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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58화 (54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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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보내준 마지막 선물

    실비아가 기절에서 깨어난 후, 우리는 일단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던전에 들어온 지도 벌써 17일째.

    원래는 이 얼음동굴을 한차례 다 돌았던 시점에서 돌아가려고 했던 거다.

    예상보다 던전에 있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져 버렸다.

    뭐, 결과적으로 4.5계층으로 통하는 입구를 발견한 거니까 잘 된 거지만 말이야.

    아무튼 돌아가기로 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하나는 다시 얼음 동굴을 거슬러 올라가서 3계층으로 빠져나온 후 거기서 마을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여기서 곧장 4계층으로 빠져나간 후, 거기서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다.

    안정성만 따지고 보면 당연히 3계층에서 돌아가는 게 편하겠지만, 걸리는 시간을 따지고 보면 4계층으로 돌아가는 편이 빠르기는 할 거다.

    몬스터 수준이 더 높다는 걸 감안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조난당했을 때는 거기까지 가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기 때문에 4계층의 마을이 멀다는 인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조난당했을 때하고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자는 도중에 몇 번이나 떠내려가기도 했었고, 혼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가다보니 마나 관리나 생명력 관리에 시간을 쏟기도 하는 등, 상당히 시간을 많이 지체하며 이동했었다.

    무엇보다도 그때는 맵을 밝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일단 4계층 마을에 한 번 다녀온 지금이라면, 맵만 보고 최단 루트로 마을까지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이왕이면 4계층을 통해서 돌아가고 싶은데."

    우리 애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러면 4계층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가야 하잖아?"

    "이제 와서 그 정도쯤이야. 너희가 내가 혼자 다닐 때 싸우는 모습을 못 봐서 그러는 모양인데, 나 혼자서도 걔들 전부 찜 쪄 먹을 수 있어."

    "구원씨."

    내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자, 레이아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내 이름을 불렀다.

    "응? 네. 천사님."

    "또 그렇게 방심하시다가 다치시면 혼낼 거예요."

    그리고는 주먹 쥔 손을 자기 얼굴 옆까지 들어 올린 다음 손목을 까딱하고 움직이며 혼내는 것 같은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뭐야. 저 제스처. 설마 때리는 시늉하신 건가? 내 눈엔 그냥 고양이 흉내로밖에 안 보였는데.

    우리 천사님 진짜 너무 귀여우신 거 아니야?

    저 성숙하고 아름다운 외모로 귀엽기까지 하시다니. 진짜 사기야.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곧장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또 그렇게 적당히…."

    아니. 이 헤실 거리는 미소는 나도 어쩔 수 없어.

    남자라면 레이아랑 말하는 순간 누구라도 다 이렇게 된다고.

    "아무튼 나는 4계층으로 돌아가고 싶어. 이왕이면 우리 힘으로 4계층 마을에 도달해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읏! 자, 자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디아나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디아나는 자신의 판단을 조금 후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텔레포트 마법진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계층의 마을이 도착하게 된 이후에나 이용하라고 했던 자신의 판단을 말이다.

    디아나는 모든 계층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미 등록해둔 상황이다.

    그러니 같은 클랜의 우리라면 디아나의 힘을 빌어서 일단 모든 계층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등록해두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예전에 디아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등록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며 우리에게 텔레포트 마법진을 등록시켜주는 걸 거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만약 디아나가 미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등록시켜 줬었다면, 내가 조난당했을 때 훨씬 빨리 마을로 복귀할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내가 조난하고 나서야, 디아나는 그런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게 됐다는 얘기다.

    게다가 결국 4계층의 텔레포트 마법진은 그런 식으로 전원 등록하게 되어버렸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얘기고, 나는 개인적으로 디아나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마을까지 도달할 힘이 없다면,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지 말아야한다.

    힘 없는 자가 자신보다 수준 높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디아나가 전생하기 전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여차하면 그 어떤 위기에서라도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니까 더더욱 말이다.

    만약 디아나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미리 등록시켜 줬다면, 우리는 주제도 모르고 4계층의 심부부터 탐험을 시작하다가 내 조난보다 훨씬 큰 위기, 예를 들면 파티 전멸 같은 위기를 맞이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갔지만, 너희는 아니잖아? 그런 건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디아나를 긍정해주는 의미에서도, 나는 4계층을 통한 복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대체 왜 잘난 듯이 말하는 건가요? 그냥 조난당한 것뿐이잖아요."

