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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71화 (55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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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본심

    하지만 둘의 관계가 여전히 공고하다 할지라도, 바넷사가 눈물을 흘렸을 거란 사실에 변함은 없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온전히 나한테 있는 거니, 역시 사과는 해야겠지.

    "그럼 다행이지만 말이야. 아무튼 바넷사, 할 말이 있어."

    "…히끅."

    "응? 바넷사?"

    "…히끅. …뭐, 뭡니…히끅…까. 할 말이 있으면…히끅."

    이젠 딸꾹질까지 시작하는 바넷사였다.

    아니. 대체 얼마나 펑펑 울었기에 딸꾹질까지 하는 건데?

    "야. 일단 진정 좀 해라. 자 따라 해봐. 일단 크게 숨을 들이쉬고…."

    "히끅! 하, 할 말이란 것부터…히끅! 하시지요! …히끅."

    내가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쉬는 걸 어필하기 위해 두 팔까지 양옆으로 벌려가며 말하자, 바넷사는 마치 경계하듯이 몸을 움츠리며 날 노려봤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미안하다니…아, 아직 말로 사과 안 했구나.

    그래. 알았다. 그렇다면.

    "좋아. 그럼 말 할 게."

    "읏! …히끅."

    내가 바넷사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하자, 바넷사가 몸을 딱딱하게 굳히며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바넷사를 향해서 허리를 90도로 힘차게 숙이며 외쳤다.

    "미안!"

    "……에?"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사과할 거라곤 생각 못 했던 건지, 바넷사는 살짝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심지어 아까부터 계속하던 딸꾹질도 멈출 정도였으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사과하는 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일까? 얘한텐 내가 대체 어떤 이미지이기에?

    나도 사과 정도는 한다고.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야. 네가 디아나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 말이지.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 미안해. 디아나한테는 내가 잘 말…."

    톡. 토독.

    내가 허리를 90도로 숙인 자세 그대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고 있을 때, 정면의 바닥에 갑자기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진지하게 사과를 하던 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 갑자기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보이자 자연히 시선이 위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물방울의 정체가 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야. 너 우냐?"

    "…문제 있습니까?"

    내가 질문에 바넷사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듯이, 하지만 차마 다 억누르지 못하고 슬픈 감정이 새어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야 당연히…대체 왜?"

    "읏…왜? 지금 왜냐고 하셨습니까?"

    손으로 눈물을 훔치던 바넷사는 계속해서 넘쳐흐르는 눈물에 이내 포기한 듯 손을 내리고는, 나를 찌릿하고 노려보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우는 여자가 노려보는 얼굴은 엄청나게 박력 넘치네. 그것도 상대가 평소에 무표정밖에 안 보여주는 바넷사다 보니 더더욱.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울면서도 박력 있는 목소리로 외치는 바넷사.

    저도 모르게 일단 사과하고 볼 정도로 박력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과연 나도 아무 이유 없이 사과할 수는 없었다.

    "맘에 안 든다니, 뭐가?"

    "…네?"

    "……."

    "……."

    내 질문을 시작으로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맴돌았다.

    "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우리 지금 서로 딴 얘기하고 있지 않냐? 참고로 내가 사과한 이유는, 나 때문에 네가 디아나한테 혼났을 테니까. 그거 사과한 건데 말이야."

    "…으읏. 크윽…."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 때문에 사뭇 비장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바넷사는 명백하게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저 철가면 집사가 지금 얼굴이 새빨개지고 있었다.

    아니. 뭐, 우는 모습까지 본 다음이니까 이제 와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정도로 놀랄 건 없지만 말이야.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살짝 붉어진 상태이기도 했고.

    아무튼 바넷사는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뒷걸음치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재빨리 도망가려고 했다.

    물론 그 전에 내가 다시 그 팔을 잡아서 멈춰 세웠지만.

    "흣…! 뭐, 뭡니까? 놓으십시오. 성희롱입니다."

    아니. 이제 와서 그렇게 박력 있게 노려보면서 목소리 깔아도 하나도 안 무섭거든?

