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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19화 (50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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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때와는 다른

    "으으으윽…."

    아프다.

    부드러운 침대에 파묻힌 등이 후끈후끈했다. 그리고 명치 부근에 묵직한 격통이 느껴졌다.

    설마 난 기절한 건가? 하지만 이건 이상하다. 만약 내가 사라의 공격을 받고 기절했다가 일어난 거라면, 이런 격통이 느껴질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꿈? 그래. 그럴 거다.

    이게 꿈이라고 하더라도 사라의 공격을 받고 기절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꿈이라면 적어도 이 격통은 설명이 가능하다.

    "정신이 들었는가?"

    내가 그렇게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을 때, 옆에서 디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상당히 걱정스런 얼굴로…야. 왜 맞아도 싸단 표정을 짓고 있는 거냐? 좀 걱정해라.

    "아니. 역시 꿈이라 그런가."

    "일어나자마자 무슨 잠꼬대를 하는 겐가? 에잇."

    "끄아아악!"

    디아나가 내 명치를 살짝 톡 치자, 다시 한 번 그 부위에 격통이 달렸다.

    이럴 수가! 디아나의 공격이 아프다니! 역시 이건 꿈이야!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게."

    "허억. 허억. 디, 디아나. 이게 꿈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기억 안 나는 겐가? 자네 사라양한테 레이첼양과의 데이트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몰래 따라와 달라고 하다가 맞고 기절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내가 사라한테 맞고 기절한 것 까지는 사실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격통은 이상하다.

    "레이아는? 우리 천사님이 이 상태로 날 방치할 리가 없는데?"

    그래. 평상시에는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지막엔 레이아가 날 치유해준다.

    이렇게 몸에 격통이 남아있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거다.

    "수영 연습을 하러 욕실에 갔네."

    "내 치료도 안 해주고?"

    "레이아양은 일단 해주려는 것 같았네만, 사라양이 절대 해주지 말라고 하니까 곧바로 포기하더구먼. 레이아양조차도 사라양의 행동에 공감하는 것이겠지."

    ……젠장. 사라 녀석.

    아니. 잘못한 건 내가 맞기는 하지만.

    "사라, 화 많이 났어?"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네도 참 뻔뻔하구먼.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할 생각을 하는가? 사라양이 아니라 이 몸이나 레이아양이라도 화냈을 걸세."

    "아니. 그거야 그렇긴 한데, 이제 와서 약속을 무를 수도 없는 일이라…. 으윽. 이거 어쩌지. 그래. 디아나. 차라리 그 단검을 내게서 엄청 멀리 떨어져있어도 빛나게…."

    "불가능한 건 아니네만, 그래서야 효과가 없어질 걸세. 사라양은 단검이 빛나는 걸로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네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안정되는 것이니 말일세."

    "응…. 그야 그렇겠지. 나도 그냥 해본 말이었어. 애초에 디아나는 그게 아니더라도 바쁠 테니까…."

    "음? 바빠? 이 몸이 말인가? 딱히 예정이 있는 건 아니네만."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디아나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침에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서 확실히 맡겼잖아.

    "무슨 소리야? 촬영 마법구의 개조를…."

    "에잇!"

    "으갸아아악! 아파! 아파!"

    이 녀석. 아까 내가 명치로 아파하는 걸 봤으면서 또 때렸겠다!?

    "흠. 흠. 좋은 반응이구먼."

    그동안 자신의 토닥토닥 공격이 한 번도 안 통했던 것을 의외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건지, 디아나가 흡족한 얼굴로 내 명치를 살살 어루만져줬다.

    "누르지 마라? 또 누르지 마라?"

    "자네 하는 거 보고 정하겠네."

    "때릴 거면 차라리 그 위쪽이나 아래쪽을 때려."

    "이렇게 말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디아나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 가슴을 토닥토닥 때려왔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 토닥토닥이야. 역시 디아나는 이래야지.

    "에잇."

    가슴에 안마를 받으면서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자니, 디아나가 기습적으로 다시 명치를 눌러왔다.

    "으다아아악! 바, 방심 시킨 다음 이러기냐…. 이번엔 아무 짓도 안 했잖아."

    "음. 미안하네. 맞으면서 흡족하게 웃는 걸 보니 더 해달라고 하는 줄 알았네."

    이 쪼끄만 게…뻔히 보이는 거짓말하지 마라….

    뭐 됐어. 아무튼 지금은 어떻게든 사라에게 협력을 구하고, 덤으로 레이아의 치료도 받아야한다.