    "그래도 내 힘으로 거기까지 헤엄쳐간 건 맞잖아? 안 그래?"

    "네에…그래요오…."

    황당하다는 말투로 대꾸한 마틸다였지만, 내가 그 턱을 붙잡고 다시 한 번 되묻자 바로 긍정해줬다.

    음. 역시 솔직한 게 제일이라니까.

    "바보. 저주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지 마!"

    그런 날 보고, 사라가 한숨을 내쉬면서 가볍게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래서, 사라도 반대야?"

    "딱히 반대는 아니지만…난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어."

    "다른 사람은?"

    "이, 이 몸도 상관없네."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허리에 찰싹 매달려왔다.

    아무래도 내가 굳이 4계층으로 가려고 하는 이유를 이해한 모양이다.

    그래. 그래. 나밖에 없지?

    "레이아는?"

    "…한 가지만 확인하게 해주세요. 구원씨, 정말로 4계층에서도 괜찮으신 거죠?"

    "그럼 당연하지."

    "정말로 정말이죠?"

    "정말로 정말이야."

    "그렇다면 저도 찬성이에요."

    천사님은 내 몸을 몇 번이나 걱정하며 확인한 끝에, 겨우 찬성을 해줬다.

    난 그렇게 섬세한 놈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천사님. 사랑합니다.

    "그럼 갈까?"

    그렇게 결론이 나고 나서, 우리는 곧장 4계층을 통해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실비아랑 마틸다의 의견은 어쨌냐고?

    이 둘이 내 의견에 반대할 리가 없잖아?

    평소라면 모를까 마틸다는 지금 핑크빛 모드에 들어간 상황이고, 실비아는 아직도 아까 전 키스의 여파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차라리 4계층 같이 더 위험한 곳으로 가서, 전투의 긴장감이라도 가지게 되는 게 둘한테 있어선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며칠 만에 다시 4계층으로 돌아온 우리는, 맵을 바라보며 곧장 마을을 향해 헤엄을 쳐갔다.

    실비아나 마틸다 역시도 우리에게 뒤처지지 않고 헤엄치는 걸 보면, 역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 둘은 중갑옷을 입고 있으니까 말이야.

    뭐, 둘 다 높으신 분들인 만큼, 갑옷이 상당히 좋은 물건이기 때문에 무게가 보기보단 덜 나갈 거란 이유도 있겠지만.

    실비아는 원래부터 중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마틸다 역시도 성기사로 전직한 후에 장비를 싹 다 바꿨다.

    복잡해보이던 추기경복에서, 그야말로 성기사랑 칭호가 어울리는 화려한 갑옷으로.

    듣자하니 이전에 성기사대 대장을 할 때부터 입고 다니던 갑옷이라나.

    게다가 무기 역시도, 스태프에서 철퇴로 바꿨다.

    종교인들은 날붙이를 쓰지 않는 다는 설정은 꽤나 흔한 설정이지만, 저 레이아 다음가는 나이스 바디의 마틸다가 중갑옷을 껴입고 철퇴까지 들고 있으니 솔직히 처음엔 엄청 어색했다.

    게다가 저 철퇴도 결국엔 성직자의 무기잖아?

    저것도 성기로 만들어진 걸까? 무서워서 물어볼 순 없지만.

    아니. 생각해봐. 스태프는 그나마 보통 보조용으로 쓰지만, 철퇴는 휘두르면서 직접 타격을 가하는 거잖아?

    성기로 만든 무기로 두들겨 맞는다니, 내가 몬스터였으면 울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동안 헤엄쳐가고 있었을 때, 사라가 갑자기 헤엄을 멈추더니 자세를 잡고는 활시위를 겨눴다.

    사라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나도 시선을 돌려봤지만, 거기에 보이는 건 그저 끝없이 펼쳐진 물뿐이었다.

    "사라?"

    내 부름에도 반응하지 않고, 사라는 그대로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사라의 활에서 기로 만들어진 화살이 마치 레이저처럼 쏘아져나갔다.

    "가자."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사라는 다시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대체 뭐였던 거야?

    그 의문은 몇 분 더 앞으로 헤엄쳐나가고 나서야 겨우 밝혀졌다.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상어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둥둥 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 냄새를 맡은 건지, 상어 시체의 주변에는 다른 종으로 보이는 상어 세 마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뭐, 그래봤자 겁먹을 건 전혀 없지만.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월영무사의 힘을 시험해볼까?

