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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56화 (54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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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 강림을 위하여

    "후. 겨우 갔네. 그럼 우린 다시 갈까."

    그렇게 듀크 파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 나는 곧장 딱딱하게 굳혔던 표정을 풀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어? 복수는? 정말로 안 하게?"

    사라는 내가 방금 전까지 했던 말이 아예 거짓말은 아닌 줄 알았던 건지, 황당하단 표정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당연하지. 왜? 하고 싶어?"

    "흥. 누가…."

    "이미 했네."

    "디아나!"

    새초롬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려했던 사라였지만, 디아나의 폭로에 곧장 얼굴을 붉히며 디아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런 사라의 몸을 꽉 붙잡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 디아나에게 눈짓을 했다.

    자, 뭔데? 빨리 말해봐! 버티기 힘드니까! 사라 얘 진짜 왜 이렇게 힘이 세진거야?!

    "자네를 찾으며 돌아다니던 중, 고래의 그림자만 보여도 쫓아가서 전부 죽이고 다녔네."

    "고, 고래에 휩쓸려갔으니까 혹시 뱃속에 집어삼켜진 거 아닌지 확인해본 거라고요! 디아나도 동의했잖아요!"

    사라는 내 품에서 벗어나는 걸 포기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디아나에게 항의했다.

    "누가 뭐라고 했는가."

    그렇게 말하는 디아나는, 사라를 놀리는 게 즐거운 듯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라야 사랑해."

    "나, 나도 알거든?! 던전에서 뭐하는 짓이야! 놔! 이 바보야!"

    내가 귓가에 그렇게 속삭여주는 게 상당히 부끄러웠던 건지, 사라는 다시 내게 떨어지려고 발버둥 치면서 외쳤다.

    음. 음. 과연 우리 파티의 막내. 하여간 귀엽다니까.

    "그래. 그럼 우리 사라의 리퀘스트에 따라서, 어디 한 번 고래를 잡으러…얼음 동굴로 돌아가자. 지금 당장! 디아나! 서둘러! 얼른! 허리 업!"

    사라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어디 한 번 고래를 잡아보려 했던 나였지만, 곧장 마음을 바꾸고 디아나에게 다급히 돌아갈 준비를 시킬 수밖에 없어졌다.

    "으, 음? 갑자기 왜 그러는가?"

    왜냐고? 간단하다.

    저기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급속도로 헤엄쳐오는 게 보였거든.

    구릿빛의 탄력 있는 피부에, 마치 피처럼 붉은 특징적인 머리카락.

    바로 앨리시아였다.

    그것도 어째선지, 제대로 맛이 간 눈으로 날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위험해. 저 눈은 살인을 결심한 눈이야.

    앨리시아의 뒤에는 마치 금붕어 똥처럼 뒤따라오고 있는 세 명의 떨거지도 보였지만, 앨리시아의 기세가 워낙 흉포했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무튼! 빨리! 위험해! 너희 낭군님 죽을지도 몰라!"

    "아, 알겠네. 보채지 말게."

    내가 워낙 다급하게 말하는 바람에 놀랐는지, 디아나는 다시 마나를 풀어서 아까 얼음동굴을 빠져나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물의 흐름을 멈춰줬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황급히 제일 헤엄을 못 치는 실비아와 마틸다를 각각 한 손으로 붙잡고 황급히 얼음동굴을 향해 발장구를 쳤다.

    "자! 가자! 빨리!"

    앨리시아 파티는 마법사가 없다.

    내가 무사한 걸 확인한 이후로, 쌍둥이 간부 중 한 명인 레아는 다시 파티를 이탈한 모양이었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런 고로, 얼음 동굴까지만 돌아가면 앨리시아는 쫓아올 수단이 없어진다.

    우리는 앨리시아가 도착하기 전에 황급히 다시 얼음 동굴로 들어가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구워어어어어어언! 이 새끼야아아아!"

    4계층은 온통 물속. 공기로 서로를 이어주지 않는 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분명 그럴 텐데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저 멀리서 앨리시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허억. 허억. 후우. 십년감수했네. 앨리시아 쟤 뭐냐?"

    얼음동굴에 도착한 후, 나는 필사적으로 숨을 고르면서 진동하는 실비아와 내 품에 달라붙는 마틸다를 떼어놓고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 던전에 들어온 이후로 제일 긴박한 상황이었어.

    "네? 앨리시아씨요?"

    "응. 거의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이쪽으로 왔잖아. 레이아는 못 봤어?"

    "네, 네에…."

    "잠깐. 그럼 설마 앨리시아씨한테 도망가려고 서두른 거였어? 왜?"

