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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52화 (53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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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 강림을 위하여

    "뭐가?"

    아무렇지도 않냐니?

    내 앞에서 다른 남자와의 그런 얘기를 한 거 말고, 또 뭐 문제될 게 있었나?

    내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이아가 반쯤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하지만 전…정기 흡수를 통해 다른 사람 능력을 흡수할지도 모르는 거라고요?!"

    "그게 왜? 어차피 레이아는 나하고만 자잖아. 아무한테도 피해를 안 준다고."

    "그렇지 않아요! 구원씨에게 피해를 주게 되잖아요!"

    "아니. 내 스킬은 흡수 안 됐어."

    과연. 그걸 불안해했던 건가.

    하여간 레이아도 바보 같기는. 대체 왜 그런 걸 불안해하는 거야?

    울먹이는 레이아를 보고, 나는 그렇게 말해줬다.

    "…네에?"

    "레이아. 내가 네 스킬을 전부 볼 수 있다는 걸 잊은 거야? 걱정 마. 흡수 안 했어. 아니. 만약 흡수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전혀 신경 안 써. 뭐야. 레이아는 자기가 내 스킬을 빨아들이니까, 내가 그걸로 레이아를 싫어하거나, 레이아와의 관계를 꺼려하게 되거나 뭐 그럴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없잖아. 오히려 레이아가 나랑 안 잔다고 하면 지금 당장 울 자신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일부러 시선을 내려서 레이아의 가슴골을 힐끔 쳐다봤다.

    그럼. 당연히 울어야지. 울며 빌어서라도 무조건 관계를 회복하고 말테다.

    그리고 레이아의 스킬창에 내 스킬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늘 레이아의 스킬은 어제 여신 강림 실패 사건 때문에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만약 내 스킬을 빨아들였으면 눈치를 못챌 리가 없다. 레이아의 스킬창은 깔끔하게도 사제와 대사제 탭밖에 없었으니까.

    아니. 그러고 보니 대사제의 스킬을 빨아들인 거면, 사제일 때도 대사제 탭이 있었어야 했잖아. …있었던가?

    으음…. 기억이 안 난다.

    어쩌면 그 직업을 배워야 활성화 된다든가? 아니면 정기 흡수로 완전히 죽여야 스킬을 흡수한다든가?

    뭐, 아무렴 어때. 어차피 레이아는 나하고밖에 안 잘 건데.

    그리고 내 스킬도 딱히 레벨이 줄어있거나 한적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스킬창은 꽤나 자주 봤으니까 말이야. 스킬이 레벨이 줄어있거나 했으면 아무리 나라도 눈치를 챘을 거다.

    내가 레이아랑 대체 얼마나 오래 관계를 맺어왔는데.

    지금까지 그런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앞으로도 내게 피해는 없을 거라는 거다.

    뭐, 솔직히 레이아에게라면 스킬 레벨 조금 빨려도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까짓 스킬 레벨. 다시 올리면 그만이지.

    나한텐 그런 것보다 레이아와의 관계가 훨씬 소중해.

    "구, 구원씨…. 구원씨도 차암…."

    감동받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레이아는, 내가 정말로 엉엉 우는 척을 하려고 하자 물기 어린 목소리로 피식 웃으면서 꼬리로 가볍게 내 허벅지를 쓰다듬어줬다.

    "너무 그렇게 착하시면…."

    "왜? 새삼 다시 반했어?"

    "으응…. 그건 불가능해요. 이 이상 반할 수는 없거든요."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해왔다.

    그리고 다시 입술을 뗀 후, 눈가에 살짝 고인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장난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 그렇게 무작정 착하기만 하시면, 언젠가 손해 볼지도 몰라요?"

    내가 언제나 레이아한테 하는 말을.

    "걱정 마. 내가 착한 건 너희를 상대할 때뿐이거든. 이래 봬도 실은 극악무도한…."

    "후훗. 구원씨는 인상부터 너무 좋으셔서 아무리 그래봤자 안 무서워요."

    …아니. 레이아. 그건 좀 콩깍지가 많이 씐 것 같은데.

    나 진짜로 그렇게 좋은 놈은…앞으로 조금만 더 착하게 살자.

    아니. 지금 천사님한테 감화될 때가 아니잖아. 그야 물론 착하게 사는 건 좋은 거지만 말이야.

    "그리고, 레이아한테라면 손해 봐도 전혀 문제없는 걸? 뭣하면 스킬도 전부 빨려도 상관없어. 성자 스킬을 쓰는 레이아한테 당하면 그건 그것대로…흐흐…."

