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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의 고민
역시 화내는구나.
기뻐하는 틈을 타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으니 어쩌면 그냥 넘어갈 수도…같은 생각도 잠깐 했었는데. 얘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나.
그나마 목걸이를 건네준 덕분에 이정도로 끝난 거라고 봐야겠지.
게다가 디아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둘도 각각 반응을 보여 왔다.
레이아는 행복해하던 얼굴 표정을 살짝 흐리며 날 껴안은 팔에 힘을 조금 줬고, 사라 역시도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 둘 다 아직도 행복하다는 표정이 조금 남아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표정을 굳히다니.
마틸다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혹시 그렇지 않은 걸까?
아니면 타이밍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사라가 이 말만은 해야겠다는 듯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원. 마틸다에게 사도 임명을 했다고?"
"으, 응."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난 구원을 믿지만, 그래도 일단 혹시 모르니 확인해둘게, 레이첼씨에게 고백을 실패해서 그 대신이란 생각으로 마틸다를 받아들인 건 아니지?"
사라는 굳은 표정을 하면서도 그 눈은 날 믿는다는 듯 똑바로 이쪽을 쳐다보며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어느 샌가 디아나도 토닥토닥 공격을 멈추고 내 대답을 기다리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내가 딱 잘라 그렇게 대답한 순간, 사라와 레이아의 몸에서 동시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셋 모두에게 한차례 시선을 준 후,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날 너무 못 믿는 거 아니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믿는다고 했잖아. 이 바보야. 난 그냥…만약 그런 거라면 마틸다가 너무 불쌍하잖아. 본처로서 확인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뺨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손은 계속 목걸이를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것이 꽤나 귀엽다.
게다가 설마 표정을 굳힌 게 그런 이유였다니.
진짜 너희 너무 착한 거 아니냐?
"흠. 본처는 이 몸이지만 말일세."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제가…."
"아니. 그러니까 이런 때까지 그런 걸로 싸우지 말라고."
"후훗."
내가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하자, 레이아가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왠지 아까보다 가슴을 내 가슴팍에 더 밀어붙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행복하니까 아무 문제없다.
"아무튼 마틸다도 사도 임명을 했으니까. 뭐,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줘."
"알겠어. 말해두지만, 선물로 꼬드겨지는 거 아니니까. 마틸다한테는 언젠가 구원의 마수가 뻗을 거라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넘어가주는 거야."
사라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날 지그시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거면 일단 목걸이에서 손을 떼는 게 어떠냐?
그리고 마수라니. 성수라고 해라. 성수라고.
"그럼요. 감사합니다."
"후우. 하여간 자네도 뻔뻔하구먼. 그럼 얘기는 이걸로 끝인 겐가?"
디아나도 더 이상 토닥토닥 공격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지만, 질렸다는 듯 고래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다.
"응? 뭐 볼 일이라도 있어?"
정작 같이 놀려고 했던 실비아도 없겠다, 오늘은 얘들이랑 놀려고 했는데 말이야.
내가 그렇게 질문한 순간, 갑자기 디아나가 다시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날 노려봤다.
뭐, 뭐야. 내가 뭐 못할 말이라도 했나?
"정말 몰라서 묻는 겐가?"
응. 솔직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서 모른다고 하면 또 다시 토닥토닥 어택을 당하겠지.
아니. 그건 그거대로 귀엽지만, 지금은 디아나의 신경을 거스르기엔 타이밍이 좋지 않다.
일단 아는 척 해둘까.
"아, 아아! 그거 말이지! 그…."
"마, 말 안 해도 되네!"
내가 뻥카를 치자, 디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두 손을 뻗어 황급히 내 입을 가로막았다.
이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인 모양이다.
대체 그런 일이 뭐가 있지? 낮에 할 부끄러운 일이라….
섹스는 당연히 아닐 테고, 그럼 대체…아. 설마. 과연. 그런 일이었단 말이지.
그렇게 뺀 주제에 결국 하긴 할 셈인 모양이군.
"그, 그럼 이 몸은 볼 일이 있어서 그만 가보겠네! 저녁에 보세!"
디아나의 손에 가로막힌 입 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어보이자, 디아나가 황급히 그렇게 말하며 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도망가려고 하는군. 뭐, 지금은 놔주도록 할까.
"그래. 잘 해. 밤에 봐."
