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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49화 (53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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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 강림을 위하여

    "그럼 가볼까."

    "…네."

    아무튼 소동이 일단락되고, 나는 마틸다와 함께 방을 나섰다.

    오늘 여기 온 목적은 단순히 전직을 위한 게 아니니까 말이야.

    전에는 너무 혼란한 나머지 별 말도 못하고 그냥 수긍해버렸지만, 마틸다의 마음을 확실히 깨닫고 사도 임명까지 한 지금은 다르다.

    덤벼 보라고 교황님. 우리의 마음은 단단히 이어져 있으니까 말이지.

    아무리 교단의 일을 들먹이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도, 제대로 담판을 지어보이겠어.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으면서 나는 마틸다와 함께 통신 마법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됐다.

    아, 참고로 우리 천사님은 기절한 실비아를 보살핀다는 이유로 소피아 대사제의 집무실에 남았다.

    사라나 디아나도 그랬지만 말이야, 다들 실비아한테만 너무 대응이 미적지근한 거 아냐?

    일단 나랑 자신 이외의 여자랑 노닥거리고 있는 거였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질투해야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다니.

    아니. 뭐, 확실히 실비아의 저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질투하는 것도 바보 같아 질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지.

    그리고 화를 냈다고 해도, 우리 천사님이다.

    허리를 숙이고 검지를 세운 한 손을 내게 내밀면서, "너무 실비아씨를 괴롭히시면 혼낼 거예요! 에, 에잇!" 라고 말하고 내 가슴을 톡 찌른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혼난 게 아니라 포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뭐, 일단 천사님께선 화내고 계신 거니까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런 고로 레이아와 실비아 없이, 그리고 소피아 대사제 역시도 분위기를 파악한 건지 따라오지 않으셔서, 나와 마틸다는 단 둘이서 통신 마법이 설치된 곳으로 향하게 됐다는 얘기다.

    소피아 대사제가 허락해줘야 통신 마법을 사용 가능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 부분은 마틸다의 권한으로도 충분한 모양이었다. 과연 추기경님.

    "네에. 교황청…꺄악! 성자니…!"

    "교황님께 연결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엣?! 아, 마, 마틸다 추기경님! 안녕하세요! 네, 넷! 바로!"

    교황청으로 통신 마법을 연결하자, 모습을 보인 건 전에도 한 번 본적 있는 그 사제였다.

    여전히 뭔가 생긴 거랑 다르게 소란스러운 사람이다.

    그런 감상을 품으며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통신 마법의 수정 너머로 교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성자님. 설마 이 노인을 이렇게도 빨리 다시 찾아주실 줄이야.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거기에 마틸다 추기경까지.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푸근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교황님이었지만, 역시나 뭔가 미묘하게 압박감 같은 게 느껴진단 말이야.

    "안녕하세요. 교황님. 실은 저…저주가 풀려도 교황청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런 교황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틸다는 인사를 하자마자 곧장 본론을 꺼냈다.

    야. 일단 교황님이니까 우선은 인사치레 같은 말도 좀 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

    하여간 행동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호오.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말은?"

    "네. 저주가 풀린 다음에도, 성자님의 곁에서 여신님께서 주신 사명을 도울 생각이에요."

    "호홋. 과연. 그렇다면, 여신님의 사명이 끝나면 돌아오겠다는 것인가요?"

    "네, 넷?! 아, 아니. 저기, 그게…."

    굳은 표정으로 늠름하게 말했던 마틸다였지만, 교황님의 카운터 한 방에 순식간에 태세를 흐트러트리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호홋. 이거, 이거. 지금 보니 성자님도 여간내기가 아니셨군요."

    "네? 아, 아핫. 그, 그게 말이죠. 아하핫."

    시선을 내게 돌리고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교황님을 보고, 나는 그렇게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 교황님, 상대하기 엄청 힘들어.

    "하지만 마틸다 추기경. 당신의 지금 그 마음은 저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날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신 교황님은, 다시 시선을 마틸다에게 돌리고는 이번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걸었다.