    "정말! 구원씨도 차암! 엉큼하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레이아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자, 레이아는 그제야 활짝 미소를 지으며 아까보다 조금 강하게 내 허벅지를 꼬리로 톡 건드렸다.

    그리고는 이번엔 그 꼬리를 떼지 않고, 그 끝을 마치 붓처럼 움직이면서 내 허벅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이렇게 된 이상 굳이 성자 스킬까지 없더라도 충분히 만족시켜드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리고는 아까완 다르게 전혀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날 유혹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밀어붙여왔다.

    그날 밤, 레이아는 내게 한 번도 스킬을 써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도 구미호 상태의 확인이고 뭐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레이아와의 관계를 즐겼다.

    그리고 덤으로, 레이아는 자신에게 성자 스킬이 없어도 충분하다는 걸 제대로 증명해냈다.

    천사님. 끝내줬어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예정대로 던전에 가기 위해서 각자 준비를 끝마치고 저택의 로비에 모였다.

    우리 애들한테는 미리 말을 해둔 덕분에, 필요한 물품은 어제 바넷사를 시켜서 전부 준비를 해둔 모양이다.

    어제 바넷사가 바쁘다고 했던 건 일단 사실이었다는 말이다.

    "바넷사. 수고…."

    "그럼 디아나님. 이걸로 전 이만."

    뭐, 여전히 나랑은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지만.

    뭘까. 이 가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각은.

    뭐 좋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던전이 우선이지. 던전이.

    "이제야 온 거냐!"

    아무튼 그렇게 길드 앞까지 온 우리였지만, 거기엔 마치 우릴 기다렸다는 듯이 서있는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바로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 앨리시아와, 그 외 떨거지 삼인방이었다.

    뭔가 인사부터 이상하지 않냐?

    얼마 전에 그런 식으로 헤어져놓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은…뭐, 앨리시아니까 그렇다 쳐도 말이야.

    아무튼 그런 앨리시아를 보고, 우리 애들은 곧장 뭔가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하핫. 역시 내 처음을 가져간 상대는 반사적으로 경계하게 되는 건가? 하여간 우리 애들은 왜 이렇게 귀여울까.

    그런 우리 애들과는 반대로, 나는 전혀 경계하지 않은 채로 편안하게 앨리시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성 친구 대하는 것 같아서 편하긴 하단 말이지. 털털하기도 하고.

    "헬로. 던전 다녀오는 길이냐?"

    "그럴 리가 있냐! 너 얼마 전에 나 봤잖아!"

    그야 그렇지. 이렇게 빨리 던전에 다녀오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얘들도 지금부터 던전에 가는 길이란 건데, 그건 또 그거대로 이상했다.

    과연 지치기는 하는 건지 의문인 앨리시아는 둘째 치고, 저 삼인방은 벌써부터 뭔가 피곤에 쪄든 얼굴이니까 말이다.

    그런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칸나가 피곤에 쪄든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길드 앞에…끄아아아아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째선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았지만 말이다.

    쟤 혼자 발 움켜쥐고 뭐하냐? 돌부리에라도 찧었나? 아니. 가만히 서있었잖아?

    "그보다 너희 파티도 던전에 가는 길이냐?"

    "어, 응. 그렇지 뭐. 그럼 역시 너희도?"

    "뭐, 그런 거다. 너희도 4계층으로 가는 거지? 우리도 4계층에 가는데 말이야!"

    어째선지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앨리시아는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살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니. 쟤도 딱히 위협할 생각은 없을 테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앨리시아가 벌써 4계층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앨리시아가 아니라 저 삼인방이 4계층이라는 사실이 놀라운 거지만 말이야.

    전에 앨리시아가 가능성 있는 루키라고 했던 건 아무래도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 우리 파티는 내가 조난당하면서 시간을 지체했다고는 하지만, 설마 저 삼인방한테 따라잡힐 날이 올 줄이야.

    "그러냐. 그럼 어쩌면 던전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

    그런 앨리시아의 평소랑 미묘하게 다른 태도를 보면서, 나는 적당하게 맞장구를 쳐줬다.

    "그, 그래! 정말로 그럴 지도 모르겠네! 자, 그럼 갈까!"

    "응. 그래."

    앞장서는 앨리시아를 따라서, 나도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같이 가려는 것 같은 태도네.

    뭐, 일단 안내 데스크에 파티 인원을 보고하고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가는 건 같은 방향이니, 아는 사람끼리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말이야.

    "안녕하세요. 누님."

    "구, 구원씨!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내가 인사를 하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던 레이첼 누님은, 순식간에 표정을 가다듬고 안내원 스마일을 지으며 인사를 해왔다.

