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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72화 (55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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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본심

    나와 바넷사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던 바로 그 방말이다.

    내 생각대로 디아나와 바넷사가 그런 대화를 나눈 거라면, 바넷사는 지금 여기에 와있을 것이 틀림 없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방문을 열면서 동시에 바넷사의 이름을 외쳤다.

    "바넷사!"

    …….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불 꺼진 방.

    당연히 내 부름에 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 어라? 이상하다? 이,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젠장. 이러면 대체 어떻게 바넷사를 만나면 좋은 거야.

    아까는 그나마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중이었으니 눈치 챌 수 있었다지만, 그런 우연을 두 번이나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나는 당황해서 방을 나서려고 했지만, 그 전에 문득 욕조 근처에 커튼이 쳐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는 빈 방이다. 당연히 저 욕조를 쓸 사람이 있을 리 없고, 그렇다면 평소 청소하기 편하게 커튼을 열어두고 관리하는 게 정상이다.

    나는 발걸음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서는, 욕조의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

    욕조 안에는 내 예상대로 쪼그려 앉아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바로 바넷사였다.

    바넷사는 욕조 한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 팔로 자신의 다리를 감싸 안고 있는 상태였다.

    내 선입관이 개입된 감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마치 욕조 안에서 있는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안 되는, 나와 바넷사의 농도 있는 접촉을 말이다.

    "…뭡니까?"

    하지만 그런 내 감상과는 달리, 아까의 반응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도 여기서 숨죽이고 숨어있었던 주제에, 바넷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는 표정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얼핏 보기에 그렇게 보일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나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보다 살짝 빠르게 느껴지는 호흡.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붉게 상기된 뺨.

    …그래. 뺨은 내가 좀 과장했어. 사실 창가에서 스며들어오는 붉은 노을 덕분에 얼굴색은 정확히 알 수 없어. 하지만 뭐, 아마 상기되어 있을 거야.

    아무튼 그렇게 자세히 보면 평소와 조금 다른 모습의 바넷사였지만, 사실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더 큰 변화도 존재했다.

    그건 바로 바넷사가 사람 모습이 아닌 용인 모습이라는 점이었다.

    얘 지금 제대로 집사복 입고 있는데 말이야. 저 두꺼운 꼬리는 대체 어떻게 삐져나온 걸까?

    살짝 그런 의문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숨어있던 애가 들키니까 한다는 말이 그거냐?"

    "…딱히 숨어있었던 적 없습니다."

    "내가 부를 때 대답 안 했잖아."

    "…휴식 중이었으므로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너 아깐 바쁘다고 하면서 도망가지 않았어?"

    "…휴식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게 싫어서 그랬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다니. 역시 평소와 다른 건 확실하군.

    그리고 너 말이야. 도망갔다는 사실을 부정 안 한 거 아냐?

    "정말로?"

    "제가 거짓말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있지."

    "무슨 근거로…읏!"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뚝뚝하게 반응하던 바넷사였지만, 그 무표정은 순식간에 다시 깨지게 됐다.

    내가 그 턱을 집어서 들어 올리는 것으로 말이다.

    눈에 띄게 동공을 진동시키는 바넷사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 얼굴에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근거가 있기는 한데 말이야, 사실 확실한 근거는 아니거든. 그래서 지금부터 시험해보려고."

    "그, 그게 무슨…."

    "지금부터 키스할 거야."

    "……!"

    내가 당당히 선언하자, 바넷사는 침음성조차 흘리지 못한 채로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말았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 그 두 눈이 아까보다 더 크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니까 싫으면 피하든가, 막든가 해."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점점 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너무 갑작스러워서 반응할 수 없었다는 식의 거짓말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바넷사가 반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듯 천천히.

    하지만 내 입술이 그 입술에 점점 다가가는 와중에도, 바넷사는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 잘게 떨기만 할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음믓…."

    그리고 결국, 바네사는 끝까지 피하지 않았다.

