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513화 (49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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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때와는 다른

아니. 그야 알고 있었다.

나조차도 처음부터 마틸다는 굳이 던전에 따라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그야 추기경씩이나 되는 사람이니 저주가 풀리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마틸다와 함께하면서 마틸다에 대한 내 감정이 변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으로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입으로 직접 그런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일까?

뭔가 가슴 한 구석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렇지요…."

되든 안 되든 감정에 몸을 맡겨서 반박을 해보려고도 했지만, 나는 이내 그러길 포기하고 일단은 얌전히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건 내가 싫다고 떼를 써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마틸다의 의사다.

정작 마틸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막무가내로 보내기 싫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교황과 별로 특별할 것 없는 겉치레 인사를 몇 번 주고받은 후, 나는 소피아 대사제와 함께 통신 마법이 설치된 방을 뒤로 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마틸다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마틸다는 뭔가 고민하는 표정을 자주 짓고 있었지. 정확히는 교황과 대화를 나눈 다음부터.

나는 교단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라도 들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혹시 마틸다도 교황에게 새삼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듣고는 고민하게 된 게 아닐까?

내 희망적인 관점이 다분히 들어간 추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측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추측이 맞는다고 한다면, 마틸다가 전에 한 번 나와의 침대에 가는 걸 은근슬쩍 거부하는 것도 상당히 희망적인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거부했다고 하기 보다는, 저주 해제보다 수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거긴 하지만.

애초에 마틸다가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추기경이란 신분을 이용하면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옮기는 것도 가능할 텐데, 그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 희생해서 저주를 짊어지고 있는 애가 저주보다 수영을 우선시해?

그야 물론 마틸다 자신이 수영을 못해서 내가 위험에 처한 것도 맞다.

그리고 마틸다가 본심인지 아니면 저주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 날 좋아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현재도 저주 때문에 발기가 되지 않아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남성들이 있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저주 해제보다 수영 연습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고, 실은 조금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저주 해제를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건, 역시 마틸다도 이대로 교황청에 돌아가는 것보다 나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거 아닐까?

…뭐, 그조차도 저주 때문에 날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그런 거고, 저주가 풀리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하아. 진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안 그래도 지금 처리할 일이 쌓여있는데 말이야. 눈앞에 들이닥친 레이첼 누님과의 데이트나 사라의 유아퇴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부터, 길게는 실비아를 어떻게 죽이지 않고 사도 임명을 할 것인가까지.

그런데 이렇게 마틸다의 일까지 겹치다니.

아니. 뭐 대부분 내 자업자득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머릿속이 꼬이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소피아 대사제의 방에 다시 돌아간 순간 일단 머리 한 구석으로 밀어 넣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고민하는 것보다 먼저 해결해야할 일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뭔 난리래.

간단히 한 줄로 요약하자면, 실비아가 사라를 덮치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서 발버둥치는 사라와, 그걸 온 힘을 다해 억누르고 있는 실비아.

설마 성에서 미수로 끝난 줄 알았던 레즈 플레이가 신성한 신전 안에서….

"우에에에엥! 구워어어언! 어디 갔었어어엉!"

"사, 사라님! 지, 진정하십시오! 이대로 나가도 구원님을 만날 수는…우으으읏! 구, 구원니임!"

하지만 이내 들려온 둘의 대화로, 나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응. 그럼. 당연히 그렇지. 응. 난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어. 우리 사라랑 실비아가 나 몰래 그런 관계가 됐을 리가 없잖아.

사라가 외치고 나서야 실비아도 내 존재를 깨달았는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라를 해방시켜줬다.

그리고는 사라에 덩달아 자신도 내게 다가오려다가, 멈칫 이라고 할까 흠칫 하더니 방구석으로 도망갔다.

진짜냐. 이런 때조차도 내 곁에 오기 힘든 거냐.

아무튼 실비아는 사라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둘 다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어 있고, 땀범벅이 되어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처음 봤을 때 그만 오해를….

크흠. 사라는 겉보기랑 다르게 의외로 힘이 세니까 말이지.

뭐, 겉보기랑 다른 건 실비아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실비아가 훨씬 더 심하지만.

