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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14화 (49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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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때와는 다른

    결국 우리가 저택에 돌아갔을 때, 시간은 거의 저녁 시간에 가까워져있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럼 식사 준비가 있으므로 전 이만."

    마차를 저택 안에 들이고, 바넷사는 곧장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어? 잠깐! 야, 너 지금부터 식사 준비 하려고?"

    계속 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내내 방해 한 번 안하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배려해준 나로서는, 당황해서 그만 바넷사를 멈춰 세울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심지어 그 실비아마저도 혹시 바넷사의 운전에 방해가 될까봐 입에서 새어나오려는 소리를 꾹 참고는 버티고 있었다고. 마차 안에서 나와 지근거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참고로 몸을 떨면서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억지로 틀어막는 실비아의 모습은 참으로 요염해서 오는 내내 좋은 눈요깃거리가 됐다.

    얼굴까지 상기되어 있어서 정말 완벽했어.

    "그렇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아니. 그 뭐냐. 괜찮냐?"

    "…뭐가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바넷사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강렬한 눈빛으로 날 찌릿하고 노려봤다.

    아니. 무슨 말하는 건지 너도 잘 알잖아.

    하다가 도중에 끊겼으니까 지금 더 힘든 거 아니냐? 정말 괜찮겠어?

    "아, 아니. 아무것도."

    하지만 대놓고 자위 안 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볼 수도 없어서, 나는 결국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만."

    바넷사는 우리에게 꾸벅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평소보다 더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빠르게 사라졌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역시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저럴 거면 차라리 저녁 식사 준비를 하기 전에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좋아 보이는데 말이야.

    "실비아. 가자."

    아무튼 이 이상 내가 신경써봐야 어떻게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슈퍼 집사님은 알아서 어떻게 잘 처리하시겠지.

    나는 바넷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여전히 마차 안에서 축 늘어져있는 실비아를 불렀다.

    "저, 저는 틀려씁니다아…. 저,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구언님은 먼저어…."

    아니. 야. 그러니까 괜히 비장하게 말하지 마라.

    대사만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일세.

    "…실비아는 내가 여기서 봐주다가 조금 괜찮아지면 그때 옮길게. 구원은 먼저 들어가."

    그런 실비아를 보다 못하겠는지, 사라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

    "응? 하지만…."

    "구원은 오히려 여기 있으면 방해되니까 가."

    "네."

    결국 나는 실비아를 그대로 방치한 채 혼자 먼저 저택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녀왔는가."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로비에서 디아나가 조금 불퉁한 얼굴로 날 맞이해줬다.

    "응. 다녀왔어. 표정은 왜 그래?"

    내가 살짝 부푼 디아나의 뺨을 콕콕 찌르면서 말하자, 디아나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뺨을 더욱더 부풀어 올렸다.

    야. 네가 그래봤자 콕콕 찌르는 느낌이 더 재미있어질 뿐이라고.

    "꽤나 늦었지 않은가."

    아아. 과연. 그런 이유로 불쾌해하고 있었던 건가.

    아침에는 흔쾌히 보내줬던 디아나였지만, 그런 디아나조차도 내가 이렇게나 오래 걸릴 거라곤 생각을 안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내가 성으로 간 이유가 이유인 만큼, 펠리시아와의 행위에 푹 빠져서 늦은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이유로 늦었을 리가 없잖아. 애초에 사라하고도 같이 갔었던 거라고?

    "미안. 미안. 나간 김에 길드랑 신전에도 들러서 감사 인사를 하고 왔어."

    "으, 음. 그런 겐가. 잘했네."

    내가 피식 웃으면서 말해주자, 디아나는 그제야 얼굴 표정을 풀고는 까치발을 들어서 칭찬이라도 해주듯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필사적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걸 보니, 잠시나마 오해를 했던 게 미안한 모양이다.

    뭐, 그냥 내 머리 쓰다듬는 걸 좋아하는 것뿐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마틸다…하고 레이아는?"

    그런 디아나를 바라보면서, 나는 우선 마틸다의 행방을 물어봤다.

    마차에서 오는 동안 다들 바넷사의 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었던지라, 그에 대해 조금 더 차분히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틸다와 직접 얘기해보지 않는 이상 나 혼자 어떻게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선 마틸다의 행방을 물어봤던 건데….

