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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36화 (5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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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경의 고민

    "야. 쟤들 괜찮…끄아아아악!"

    퍼억!

    내가 하는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성큼성큼 다가온 앨리시아는, 접근하자마자 내 뒤통수를 호쾌하게 후려쳤다.

    끄아아아…이건 골수까지 시리다!

    아니. 개그를 할 때가 아니야. 뭔데? 뭐야? 나 대체 왜 맞은 거야?

    마지막에 해어졌을 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던가?

    아니. 애초에 오랜만이잖아. 만약에 무슨 잘못을 했어도, 이 털털한 애가 그걸로 지금까지 꽁해있을 리가 없는데?

    "새끼야! 살아있으면 누님한테 찾아와서 보고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반쯤 패닉상태에 빠져서 당황하고 있자니, 앨리시아가 허리에 척하고 손을 얹은 채 서서 그렇게 고함을 질렀다.

    "아? 그게 뭔 개소…."

    얘 성격이 좀 많이 털털하고 과격한 건 알고 있었지만, 과연 뒤통수를 한 대 쳐놓고 이렇게 알 수 없는 말까지 늘어놓고 있는 꼴을 보자니 나도 슬슬 열이 뻗기 시작했다.

    거기에 앨리시아의 거친 말투에까지 감화되어서 사라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거친 말을 입에 담으려고 했을 때, 사라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

    "이 여자도 도와줬거든. 구원 찾는 거."

    그런 것 치고는 어째선지 사라도 똥 씹은 표정…아. 얜 원래 앨리시아 대하는 게 조금 그랬던가.

    어떤 의미론 펠리시아보다 더 경계하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야.

    아직도 내 처음을 뺏어간 여자를 편히 대하는 건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무튼 사라의 말을 듣고 앨리시아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보자, 확실히 날 노려보는 그 눈동자에는 내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감정도 담겨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 그냥 솔직히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하여간 전에 했던 여자다워지는 특훈은 여전히 아무런 효과도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쪼그리고 앉았던 몸을 일으켜서, 앨리시아의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바짝 가져갔다.

    "읏…!"

    그러자 내 정면과 바로 옆, 두 쪽에서 동시에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레벨이 되도록 남자 사귄 경험이 전무하다는 앨리시아는 당연히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사라마저도 당황할 줄이야.

    아니. 키스하려는 거 아니니까. 그냥 조금 보복 겸 놀라게 해준 것뿐이야.

    "왜? 걱정했냐? 응?"

    "누, 누가!"

    "걱정한 거 아니면 왜 굳이 보고하라는 건데. 내가 무사히 구조 됐다는 거, 이미 진즉에 다른 사람한테 전해 들었을 거 아냐?"

    "아, 안 떨어져?! 이 새끼는 부끄럼도 없나!"

    "왜? 넌 부끄럽냐? 응? 응?"

    "이, 이 새끼가 진짜…."

    내가 계속 얼굴을 들이밀면서 놀리자 앨리시아는 욱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엄청난 살기를 풍기며 노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나와 눈을 마주치던 앨리시아는 결국 먼저 눈싸움에서 지고는 내 가슴팍을 확 밀쳐서 떨어졌다.

    "아무튼 걱정해줘서 고맙다. 쟤들 훈련도 시켜야 될 텐데 굳이 4계층까지 가서 날 찾아다녀 주다니. 역시 앨리시아. 의리 있다니까."

    "그,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새끼야! 그냥 네 클랜에서 공개한 그 얼음동굴이란 게 이 녀석들 특훈 시키기도 좋을 것 같으니까, 겸사겸사 간 것뿐이야!"

    "응? 하지만 거기 마법사 없으면 4계층으로 못 나가는데?"

    나는 앨리시아 파티의 면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사인 앨리시아는 물론, 저기서 좀비가 되어 쓰러져있는 셋도 전사, 전사, 성직자.

    얼음동굴에서 4계층으로 나가는 건 물론, 나가더라도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 될 조합….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앨리시아의 뒤로 조그만 마법사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내며 꾸벅하고 인사를 해왔다.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 중 하나인 난쟁이족 쌍둥이 마법사 중 한명인…레아인지 리아인지 분간이 안 되지만 아무튼 그 둘 중 하나다.

    "오!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얘들이랑 같이 있었던 거야? 아, 혹시 날 구조하는데 협력하려고?"

    "야. 이 새끼야. 왜 날 만났을 때보다 더 기뻐 보이냐?"

    앨리시아가 옆에서 뭔가 꿍얼꿍얼 거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넌 던전에서 가끔 얼굴 봤지만 얘는 진짜 예전에 의뢰하고 처음 보는 거잖냐.