내가 그렇게 말하자, 디아나는 심히 움찔움찔 거리면서 황급히 방밖으로 도주하려다가 다시 몸을 돌려서 내게 돌진해왔다.
"그, 그리고 목걸이 고맙네!"
그 와중에도 목걸이에 대한 감사는 잊지 않은 모양이다.
디아나는 내 허리에 팔을 둘러서 내 몸을 한 번 꼬옥 껴안아주고는, 그대로 쏜살같이 방밖으로 도망갔다.
하여간 우리 디아나는 왜 저렇게 귀여울까.
오늘 밤이 심히 기대된다.
"…대체 디아나한테 뭘 한 거야."
"구원씨. 너무 디아나씨를 놀리시면 안 돼요."
"아, 아무것도 안 했어. 그보다 너희는 할 일 없지?"
"죄송해요."
디아나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빠졌다지만, 사라나 레이아는 괜찮겠지.
고로 이 둘하고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레이아마저 살짝 미안한 표정을 하면서 내게서 살며시 떨어졌다.
"오늘은 조금 신전에 들러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그런! 하긴. 레이아는 신전에 안 간지 한참 됐겠지.
내가 조난 중이었을 땐 쉬지 않고 날 찾아다닌 모양이고, 저번에 내가 신전에 갔을 땐 따라오지 않았고, 그 후로도 계속 수영연습을 했으니까.
수영 연습을 쉬는 오늘이 신전에 한 번 들르기 적절한 날이겠지.
"그렇구나. 응. 잘 다녀와."
내가 은근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건지, 레이아가 살짝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구원씨가 가지 말라고 하시면…."
"아니. 다녀와. 가끔은 집에 가서 가족 얼굴도 보고 해야지. 그리고 레이아를 너무 독점하고 있다가 소피아 대사제님께 미운털 박히기도 싫고."
레이아가 곤란한 표정을 짓지 않도록 살짝 너스레를 떨면서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레이아도 다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어보였다.
"후훗.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럼 구원씨. 다녀올게요."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고, 목걸이를 어루만지면서 마치 보답이라는 듯 내게 키스를 한 번 해준 후 기분 좋은 듯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방밖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문을 닫기 직전, 레이아는 이쪽을 돌아보고 다시 한 번 생긋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문을 닫았다.
진짜 천사야. 천사.
그렇게 레이아까지 가고나자, 방에는 나와 사라만이 남게 됐다.
당연히 내 시선은 마지막 남은 사라로 향했다.
"뭐, 뭐야. 그 시선은."
내 시선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사라가 드물게 주저하는 표정으로 한 발자국 물러나면서 경계하듯 말을 내뱉었다.
"넌 뭐 없냐?"
"뭐가 있어도 그걸 구원이 먼저 요구하면 안 되잖아! 진짜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바보 아니야?!"
내가 목걸이를 가리키면서 질문하자, 사라가 황당하다는 듯이 외쳤다.
얘가 뭘 이제 와서. 내가 뻔뻔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응. 그래서, 뭐 없어?"
"어, 없거든?!"
"진짜로?"
"우으…."
크게 소리를 지르며 부정했던 사라였지만, 내가 그 허리를 껴안고 얼굴을 바짝 가져간 채 질문하자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그래봤자 지근거리까지 얼굴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시선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보였지만 말이다.
"자, 어서! 지금 그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샘솟아 오르는 나에 대한 감사의 기분을 전부 폭발시키…크헉!"
"이, 이 바보가 진짜! 없다고 했잖아! 어제 하루 종일 내 앞에서 다른 여자랑 데이트했으니까, 이 정돈 받는 게 당연한 거야!"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바디 블로우를 먹이고, 뒤로 휙 돌아섰다.
"…뭐, 고맙기는 하지만."
"야. 부끄러우면 그냥 솔직히 부끄럽다고…."
"뭐?!"
"아무 말 안 했는데요?"
평소엔 단 둘이 있을 땐 그나마 부끄러운 행동도 곧잘 하더니, 오늘은 유독 부끄러움을 많이 타네.
혹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부끄러워서 그런가? 그 정도는 플레이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될 텐데 말이야. 아니. 물론 전 맞으면서 느끼거나 하지 않았습니다만.
