런 거 맞지?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지?

    마지막 협박성 발언은 못 들은 걸로 칠 테니까 그런 거라고 해줘.

    아무튼 나는 방금 전에 방에서 있었던 일들을 바넷사에게 얘기해줬다.

    디아나가 우리 애들한테 사죄하고 있었던 일, 우리 애들이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그 얘기를 듣고 있었던 일.

    그리고 두뇌 명석한 나는 그 얼마 안 되는 작은 퍼즐조각만을 가지고 멋지게 진실에 도달했다는 감동마저 느껴지는 아름다운 얘기까지.

    "…그렇습니까."

    "야. 반응이 너무 미적지근하지 않냐? 내가 뛰어난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이렇게 너랑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었고, 동시에 디아나를 위기에서 구할 수도 있게 된 거라고?"

    "…잘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스스로의 대단함을 강조해 봐도, 바넷사는 그저 무뚝뚝하게 칭찬만 해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너무 무뚝뚝하다.

    아니. 그야 물론 바넷사는 언제나 무뚝뚝하지만, 방금 전에는 내가 디아나를 배신한줄 알고 그렇게까지 화를 냈던 거다.

    그 오해가 풀렸는데도 이렇게 무뚝뚝한 반응이라고? 조금쯤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이잖아?

    아, 혹시 얘….

    "야. 설마 너 부끄러워하는 거냐?"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랑 너랑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는 게 부끄러운 거지?"

    "…후우. 별…."

    "사랑해."

    "큿…."

    보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무뚝뚝하게 반응하려 했던 바넷사였지만, 내가 다시 한 번 그 몸을 끌어안으면서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자 결국엔 무표정이 무너지면서 살짝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 우리들의 추억의 장소네."

    그런 바넷사를 반응을 보고, 나는 여기서 조금 더 진도를 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넷사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바넷사의 등을 살살 쓰다듬어주자, 바넷사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너도 그 생각하고 여기로 온 거지?"

    "…이, 이런 행위를 생각하고 온 건…아닙니다만."

    이것 봐라? 목소리까지 조금 떠네?

    얘도 이런 전개를 아주 기대 안 한 건 아닌 모양인데?

    "이런 행위라니?"

    나는 아까처럼 얼굴로 바넷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듯이 볼을 비벼대다가, 살짝 고개를 숙여서 그 새하얀 목덜미에 살짝 키스를 해줬다.

    그러자 바넷사는 살짝 몸을 떨면서 가볍게 콧소리까지 흘렸다.

    "읏…! 그러니까, 이런 행위 말입니다."

    전혀 대답이 되지 안 되고 있었지만, 나는 일단 넘어가주기로 했다.

    얘 성격상 지금 이 상태에서 몰아붙인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싫어?"

    "…읏!"

    대답 없음인가.

    뭐, 이런 반응은 결국 대답한 거나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저항 안 하는 걸 보니 좋은 모양이지?"

    나는 바넷사를 살짝 더 놀려줄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보였던 행동들이 앙탈이었단 것을 깨닫고 나니 전처럼 반드시 울려주겠다든가 그런 생각은 안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이 무뚝뚝한 녀석을 골려먹는 건 나름 재미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 장난스런 말에, 바넷사는 의외의 행동을 취했다.

    "그, 그만 하십시오."

    아까처럼 내 두 팔을 붙잡고, 내 몸을 떼어놓은 거다.

    물론 아까 전과는 박력이라든가, 악력이라든가, 안력이라든가 여러모로 다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뭐야 얘. 설마 진짜로 거부하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아까와는 다르게 내 팔을 붙잡은 손에 그다지 힘이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바넷사를 몰아붙일 생각을 못하게 됐다.

    하지만 이어지는 바넷사의 말을 듣고, 나는 그 생각이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 디아나님께 제대로 얘기도 하지 않았잖습니까. 보고도 하기 전에 이런 행동은…."

    이런 때에마저도 디아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바넷사였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거부하는 거였다면,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바넷사. 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말이야."

    "…착각? 뭘 말입니까?"

    "오히려 우리가 지금부터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게 디아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고 그런 짓이란 표현이 꽤나 부끄러웠던 건지, 바넷사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떨렸다.

    얘 의외로 그런 쪽에 내성이 없네.

    예전에 성역 선포의 여파로 나랑 한 번 하게 됐을 때는 꽤나 쿨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냥 이런 식으로 말로 표현하거나 분위기를 만드는 게 부끄러운 건가?