    "오늘은 던전에 가려고 왔어요."

    "버, 벌써요? 괜찮겠어요?"

    내 정신 상태를 걱정한 건지, 누님은 살짝 걱정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네. 완벽히 괜찮아요. 그런 점은 둔한 게 장점이거든요."

    "정말로오. 자랑할 게 아니라고요. 그리고 또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누님은 다시 친한 누님 모드가 되어서 손가락 끝으로 내 코끝을 가볍게 톡 건드리며 일부러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계획적으로 다니라고 말한 직후에 또 이렇게 기습 방문을 하게 됐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돼버리네요."

    "후훗. 뭐, 괜찮아요. 용서해줄게요. 대신. 이번엔 꼭 무사히 돌아와야 돼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이 누나가 또 직접 찾아가서 혼내줄 거예요!"

    레이첼 누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또 다시 눈썹을 찌푸리며 일부러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역시 누님이란 말이지.

    뭐, 전에 사라의 그 폭로가 계속 떠오르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누님은 누님이다.

    "그런 거라면 꼭 좀 다시 부탁드리고싶…."

    "구원씨!"

    "죄송합니다. 농담이에요. 그럼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안내원석으로 손을 뻗어서 누님의 손을 잡은 후 그 손등에 가볍게 키스를 해줬다.

    그러자 아까까지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레이첼 누님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구, 구원씨! 여긴 다른 사람 시선도…!"

    "그러니까 한 거예요. 이 누님은 내 여자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인기 많으시잖아요? 미리 찜해놔야죠."

    "구, 구원씨이!"

    새빨개져서는 내 이름밖에 외치지 않는 레이첼 누님을 보며, 나는 몸을 숙여서 입을 누님의 귓가까지 가져갔다.

    "누님.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당황하시는데요. 왜요? 혹시 이런 건 상상을 못해서 대응을 준비 못했어요?"

    "요, 요, 용무가 끝났으면 비켜주시죠…! 다, 다음 분! 다음 분 차례에요!"

    정곡을 찔린 건지, 누님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확 밀쳐내더니 황급히 내 뒤에 줄서있던 다음 사람을 불렀다.

    "하핫. 다녀올게요."

    조금 장난이 심했나.

    누님은 내 앞에서 어디까지나 누님으로 있으려고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뭐,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누님의 귀여운 모습도 보고 싶어서 그만 말이지.

    아무튼 목적도 달성했겠다, 그럼 어디 기운차게 가볼까!

    "……."

    그 전에, 우리 애들 좀 달래줘야겠지만.

    아니. 앨리시아. 넌 뭔데 우리 애들 틈 사이에 껴서 같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냐?

    아무튼 우리 애들을 어떻게든 달래준 후, 우리는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앨리시아 파티와 함께 오게 됐다.

    파티 등록만이라면 나보다 훨씬 먼저 끝났을 텐데, 그걸 또 내가 레이첼 누님과 노닥거리는 것까지 보면서 기다려준 걸 보면 앨리시아 얜 역시 의리가 있단 말이야.

    역시 사나이의 우정이란 건가!

    "그, 그럼 나중에 보자!"

    "그래. 나중에 보자."

    하지만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온 걸 끝으로, 우리도 결국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먼저 텔레포트를 타고 4계층으로 이동하는 앨리시아 파티를 보면서, 나는 새삼 쟤들이 4계층까지 갔음을 실감했다.

    "우와…쟤들 진짜 4계층까지 갔네. 진짜 근성 대단하다. 자, 그럼 우린 3계층으로 갈까."

    "3계층으로 가는 겐가아!"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디아나가 딴죽을 걸었다.

    "응? 그야 그렇잖아. 얼음 동굴로 갈 거니까. 굳이 4계층에서 갈 거 없잖아?"

    그야 물론 지금처럼 만전 상태의 디아나라면 마나를 퍼부어서 물의 흐름을 멈추고 4계층을 통해 갈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

    "하지만 나중에 보자고 하지 않았나!"

    "응? 평범한 인사잖아? 던전 다니다보면 언젠가 다시 보겠지."

    "자네는…자네는 참…."

    "앨리시아씨…그렇게 노력했을 텐데…."

    "조금…그러네요…."

    "전 그 세 분도 불쌍하네요…."

    "으아아…."

    내 대답을 듣고, 디아나뿐만 아니라 다들 동시에 뭐라고 자기들끼리 조그맣게 속닥이면서 안쓰럽단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연속해서 씬이 너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앞 얘기가 많이 길어지기도 해서 이번엔 씬을 생략 좀 했습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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