    내 입술이 바넷사의 부드러운 입술에 살며시 닿았고, 나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얼굴을 더 내밀어서 내 입술을 바넷사의 입술에 꾸욱 짓누르듯 가져다댔다.

    물론 혀를 넣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첫 키스 치고는 꽤나 정열적인 키스였다.

    이런 딱딱한 철가면 같은 애도 입술은 이렇게나 부드럽구나.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천천히 바넷사의 입술에서 입술을 뗐다.

    제법 강하게 입술을 밀착시켰던 만큼, 떨어진 후에도 한동안 바넷사의 감촉이 남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아…하아…무, 무슨…생각이십니까?"

    그런 강한 여운을 느낀 건 바넷사도 마찬가지였는지, 바넷사는 한동안 날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을 호흡을 고르던 바넷사는, 두 눈에 겨우 힘을 담아서 나를 찌릿하고 노려보면서 추궁했다.

    물론 방금 전까지 나와 맞대고 있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보여주던 위압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러는 너야 말로 무슨 생각인데?"

    "무슨, 말입니까?"

    "무슨 생각으로 내 키스를 안 피한 건데? 못 피했단 말 같은 변명은 하지 마. 시간은 충분히 줬어. 너도 보면서 알았겠지만 말이야."

    "읏…!"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바넷사는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면서 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키스를 끝냈다고는 하나, 나는 여전히 바넷사의 턱을 잡고 있었다.

    턱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줘서 바넷사의 고개를 다시 내 쪽으로 돌리자, 바넷사는 처음에만 아주 살짝 저항하는가 싶더니 결국엔 순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아까처럼 도망가게 두지 않을 거야. 제대로 네…."

    네 마음을, 네 생각을 듣고 말겠어.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나였지만, 말하기 직전에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바넷사는 날 좋아하는 게 맞을 거다.

    하지만 그래서 뭐? 바넷사가 날 좋아해서, 그걸 내가 받아주고, 그런 흐름으로 갈 거라고?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얼마 전에 우리 애들과 다른 여자를 받는 것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을 때도, 난 확실히 말했었다.

    누가 날 좋아한다고 해서 내 여자로 받고 싶은 게 아니라고.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 여자로 만들고 싶은 거라고.

    그렇다면 여기선 바넷사가 내게 고백하기에 앞서서, 내가 먼저 바넷사에게 고백을 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게다가 우리 애들과의 문제도 남아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바넷사와 이렇게 키스를 한 건 내 기준에서 바람이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여자들을 받더라도, 되도록 먼저 우리 애들에게 알리고 나서 관계를 가지려고 했다.

    물론 아까 내방에서 들려온 얘기를 생각해보면 디아나는 이미 허락을 한 모양이고, 그걸 다른 애들한테 밝힌 후 설득까지 하려고 했으니 반쯤 허락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내가 직접 허락을 받는 것과는 다른 얘기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곧장 바넷사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디아나 때문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디아나 다른 애들한테 기가 눌려 살게 될 건 불 보듯 뻔하니까 말이다.

    물론 사라나 레이아가 그런 성격은 아니다.

    대놓고 천사님인 레이아는 말할 것도 없고, 겉보기엔 차가워 보이는 사라 역시도 실은 착해 빠졌으니까 말이다.

    이 일을 가지고 디아나에게 계속 눈치를 주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둘과 마찬가지로 착해빠진 디아나는,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 둘에게 미안해할 거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저질러 버리면 디아나가 둘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방에서 우리 애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깨달은 후에도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바넷사를 찾아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역시 고백은 내가 먼저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바넷사."

    "뭐, 뭡니까."

    "너 내 여자가 되라."

    …어, 어라? 이런 말을 할 의도가 아니었는데?!

    좀 더 정중하게, 사랑을 속삭일 생각이었는데.

    아니. 그게 말이야. 바넷사 얘가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나도 무의식중에 기선 제압을 하려고 계속 말투가 좀 강해지고 있었잖아?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고백마저 말이 좀 강하게 나왔다고 할까.