    그리고 멈춰 세우려고 팔뚝만 잡은 건데도 성희롱인 거냐. 세상 너무 각박하지 않냐?

    "야. 말은 다 끝난 다음에 가야지. 왜 도망가려고 그러냐?"

    "도망?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전 바빠서 오래 잡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넌 대체 내 말을 어떻게 착각한 건데?"

    "…읏! 제, 제가. 그걸 꼭 말해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마 상당히 부끄러운 착각을 한 모양인지, 내 질문에 바넷사는 애써 냉정함을 가장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몸과 목소리가 떨리는 걸 다 억누르지는 못하고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야."

    "큿…!"

    아니. 야. 그러니까 대체 왜 노려보는 건데?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된다니까?

    아님 뭐야? 내가 강제로 말하게 시켰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건 아닐 거 아니야?

    얜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니까.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그 사실엔 변함이 없는 바넷사였다.

    "하아…. 아무튼 디아나한테 혼나게 한 건 미안하다. 괜히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앞으로 그런 억지는 안 부릴게."

    "…일단 팔부터 놓으십시오."

    내 사과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계속해서 날 노려보던 바넷사는, 내가 팔을 놔주자 심호흡을 하면서 겨우 평소의 포커페이스를 되찾은 후에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제가 비밀로 하겠다고 대답을 안 했으면 끝날 문제입니다. 구원님이 사과할 건 없습니다. 그리고 디아나님께서도 그 일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없으셨습니다."

    과연. 디아나는 크게 혼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혼을 내지 않은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그럼 대체 얘는 왜 울었던 건데?

    아니. 방금 전에 운 거 말고도, 처음부터 울고 난 것 같은 얼굴이었잖아.

    뭐, 그 궁금증을 풀기 전에 우선 사과부터 하는 게 우선이지만.

    "아니. 그래도 내가 억지를 부린 건 사실이니까. 사과하고 싶어."

    "…읏. 알겠습니다.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할 말은 이제 끝난 겁니까?"

    "아니. 실은 궁금한 게 있는데. 디아나가 혼내지 않았다면 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야? 무슨 얘기를 했기에 네가 울기까지…."

    "으읏…! 그, 그럼 전 일이 바빠서 이만!"

    바넷사는 내게 고개를 푹 숙이며 한 번 인사한 후, 눈도 안 마주치고 뒤를 돌아서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마치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듯, 도망이라도 가듯이.

    아니. 대체 뭐냔 말이야.

    일단 사과는 제대로 했고, 바넷사도 내 사과를 받아줬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단 말이지.

    평소답지 않은 바넷사의 태도도 그렇고, 애초에 방금 전에 왜 울음을 터뜨린 건지도 모르겠고.

    뒤끝이 개운치 않은 찝찝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바넷사를 쫓아가서 말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말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수많은 의문을 뒤로한 채로 일단 내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디아나아?!"

    그리고 내 방문 손잡이에 손을 걸치고 살짝 문을 열었을 때, 곧바로 살짝 열린 문틈 사이에서 사라의 소란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그 사이에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었다.

    "그, 그러니까 이 몸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는가아!"

    그리고 뒤 이어서 살짝 기가 죽은 느낌의 디아나의 외침도 들려왔다.

    대체 무슨 소란이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라가 또 언어폭력으로 디아나를 무차별 난타 할 것 같다는 예감은 들었다.

    좋아. 도와주기로 할까.

    안 그래도 오늘 예쁜 짓을 엄청나게 많이 한 디아나다.

    만약 내가 언어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선 디아나를 감싸주지 않으면.

    "사라야. 넌 또 왜 우리 디아나 기를 죽이고…."

    "구원은 나가있어!"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쟤 또 왜 저렇게 흥분했냐.

    "으, 응. 아니. 잠깐. 조용히 하는 게 아니라 나가라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냐?"

    "구원씨."

    "네. 천사님."

    "저희끼리 조금 할 얘기가 있어요. 조금 자리를 비워주시면 안 될까요?"

