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527화 (5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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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때와는 다른

    "다, 다녀왔는가."

    저택으로 돌아오자, 어째선지 디아나가 허리를 뒤로 빼고 엄청나게 경계하는 자세로 우릴 맞이해줬다.

    "…너 뭐하냐?"

    "으, 음? 크흠. 일은 잘 마치고 왔는가?"

    내가 황당하게 중얼거리자, 디아나는 내 팔에 아양 떨듯 매달려있는 사라의 모습을 힐끔 살피더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다.

    혹시 뭔가 사단이라도 났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뭐, 확실히. 생각해보니 그러네. 내가 차이지만 않았으면, 지금쯤 기분 나빠진 사라한테 엄청 쪼이고 있긴 했겠지.

    과연. 그래서 경계를 한 거였나.

    "응. 뭐, 차였지만."

    "……풉. 크흠. 그, 그런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상황을 설명하자, 디아나가 잠시 텀을 둔 후 빵 터졌다.

    그다음 바로 얼버무리듯 헛기침을 하면서 내게 다가와서는 위로하듯 머리를 쓰다듬어줬지만 말이다.

    입 꼬리가 미묘하게 떨리는 걸 보면, 얘도 웃고 싶어 죽겠는 모양이다.

    이것들이 낭군님이 차였다는데 하나같이 반응이…뭐, 좋아. 넌 그래도 참는 것 같으니까 봐준다.

    "오, 오빠. 디아…."

    "넌 안 봐준다."

    "씨잉…."

    아마 디아나도 웃었으니까 자기도 봐달라고 말하려는 거겠지.

    애교떠는 말투로 말하는 사라의 말을 끊고 대답하자, 사라가 바로 귀여운 소리를 냈다.

    역시 그런 거였냐.

    사실 그렇게까지 겁먹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밤에 두고 보자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실은 어떻게 괴롭히면 좋을지 전혀 계획이 없기도 했고.

    물론 말해주진 않을 거지만.

    모처럼 사라가 내게 약한 상태인 거다.

    이런 귀중한 한 때를 쉽게 포기할 리가 없잖아?

    "다른 애들은? 또 수영?"

    "음. 알고 있다고 생각하네만, 가지 말게나."

    "알고 있다고."

    마틸다에게 볼 일이 남아있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시간은 어차피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교황님과 나눴던 대화에 대해 얘기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니까 말이야.

    괜히 시간도 별로 없는 지금 급하게 처리하려고 하기 보다는, 내일 낮에 시간을 잡아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볼 일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말일세. 자네가 차였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괜찮다면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는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디아나가 내게 질문을 했다.

    어른스럽게 그냥 안 묻고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뭐, 디아나는 애초에 궁금한 건 못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그건…사라."

    어차피 사라한테는 시종일관을 대부분 보인 거다.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사라에게 턱짓을 했다.

    "괘, 괜찮아?"

    하지만 사라는 의외로 바로 입을 열지 않고, 경계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까 전에 실컷 웃을 때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거리고 있을텐데 말이다.

    내가 함정이라도 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쓸데없이 경계심이 강하다니까.

    그러게 아까 전에 조심 좀 하지.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같은 상황에서 엄청 웃으면서 놀려댔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괜찮아. 난 저녁때까지 방에서 좀 쉬고 있을게."

    나는 마치 차인 게 은근히 데미지가 있다는 듯 피곤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먼저 방으로 돌아가…는 척을 하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실은 볼 일이 있는데, 쟤들이 가까지 있으면 곤란한 볼 일이라서 말이야.

    게다가 다른 애들마저 수영 연습중이라고 하니, 실로 절호의 찬스다.

    저택 안에서 우리 애들 전원과 떨어져 있을 찬스란 게, 거의 없으니까 말이지.

    내가 향한 곳은 바로 마법사 협회의 누님들이 머무는 방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분명 부여 마법 전문이…기억 안 난다.

    이 근처 방에 다들 모여 사는 건 확실한데 말이야. 어디가 누구 방인지는 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나는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지나가던 메이드를 붙잡고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소문이란 게 어디서 어떻게 나서 누구 귀에 들어갈지 모르는 일인 만큼, 사실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거기 메이드씨."

