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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강림을 위하여
언젠가 레이아가 내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대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대사제 둘 이상이 지켜보는 앞에서 여신님께 기도를 바쳐야 한다고.
이는 성기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성기사 둘이 지켜보는 앞에서 기도를 드리면 전직이 된다고 했다.
다만 지켜보는 사람이 꼭 성기사일 필요는 없고,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는 대사제 둘이 지켜보는 앞에서 기도를 드려도 전직이 가능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성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아무래도 대사제보다는 그 수가 적을 수밖에 없어서, 교황청 같은 곳에서 의식을 치르는 게 아닌 이상 보통은 대사제가 보는 앞에서 전직을 한다고.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마틸다는 소피아 대사제를 찾아가서 그런 식으로 부탁을 한 거였다.
레이아와 소피아 대사제가 있으면 전직의 의식을 치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제 계열은 전직하기 상당히 까다롭네."
뭐, 대사제나 성기사에서 한 단계 더 전직을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사람이 필요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기도를 드려서 전직하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그야 그렇겠지. 3차 전직 직업이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추기경인 마틸다 역시도 성직자, 대사제에서 멈춰 있었을 정도니까.
과연 아무리 교황청이라고 하더라도, 3차 전직을 마친 사람이 둘 이상 있기는 한 걸까?
게다가 디아나까지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세계 최고의 마법사라 칭송받는 디아나 역시 3차 전직을 마치고 500레벨 제한의 벽에 막혀 그 이상 전진하지 못했던 모양이니까.
아무튼 그런 고로, 전직의 의식을 하러 레이아와 마틸다, 소피아 대사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는 실비아와 단 둘이서 의식이 끝나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기사 계열 전직도 저렇게 까다로워?"
"흐이이익! 아, 아, 안 그렇습니다!"
내가 품에 안은 실비아의 머리에 턱하니 턱을 올리고 물어보자, 실비아는 반쯤 울먹이면서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실은 나, 아까부터 실피아테라피를 만끽 중이라는 말씀.
하아. 이 피부를 자극하지 않는 부드러운 진동이 몸에 스며드는 기분이야.
그 어떤 마사지기를 가져다놔도 우리 실비아만큼의 성능을 자랑하진 못하겠지.
"그래? 그럼 기사는 어떻게 되는데?"
"기, 기사 말입니까? 기사는 일정 실력을 갖춘 후 주군으로 모실 분에게 기사의 서약을…."
"잠깐 기다려. 기사의 서약? 그 말은 즉, 실비아도 누군가한테 그 기사의 서약을 했다는 말이야?"
"저, 저는 펠리시아에게…."
내가 살짝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자, 실비아가 겁먹은 표정으로 오돌오돌 떨면서 대답했다.
과연. 펠리시아인가. 하긴 그렇겠지. 얘 이래 봬도 왕실친위대고. 펠리시아하고는 소꿉친구고. 뭐, 충분히 납득은 간다.
물론 납득이 된다고 해서 질투심이 안 생기는 건 아니지만.
우리 실비아는 내 건데.
"하, 하지만 예전과 달리 최근의 기사 서약은 구속력은 없습니다! 그저 기사로 전직하기 위한 과정이란 느낌이로! 친한 친구끼리 서로에게 기사의 서약을 하는 일도 빈번하게…!"
내가 조금 불퉁한 표정을 짓자, 실비아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위로 들어서 내 표정을 한 번 살피더니, 필사적으로 그렇게 변명을 시작했다.
친구끼리 서로에게 말이지. 그 정도면 확실히 주군이고 나발이고 그런 걸 엄격하게 따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질투나. 실비아는 내 건데."
"흐헤엣…."
하지만 나는 실비아의 변명을 듣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실비아는,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뻐끔뻐끔 거리기만 할뿐이었다.
내가 질투하는 건 어떻게든 달래줘야겠는데,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질투해주는 게 기쁘다는 듯 입 꼬리는 풀리고 있고, 동시에 부끄럽기까지 하고.
이 모든 감정을 얼굴 하나에 담을 수 있다니. 어떤 의미론 이것도 재능이다.
얘 진짜로 날 만나기 전까진 무표정이었다는 거 사실일까?