    아니. 레이아가 아니라 마틸다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만약 사라와의 얘기가 잘 마무리 되면, 마틸다하고도 얘기를 나눠봐야겠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내가 향해야 할 곳은 딱 한 군데뿐이다.

    "하아. 아무튼 난 욕실로…가면 안 되겠지?"

    "당연한 걸 묻는구먼."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 이유로, 내가 욕실에 들어가는 건 금지인 모양이다.

    큭. 하지만 그래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

    "포기하게나. 어차피 곧 저녁시간 아닌가?"

    "뭐?! 벌써?!"

    디아나의 말을 듣고 황급히 시야 구석의 시간을 확인해보니, 확실히 벌써 저녁이었다.

    그러고 보니 창문 너머로 비치는 하늘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젠장. 대체 얼마나 기절해있었던 거야. 아직까지 이렇게 욱신거리는 것도 그렇고. 사라 녀석, 너무 화난 나머지 힘 조절 못하고 제대로 쳤겠다? 그렇다면 난 이걸 이용해주겠어.

    데이트가 당장 내일인 이상, 더 이상 수단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나는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잠깐 기다리게! 자네 어디 가려는 겐가?"

    "알면서 왜 그래. 당연히 욕실이지."

    "방금 이 몸이 한 말은 못 들었는가?"

    내가 뻔뻔하게 대답하자, 디아나가 조그만 주먹을 쥔 채 검지만 곧게 세워서 들고는 협박하듯 말했다.

    설마 이 내가 디아나의 손가락 하나에 겁먹게 될 날이 오다니.

    "디아나. 남자에겐 물러설 수 없는 싸움도 존재하는 법이야."

    "그런가. 그렇다면 어디 이 몸을 지나가보게나."

    나는 손으로 명치를 단단히 가드하고는 디아나에게 엄숙히 말했다.

    그리고 명치를 감싸 쥔 나와 마치 펜싱선수처럼 검지를 얼굴 앞에 세우고 있는 디아나가 조용히 대치를 하기를 어언 수 분.

    먼저 움직인 건 디아나였다.

    "야아아압!"

    디아나는 방금 전까지 세우고 있던 손가락은 폼이었다는 듯이, 양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와서는 내 허리를 덥석 안았다.

    응? 얘가 지금 뭐하자는 거지? 설마 자신의 귀여움을 무기로 심쿵사를 노리는 건가?

    큭. 그런 거라면 성공이다. 엄청나게 귀여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겠어!

    나는 자연히 힘이 풀리려하는 무릎에 잔뜩 힘을 줘서 버텨내고는 디아나를 허리에 메단 채 그대로 이동을 개시했다.

    "콕!"

    "끄으윽!"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디아나가 손가락을 세워서 내 등을 콕 하고 찌른 거다.

    크흑. 젠장. 명치에만 신경 쓰느라 등도 후끈후끈 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어.

    과연 책사. 사람의 빈틈을 이런 식으로 노리다니.

    예상외의 고통에,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바닥으로 쓰러져….

    "우와아앗!"

    쓰러지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또 그만 앞쪽으로, 그러니까 디아나가 내게 안겨있는 방향으로 넘어지게 됐다.

    이대로라면 디아나가 깔려버린다. 나같이 덩치 큰 놈 밑에 깔리면, 우리 귀여운 디아나는 뼈도 추리지 못하고 그대로…그렇게 둘 순 없지.

    아무리 얘가 날 공격한 당사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크흑. 난 왜 이렇게 착한 걸까.

    넘어지는 와중에, 나는 허리를 있는 힘껏 돌려서 넘어지는 방향을 바꿨다.

    등부터 떨어지도록 말이다.

    쿠웅!

    "끄아아아악!"

    안 그래도 후끈거리는 등부터 바닥에 떨어지자, 과연 그 격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위에는 디아나까지 무게를 실고 같이 넘어진 상황이니까 말이다.

    아니. 물론 우리 디아나는 깃털처럼 가볍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자, 자네 괜찮은 겐가?!"

    과연 이번 건 디아나도 예상을 못했는지,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자 얼른 내 위에서 일어나서는 새파래진 얼굴로 내 안색을 살폈다.

    "대체 뭐가 이렇게 소란스러…구워어언?!"

    "꺄악! 구원씨!"

    그리고 수영 연습을 끝내고 내 안색을 살피러 온 건지,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리며 사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는 바닥에 구르고 있는 날 보더니, 거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가와서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고는 외쳤다.