    "무……!"

    "미안하지만 너한테 거부권은 없어. 이건 결정사항이야. 주인으로서…그래. 주인님의 남자로서 명령하지. 오늘부터 넌 내 여자야."

    살짝 후회하는 나였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

    게다가 방금 한 말을 철회하고 사랑을 속삭여봤자 놀리는 걸로 보일 뿐이겠지.

    나는 하는 수 없이 아까 했던 말을 계속 밀고 나가기로 했다.

    뭐, 어차피 얘가 날 좋아하는 건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말해도 딱히 문제될 건….

    "…싫습니다."

    "…응?"

    거절당했다. 그것도 단칼에.

    "설마 제가 명령이라면 아무 말이나 듣는, 사랑까지도 바치는 여자라고 생각한 겁니까?"

    "아니.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오해야.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설명할 수 있어. 그런 게 아니라 말이지…."

    "하물며 디아나님의 명령도 아닌 당신의 명령을, 제가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디아나 명령이라면 들을 거란 거냐.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야. 그게 말이지…."

    "사랑은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님. 좋아합니다."

    "오해…응?"

    어떻게든 변명하던 내 귀에,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새삼 바넷사를 다시 한 번 똑바로 쳐다봤다.

    당황하느라 눈치 채지 못했지만, 어느 샌가 바넷사의 모습은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눈동자가 진동하고 있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떨리지 않고 있었다.

    그저 곧게, 의지가 느껴지는 눈동자로 곧게 날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대답.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하지만 역시 계속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게 살짝 부끄럽기는 했는지, 한동안 침묵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바넷사가 살짝 어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했다.

    이상하다.

    물론 내가 직접적인 주인은 아니라고 하나, 얘랑 내 관계를 굳이 따지자면 주종관계라는 표현이 제일 적당한 표현일 거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얘랑 얘기할 땐 주도권이 계속 얘한테 쥐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걸까.

    그래서 언젠가 울게 만들고 말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그러고 보니 아까 울렸던가.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

    젠장. 이거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그래. 나도 좋아한다."

    "그렇습니까. 그거 다행이군요."

    바넷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색은…여전히 붉은 저녁노을에 비춰져서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아…. 이럴 거면 애초에 처음에 내가 고백할 때 왜 거절한 건데."

    "그게 고백이었습니까?"

    야. 집사주제에 아픈 데 찌르지 마라.

    "명령으로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 싫었을 뿐입니다. 저도 일단은 여성이므로."

    그러니까 아픈 데 찌르지 말래도!

    "그래! 미안하다! 여자 맘도 제대로 몰라주고 고백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라 미안하다!"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사과는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 뻔뻔한 녀석 같으니라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말이야! 내가 주인님이고 네가 집사니까 말이야!

    "애초에 말이야! 넌 이런 때에도 왜 그렇게 무표정인 건데! 여자라면서! 좀 더 부끄러워하란 말이다! 응?! 자!"

    "흐읏…!"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욕조 안에 들어가서 바넷사의 몸을 끌어안자, 찰나의 순간동안이었지만 바넷사가 침음성을 흘리면서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응? 으으으응?"

    "뭐, 뭡니까?"

    요것 봐라. 아닌 척 시치미를 떼려고 하네.

    "사실 부끄럽기는 한 모양이지?"

    "그런…흣!"

    반박하려 했던 바넷사였지만, 내가 그 몸을 끌어안자 다시 한 번 움찔하고 몸이 떨렸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바넷사는 여기서 한 번 더 개그씬으로 이어지며 구원이 착각하며 차이고, 바넷사는 고백을 못한 채로 전전긍긍하는 씬을 더 쓰려고 했습니다만…생각보다 이번 파트 글이 엄청 길어져서 결국 이렇게 썼네요.

    이렇게 끌어놓고 이번 파트에 안 이어지면 욕먹을 것 같아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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