나는 사라의 태도에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 그 허리에 손을 뻗어 다시 한 번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꺄악! 또, 또 뭐하려고?"
"디아나도 레이아도 가버렸으니까 말이야. 넌 놓치지 않을 거야. 순순히 나랑 놀아주는 게 좋을 거야."
"하아…. 논다니. 뭘 하고?"
내 품에 안겨 얼굴을 붉혔던 사라였지만,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흥이 깨진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네가 너무 부끄러워하는 거 같아서 이 이상 엄한 짓은 안 하는 거잖아.
실은 해줬으면 하는 거냐? 지금부터라도 같이 엄한 짓 할까?
"…글쎄? 뭘 하고 놀지?"
"그걸 나한테 묻는 거야?"
"흠. 좋아. 그렇다면 사라. 지금부터 같이 정보수집이다."
황당하다는 듯 대답하는 사라를 보면서, 나는 고심 끝에 오늘 오후를 어떻게 보낼지 결정했다.
"정보수집?"
"그래. 한동안 던전엔 안 갔지만, 그 사이에 뭐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일이니까. 적어도 정보수집이라도 하는 게 좋겠지. 내가 조난당했을 때, 얼음동굴의 존재도 공표한 거잖아?"
그래. 내가 조난당한 곳은 얼음동굴에서 4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게다가 당연히 나처럼 맵이 있는 것도 아닌 이상 4계층의 정확히 어느 장소인지는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애들은 내 구조에 협력을 구하기 위해서 얼음동굴의 장소를 공표했다고 한다.
원래는 얼음동굴에서 4.5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한 후에나 공표하려고 했지만, 그 비밀을 지키는 것보단 날 구조하는 것을 우선시 한 거다.
그래봤자 거기서 4계층으로 나오는 건 웬만한 모험가들로서는 불가능했지만, 수준 높은 마법사를 대동하고 있는 파티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수준이고 말이다.
디아나도 그때 얼음동굴의 페이크 보스, 황제 펭귄을 잡는데 마나를 대량으로 소모한 것만 아니었다면 물의 흐름을 장시간 멈추고 무사히 날 구출 할 수 있었을 거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그때 고래가 갑자기 튀어나오지만 않았다면 난 무사히 구출됐을 거다.
아무튼 얼음동굴의 위치를 공개한 만큼, 그 사이에 뭔가 우리가 모르는 진전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의외로 착실한 소리를 하네."
"의외라니. 난 언제나 착실하다고."
"그래서, 그 정보수집은 어디서 하려고?"
"그야 당연히 길…."
"야. 구원."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네."
"레이첼씨 만나러 가는 거지?"
"…겸사겸사?"
그런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던지라, 나는 솔직히 그렇게 말했다.
"이게 진짜…!"
"왜! 네가 전에 그랬잖아! 맘에 든다고! 꼬드겨보라고! 아냐?! 그랬어, 안 그랬어?!"
욱하는 사라에게, 나는 적반하장으로 그렇게 말하며 정신없이 사라를 휘몰아쳤다.
"그, 그러긴 했지만…."
내가 설마 그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사라는 당황하면서 말을 흐렸다.
"그럼 아무 문제없지?!"
"으, 으응…."
훗. 이겼다. 그러게 사람을 왜 그런 식으로 놀려서.
사라야. 이게 바로 자업자득이란 거란다.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사라가 냉정을 되찾기 전에 얼른 그 허리를 안고 같이 길드로 향했다.
"구에에엑…."
"우아으으으…."
"주우우거어어어…."
"이것들아! 뭘 죽는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똑바로 안 서!"
그리고 길드에 가자, 마침 그 입구에서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좀비가 되어있는 셋은 정말 내가 아는 그 얼굴이 맞는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 좀비 셋을 들쳐 업고 험한 말을 내뱉는 구리빛 피부의 미인은 확실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얼굴을 어떻게 잊겠어. 내 동정을 가져간 앤데.
"애들 좀 작작 굴려라…."
"뭐?! 어떤 새끼가…어?! 너, 너…?!"
"꾸에엑!"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이쪽을 노려보며 험한 말을 하려던 구리빛 피부의 미인, 앨리시아는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들쳐 업고 있던, 아마 아라크네 클랜의 삼인방이라 생각되는 좀비들을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아니. 패대기치더니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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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피로가 쌓였는지 그만 푹 잠들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