갑옷만 벗겨놓으면 기사님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녀리고 호리호리한 몸이니까.

"구워어언! 구워어어언!"

사라는 실비아에게 해방되자마자 숄더 태클이라도 하듯 내게 달려들어서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마구 비벼대기 시작했다.

"응. 그래. 그래. …소피아 대사제님. 혹시 여기서 통신 마법이 있는 곳까지 100미터 이상 거리가 있나요?"

그런 사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나는 소피아 대사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단 체감 상 절대 100미터는 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빙글빙글 돌아가는 길이 많았던 지라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맵이 건물 안에서도 적용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이런 것까지 게임 시스템을 따라갈 필요는 없을 텐데, 건물 안에 들어오면 그냥 마을 맵인 채로 건물 안에 들어와 있다는 표시만 뜬단 말이지.

"그, 글쎄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자기 집무실에 돌아오자마자 미모의 여인 둘이 땀을 흘리며 껴안고 바닥에 뒤엉켜있던 광경을 목격하게 된 소피아 대사제는, 상당히 당황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침착한 반응을 보여주셨다.

"조금 사정이 있어서 제가 100미터 가까이 있지 않으면 불안정해지는 상태거든요."

사라는 유아퇴행에 관한 얘기를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이런 모습까지 보인 이상 오히려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는 편이 더 이상항 오해를 받을 거다.

그래서 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나이프를 가리키며 소피아 대사제에게 설명을 했다.

"그, 그렇군요. 하기야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요."

빛나는 나이프를 보고 대강의 상황을 짐직한 건지, 소피아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심이 많으신 분이라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 안녕히 계세요…."

아무튼 사건이 일단락되고, 우리는 신전을 떠나기 위해 소피아 대사제께 인사를 했다.

사라는 그런 모습을 보인 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지, 답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론 내 소매를 잡고 있는 모습이 어쩜 그리도 귀여운지.

"네. 다음에는 레이아하고도 같이 찾아와주세요."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소피아 대사제도 뭔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와 레이아의 관계를 제일 밀고 있는 소피아 대사제로선, 사라도 딸의 연적 같은 입장일 텐데도 참 너그러우시다.

"하아. 겨우 끝났다. 긴 하루였어."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

내 그런 중얼거림에, 사라가 맞장구치듯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긴 나도 그렇지만, 사라 입장에서도 상당히 긴 하루였을 거다.

성에서는 펠리시아가 내뿜는 기운에 당해서 내게 스킬로 절정을 당하고, 그 이후로는 펠리시아의 장난질에 화내고, 신전에선 실비아와 레즈 의혹까지.

진짜 다사다난하네.

"뭐, 집에 가기 전에 또 하나 넘어야하면 안 될 관문이 남아있지만."

"응? 뭐야 그거?"

"아, 사라는 별로 신경 쓸 거 없어. 실비아 얘기니까."

"네, 넵?! 저, 저 말씀이십니까?"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자, 조금 멀리 떨어진 뒤에서 따라오던 실비아가 허를 찔렸다는 듯 몸을 움찔 떨면서 말했다.

"그래. 너."

"잠깐. 또 실비아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지?"

"괴롭히다니. 넌 대체 날 어떻게 보고 그러는 거냐. 내가 아니라 상황이 실비아를 괴롭히는 거라고. 자, 봐."

찌릿하고 째려보며 말하는 사라에게, 나는 능청스런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정면을 가리켰다.

난 당당했다. 정말로 내가 의도해서 괴롭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애초에 한 손으로 내 소매를 붙잡고 졸졸 따라오는 애가 노려본다고 해서 무섭지도 않고.

그렇게 내가 가리킨 곳에는, 아까 전과 마찬 가지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빡빡하게 메워진 사람의 물결이 있었다.

"으아아아…."

그리고 그 사람의 물결을 본 실비아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기라도 한 듯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갔다.

"자, 이리 온."

"우으으으…네, 네에에…."

하지만 내가 손짓하자, 실비아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내게 걸아 와서 안겼다.

이렇게 쉴 새 없이 진동하면서도 터벅터벅 힘 빠진 모습을 연출해낼 수 있다니.