    우와. 미소를 지우고 말하니까 이제는 대놓고 압박감이….

    "아뇨. 이 감정은, 절대 저주에 의한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틸다는 결연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만약 저주에 의한 감정이라도 다시 한 번 반하면 된다.

    전에 내가 말했던 대로 그런 식으로 대답할 줄 알았던 나로서는, 저 대답을 듣고 뭔가 더 벅차오르는 감정을 맛봤다.

    지금 느끼는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태도.

    지금의 마틸다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교황님이 보고 있는 것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키스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로.

    "흠. 그런가요. 하지만 마틸다 추기경. 당신이 교황청으로 돌아오지 않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폐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교단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게 될지, 잘 알고 있지요?"

    "네.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전, 구원씨와 함께 여기에 있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며 한층 더 마틸다를 몰아붙이는 교황님이었지만, 마틸다는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에서 교황님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얼마동안, 묘한 침묵이 그 장소를 지배하게 됐다.

    그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교황님이었다.

    "후훗.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성자님의 곁에서 여신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힘을 보태십시오."

    게다가 그 침묵을 깬 말이, 상당히 예상외의 말이었다.

    옆에서 둘의 대치를 지켜만 보고 있던 내가, 무심코 그렇게 딴죽을 걸어버릴 정도로.

    "엥?! 잠깐! 그걸로 끝이에요?! 그렇게 깔끔하게?!"

    "흐음? 성자님께선 뭔가 불만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 아뇨! 저야 물론 허락 받아서 기쁜데요! 그게 아니라! 이럴 거면 아까 그 묘한 압박감이나 묘한 침묵은 뭐였는데요?!"

    "흠. 이 늙은이는 성자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교황님은 그렇게 시치미를 떼면서 빙긋 웃어줄 뿐이었다.

    "그럼 아무래도 얘기는 이걸로 끝인 모양이군요. 성자님, 그리고 마틸다 추기경. 안녕히 계십시오. 앞으로도 모쪼록 여신님의 뜻에 따라, 잘 부탁드립니다."

    "네. 교황님. 몸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호홋. 네. 가끔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서 찾아와 주십시오."

    황당해하는 날 내버려두고, 둘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소를 나눈 후에 통신 마법을 종료했다.

    "…납득이 안 돼."

    "당신은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요? 다 좋게 끝났잖아요?"

    내 중얼거림을 듣고, 통신 마법을 끝낸 마틸다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했다.

    "아니. 불만인 게 아니라 말이야. 이렇게 쉽게 허락해 줄 거면, 대체 지금까지 무게를 잡은 건 뭐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쉽게 허락받았잖아?"

    "그런가요? 전 제대로 제 감정을 말하면 쉽게 허락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뭐? 그럼 너 아까 보였던 반응은 뭔데?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엄청 긴장하고 있었잖아? 그건 대체 뭐였는데?"

    "그, 그거야…. 그렇잖아요. 아무리 저라도 할머니께 그런 보고를 하는 거라고요. 긴장정도는 한다고요."

    내가 따지고 묻자, 마틸다는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아하. 과연. 할머…응? 할머니…?

    "할머니이이이이?! 잠깐만! 그냥 나이 많으신 연장자를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피가 이어져있는 그 할머니 말하는 거야?!"

    "네, 네에…. 설마 몰랐던 건가요?"

    "알 리가 없잖아! 난 이 세계에…! 그야 좀 오래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알 리가 없잖아! 그럼 뭐야?! 난 모르는 사이에 장조모님이랑 면담하고 있었던 거였어?!"

    어쩐지 볼 때마다 묘한 압박감이 느껴지더라니!

    그 시선! 손주 사윗감을 보는 시선이었던 거냐!?

    헷갈린다고! 난 또 성자의 자질을 파악하려는 교황님의 매의 눈인 줄로만 알았지!

    "자, 장조모님…."

    "넌 이제와서 그런 걸로 부끄러워하는 거냐?!"

    뭔가 긴장한 게 바보 같아 진 나였다.

    아니. 긴장했어야 정상인 자리는 맞지만 말이야.