    "왜냐니. 무섭잖아. 쟤 대체 왜 저렇게 화난 거지?"

    "……하아. 이런 거 보면 난 참 운이 좋은 것 같아."

    "음. 동감이네."

    "여, 여러분도 참. …물론 운이 좋은 건 맞지만요."

    "뭐?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네요. 바보야. 아무튼 황제 펭귄이 부활할 때까지 여기 있을 거지? 침낭이나 꺼내는 게 어때?"

    결국 수수께끼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은 채, 나는 의문을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뭐, 털털한 성격의 앨리시아니까.

    화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얼굴 안 보고 지내면 또 알아서 풀려있겠지.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우리는 마침내 황제 펭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우리가 다른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굳이 보스가 벽들을 뚫게 할 것 없이, 우리가 직접 뚫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특별한 마력이라도 작용하는 건지, 우리 힘으로 구멍을 뚫어봤자 전에 보스가 뚫었던 것과 다르게 금방 막혀버려서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 깊게, 어느 방향으로 뚫어야하는 건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더더욱 말이다.

    때문에 결국 스스로 구멍을 뚫어보려는 시도는 포기하고, 우리는 적당히 근처에서 튀어나오는 펭귄들만 상대하며 황제 펭귄이 부활하기를 기다렸다는 거다.

    "덤벼라. 축생 놈아."

    공격력이 강한 만큼 방어력이 약하다.

    모든 펭귄에게 적용되는 이 특징은 황제 펭귄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도 가능은 했다.

    하지만 우리 목적은 이 놈에게 구멍을 뚫게 하는 것.

    그것도 어느 방향으로 뚫어야 수컷 펭귄이 있는 방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많이.

    때문에 일단 다른 애들은 보스 룸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대기하고, 나 혼자 중앙에 당당히 서서 성역 선포로 어그로를 끈 후에 놈의 공격을 회피하기로 했다.

    "끼에에엑!"

    내가 쿵푸라도 하는 것처럼 자세를 잡고 손을 까딱까딱 거리자, 정말로 도발이라도 당했는지 황제 펭귄은 괴성을 내지르며 미사일처럼 내게 날라왔다.

    하지만 암살자 레벨이 오르며 민첩이 엄청나게 오른 나에게 그걸 피하는 건 식은 죽…먹기는 아니었지만 일단 피할 수는 있었다.

    아니. 쟤 그래도 일단 보스라 빠르단 말이야.

    게다가 아무리 아이젠을 착용했다고는 해도, 얼음 바닥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기는 힘들다고.

    뭐, 그래봤자 저 녀석이 내 상대는 아니지만 말이야.

    10분정도 아슬아슬하게 회피만 반복하면서 보스 룸 사방팔방에 구멍을 잔뜩 뚫어놓은 후, 이쯤하면 됐다 싶은 타이밍에 나는 미사일처럼 날아오른 황제 펭귄 상대로 암습을 가했다.

    물론 손에는 성자의 손길을 담아서.

    "꽤액!"

    방어력이 낮다고 매력이 낮은 건 아닐 텐데도, 더더욱 강해진 내 스킬에는 결국 이길 수 없었는지 놈은 허망하게 그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스스로의 암살자 레벨이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실은 계속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지!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조난 중에 무투가와 암살자 레벨을 엄청나게 올릴 수 있었다.

    특히 무투가 레벨은 이미 100에 도달해있는 상태였다.

    물론 아직 전직은 안 했기 때문에, 그 이상 레벨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왜 전직을 안 하고 있었냐고? 간단하다.

    전직할 수 있는 상위 직업 중에 특이한 게 하나 보였거든.

    이름 하여 월영무사. 무투가의 상위직업이면서 동시에 암살자의 상위 직업.

    즉, 두 직업 레벨을 둘 다 100으로 올릴 수 있는 특수 직업이었다.

    후훗. 실은 무투가를 얻었을 때부터, 이걸 염두해두고 굳이 카일을 족쳐가며 암살자란 직업을 얻었던…그래. 미안. 거짓말이야. 암살자는 그냥 은신술로 여탕이나 엿보고 싶어서 얻은 거였어.

    설마 이런 직업이 있었을 줄이야.

    두 직업을 합쳐서 전직할 수 있는 특수 직업이 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레이트 어스의 게임이 직업이 좀 많아야 말이지.

    과연 나도 특수 직업을 일일이 꿰고 있지는 못했다고.

    이번엔 운이 좋았다. 혹시 이것도 여신님의 인도인 건가?

    아무튼 그래서 전직을 안 하고 있었던 나였지만, 방금 암살자 레벨이 오름으로서 드디어 전직 조건이 충족됐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월영무사로 전직을 했다.

