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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22화 (50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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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때와는 다른

    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지나친 쾌감에 기절한 레이아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냉정을 되찾고 생각에 잠겼다.

    현재 나는 모든 스킬을 전부 사용 중단한 상태다.

    레이아도 이쯤 되면 정기는 충분히 흡수했겠지.

    과연 내 스킬과 레이아의 구미호 상태에 뭔가 연관이 있는 게 맞을까?

    만약 여기서 레이아의 구미호 상태가 이어지지 않고 그대로 풀린다면, 그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내가 레이아와의 잠자리에서 스킬을 쓰지 않게 된 게 언제쯤부터였지?

    혹시 레이아가 구미호 상태에서 이성을 찾을 때랑 겹치는 건가?

    그렇다면 좀 더 정확히 내 스킬과 구미호와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으음. 모르겠다.

    우리 애들과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웬만하면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나였지만, 과연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정말로 내 스킬과 구미호 상태가 관련이 있는 건지도 의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아는 그거잖아? 전쟁신 시대의 종족일 가능성이 엄청 높은 거잖아?

    그야 구미호의 특성이 전쟁신보다는 우리 여신님하고 관계가 깊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에 레이아가 구미호로 변했을 때의 감정을 밝힌 걸 생각해보면 확실히 구미호는 전쟁신 시대의 종족일 거다.

    그런데 그런 전쟁신 시대의 종족 특성을 다루는 열쇠가, 다름 아닌 여신님에게 부여받은 성자 스킬에게 있다고?

    그거야 말로 묘한 얘기다.

    그렇다면 역시 성자 스킬은 그냥 우연히 타이밍이 맞아떨어졌을 뿐, 뭔가 다른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건가?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레이아의 엉덩이 뒤에서 축 늘어진 채 내 허벅지를 간질이던 꼬리가 점차 그 개수를 줄여가고 있었다.

    역시 그냥 풀려버리는군.

    묘한 얘기든 뭐든 간에, 일단 스킬을 사용해서 다시 구미호상태가 되는 건지 확인할 필요는 있다는 건가.

    뭐, 그것도 레이아가 깨어난 후에나 가능한 얘기지만.

    그렇게 극심한 쾌락을 느끼면서 기절한 거다.

    마지막에 온 몸을 작살 맞은 생선처럼 온 몸을 펄떡이는 광경은 장난이 아니었다고.

    그러니 지금은 이대로 좀 쉬게 두자.

    "으음…구, 구원씨이…읏! 하으읏…우으으으읏…!"

    그렇게 얼마마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이 간지러운 듯 조금 목을 움츠리면서 레이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잠이 덜 깬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이내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그대로 내 가슴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 등 너머로 보이는 꼬리가 위를 향해 곧게 선 채로 파르르 떨리고 있는 걸 보니, 엄청나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응? 이 반응은 즉…레이아가 아까 전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가?

    속박만 안 걸었다 뿐이지 완전히 구미호 상태가 됐었는데?

    심지어 나한테 반말까지 했었는데, 그걸 레이아가 다 기억하고 있는 상태라고?

    내가 레이아를 빤히 쳐다보자, 레이아도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살짝 고개를 들고 손가락을 벌려서 그 사이로 내 얼굴을 엿보더니, 다시 손가락을 닫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읏!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니까요!"

    "지, 진정해. 레이아. 뭐가? 뭐가 아니란 건데?"

    "그, 그런 건 제가 아니에요!"

    레이아로서는 드물게 목소리를 높이면서, 레이아는 내 가슴에 박은 얼굴을 좌우로 크게 저었다.

    천사님. 그렇게 격렬히 움직이시면 제 몸에 눌려있는 가슴이…훌륭합니다.

    "그야 그렇지. 오랜만에 구미호 상태에 지배당한 거잖아? 나도 알아."

    "아, 알아주시는 건가요?"

    레이아가 살짝 손을 아래로 내려서 눈만 드러내고는, 날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아, 위험해. 지금 조금 장난치고 싶어졌어.

    우리 천사님한테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좀처럼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할 수 없다. 천사님이 너무 귀여우신 게 잘못이야.

    뭐, 천사님도 전에 사라랑 디아나만 괴롭힌다면서 부러워하는 것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었고, 살짝 놀리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응. 당연하지. 그도 그럴 게, 반말로 도발할 때 평소와 달리 엄청 섹시했는걸. 아니. 물론 평소에도 섹시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이렇게…."

    "으으으읏! 구원씨는 짓궂으세요! 너무 짓궂으세요!"

    내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주자, 레이아가 더 말하지 말라는 듯이 두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는 꼬리로 내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려댔다.

    "하핫. 미안. 미안."

