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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12화 (49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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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때와는 다른

    소피아 대사제님은 웬일로 레이아나 마틸다와 같이 오지 않은 내게 조금 놀란 모양이었지만, 내가 단순히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는 걸 알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셨다.

    아니. 어쩌면 레이아나 마틸다가 없어서 놀란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던 실비아가 반쯤 녹아내리고 있어서 놀란 건가?

    참고로 실비아는 지금 방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성에서 내게 절정을 느끼면서 이미 한 번 죽을 뻔 했는데, 오늘은 연달아 생명의 위기가 발생하니 도저히 내 옆에 있기 힘든 모양이었다.

    아무튼 소피아 대사제도 첫 인상은 깐깐한 스타일의 미인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날 대할 때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셨단 말이야.

    완전히 장모님께 예쁨 받는 사위가 된 기분이다.

    뭐, 장모님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실제론 레이아 정도의 아이를 가질 나이가 아니신 만큼, 내가 장모님이라고 생각한단 걸 알면 미묘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마틸다한테 들었는데요, 던전에 다니는 사제 분들뿐 아니라 교단 측에서도 성시가단을 파견하려고 했다면서요? 그건 역시 교황님이 그렇게 신경써주신 거죠? 그렇다면 교황님께도 인사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튼 그런 고로, 나는 소피아 대사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교단 측의 인간에게 이런 걸 묻는 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소피아 대사제라면 이해해주시겠지. 한때 내 가정교사 같은 역할도 하셨던 분이니까 더욱더 말이다.

    "그렇군요. 직접 가서 대면 같은 건 아니더라도, 통신 마법으로 간단히 인사는 드리는 편이 좋겠네요. 그게 아니더라도 교황님과는 제대로 한 번 얘기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받은 이후로, 아직 한 번도 얘기를 나눠본 적 없으시죠?"

    내 질문에 소피아 대사제는 긍정할 뿐만 아니라, 아픈 데를 찔러오기까지 했다.

    실은 그래서 더 부담되는 거란 말이지.

    물론 내가 여신님을 강림시킨 걸 목격한 사람이 많기도 하고, 마틸다의 저주를 서서히 풀어가는 중이라는 실적도 있다.

    그리고 마틸다 역시, 평소에는 내게 틱틱 거릴 때가 많기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교황님께는 내 얘기를 좋게 해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통신 마법 너머로 얼굴 한 번 본 게 전부인 날 대체 어떻게 믿고 여신의 사자로 인정해줬는지 그 의도를 모르겠단 말이야.

    그야 좋은 분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우윽. 네. 그거야 그렇죠."

    "답지 않게 교황님은 긴장되시나 보죠?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요. 교황님은 좋은 분이시니까요."

    소피아 대사제는 내 표정으로 대충 짐작을 했는지, 안심시켜 주듯이 그렇게 말해줬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 사람 밑에서 레이아가 자랐다는 실감이 확 난단 말이야.

    처음엔 깐깐해 보인다고 생각해서 죄송합니다.

    역시 사람은 겉보기가 다가 아니야.

    "그럼 통신 마법이 있는 곳으로 갈까요? 서두르지 않으면 저녁 예배 시간이 되어버려요."

    "아, 넵."

    "죄송하지만 두 분은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소피아 대사제가 직접 안내를 해주려는 건지, 대사제는 자리에 일어서서는 사라와 실비아를 바라보며 대기를 부탁했다.

    이 세계는 통신 마법이나 텔레포트 마법의 관리가 엄중한 모양이니까 말이다.

    아무리 내 여자들이라곤 해도, 교황님과 통신하는 자리에 아무나 막 들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사라는 나랑 떨어지면 안 된단 말이지.

    "아, 소피아 대사제. 사라는…."

    "괜찮아. 이 정도는. 네. 대사제님 저희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사라는 나랑 떨어져있으면 안 된다고 설명을 하려 했지만, 사라가 먼저 선수를 치고 나섰다.

    아무래도 통신 마법이 있는 장소까지 100미터 이상 떨어져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는 법인데 말이야.

    이 신전, 생각보다 엄청나게 넓다고. 난 한 때 길을 잃었을 정도로 말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건가요? 그런 거라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구원. 다녀와."

    우리 대화를 보고 뭔가 위화감을 느낀 것 같은 소피아 대사제였지만, 사라는 고개를 저어 얼버무리고는 내게 손을 흔들며 배웅을 했다.