아니. 물론 나도 처음 만났을 때 직접 눈으로 보기는 했지만 말이야. 이러고 있으면 아무래도 안 믿긴단 말이지.
뭐, 아무래도 좋지만 말이야. 실비아는 귀엽다. 그걸로 충분해.
"이렇게 된 이상 실비아가 내거라는 뭔가 확실한 증거를 새겨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즈, 즈, 즈, 증거, 증거! 말입니까아?!"
내가 그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여주자, 실비아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한차례 강하게 바르르 떨고는 되물었다.
벌써 이렇게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이미 승천할 것 같은 모습의 실비아였다.
"응. 그래. 증거. 실비아는 뭐가 좋을 것 같아?"
여전히 실비아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있던 나는, 그렇게 속삭여준 후 조심스레 입을 이동하여 실비아의 뺨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히으으읏! 그, 그게, 그러니까! 그게!"
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실비아의 진동은 점점 더 거세져만 갔다.
이제는 마사지 같은 소리는 당연히 할 수 없는 수준이고, 앉고 있는 의자가 덜컥덜컥 떨릴 정도였다.
그런 실비아를 보면서, 나는 뺨에 가져다댔던 입술로 도장을 찍듯 살며시 뗐다가 눌렀다가를 반복하며 고개를 옆으로 이동시켰다.
그래. 바로 실비아의 입술로.
이대로 키스해버리면 실비아는 또 정신줄을 놔버리겠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마틸다에게 사도 임명을 한 것 때문에 나도 조금 조급한 마음이 생기고 말았다.
조금 강제적이라도, 이런 식으로 익숙하게 만드는 게 좋을지도 몰라.
전에 한 번 실패했던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때는 한 번 강하게 나갔을 뿐 지속적으로 자극을 준 건 아니니까 말이다.
지속적으로 계속 스킨십을 늘려가다 보면, 언젠간 익숙해질지도 몰라.
적어도 사도 임명이 가능한 수준까지 만이라도.
"나는 말이지. 실비아."
"네, 네헵! 아읏…!"
실비아의 입술 바로 앞.
거의 1c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까지 입술을 가져다대고 내가 그렇게 말을 하자, 실비아는 얼마나 당황한 건지 혀까지 씹으며 대답했다.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사도 인장 같은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네가 내 거라는 증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혀를 내밀어 실비아의 입술을 가볍게 핥아줬다.
"히야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실비아가 고음의, 뭐라 형용하기 힘든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댔다.
솔직히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기 때문에 언제든 붙잡을 준비를 하며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실비아는 아무런 저항 없이 내 키스를 받아줬다.
다만 내 키스에 호응을 일절 없었고, 호응은커녕 오히려 아무런 움직임조차 없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냥 도망가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건가 싶었지만, 과연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으니까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 말이야. 입술이 안 움직이는 건 그렇다 치고, 얘 왠지 숨을 안 쉬는 것 같지 않아?
"시, 실비아? 실비아! 실비아아아!"
살며시 입술을 떼고 실비아의 얼굴을 바라보자, 실비아는 이미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아니. 관용적으로 쓰는 의미의 그 정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정신이 아예 사라진 상태였다.
이, 이 녀석! 선채로 죽…아니. 안 죽었어! 숨은 쉬고 있지 않지만 아직 안 죽었어! 그냥 기절한 거야!
나는 황급히 실비아를 바닥에 눕히고, 다시 그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춰서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켁! 켁! 히우으읏! 하앗, 하앗!"
그리고 몇 번의 인공호흡 끝에, 겨우 다시 실비아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휴우. 다행이다. 여기서 바로 섹스를 해서 힐링 섹스라도 발동시켜야 되는 거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장모님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소피아 대사제의 집무실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과연 꺼려지니까 말이야.
그야 물론 정말로 실비아가 위험하면 그런 거 상관 안 하고 할 거지만.
아무튼 다시 숨을 쉬게 된 실비아는, 거칠게 호흡을 반복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흐아앗…하앗…꾸, 꿈…? 흐아아…여, 역시 꿈인가아…."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곧장 혼잣말로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우리 실비아였다.
얘 설마 태클 걸어달라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
"꿈 아니 거든."