    그리고 뒤이어서 들어온 레이아도 바닥을 구르는 내 모습에 대경질색해서는 황급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저렇게 반응이 격렬한 걸 보니, 사라는 아무래도 아까 자신이 때린 여파로 아직까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완전히 생뚱맞은 착각인 건 아니지만, 얘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닌데 말이야.

    하지만 모처럼 이런 기회가 찾아온 거다. 그냥 놓칠 수는 없지.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크흐흑. 괜찮아. 사라. 멍청한 부탁을 했던 내 잘못인 걸. 이정도 고통쯤, 감내해야하는 게 당연해."

    "……."

    디아나가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내가 그 전에 재빨리 선수를 쳐서는 비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디아나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시선을 옆에서 엄청 보내오고 있었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바보! 뭐가 괜찮다는 거야?! 레이아!"

    "네, 네에! 구원씨! 어서 치료를…!"

    레이아는 황급히 손에 빛을 두르고 날 치료하려 했지만, 나는 그 손목을 덥석 잡아서 멈춰 세웠다.

    "아냐! 그만 둬! 난 치료받지 않겠어! 사라에게 바보 같은 부탁을 한 내 잘못이야! 이 고통과 평생 함께 하겠어!"

    "바보! 왜 이런 때 그런 고집을 부리는 거야!"

    내가 비장한 목소리를 유지한 채 그렇게 말하자, 사라가 책망하듯이 외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내 몸을 흔들 수는 없었는지, 내 팔을 붙잡은 손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얘도 솔직히 잘 먹힐지 어떨지 불안했는데, 얘도 상당히 분위기를 잘 타주네.

    그만큼 내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걸까? 아니. 일단 아픈 건 연기가 아니기는 하지만.

    "이게 내 속죄야! 이런 걸로 전부 속죄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바보! 난 이제 화 안 났으니까!"

    "거짓말이야! 하지만 사라는 내 부탁을…!"

    "알았어! 들어줄 테니까! 따라가 줄 테니까 어서 치료를 받아!"

    "아, 정말로? 천사님. 곧장 부탁드립니다. 쓰담쓰담 해주세요. 우와. 아파 죽는 줄 알았네."

    사라의 허락을 듣자마자,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켜서는 레이아에게 등을 내밀었다.

    "사라양도 의외로 단순한 수법에 넘어가는구먼."

    그 모습을 보고,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의 신파극을 관찰하던 디아나가 아까 내가 했던 생각과 비슷한 감상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구원씨. 못 됐어요."

    레이아도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치료는 해주려는 건지 내 등을 어루만져주기 시작했다.

    하아…. 드디어 아픔이 가신다. 역시 천사님의 손길은 최고야.

    "이게 바로 사랑이란 거지. 사랑. 사라는 날 너무 좋아한다니까."

    "……야. 구원."

    내가 등에 손길을 느끼면서 자랑스럽게 말하자, 사라가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서는 내 이름을 불렀다.

    "오빠한테 야라니…저기. 사라님? 일단 아픈 건 엄살이 아니었으니까요. 진정하세요. 레, 레이아? 뭐라고 말 좀 해줘. 악!"

    "하아. 구원씨가 너무 장난치시니까 그런 거잖아요. 사라씨. 여기 상처 좀 보세요."

    레이아는 내 등을 가볍게 한 대 찰싹 때리더니, 내 옷을 걷고는 사라에게 등짝을 보여줬다.

    "으읏…. 미, 미안…."

    물론 나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등짝에는 무수한 손바닥 자국의 피멍이 새겨져 있겠지.

    사라도 그 모습을 보자 더 이상 화낼 생각은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건지 살짝 울먹이면서 내게 고개를 숙여서 사과했다.

    "아니. 괜찮아. 애초에 맞을 짓을 한 건 나고."

    솔직히 이정도 맞고 끝난 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덕분에 목적도 달성했고 말이다.

    아까 따라 와준다고 한 거, 이제 와서 무르거나 하지 않겠지?

    약속한 거다? 내일 레이첼 누님과의 데이트, 도와주는 거다?

    그렇게 나는 길었던 하루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정말로 긴 하루였어. 하루의 대부분을 기절한 채로 보냈는데 길다고 느끼다니.

    그래도 일단 어떻게든 목적은 달성한 거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남은 건 내일 레이첼 누님과의 데이트를 무사히 마치고 고백하는 것과, 나중에 마틸다와 단 둘이 얘기를 나눠보는 것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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