    "네. 앨리시아가 하도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며 부탁하는 바람에…."

    "레아아아아! 내가 언제 그랬어어어!"

    "가벼운 농담입니다."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마법사는 레아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 레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에 앨리시아가 황급히 고함을 질렀지만, 레아는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과연 같은 간부란 건가. 저 앨리시아 상대로 잘도 저런 농담을 해대네.

    뭐, 아무튼 이걸 이용해먹지 않을 순 없지.

    "뭐냐. 앨리시아."

    "흣!"

    나는 앨리시아의 어깨에 팔을 척 두르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해지라고. 한 마디만 하면 돼. 내가 너무 걱정되는 바람에 밤에도 잠 못 이루는…크허허억…."

    이, 이 녀석…팔꿈치로 명치를 쳤어….

    내가 앨리시아에게 매달린 상태로 축 늘어지자, 앨리시아가 날 바라보면서 힘차게 고함쳤다.

    "기, 기껏 이 누님이 동정까지 떼 준 새끼가 뒈져 자빠지면 잠자리가 불편해서 조금 찾아준 것뿐이다! 기, 기어오르지 마! 새끼야!"

    흥분한 건지 앨리시아의 몸에서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말투가 험한 것 치고, 목소리는 간신히 짜내는 것처럼 어떻게 들으면 울먹이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털털한 애가 겨우 이정도 놀렸다고 울먹일 리가 없지.

    뭐, 난 명치에 맞은 타격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그 표정까진 보지 못했지만 말이야.

    "아, 아무튼!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이 누님한테 제대로 보고 하라고! 알았어!"

    짝!

    "크허허헉…."

    …야. 명치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애한테 등짝 스매시까지 날리는 건 너무하지 않냐….

    "후우. 후우. 후우. 하여간 새끼 아직도 약해빠져서는. 그러니까 고작 4계층에서 조난 같은 걸 당하는 거야."

    내가 드디어 그 몸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져 바닥에 주저앉게 되자, 앨리시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냐. 아냐 이것아. 네가 센 거야. 내가 약한 게 아니라고….

    마음속 깊이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앞뒤로 느껴지는 격통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럼 간다. 다음에 볼 때까진 좀 더 단련해 놔라."

    단련해놓으라니…대체 네가 왜…. 설마 더 좋은 샌드백이 되라는 뜻이냐?

    "칸나! 세레나! 에이미!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야! 일어나!"

    "기절해있습니다."

    "칫. 하는 수 없지. 레아, 가자."

    "정말 이대로 가도 되는 겁니까?"

    "무, 무슨 뜻이야? 안 될게 뭐있어?! 가, 갈 거야!"

    레아와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앨리시아는 기절한 삼인방을 다시 들쳐 업고는 성큼성큼 길드를 뒤로했다.

    "그럼 다음에 뵙죠."

    레아도 우리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앨리시아의 뒤를 쪼르르 따라갔다.

    "…괜찮아?"

    "안 괜찮아…. 죽을 것 같아…. 저 무식하게 힘만 센 폭력녀 같으니라고…. 힐링…힐링이 필요해…. 아, 레이아랑 마틸다 둘 다 없잖아. 어쩔 수 없지. 어디 근처 화장실이라도 들어가서 힐링 섹…끄아아악!"

    짜악!

    "공공장소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하여간 매를 벌어요. 이 바보는 진짜."

    "끄으윽…그렇다고 맞은 델 또 때리는 건 너무하지 않냐…."

    앨리시아가 등짝 스매시를 날린 곳과 정확히 일치했다고.

    이거 노리고 그런 거지? 뭐야? 내 몸에 남은 흔적은 설령 상처라고 하더라도 다른 여자가 남기게 두진 않겠다는 의사표명? 자기 손바닥 자국으로 덮어씌운 거야?

    "흥. 자업자득이잖아."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저앉은 날 내버려두고 길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저, 적어도 부축을…."

    "힐링 세…얘기까지 떠드는 걸 보면 멀쩡하잖아? 얼른 일어서."

    "크흐흑. 사라가 애정이 식었어."

    "아, 안 식었거든!"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축을 해주는 사라였다.

    나는 사라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손을 축 늘어뜨렸다.

    손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닿을 것 같은 자세지만, 결코 고의가….

    "아야!"

    "역시 멀쩡하잖아. 이 변태야."

    사라는 새초롬하게 날 노려보면서 내 손등을 가볍게 꼬집었다.

    쳇. 역시 사라야. 날 너무 잘 알고 있어.

    뭐, 아무리 앨리시아가 강하다고는 해도, 겨우 두 대 맞은 거 가지고 내가 언제까지나 끙끙거리고 있을 정도로 방어력이 낮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게다가 앨리시아도 적당히 손대중을 했을 거고. …아마도.