    게다가 흥분한 건 사라뿐만이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포근한 미소로 날 쳐다보면서 말하는 레이아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 천사님마저 살짝 심기가 불편해보이셔.

    나는 곧장 결심을 했다.

    "네. 천사님."

    디아나 감싸기를 포기하고 이 방을 나설 결심을.

    "나, 낭군님? 낭군니임?!"

    미안. 디아나. 나는 무력해. 지금의 나로선…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는 디아나를 뒤로 한 채, 나는 곧장 방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여기, 일단 내 방인데 말이야.

    뭐, 상관없지만.

    아무튼 방에서 쫓겨난 나는, 이걸 기회로 혼자서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 위에 누워있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날이니까 말이야.

    이쯤에서 한 번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정리할 생각이란, 당연히 디아나와 바넷사에 관한 걸 말하는 거다.

    바넷사의 이상 행동이나 디아나가 우리 애들한테 사과하는 모습. 둘 다 디아나와 바넷사가 서로 대화를 나눈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필연적으로 뭔가 연관이 있을 거란 말이지.

    하지만 뭐가, 어떻게 연관이 있는 걸까?

    그 해답은 얻기 위해서는 둘이서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를 알아야 한다.

    바넷사는 분명 디아나가 자신을 혼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디아나가 바넷사에게 방에서 얘기 좀 하자고 했던 타이밍을 생각해본다면, 역시 나랑 뭔가 관련이 있는 얘기를 했을 거란 말이지.

    나와 바넷사가 관련된…그렇게 생각하니, 또 다시 생각해선 안 될 생각이 머릿속에서 슬그머니 떠올랐다.

    그리고 혼란한 내 머리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하나의 가능성을 무심코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바넷사 걔 진짜로 내게 감정이 있거나 한 거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응? 잠깐만.

    잠깐만잠깐만잠깐만.

    혹시. 혹시, 디아나랑 바넷사가 했다는 얘기가?!

    그래! 그럼 바넷사의 얼굴에 울음기가 남아있었던 것도 충분히 설명이 되잖아!

    분명 그런 거야! 디아나가 바넷사의 마음을 깨닫고, 바넷사에게 주의를…아니. 잠깐. 그럼 모순이 생기는데?

    디아나는 사라나 레이아한테 사과를 하고 있었지?

    사라와 레이아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실비아와 마틸다는 자신들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듯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걔들에겐 퇴실명령을 내리지 않고, 내게만 나가있으라고 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것 말고도 수많은 힌트들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었다.

    내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말.

    그리고 디아나가 사과할만한 말.

    바넷사와 대화를 마치고 온 디아나가, 굳이 내게 바넷사를 찾아가라고 했던 사실.

    누가 봐도 울고난 직후란 사실을 알 수 있었던 바넷사의 얼굴.

    내가 그 몸을 잡거나, 뭔가 말만 하려고 해도 움찔움찔 떨었던 바넷사의 반응.

    내가 사과하자 다시 한 번 터져나왔던 바넷사의 눈물.

    갖가지 사실들이 차례차례 머리에 떠오르면서, 마치 퍼즐처럼 서로 맞물리며 끼워 맞춰져갔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퍼즐은 단 하나의 대답만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아니. 하지만 설마 디아나가, 정말로 그렇게 했단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쉽게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의문스럽게 생각했던 모든 사건들이 전부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나는 복도 한쪽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아까 전 바넷사가 도망가듯 모습을 감췄던 곳.

    바넷사는 일이 있다면서 가버렸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바넷사는 분명 지금쯤 일 같은 걸 하고 있지 않을 거다.

    그럴 경황이 있는 상태가 아닐 테니까.

    게다가 이 복도가 어디로 이어지는 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내 생각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나는 마치 운명이 이끌리듯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전진해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그 방이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원래는 오늘 두 편을 쓸 생각으로 퇴근하자마자 딴 짓 아무것도 안 하고 컴퓨터만 붙들고 있었는데, 글이 잘 안 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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