이것도 어떤 의미론 재능이다. 재능.

"흐야아앗…흐이잇…흐읏…무리…이제 진짜 무리…."

그렇게 사람의 물결을 겨우 빠져나왔을 때는, 실비아는 이미 온몸에 힘이 풀려서 내게서 떨어지는 것조차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상황까지 몰려있었다.

아니. 떨어지기는커녕 서있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덕분에 내가 실비아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옮기느라 괜히 더 밀착하는 자세가 되기는 했지만.

아무튼 실비아는 생각하는 게 그대로 여과 없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존댓말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건지 혼잣말하듯 반말로 끊임없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무리라니. 딱히 뭘 시킨 것도 아니잖아. 대체 뭐가 무리라는 거데?"

"우으읏…사, 사는 게…?"

"아니아니아니. 그게 무리면 안 되잖아. 아무리 행복해도 그렇지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말로 중얼거리는 건 좀 귀엽긴 했다만.

"실비아, 정말로 힘들면 차라리 제가 부축할까요?"

이대로 놔두면 실비아가 정말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사라가 그런 제안을 할 정도였다.

이건 실비아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는 걸 질투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실비아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다. 표정을 보면 알아.

애초에 사라가 질투를 할 입장도 아니고 말이다.

인파를 빠져나와서도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는 건 사라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야. 실비아의 유일한 즐거움을 빼앗지 마라. 실비아는 이게 좋은 거라고. 그렇지 실비아?"

"네, 네헤엣…."

"구원, 정말로 실비아를 죽이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읏!"

내가 사라를 바라보며 실비아 대신 대답을 해주고 동의를 구하자, 그걸 또 그래도 긍정해주는 실비아였다. 귀여운 녀석.

그리고 그런 우리의 대답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사라였다.

하지만 말하던 도중, 사라는 갑자기 안색을 바꾸고는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굴이 점점 더 빨개지기 시작했다.

"저, 저기. 구원. 나 잠깐 화장실에 가고 싶어 졌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내 주의를 돌리려 했던 사라였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나도 사라가 왜 그러는지 깨달아버렸는걸.

신전 안에 마차를 대기시킬 수 있는, 이른바 주차장 같은 공간.

오늘 이 시간에 마차를 타고 여기 온 건 우리뿐이었는지, 그곳에는 우리가 타고 온 마차만 쓸쓸하게 놓여 있었다.

그러니 사라의 시선이 어디를 향했는지는,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나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응읏…큿…흐읏…."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니, 뭔가 야릇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설마….

"그, 그래! 그러고 보니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네!"

곧바로 사태를 파악한 나도 그렇게 외치고는 발걸음을 돌리려고 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에 난입할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니라고.

오늘은 화장실에서 디아나를 덮쳤을 때처럼 욕구 불만 상태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다소 컸던 모양이다.

"응…? 크흣…! …다녀오셨습니까."

뭔가 파바바밧!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차 안에서 아까보다 얼굴이 더 빨개진 바넷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우리 철혈 집사답게 흐트러진 부분 하나 없이 완벽하게 옷을 빼입고 있었지만, 붉어진 얼굴과 조금 거칠어진 숨은 본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방금 들린 소리로 추측해보면, 제대로 끝내지도 못한 모양이니 더 괴롭겠지.

"……그…우리 좀 딴 데 있다가 올까?"

"…읏! 괜찮습니다."

상황은 충분히 이해한다.

바넷사 혼자서만 펠리시아의 기운을 처리 못한 상황이었고, 교황과의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우리가 조금 오래 있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까지 겹치니, 그렇게 처리하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때문에 일단 배려를 해서 그렇게 말해준 건데, 바넷사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날 쳐다보면서 내 배려를 단칼에 거절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신분 세탁설이라니.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무꾸914 // 마틸다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주인공은 사도임명으로 파악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틸다가 현재 자길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 그게 마틸다 본인의 의지인지 아니면 저주 때문에 강제로 좋아하게 된 건지 확신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서요.

즉, 사도 임명이 가능해도 호감도 100 자체가 저주에 의해 강제로 찍혔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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