    "네? 넷?! 저, 저 말인가요?"

    내가 메이드를 손짓해서 부르자, 메이드가 몸을 움찔하고 떨더니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내가 이 저택에서 유일한 남자라고는 하지만, 저 반응은 조금 과민반응 아니야?

    아니. 그야 평소에 내가 메이드들한테 거의 말을 안 걸기는 하지만 말이야.

    아니. 나도 일단 같은 저택에 사는 식구로서, 말을 걸어 보려고 하긴 했다고?

    메이드복도 귀엽고 말이지.

    하지만 내가 메이드한테 말만 걸려고 하면 항상 어디선가 바네사가 튀어나와서 말이야.

    내가 이름만 불러도 튀어나올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그 녀석 날 감시하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혹시 디아나한테 지령이라도 받았나?

    뭐, 아무튼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우선은 얼른 볼 일부터 해결하자.

    "부여마법 학파장 누님이 머무르는 방이 어디인지 알아요?"

    "네? 부여마법? 아…그거라면 이쪽으로…."

    솔직히 이런 말로 알아들을지 어떨지 불안하기는 했지만, 메이드는 무사히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아니. 부여마법 학파도 뭔가 거창한 이름이 있었다는 건 기억하는데, 그런 거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학파가 한두 개도 아니고 말이야.

    아무튼 메이드의 안내에 따라, 나는 무사히 부여마법 학파장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아, 제가 여기 왔다는 거, 다른 사람한텐 꼭 좀 비밀로 해주세요."

    "네? 아, 네, 넷! 그, 그럼 전 이만…."

    내가 입 앞에 검지를 세우고 말하자, 메이드가 얼굴을 붉히고는 황급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저 모습을 보니 과연 비밀이 잘 지켜질지 어떨지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들키면 들키는 대로 어쩔 수 없는 거다.

    "들어오세요."

    내가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자, 안에서 부여마법 계통 학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들어오라니.

    뭐, 그야 이 저택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정해져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실례합니다."

    "응? 자네인가. 무슨 일이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학파장 누님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야 그렇겠지. 같은 저택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사이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내가 이 누님들과 1 대 1로 대화할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물며 방에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네. 실은 보석에 부여 마법을 조금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아까 전에 샀던 목걸이 세 개를 꺼냈다.

    그래. 나는 이 목걸이에 내가 가까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마법을 걸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라의 단검처럼 말이다.

    이런 걸 계획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레이아도 하나 가지고 싶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사라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계속 단검이 빛나는 걸 확인하고 있어야 된다는 얘기가 된다.

    빛나는 단검을 계속해서 빤히 쳐다보고 있다니. 완전히 위험한 사람이잖아.

    실은 오늘 우리 뒤를 쫓아올 때도, 수상한 사람으로 잡혀가지 않은 게 다행일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이왕 만드는 거, 아예 장신구로 이렇게 세 개를 만들어서 각각 전해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장신구라면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나랑 같이 잘 때조차 벗지 않고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목걸이라면 빛나더라도 옷 안으로 숨길 수 있으니, 던전에 다닐 때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 일도 없고 말이다.

    뭐, 정상위로 섹스하는데 가슴부근이 빛나거나 하면 조금 신경 쓰일 테니까 웬만하면 그땐 벗어줬으면 싶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런 요지의 말을 누님께 전달하자, 누님이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오…과연. 하긴. 디아나님을 확실히 신경 쓰고 있기는 한 모양이구먼."

    ……말에 조금 가시가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아니. 절대 기분 탓이 아니다. 이거 혹시….

    "설마 오늘 제가 뭘 하고 왔는지 알고 계세요?"

    "호홋. 자네는 재밌는 말을 하는구먼. 당연하지 않은가. 알겠는가? 만약 디아나님의 눈에 눈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져 보게."

    그렇게 말하고, 누님은 손으로 따봉을 만든 후 엄지로 자기 목을 가로로 긋는 시늉을 했다.

    마법사라면 이 세계에서 최고로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엘리트 학문 아니야?

    그런 사람들의 수장 중 하나라는 분이 이런 시정잡배 같은 짓을…. 아니. 디아나를 아끼는 마음이야 잘 알겠는데 말이야.