    이름 : 구원

    종족 : 인간 24

    직업 : 성자 154 / 모험가 78 / 월영무사 100 / 정령사 23

    레벨 : 154

    생명 : 40800/40800

    정기 : 12900/15400

    근력 : 328

    내구 : 421

    민첩 : 362

    체력 : 298

    지력 : 186

    정신 : 303

    매력 : 407

    보너스 스탯 : 218

    상태 : 보통

    그래. 좋아. 만족스러워.

    실은 두 직업을 합치는 특수 직업이라고 해서, 다른 직업에 비해서 특별히 능력이 더 좋거나 한 건 아니었다.

    이런 특수 직업의 특징이라고는 두 직업의 특징을 한 직업으로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특징이 나에게는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는 성자의 손길을 베이스로 깔고 무투가 스킬과 암살자 스킬을 번갈아가며 쓰면서 두 직업의 레벨을 올려왔는데, 이제는 그냥 월영무사 하나의 레벨만 올리면 두 직업의 스탯 보정을 동시에 받는 효과가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무투가의 상위직, 암살자의 상위직을 각각 올리는 것보다는 보정치가 떨어지겠지만, 어차피 둘 다 고르게 고레벨로 키울 시간도 없고 말이다.

    게다가 어차피 암살자는 반쯤 은신만을 위한 직업이었으니, 이렇게 합치는 편이 몇 배는 낫다.

    괜히 사람들이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가지지 않고 한두 가지 직업에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고.

    디아나를 봐. 던전 탐험을 위한 모험가를 제외하면 깔끔하게 마법사 하나밖에 없잖아.

    가능하면 정령사까지 다른 직업이랑 합치고 싶을 정도였다.

    정령 역시 간편히 몸을 씻을 때 빼고는 별로 쓰질 않으니까 말이야.

    뭐, 조난 중 밥 먹을 때마다 바람의 정령을 잘 쓰긴 했지만.

    월영무사하고 정령사도 나중에 합칠 수 없으려나?

    욕심인가? 응. 욕심이지.

    애초에 정령사는 100레벨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구원씨? 구원씨?! 혹시 어디 다치셨어요?"

    이런. 너무 오래 멍하니 있었나.

    황제 펭귄을 잡고나서 전직을 하느라 가만히 허공을 쳐다보고 있던 날 향해, 레이아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재빠르게 달려왔다.

    천사님, 얼음 바닥에서 그런 식으로 달리면 넘어진다고요.

    "아, 아니. 괜찮아. 레벨 업을 해서 전직 좀 하느라 그랬어. 미안."

    내 품에 안기듯 다가온 레이아를 가볍게 안아주고,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이도 아직 보스가 뚫어놓은 구멍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역시 황제 펭귄이 직접 뚫는 게 조건이었나.

    그 모습을 보니, 이 구멍 중 어딘가에 수컷 펭귄이 숨어있을 거라는 예측에 더더욱 확신이 생겼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기믹이 괜히 존재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구멍이 좀 작네.

    우리 애들 같은 경우라면 문제없겠지만, 나는 저길 기어가려면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구원. 일단 내가 먼저 들어가서 확인하고 올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 샌가 다가온 사라가 바닥의 구멍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뭐? 안 돼. 위험해."

    "황제 펭귄은 구원이 상대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

    사라는 나 혼자 황제 펭귄을 상대하게 만들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아니. 그래도 안 돼. 어차피 성기를 얻으려면 내가 스킬을 써야 되잖아?"

    "으읏…그, 그건…그럼 어느 구멍에 있는지 정찰만이라도! 그런 거라면 괜찮지? 어차피 구원 덩치로 이 구멍을 일일이 다 확인해볼 순 없으니까. 그러기 전에 막혀버릴걸?"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날 조금이라도 쉬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구, 구원님. 정찰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러네요. 실비아씨나 저라면 만약 들키더라도 충분히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테고. 이 임무는 저희가 적임이네요."

    그리고 그런 사라의 생각에는 실비아와 마틸다도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얘들도 참. 방금 내가 싸우는 거 봤으니까 별로 힘도 안 들였다는 거 잘 알 텐데도.

    "그래. 알았어. 그럼…."

    "후훙. 여기일세."

    우리가 그렇게 훈훈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디아나가 어떠냔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한 구멍을 가리켰다.

    "…응?"

    "뭘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보는가. 자네가 대화할 동안 바람 마법으로 어디가 다른 공간으로 이어져있는지 확인했네. 여기일세."

    "…아, 응. 역시 디아나야."

    "음!"

    언제 어디서도 편리한 디아나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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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구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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