    "아무튼 이왕 온 거니까 처음 목적대로 제대로 정보 수집하라고."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어깨에 걸쳐진 내 팔을 풀었다.

    "응? 어디 가게?"

    "가긴 어딜 가. 다른 모험가들한테 얘기나 조금 들으려고 하는 거지. 어차피 길드 내 정보는 구원이 알아보려는 거잖아? 흥. 어차피 레이첼씨를 꼬드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과연. 그런 의미인 건가.

    모험가들한테 정보를 듣는 건 자기가 할 테니, 나는 레이첼 누님께 가보라는 거다.

    즉, 사라는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려고 하는 거다.

    "사라야! 사랑해!"

    "그, 그러니까 공공장소에서 너무 달라붙지 말라니까!"

    "공공장소가 아니면 되는 거지? 우리 어디 으쓱한 데로 갈까?"

    "바, 바보! 여기 왜 온 건데!"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모험가들이 모여 있는 게시판 근처로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다.

    하여간 부끄러워하기는.

    아무튼 모처럼 사라가 저렇게 신경을 써준 거다. 호의를 받아들여서 나는 레이첼 누님께 가보기로 할까.

    저런 성격의 사라가 혼자 모험가들 사이에서 정보수집 하는 게 불안하지 않냐고? 전혀.

    사라가 남자한테는 진짜 북풍한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한기를 뿜어내기는 하지만, 여자상대로는 평범히 대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모험가들의 태반은 여자이기도 한 만큼, 정보수집엔 아무 문제도 없을 거다.

    "안녕하세요. 누님! 저 왔어요."

    "어서 오세요. 길드 안에서 너무 그렇게 노닥거리지 말아주시겠어요?"

    아무튼 그런 고로 레이첼 누님께 다가가자, 누님이 지그시 날 노려보면서 그렇게 말해왔다.

    아무래도 사라와 내가 장난치는 게 다 보였던 모양이다. 뭐, 당연한 건가.

    "훗. 걱정 마세요. 누님과도 그렇게 노닥거리기 위해서…."

    "에잇! 저 근무 중이라고요? 용무가 없으시면 다른 모험가분께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내가 안내원석에 몸을 쭉 들이밀면서 말하자, 누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가볍게 내 이마를 톡 치고는 그렇게 말했다.

    이런 반응이라니. 쓸쓸하다. 아니. 일에 열심힌 누님도 멋지시지만.

    "그, 그런! 누님에게 향하는 제 뜨거운 마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일부러…."

    "구우워언씨이?"

    "얼음동굴의 탐사가 어디까지 진척됐는지 보러 왔어요. 제가 조난당한 사이에 공표했다고 하니까 조금 신경 쓰여서요. 혹시 뭐 특별한 발견이라도 있었나요?"

    결국 일을 방해하지 말라는 레이첼 누님의 압박을 못 이기고, 나는 곧장 본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매번 찾아와서 같이 놀면서 사랑을 확인시켜달라는 뜻 아니었나?

    "아뇨. 이미 구원씨 파티에서 계층의 주인까지 모두 발견한 상태이니, 특별히 이렇다 할 발견은 없었어요. 하지만 성장하기 좋은 장소인 만큼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지도는 상당히 많이 넓어졌네요. 하나 사가시겠어요?"

    내가 본론을 꺼내자, 레이첼 누님은 쿡쿡 웃더니 안내원 누님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지도를 팔아넘기려고 하시다니. 과연. 빈틈없으시다. 뭐, 살 거지만.

    "네.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런가요. 딱히 특별한 정보는 없는 건가요."

    "네."

    "과연. 그렇군요. 흐음. 그렇구나…."

    "…구원씨."

    내가 팔짱을 끼면서 고민하는 척하자, 레이첼 누님이 날 지그시 바라보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네?"

    "더 볼 일 없는 거죠?"

    "…네."

    완전히 들키고 있었다. 조금 부끄럽잖아.

    "그럼…아시죠?"

    "네. 안녕히 계세요."

    누님의 말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뒤에 기다리고 있는 모험가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아, 구원씨."

    "네?"

    하지만 내가 가기 전에, 누님이 다시 날 불러 세웠다.

    "후훗. 조금 있으면 저도 휴식시간이니까, 혹시 시간 되시면 저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같이 차라도 마셔요."

    그리고 날 바라보며 귀엽다는 듯 쿡쿡 웃더니, 내 코끝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톡 건드리고는 그렇게 말해줬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성사재천 // 상위 저주 해제 마법은 마틸다도 레벨이 부족합니다. 여신 강림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나옵니다. 지금은 마틸다가 기절한 상태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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