    왜 저렇게까지…아아. 과연. 날 잃을 뻔 한 사건 때문에 나랑 떨어지면 유아퇴행 해버린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은 건가.

    확실히. 생각해보면 상당히 부끄러울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나를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거니까.

    하마터면 그냥 폭로해 버릴 뻔했네.

    그런고로 사라와 실비아의 대동 없이, 나는 소피아 대사제의 뒤를 따라 통신마법이 설치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하자마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사제 한 명이 통신 마법 장치를 만졌고, 내 앞에 놓인 수정에는 순식간에 교황청이라고 생각되는 곳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풍경 가운데에 사람의 얼굴도 하나 비치기는 했지만, 교황님은 아니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말이다.

    교황님이 이런 거대한 장치의 앞을 계속 지키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지금 수정에 비친 사람은, 교황청에서 통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제 중 하나겠지.

    지금 이쪽에서 통신 마법을 건드려주고 있는 사제처럼 말이다.

    "앗. 네. 교황청입…으에엣! 서, 설마! 설마 성자니이임?!"

    역시 여신교의 사제답게 상당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그 사제는, 수정 너머로 내 얼굴이 비치자마자 상당히 얼빠진 목소리를 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뭔가 차분하고 청순해보였는데, 순식간에 이미지가 박살이 나네.

    아니. 그보다 저 반응, 그런가. 그 영상이 교황청 쪽에도 퍼진 건가.

    저 청순해 보이는 애도, 내 영상을 본 거구나….

    나는 미묘한 기분이 되면서도 일단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꺄아아악! 성자님이 인사했다아! 안녕하세요! 전 교황청에서 통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크흠. 크흠. 실례. 교황님께 연락을 줄 수 있을까요?"

    "앗! 소피아 대사제님! 네, 넷! 지금 바로!"

    뭔가 엄청난 기세로 나한테 자기소개를 시작하려고 하려 했던 사제였지만, 소피아 대사제가 헛기침으로 그 말을 끊고는 용건을 전달했다.

    그러자 사제는 당황한 얼굴로 순식간에 수정구슬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다.

    하지만 저런 반응이라니. 마틸다를 처음 만났던 날에도 느낀 거지만, 역시 소피아 대사제도 꽤나 유명인이구나.

    뭐, 이런 거대 도시에 있는 신전의 총책임자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안녕하세요. 소피아 대사제. 성자님도, 오랜만이군요. 여신님께 받은 사명을 수행하던 도중 위험한 상황에 몰렸다고 들었습니다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수정구에 백발의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봐도 역시 위화감이 장난 아니야.

    안 그래도 전반적으로 미모 수준이 높은 여신교에서도 정점에 서있는 위치라는 걸 나타내기라도 하듯, 엄청나게 곱게 늙으신 할머니.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럼 엄청난 매력 수치의 보정이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늙은 모습이라는 거다.

    이 세계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그 세월의 흔적에, 나는 뭔가 자연스레 압도되는 기분을 맛봤다.

    하지만 그런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교황님은 변함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소피아 대사제와 내게 인사를 해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자 구원…! 아니. 이게 아니지."

    "호호홋. 우리 성자님이 긴장하신 모양이군요. 괜찮습니다. 긴장을 푸세요. 그냥 편한 옆집 할머니 말상대라도 해주는 거란 기분으로 대해주시면 됩니다."

    내 모습에 인자한 미소를 띠고 마치 귀여운 손자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날 바라보면서, 교황님은 그렇게 부드럽게 말해줬다.

    "아, 넵. 그게, 이번에 절 위해 여러모로 힘써주신 것 같다고 들어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호홋. 과연. 성자님이 갑자기 통신 마법을 걸어오셨다고 해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런 일이었나요. 괜찮습니다. 감사받을 일이 아닙니다. 성자님은 여신님께 사명을 받고 행동하시는 여신님의 사자. 오히려 그다지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 말하는 걸 보니 역시나 내가 일부러 교황님과 직접 통신 마법을 할 기회를 피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뇨. 아뇨. 그런. 여신님의 사자라는 사실을 공표해주신 것만으로도 활동이 상당히 편해졌어요. 오히려 별로 신빙성도 없는 제 주장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시고 절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교황님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반쯤 빈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게, 여신님의 사자라는 게 공표된 다음부터 날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여러모로 달라진 건 사실이었다.

    물건을 살 때 조금 깎아주거나, 덤을 더 주거나 말이다.