    다른 의미로 긴장해야 됐던 거잖아.

    이 기분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돌아가자."

    "허락받은 거니까 좀 더 기쁜 표정을 하라고요. 왠지 저까지 분위기 처지잖아요."

    "아, 응. 그래. 그래. 아, 참."

    적당히 대답하면서 방을 빠져나가려 했던 나는, 깜박한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마틸다를 정면에서 바라봤다.

    "뭐, 뭔가요…?"

    방금 전까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마틸다였지만, 내가 또 이렇게 정면으로 바라보자 곧장 핑크빛 모드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됐다.

    하여간 너무 쉽다니까.

    뭐, 지금은 진짜로 핑크빛 모드가 되게 만들 생각이지만.

    나는 마틸다의 몸을 끌어안고, 그대로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아까부터 키스하고 싶었거든. 너 방금 엄청 예뻤어."

    "아아…당시이인…."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마틸다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마구잡이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저기…그런 건 다른 곳에서…솔로 앞에서 그러는 건 그만둬 주세요오…. 뭔가요 이거어…. 혹시 신종의 괴롭힘인가요…?"

    그리고 그런 우리 모습을 보면서, 이쪽의 통신 마법 담당 사제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통신 마법이 끊긴 걸 확인하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 미안. 아니. 진짜로 미안.

    "당신…사랑해오오…당시이인…."

    그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미안해진 나였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핑크빛 모드가 된 마틸다는 내게 키스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야. 저 사제님 진짜로 울 것 같으니까 슬슬 그만두자.

    그렇게 마틸다와 계속 있어도 된다는 허락까지 무사히 받고난 우리는, 다시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가 돌아왔을 때 실비아는 이미 깨어난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때까지 내게 안기는 처지가 됐다.

    강한 자극을 잠깐 주고 마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주면서 내성을 키워보자고 생각했었으니까 말이야.

    기절에서 깨어났으니 아까 하던 행위를 계속 해야지.

    저택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말이다.

    안 그래도 내일은 던전에 갈 예정이고, 조난에서 구조된 이후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한 건 실비아뿐이기도 하고 말이다.

    전에 펠리시아의 기운에 영향 받은 걸 풀어주면서, 제대로 된 행위는 나중에 해준다고 말까지 했었는데. 그동안 일이 너무 많이 생겼다보니 예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할 정도다.

    내가 돌아오자마자 실비아를 불러서 껴안는 모습을 보고 천사님이 또 날 혼내려고 했지만, 다행히 실비아가 스스로 나서서 내 변호를  해준 덕분에 혼은 안 나고 끝났다.

    뭐, 천사님한테 라면 혼나도 전혀 상관없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저택에 돌아가게 된 우리였지만, 저택에는 또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이번만은 완전히 내 잘못이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을 했어야 했다.

    어째서 이 생각을 못한 거지?

    저택에 들어가자, 사라가 엄청나게 정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원을 빠른 걸음으로 서성이고 있었던 거다.

    손에는 전에 줬던 목걸이를 꼭 쥐고서.

    그리고 목걸이가 빛나는 순간 무서운 기세로 고개를 돌려서 정문 쪽, 그러니까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거 아니냐?

    피해야 되나? 아니. 저 달려오는 자세를 봐서는, 내가 피했다가는 담장에 그대로 들이받을 기세야.

    빠른 시간에서 결정을 내린 나는, 앞에 끌어안고 있던 실비아를 살짝 옆으로 치우고 두 팔을 벌려서 사라의 돌진을 받아냈다.

    "크허억!"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라의 숄더 태클을 복부에 제대로 얻어맞은 나는 지면에 대자로 뻗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정도로 데미지를 입은 거다.

    분명 태클을 건 사라도 꽤나 충격을 받았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가슴에 자신의 뺨을 마구 비벼왔다.

    "히잉…구워어언…구워어어언…."

    그래. 그래. 네 구원 여기 있다.

    그런 사라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원에 드러누운 채 가만히 그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마 3시 전후로 한 편 더 올릴 수 있을 겁니다.

    asfdgads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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