    "음? 아직 수영 연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아무래도 마틸다는 아직까지 수영 연습에 매진해있는 모양이었다.

    "……."

    "뭐, 뭔가?"

    둘이 수영하고 있는데 넌 여기 있다는 건, 역시 어제는 혼자만 따로 있기 쓸쓸해서 따라왔던 거구나.

    아니. 뭐, 상관없지만 말이야.

    "아니. 아무것도. 그럼 난 욕실에 가서 잠깐 둘이 열심히 하고 있나 좀 보고 올게."

    "안 되네!"

    솔직히 지금 당장 욕실에서 마틸다와 만난다고 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지는 않을 거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서 나눌 얘기도 아닌 것 같았고, 무엇보다 저녁 시간이 가까운 만큼 진지하게 의견교환을 할 시간도 없을 거고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뭔가 답답해서, 나는 우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욕실로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앞을 디아나가 양팔을 척 벌리고 막아섰다.

    "뭐야. 왜 그래? 괜찮아. 확실히 그 둘의 가슴 크기가 너희 중 1, 2위를 자랑하긴 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걸 관람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

    "그런 의미로 막아선 것이 아닐세! 아니. 1, 2위라니 뭔가?! 관람이라니 뭔가?! 자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겐가?!"

    아차! 나도 모르게 그만 본심이…!

    "아니. 미안. 디아나의 흔들림 없이 편안한 가슴도 꽤나 큐트한…."

    "이, 이 몸도 흔들리네!"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위아래로 콩콩 점프를 했다.

    아니.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무리수 아니냐.

    그야 성장하면 엄청 흔들리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안 입고 있으면 살짝은 흔들리겠지만, 지금은 전혀 미동도 없잖아.

    "으, 응. 귀여워. 귀여워."

    "동정하지 말게!"

    하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수도 없어서 내가 일단 칭찬을 해주자, 디아나가 울상을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렸다.

    아니. 뭐 어쩌라고.

    "아무튼 난 갈게."

    "그러니까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대로 내가 위로를 해줘봤자 디아나는 데미지만 입을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디아나를 놔두고 욕실로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앞을 디아나가 다시 한 번 양팔을 벌리며 가로막았다.

    얘 혹시 그냥 나랑 놀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막아선 디아나를 그대로 꼭 껴안아서 들어올렸다.

    "햣! 뭐, 뭘 하는 겐가?!"

    "그럴 거면 아예 같이 가자. 나도 우리 디아나의 귀여운 수영복 차림도 보고 싶었고."

    "그러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멈추지 않겠는가!"

    나는 아까 전 발언을 사과하는 의미도 포함해서 그렇게 웃으며 말해줬지만, 디아나는 내 가슴을 토닥토닥 때리며 어떻게든 날 멈춰 세우려고 했다.

    왜 이렇게까지 심하게 반대를 하는 거지? 뭔가 있는 건가?

    "대체 왜 그러는데?"

    "지금 욕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함부로 가려는 겐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디아나 입으로 말했잖아. 그야 레이아하고 마틸다가…."

    "그 둘 말고 더 말일세!"

    "…응?"

    "설마 자네 정말로 모르고 그러는 겐가? 자네는 대체 욕실을 뭐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디아나가 살짝 화를 가라앉히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야 몸을 씻는…설마."

    그러고 보니 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애초에 이 저택에 그렇게나 큰 욕실을 만든 이유는, 메이드들을 전부 동시에 씻어도 문제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욕실도 메이드들에게 상시 개방하고 있고 말이다.

    "그렇다네. 누군가 씻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세."

    "하지만 수영 연습 중이잖아?"

    "큰 욕조만 이용 못할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어제는 하루 종일…."

    "자네가 있었지 않은가. 이 저택은 자네를 제외하면 여성밖에 없다는 점을 인지하게나."

    "…설마 어제 나 좀…아니. 상당히 방해였어?"

    "괜찮네. 이 저택은 욕조가 달린 방이 많으니 말일세. 큰 불편은 없었을 걸세."

    내가 그제야 자신이 어제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있었는지 깨닫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자, 디아나도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독여줬다.

    하지만 저렇게 말한다는 건, 역시 방해가 됐다는 거겠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그 피로를 저 욕실에서 푸는 저택의 메이드님들 죄송합니다.

    "뭐, 알았으면 욕실에 가는 건 포기하게나. 아니면 레이아양이나 마틸다양에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겐가? 그런 것이라면 이 몸이 들어가서 불러와주겠네만."