    아니면 그때와는 나에 대한 감정이 변해서 이러는 건가?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보기완 다르게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잖아.

    "생각해봐. 지금 디아나는 다른 애들한테 구박받고 있을 거 아니야?"

    "…그건…아마도 그렇겠지요."

    자신 때문에 디아나가 그런 처지가 된다는 게 역시나 마음이 불편한 건지, 바넷사는 살짝 표정을 흐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이러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걔들 허락을 받기도 전에 내가 먼저 너랑 제대로 이어져버리고 사후 보고를 하면 결국 비난의 화살은 내게로 돌아오고 디아나가 구박받을 이유도 사라지는 거니까."

    "그런 거라면 우선 방으로 돌아가서 디아나님을…."

    "아니지. 말했잖아. 너랑 이어져버리고 나서 사후 보고를 해야 된다고. 그냥 가서 ‘바넷사랑 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까 우리 지금부터 그런 사이야.’ 라고 말했다고 생각해봐. 과연 우리 애들이 납득할까? 절대 그렇지 않지. 우리 애들이 반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확실한 증거라고 하시면…."

    "너도 대충 짐작하고 있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어서 바넷사의 탄탄한 하복부에 손끝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그곳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천천히 쓰다듬었다. 가운데에 하트마크와 그 양옆에 천사 날개가 달린 마크를 그리듯이 말이다.

    "…응읏. 지, 진심이십니까? 그런 걸 벌써…."

    비록 내 여자는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줄곳 저택에서 우리 애들의 모습을 지켜봐왔던 바넷사다.

    사도 임명이 가지는 의미는 충분히 알고 있는 모양인지, 바넷사는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 반응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무척이나 기쁜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은 반응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바넷사는 섹시한 한숨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래. 미리 말해두지만, 네가 나한테 고백한 시점에서 거부권은 없어. 넌 내 거야."

    "…읏. 전, 디아나님의…."

    야. 그러니까 이런 때마저 디아나냐.

    아니. 그렇게나 우리 디아나를 잘 따르는 건 무척이나 흐뭇하지만 말이야.

    "그래. 그럼 이렇게 말해주지. 넌 내 여자야."

    "흐읏…."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어루만지던 하복부를 살짝 누르자, 바넷사는 상체를 숙이면서 낮게 신음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뭘 해야 할지 알겠지?"

    "그, 그걸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겁니까…."

    내가 유혹하듯이 그렇게 말하자, 바넷사는 자신의 두 허벅지를 살짝 마주비비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그런가. 사도 임명은 알아도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정확한 조건 같은 건 모르는 건가.

    "뭐, 그런 거지."

    "크흥…."

    내가 만면의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해주자, 바넷사는 낮은 신음성을 흘리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운 건지 떨리는 건지 모를 반응을 보인 것도 잠시.

    어차피 디아나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건지, 바넷사는 천천히 자기가 걸치고 있던 집사복을 벗으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뭡니까."

    "벗지 말아봐."

    "……."

    모처럼 집사복을 입은 진짜 집사랑 집사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건데, 이대로 그냥 벗기기엔 너무 아깝잖아.

    비록 그런 것까지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바넷사는 대충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벗지 말라고 했는지 눈치 챈 모양이었다.

    야. 너무 그렇게 보지 마라.

    그렇게 매도하는 것처럼 무표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오싹오싹해지잖냐.

    아니. 내가 그런 취미가 있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럼 집사님. 우선 주인님의 옷을 벗겨주실 수 있을까?"

    바넷사의 차가운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기면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설마 바넷사한테 이런 명령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역시 사람은 오래살고 볼 일이야.

    뭐, 아직 창창한 20대지만 말이야. 이런 말 하면 디아나한테 혼나려나?

    "누가 주인…."

    "아, 그래. 그래. 그랬지. 우린 이제 주종관계보단 연인사이에 더 가까운가?"

    "크흣…!"

    주인이란 말에 반발하려 했던 바넷사였지만, 이어지는 내 추가타에 결국 부끄러움에 몸을 떨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바넷사 파트는 지난 화에서 적당히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바라는 분들이 많으시니 좀 더 잇겠습니다.

    약속했던 연참은 10분 전후로 올라갈 겁니다.

    아슬아슬하게 조금 덜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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