    일단 제일 가까운 한 마리부터 기습으로…!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세 마리의 상어의 몸에 동시에 구멍이 뚫렸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사라를 보자, 사라가 자신의 활을 다시 등에 걸으면서 오랜만에 자기 생김새에 잘 어울리는 쿨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누가 누구 싸우는 모습을 못 봤다고?"

    "나대서 죄송합니다."

    지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세 마리가 일렬로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세 마리가 동시에 죽었어.

    설마 한 번에 화살 세 개를 날린 거야?

    게다가 저기 처음부터 죽어있던 놈. 저것도 사라가 잡은 거지?

    대체 얼마나 멀리서 잡은 거야.

    얼음동굴에선 평범하게 싸웠기 때문에 별로 실감이 안 됐는데, 역시 사라 얘 엄청 강해졌구나.

    어쩐지 평소라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면서 마력을 아끼면서 다녔을 디아나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바람 마법을 펑펑 써대더라니.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거였군.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가.

    뭐야. 이 용사님. 엄청 듬직하잖아.

    그렇게 강해진 사라의 활약에 힘입어,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헤엄만 칠 수 있었다.

    아니. 거의라고 할까…진짜로 아무것도 안 했다.

    뭐 몬스터가 다가오기도 전에 사라가 다 잡아버리니까 할 게 있어야지.

    대체 얼음 동굴에선 왜 저렇게 안 한 건데?

    설마 내 기를 살려주려고 그랬나?

    아니면 여기가 내가 조난당했던 4계층이니까, 내가 뭔가 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건가?

    아무튼 그렇게 헤엄만 쳤음에도 불구하고, 마을까지 도달하는 데는 며칠의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3계층을 거쳐서 돌아갔을 것과 비교해보면 훨씬 빨리 돌아가게 되는 거지만.

    "좋아. 이제 앞으로 한두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다들 힘내자."

    아마 이번 던전행에서 하게 될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모두를 돌아보며 파티 리더답게 그렇게 말했다.

    전체적인 조언은 디아나가, 실질적인 전투는 사라가. 뭔가 점점 리더로서 할 일이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은 들지만, 그래도 일단 리더는 나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 일어섰을 때, 내 시야 한 구석에 익숙한 뭔가 포착됐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자연히 몸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 아, 아아…퍼…."

    "구원씨? 왜 그러세요?"

    며칠 동안 4계층에서도 계속 멀쩡했던 내 모습을 본 탓인지, 이제는 전처럼 크게 걱정은 안 하게된 레이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살짝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엿봤다.

    하지만 그런 천사님의 가련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 모습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펄스으으으은!"

    나는 식사를 위해 디아나가 만들어놓은 공기 방울을 벗어나서, 저 멀리 보이는 친구를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쳐나갔다.

    하지만 그런 나보다 한 발 빨리 펄슨에게 다가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피라냐형 몬스터였다.

    "안 돼애애애! 펄스으으은!"

    내 비통한 외침도 허망하게, 펄슨은 피라냐의 그 날카로운 이빨에 찢겨서 펑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다음 순간 사라의 화살이 파라냐의 몸을 꿰뚫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암 쏘리…암 쏘리 펄슨…크흑…흑…흑…."

    내 뺨을 타고내리는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그대로 4계층을 채우고 있는 차가운 물에 녹아내리며 그 양을 더해줬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펄슨의 인기가 너무 많아서 예정에도 없던 깜짝 등장을 시켜드렸습니다.

    닭구 // 정령사 레벨도 사실 조난 당했을 때 오른 게 대부분입니다.

    밥먹을 때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여 공기를 생성하거나, 수영할 때 물의 정령의 힘도 빌리는 등 묘사만 안 됐지 상당히 정령을 많이 썼거든요.

    그리고 실비아는 전부터 이미 전위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성역 선포를 쓸 일이 있거나 하는 몇몇 특수 상황에서만 후위에서 싸웠죠.

    루인sv // 물론 습득 가능합니다. 다만 몇 화 전에 묘사된 것처럼, 구원은 히로인들의 스탯이나 스킬 관리를 되도록 안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게임 캐릭터 관리하듯 만지는 게 싫다는 생각 때문에요.

    그리고 사실 구원이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강하기도 하고요.

    작중에 설명만 안 나왔을 뿐이지, 사라도 이것저것 스킬을 익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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