    "아니. 딱히 그런 건…."

    뭐, 실은 마틸다한데 할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디아나한테 말하는 것도 조금 그렇고.

    "그런가. 딱히 할 말은 없었는가. 그렇다면 역시 자네는 가슴이…!"

    야. 방금 전까지 온화했던 애가 갑자기 화내지 마라.

    자기가 말하면서 점점 화내기는.

    하여간 자기도 나중에 커질 거면서 가슴을 싫어한다니까.

    "그래. 디아나의 가슴은 최고지."

    "흐얏! 이, 이런 데서 만지면 어떻게 하나!"

    내가 디아나의 가슴을 옷 위로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해주자, 디아나가 내게 황급히 좌우를 살피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다만 그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기도 해서, 디아나가 미약하게나마 흥분을 느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하여간 이 변태씨는.

    "다른 데선 괜찮다는 거야?"

    "조, 조그만 더 참게나. 곧 아닌가."

    내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디아나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자, 디아나가 간지럽다는 듯 목을 움츠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뭐, 확실히 조금만 참으면 되기는 하지.

    결국 나는 레이아와 마틸다를 보러가지 않고, 바넷사가 부르러 올 때까지 디아나와 적당히 노닥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말해서 바넷사가 오늘도 식사시간에 부르러 올지 확신이 없었지만, 우리의 슈퍼 집사님은 제대로 우릴 부르러 왔다.

    게다가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는 걸 보니, 여전히 펠리시아의 기운을 처리도 안 하고 일에 매진한 모양이다.

    저 정도면 거의 워커홀릭 아니야?

    보는 내가 다 불안하니까 좀 가서 자위부터 해라.

    "바넷사. 자네 괜찮은가?"

    거 봐라. 아무것도 모르는 디아나까지 눈치 챘잖아.

    "네? 뭐가 말입니까?"

    바넷사는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날 찌릿하고 노려봤다.

    내가 디아나한테 낮에 있었던 일을 말이라도 한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내가 고개를 황급히 젓자, 바넷사는 다시 눈빛에서 힘을 빼고는 디아나를 바라봤다.

    "얼굴이 붉지 않은가."

    "오늘은 방금 전까지 요리하며 불을 쬐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흠. 그런가. 고생했네."

    "아닙니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바넷사는 그렇게 말하고,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다리는 주의 깊게 보지 않는 이상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미묘하게 떨리고 있어서, 바넷사가 대체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우릴 식당에 안내하고도, 바넷사는 디아나의 자리 뒤에 가만히 서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를 했으니, 그야 말로 철의 의지라고 볼 수 있었다.

    인정한다. 넌 진짜 집사의 거울 같은 녀석이야.

    날 대하는 태도가 조금 안 좋은 것만 빼면 정말 완벽해.

    아무튼 식당에서야 겨우 마틸다를 보게 된 나였지만, 역시나 교황에게서 들은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가령 저주를 해제 작업 할 때처럼 단 둘이 있을 때가 꺼낼 얘기라고 생각하니까.

    "…아까부터 뭘 그렇게 빤히 보는 거죠? 제 얼굴에 뭔가 묻기라도 했나요?"

    "아니. 그냥 예뻐서."

    "그…! 다, 당신도 무척 멋져요오…."

    그래서 마틸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눈치 챘을 때도, 그렇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식사 중에 뭘 하는 겐가?!"

    "식사할 때까지 마틸다씨를 괴롭히고 싶어?!"

    뭐, 그 때문에 구박까지 받기는 했지만.

    아니. 괴롭힌다니. 그야 밥 먹는데 방해됐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괴롭힌다니.

    그냥 칭찬한 건데.

    그냥 솔직히 질투 난다고….

    "당신…."

    아, 응. 미안. 쟤 밥도 안 먹고 나만 바라보네. 응. 진짜 미안.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앨리시아의 차례는 조금 더 나중이 됩니다.

    얘기를 좀 더 팍팍 진행하고 싶은데 왠지 쓰다보면 캐릭터들 간에 대화가 늘어나서 글이 길어지네요.

    그나마 그걸 연참으로 커버하고 있었는데, 요즘 좀 바빠서….

    그래도 오늘은 3시 전후까지 한 편 더 써서 연참을 하겠습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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