    "정말로오…."

    내가 웃으면서 그 황금빛 머리카락을 조용히 쓰다듬어주자, 레이아는 바로 꼬리 움직임을 멈추고는 응석부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장난을 쳐도 사과 한 마디에 이렇게 엄청나게 빨리 풀리는 걸 보면, 역시 천사님은 천사님이었다.

    "그런데 레이아."

    "네. 왜 그러세요?"

    그런 레이아의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어 주면서, 나는 목소리를 바꾸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내 분위기의 변화를 읽었는지, 레이아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날 쳐다보며 대답해줬다.

    "아까는 이번에도 레이아가 구미호 상태가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스킬을 썼던 거잖아?"

    "네, 네에…. 그랬죠…."

    아까 전 생각이 나서 다시 부끄러워졌는지, 레이아가 조신하게 얼굴을 붉히면서 소곤소곤 대답했다.

    "지금 구미호 상태가 풀려있는 걸로, 내 스킬과 구미호 상태가 되는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더 강해졌어. 그리고 그걸 완전히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정기를 충분히 흡수한 지금부터 다시…."

    "으읏…아, 안 돼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레이아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깜짝하고 상체를 일으키면서 외쳤다.

    그리고는 두 손을 아래로 내려서 내 복부를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누님. 그러시면 팔 사이로 가슴이 모여서 안 그래도 큰 가슴이 괜히 더 강조…아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몸을 일으킬 때부터 보여준 무브먼트부터, 그냥 모든 게 감사합니다.

    아무튼 레이아는 아까 전에 그렇게 흐트러진 생각이 나서인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부정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오늘은 이쯤하자."

    "괘, 괜찮으신가요?"

    설마 내가 순순히 물러날 줄 몰랐는지, 레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재차 질문했다.

    그럼요, 천사님. 전 언제나 천사님의 뜻에 따른다고요.

    "응. 어차피 급한 것도 아니고. 하루에 너무 그렇게 무리할 필요도 없고."

    "구, 구원씨이…하응!"

    감격에 젖어서 날 내려다보는 레이아였지만, 이내 내 허리 움직임에 요염한 신음소리를 흘렸다.

    "대신, 스킬 안 쓰고 하는 건 상관없지?"

    "구원씨도 차암…엉큼하세요오…."

    방금 전 신음 소리가 살짝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아는 상체를 내 몸에 밀착시켜서 키스를 하고 천천히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 전의 성욕에 지배된 모습이 아니라, 이거야 말로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하듯이.

    어느 쪽이든 훌륭합니다. 천사님.

    결국 그 이상은 스킬을 쓰는 일 없이, 천사님과 알콩달콩하게 관계를 가지며 밤을 보내게 됐다.

    "하아. 진짜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어."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곧장 준비를 위해 움직였다.

    우리가 누구고, 뭘 위해 움직이는 거냐고?

    그야 물론 사라와 내가, 레이첼 누님과의 데이트 준비를 위해 움직이는 거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사라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끊임없이 투덜투덜 거렸다.

    "야. 진짜 미안하긴 한데, 이왕 도와주는 거 좀…."

    "뭐?!"

    "눈썹 찌푸리지 마라. 주름 생긴다."

    "흥! 신경 끄시지!"

    "어떻게 안 쓰냐? 예쁜 얼굴에 주름 생기면 어쩌려고. 자, 자아, 자아!"

    "으으윽!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손가락으로 그 미간을 마구 문지르자, 사라가 내 팔을 찰싹찰싹 때리고는 미간의 주름을 폈다. 대신 입을 ㅅ모양으로 만들면서 턱에 주름이 생겼지만.

    얘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그 턱까지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주름을 펴게 만들고, 나는 아예 사라의 몸을 뒤에서 꽉 껴안았다.

    "진짜 미안하다니까."

    "미안하다는 사람이 이런 짓까지 시켜?!"

    내가 그 귓가에 속삭이자, 사라가 손가락으로 사방을 가리키면서 날 노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지금 내 옷이 보관되어 있는 방이니까 말이다.

    전에 레이아에게 잠옷 얘기를 들은 이후로, 나도 천 옷에 천 바지만 입는 게 아니라 얘들이 날 위해서 사뒀다는 옷들도 가끔 입게 됐다.

    그리고 여기는 그 옷들이 보관된 장소라는 얘기였다.

    "나랑 데이트할 때도 천 옷 천 바지였던 주제에!"

    그래. 지금 사라는 내 옷을 골라주는 중이었다.

    사라는 진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날 노려봤다.

    "하지만 네 센스가 제일 좋을 걸."