    가끔 모험가들 사이에서 정보를 얻을 때도 미묘하게 더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고.

    문제는 가끔 날 보고 기도를 드리거나 하며 부담되는 사람이 생겼다는 점이지만. 뭐, 얻은 이익에 비하면 그건 사소한 문제다.

    "아뇨. 제가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자님은 여신님의 인정을 받으신 게지요."

    "하지만 그래도…."

    "그리고…저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사람을 보는 눈은 있답니다. 호홋. 다이애나님과 함께 계시는 성자님께 이런 말을 드리면 조금 우스울까요?"

    "아뇨. 그런."

    그러고 보니 디아나가 나이가 훨씬 더 많을 거란 말이지.

    그래도 교황님이 훨씬 더 할머니 같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디아나는 진짜 할머니라고 생각했으면 사귀지도 못했다고.

    우리 디아나는 파티에서 신체연령 최연소를 담당하는 귀여운 대마법사님이야. 할머니가 아니라고.

    "그리고 마틸다 그 아이도, 지금은 저주 때문에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원래는 성녀 후보까지 됐었던 아이랍니다. 그 아이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은, 당신이 여신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더할 나위 없는 증거랍니다."

    교황님은 그렇게 말하고, 아까보다 더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연. 역시 마틸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건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틸다 걔도 은근히 내 도움이 많이 된단 말이야.

    "그리고 성자님은 이번에 또 한 번, 세계를 위해 공헌하지 않으셨습니까."

    "공헌? 아…여, 역시 그거, 교황님도 보셨나요?"

    무슨 소리인지 잠깐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해졌던 나지만, 이내 그게 영상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교황님 입에서 그 얘기가 나올 거라곤 생각을 못했으니까.

    "호홋."

    아니. 대답을 해주세요. 역시 본 겁니까? 크윽. 이 무슨 수치 플레이….

    지금까지 영상에 찍힌 건 내가 아니라는 스탠스로 당당하게 있었던 나지만, 과연 이런 상황에선 조금 부끄러워졌다.

    우리 애들이 진짜로 찍을 거냐고 물어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졌어.

    "그리고 그건 교황님도 신전에서 보여주도록 허락을 해주셨으니까…."

    "호홋. 아닙니다. 전 그저 여신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거. 제가 하는 행동이 즉 여신님의 뜻이라고 돌려 말하는 겁니까?

    부담감 엄청 주시네요. …앞으로 행동에 조금 더 조심하겠습니다.

    "그보다 성자님. 이왕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된 김에, 이 늙은이가 하나 부탁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때까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던 교황님이, 갑자기 살짝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는 내게 그렇게 말을 해왔다.

    으윽. 역시 뭔가 있는 건가?! 그래. 어쩐지. 날 그렇게 쉽게 여신님의 사자라고 인정할 때부터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이렇게 대면하기 싫었는데!

    "마틸다, 그 아이에 관한 일입니다만."

    "…네?"

    뭔가 엄청나게 부담되는 부탁을, 그것도 내가 거부할 수 없는 부탁을 해올 거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의외로 교황님의 입에서 나온 건 마틸다의 이름이었다.

    마틸다? 마틸다가 왜?

    "저주를 푸는 작업에 지금보다 조금만 더 힘을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아아. 과연."

    그리고 교황님의 부탁이란 건, 생각 외로 엄청 단순한 거였다.

    아, 과연. 그런 거였어. 긴장해서 손해 봤네.

    과연 교황님. 여신교의 정점에 서시는 분이, 여신의 사자로 만든 다음 거부할 수 없는 부탁을 한다든가 하는 그런 졸렬한 방법을 쓸 리가 없지.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고.

    "물론 성자님이 여신님이 내려주신 사명으로 바쁜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의 보급으로 성자님이 겪고 있던 문제가 하나 해결 된 것 같으니, 염치없지만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

    "아, 아뇨. 그런. 그런 사악한 저주를 세상에서 없애는 건, 성자로서 당연한 행동인데요. 굳이 부탁받지 않더라도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교황님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던 나는, 하지만 이어지는 교황님의 말에 그만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호홋. 다행입니다. 마틸다 그 아이는 추기경 중에서도 따르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교황청에서도 그 아이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어서 저주가 풀리고 돌아오기를, 이 늙은이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네? 저주가 풀리고 돌아와? 교황청에?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asfdgads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악마의드릴 //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네요. 저하고 필체가 비슷한 작가분이라도 계신 건가요? 유명 작가라…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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