"아읏! ……히, 히야아아아아! 구, 구워, 구원니이이임?!"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그 이마에 가볍게 꿀밤을 먹여주자, 실비아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고 날 멍하니 쳐다보니 비명을 지르며 팔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여서 순식간에 내게서 멀어졌다.
"꾸, 꾸, 꾸, 꾸미! 꾸, 꿈이 아니…!"
"너 그래서야 대체 언제 사도 임명 받으려고 그러냐."
"사, 사도오오…."
"그러니까 일일이 기절하려고 하지 마! 전에도 한 번 말했잖아!"
"네, 네헷! 하, 하지만 직접 말씀하신 것은…!"
사도 임명이란 소리를 듣고 다시 기절하려고 했던 실비아였지만, 내가 가볍게 호통 치자 움찔하고 몸을 떨더니 정신을 차렸다.
아니. 마지막에 말투가 조금 반항적이라고 할까, 억울하단 말투인 걸 보면, 역시 제정신은 아닌 걸지도.
"그래도 그게 대충 사도 임명을 뜻한다는 걸 너도 이해하고 있었잖아?"
"아으으…그, 그거언…. 하, 하지만 사도…헤헷…사도오 임며어엉…."
야. 말대답을 하든 부끄러워하든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말이야, 뭐 한 가지만 해주지 않겠냐?
그야 헤실헤실 거리는 게 귀엽긴 하지만 말이야.
"하여간 너도 참…뭐, 아무리 그래도 네가 그래서야 사도 임명은 평생 무리겠지만 말이야."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방금 전까지 헤실 거리던 실비아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충격 받은 표정을 지으면서 날 쳐다봤다.
야.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라. 그래선 마치 내가 괴롭히는 것 같잖아.
"뭘 그런 표정으로 보냐. 너 내가 사도 임명할 때 안 죽을 자신 있어? 참고로 우리 애들 전부 사도 임명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쾌감에 몸부림쳤다. 나랑 키스를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는 더 기분 좋을 거라고."
"키, 키스보다도…키스보다도 백배 천배애…."
상상이라도 한 건지, 실비아가 벽에 기댄 자세 그대로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래. 뭐, 네가 안 죽을 자신만 있다면야 언제든지…."
"없습니다아!"
그게 그렇게 힘차게 대답할 일이냐. 이것아.
"하지만 받고는 싶지?"
"우…네, 네엣…."
"그럼 사도 임명을 받아도 죽지 않게 연습을 해야겠지?"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짓자, 실비아는 앞으로 닥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뭔가 예감이라도 한 듯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임명을 받고 싶은 실비아는 내 손짓에 다시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 어떻게 됐냐고 하면.
"다녀왔어요. 무사히 다시 성기사가…당신 뭐했어요?"
무사히 의식을 성공한 마틸다가 힘차게 방으로 들어오다가 멈춰서고 날 황당하단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 어서와. 뭐했냐니?"
"시치미 떼지 말아요. 실비아씨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틸다는 내 품에서 평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실비아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냥 끌어안고만 있었는데?"
"그, 그때부터 계속 말인가요?"
방 안에 있는 시계에 힐끔 시선을 줘서 시간을 확인한 후, 마틸다의 안색이 약간 파랗게 질렸다.
"괜찮아. 죽지는…."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구원씨."
"네. 천사님."
그리고 마틸다에 뒤이어 방으로 들어온 레이아가, 우리 모습을 보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너무 실비아씨를 괴롭히시면…."
아, 위험해. 혹시 천사님, 조금 진심으로 화나셨나?
지금까지 몇 번이나 천사님이 지적해 오신 걸, 계속 제대로 듣지 않은 게 드디어 폭발했나?
"괘, 괜찮다니까. 이것도 다 실비아의 목적을 위해서 실비아의 부탁을 받아서 내가 협력을 해준 것뿐이…그, 그렇지 실비아? 아, 기절했지."
뭐, 실비아가 내 품에 안겼는데도 그저 평안한 미소만 짓고 있는 거다.
깨어있는 상태일 리가 없잖아.
"구우워언씨이…?"
아니. 진짜로 괴롭히는 게 아닌데?!
야. 실비아! 일어나 봐! 야! 자고 있지 말고 우리 천사님한테 해명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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