    셋이서 내 옷을 사오긴 하지만, 사라가 사오는 옷들이 전반적으로 내 취향에 제일 부합했다.

    셋 중에 유독 사라만 바지를 즐겨 입기 때문일까?

    아니. 그 이전에 디아나가 골라오는 옷들은 뭔가 하나같이 너무 심각하게 귀족적이고, 레이아가 골라오는 옷들은…아니. 물론 패션 센스 같은 건 우리 천사님한테 약점이 되지 않아.

    천사님은 뭘 입으셔도 아름다우시고, 무엇보다 우리 천사님은 지금까지 사제복만 입고 사셨으니까. 오히려 패션 센스가 있는 편이 이상한 얘기다.

    게다가 물론 천사님이 골라온 옷 중에도 멀쩡한 게 있긴 했다. 아니. 멀쩡한 것의 비율이 더 많긴 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옆에서 사라나 디아나가 뜯어말린 결과라고밖에….

    아무튼 그런 이유로, 만약 오늘 나랑 같이 나갈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복장의 조언은 사라에게 들었을 거란 말이다.

    "바넷사씨도 있잖아!"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뒤에서 조용히 우리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바넷사를 손가락질했다.

    오늘도 풀 메이크업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바넷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감정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바라보고 있다고 할까…쟤 설지 지금 딴 생각하고 있는 거 아냐?

    뭔가 시선에 초점이 안 맞는 거 같은데.

    "쟤 혼자선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가 없어."

    "무슨 소리야. 바넷사씨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사라가 코웃음을 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냐. 아니야, 사라야. 네가 쟤를 잘 몰라서 그래.

    쟨 어째선지 날 대할 때만 태도가 좀 이상하다고.

    게다가 디아나의 충성심 때문이라도, 내가 다른 여자랑 데이트를 가기위해 옷을 골라달라고 하면 이상한 옷을 골라줄 게 분명해.

    귀족이라고 생각되는 레이첼 누님과 데이트를 하는 거니, 일단 귀족적인 시각도 필요할 것 같아서 데려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럴 거면 디아나를 데려오지 왜 쟤를 데리고 왔냐고?

    사라 혼자만으로도 이렇게 벅찬데 디아나까지 데리고 와봐라. 괜히 둘한테 욕먹을 필요는 없잖아.

    "자, 자. 자기 남자의 멋진 모습을 자랑이라도 해준다고 생각하고. 어제 분명 도와준다고 했지?"

    "하아…진짜 믿을 수 없어."

    사라는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에 옷을 들고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진짜 미안한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결국엔 도와주는 사라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사랑해."

    "흥. 나한테 빚 하나 진 거야. 다음에 반드시 갚아."

    "그럼. 물론이지."

    "이잇! 방해하지 말고 떨어져!"

    내가 뒤에서 사라의 볼에 쪽쪽하고 뽀뽀를 해주자, 사라가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내 몸을 확 밀어냈다.

    "하아. 뭐어…이정되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얼마 후, 사라의 코디네이트와 바넷사의 조언을 합쳐서 완벽하게 몸단장을 마친 날 바라보며 사라가 중얼거렸다.

    "반할 것 같아?"

    "바보. 난 이미 반했거든?"

    "야. 그런 대사는 좀 더 부끄러운 표정으로…알았어. 미안해. 아파."

    조금 장난 좀 친 거잖아. 말없이 때리지 마라. 그야 손에 마나가 안 담겨있어서 아프진 않다만.

    "어때, 바넷사. 이렇게 꾸미니 너도 좀 날 다시 보게…."

    탁!

    내가 바넷사의 턱을 손으로 받쳐 들면서 느끼하게 말하자, 바넷사가 순간 몸을 떨더니 내 손을 탁하고 쳐냈다.

    "……."

    "죄송합니다."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엄청 노려보네.

    나는 두 손을 들어서 항복하는 자세를 취하고 바넷사에게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갈까."

    내가 팔을 내밀면서 사라를 보고 말하자, 사라가 새초롬한 표정을 짓더니 내 팔에 팔짱을 껴왔다.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자기도 몰래 갈아입었는지, 사라도 꽤나 근사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팔짱을 끼고 저택을 나서게 됐다.

    드디어 레이첼 누님과의 데이트인가.

    생각해보면 이 세계에서 처음 만난 게 레이첼 누님인데 말이야. 엄청 길었다.

    뭔가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흥. 데이트가 그렇게 좋아. 심장 뛰는 거 봐."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 사라도 내 고동을 느꼈는지, 살짝 얄미운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야. 사라가 이렇게 붙어있으니까."

    "하여간 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라는 아까보다 표정이 조금 느슨해졌다.

    하여간 얘도 귀엽다니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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