    "괜찮아요. …차였으니까."

    일단은 말이지.

    "그런가! 그런가! 잘 됐구먼!"

    아뇨. 축하할 일이 아닌데요.

    역시 이 사람, 아니. 마법사 협회 사람들 전원이 디아나 관련 일만 되면 머리가 이상해진단 말이야.

    그것만 아니면 진짜 평범하게 마법을 열성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처럼 보이는데 말이지.

    "아무튼 그런 거라면 맡겨두게. 내 완벽히 처리해주도록 하지. 그래. 인식 범위는 얼마 정도면 되겠나?"

    "100미터로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무사히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발광하는 목걸이 세 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것도 다 레이첼 누님에게 차인 덕분…인가?

    그 후 바넷사가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러 올 때까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에 돌아가 샤워를 하고는 침대에 드러누워 쉬었다.

    "……."

    "뭐냐. 사람 얼굴에 뭐 묻기라도 했냐?"

    식사 시간이 되어 부르러 온 바넷사는, 수영을 마치고 온 지금도 여전히 풀 메이크업 상태였다.

    다만 표정이 뭔가…아니. 얜 기본적으로 무표정이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좀처럼 읽기 힘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평소랑 뭔가 분위기가 다른 건 알겠다.

    "……."

    "그래. 너도 나 차인 거 들었냐?"

    "네? 아, 네. 축하합니다."

    "축하할 일 아니거든!"

    하여간 마법사 협회 누님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디아나를 좋아하는 무리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정상적인 놈들이 없는 거야!

    아니. 물론 디아나를 누구보다도 좋아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저는 지극히 정상입니다만.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가시죠."

    "무시하기냐!"

    내가 그렇게 혼자 열을 내봤자, 바넷사는 표정변화 하나 없이 식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천사니이이임!"

    식당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레이아의 품에 안겼다.

    같이 수영했던 바넷사가 알고 있다는 말은, 당연히 레이아도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겠다?

    우리 천사님만은 날 위로해주실 거야.

    "어, 어머. 구원씨도 차암…. 괜찮아요."

    내가 그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며 우는척을 하자, 천사님이 부드럽게 내 몸을 끌어안아 준 후 천천히 내 등을 쓰다듬어줬다.

    봤냐? 봤냐고 이것들아! 이거야! 바로 이거라고! 이런 반응을 원했다고!

    내가 사라와 디아나를 찌릿하고 노려보면서 눈빛으로 그렇게 주장하자, 사라는 밤이 더욱 두려워진 듯 창백한 표정이 됐다.

    디아나는 자긴 웃은 적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말이다.

    불지도 못하는 휘파람 휘휘 거리지 마라.

    "히, 힘! 힘내십시오!"

    그리고 레이아의 품에 안겨있는 내 등에, 이번엔 가냘픈 뭔가가 찰싹 매달려왔다.

    틀림없어. 이 진동. 분명해!

    그래. 우리 실비아마저 날 위로해주기 위해서, 자신의 죽음을 불사하고 내 등에 매달려왔던 거다.

    크흑. 그래. 날 위로해주는 건 역시 너희들밖에 없다!

    나는 감격에 벅차서 레이아에게서 떨어진 후, 이번엔 실비아를 꽉 껴안아줬다.

    실비아는 설마 내가 레이아의 가슴에서 떨어져 자길 껴안아줄지 몰랐다는 듯, 몸을 움찔움찔 떨어댔다.

    하지만 그래도 날 위로해주기 위해서 버텨야 한다는 듯, 평소같이 비명소리를 내는 일도 없이 꾹 참고 부들부들 떨면서 버텨냈다.

    하지만 그 행동이 또 문제였다.

    아니. 그게 말이지. 생각해봐. 감동적이잖아? 자기 목숨이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날 위로해준 거라고. 얼마나 감동적이야.

    내가 너무 감동에 빠져서, 조금 지나친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 아니겠어?

    나는 그만 실비아의 뺨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말았다.

    "앗! 야! 바보! 구원!"

    그 모습을 보던 사라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우으으…무, 무리…흐야아아아아아…."

    결국 실비아는 그 자리에서 녹아내리고 말았다.

    "실비아아아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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