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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10화 (49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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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폭풍

    "펠리시아! 미안!"

    사라와 실비아의 상태이상을 풀어주고, 나는 다시 한 번 펠리시아와 관계를 가졌다.

    전에도 영상만 찍고 대충 끝낸 바람에 이런 사단이 벌어졌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사라는 내가 돌아왔다가 다시 하러 간다는 사실이 조금 못마땅한 모양이었지만, 이대로 끝내는 것도 위험하다는 걸 본인의 몸으로 직접 경험한 탓에 하는 수 없이 승낙해줬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 된 후, 드디어 실비아도 펠리시아와 대면해 사과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괜찮아. 결과적으론 별 일 없었던 거니까. 하지만 실비아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있네. 덕분에 색다른 경험을 했어."

    "페, 펠리시아…."

    정말 미안한 모습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실비아에게, 펠리시아는 마음 넓게 용서해주면서 오히려 재미있었다는 듯이 웃었다.

    그 모습에 살짝 부끄러워졌는지, 실비아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투정하듯 중얼거렸다.

    투정부리는 실비아도 꽤나 신선하네. 언젠가 나한테도 저런 모습을…뭐 아마 평생 못 보겠지.

    "넌 그런 일을 겪고도 잘도 웃음이 나오네…."

    "어머? 왜? 어차피 지나간 일인걸. 좋은 추억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잖아?"

    하여간 저 쾌락주의자 같으니라고.

    쟨 언젠가 죽을 위기에 처해도 나중에 살아남기만 하면 재미있었다고 웃는 거 아니야?

    "만약 그 기운을 네가 직접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됐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잖아? 그리고 괜찮아. 만약 그렇게 되도. 전부 직접 풀어주면 되지.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은 전부 내 방에 올 수 있도록 허락을 해준 사람, 즉 내 측근들이니까. 그리고…."

    펠리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뜸들이더니 날 바라보며 장난기 넘치는, 그러면서 한편으론 유혹하는 것 같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원 여성이니까 자기가 내린 ‘명령’도 어길 걱정은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그리고 명령이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줘서는 그렇게 말했다.

    야. 잠깐만 기다려봐. 뭐야, 그 말투는.

    젠장! 그 미소가 그런 뜻이었냐?!

    "……명령?"

    그리고 펠리시아의 말을 듣자마자, 내 옆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라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잠깐! 구원! 명령이라니 뭐야?!"

    "아니! 잠깐! 별 거 아냐! 야! 내가 언제…!"

    발 빠르게 부정하고 화를 내려고 하자, 펠리시아가 입모양만으로 내게 말을 전했다.

    ‘공주한테 그런 명령을 내린 보답이야. 그래도 키스하려고 했던 얘기는 안 해줄 테니까 감사해.’ 라고 말이다.

    "잠깐. 진정해. 사라야. 별 거 아니야. 오히려 쟤가 자의식 과잉인 거야. 안심은 무슨! 애초에 걱정을 안 했는데!"

    "어머? 정말? 자기, 조금도 걱정 안 될 정도로 날 믿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그런 식으로 명령을 내렸으니, 절대 어기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의 표출? 자기도 참. 응큼하다니까."

    "구우워어어언!"

    "잠! 사라야! 진정해! 아니니까! 정말 아니니까! 나랑 공주, 둘 중 누구 말이 더 믿음이 가?!"

    "……그도 그러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맥스치를 찍어가던 사라의 분노가 겨우 잠잠해졌다.

    그리고는 찌를 듯한 시선을 펠리시아에게 보냈다.

    후우. 진짜 위험했다. 젠장. 괜히 분위기 타서 딴 남자랑 자지 말라고 했다가 이런 반격을 맞다니.

    펠리시아 저건 하여간 방심을 할 수가 없다니까. 생글생글 웃기나 하고 말이야.

    "어머. 그대로 끝이야? 재미없어라."

    사라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펠리시아는 미소를 전혀 무너뜨리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

    사라가 노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겁부터 먹는데 말이야.

    쿨하게 생긴 미녀의 노려보는 눈빛은 그만큼 박력이 있었다. 게다가 사라는 용사의 기운까지 더해져서 더욱더.

    하지만 그런 사라에게 전혀 겁먹지 않는 걸 보면, 역시 펠리시아도 대단하긴 했다.

    아니. 쟨 오히려 사라라서 저런 건가?

    쟨 사라의 반응이 신선한지 틈만 나면 놀려다니까 말이다.

    방금 전에 날 놀린 것도, 어쩌면 내가 아니라 사라가 타겟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 말이야…!"

    "뭐, 뭐. 사라. 진정해. 쟤는 원래 저런 성격이니까 일일이 상대하면 손해라고."

    "어머. 너무해. 아무리 나라도 조금 상처받는 걸?"

    하여간 저 가증스런 태도하고는.

    사라한테 "실은 쟤, 너랑 친구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라고 폭로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나는 그 욕구를 꾹 눌러 담았다.

    사람 약점을 쿡쿡 찌르면서 장난치는 누구와는 달리, 나는 그런 친구를 원한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장난 칠 정도로 못 돼먹지 않았으니까.

    디아나랑 섹스할 때마다 약점 찌르면서 장난치지 않냐고? 그건 이거랑 다른 얘기지. 그건 애정표현이라고. 애정표현.

    반면 펠리시아 쟤는…음. 그럼. 애정표현 같은 것일 리가 없지.

    대놓고 내가 아니라 내 물건만 좋아한다고 했던 앤데.

    "하아…. 아무튼…아참! 야, 기사단 보내주려고 했던 거 고맙다!"

    "…으, 응? 갑자기 그게 무슨…아아. 그걸 이제 와서 말하는구나…. 자기, 혹시 오늘 그 말하러 왔는데 까먹고 있었어?"

    내가 아무런 맥락도 없이 갑자기 감사인사를 하자, 펠리시아는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크흠! 크흠! 아무튼 이걸로 볼 일은 끝난 거지? 그럼 우린 이만 간다."

    "어머. 벌써? 그래…. 자긴 그저 날 이용해 자기의 성욕만 풀리면 그만이라는…."

    펠리시아의 장난질에 피곤해진 내가 황급히 돌아가려고 하자, 펠리시아는 슬픈 표정으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침대 위에 옆으로 주저앉아서는 구슬 같은 눈물방울을 또르르 흘리며 가련하게 중얼거렸다.

    퇴폐적인 외모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마치 비극의 히로인 같은 모습이었다.

    문제는 저게 장난으로 저러는 거란 점이지만.

    "오해받을 말 하면서 슬픈척하지 마라! 묘하게 연기를 잘해서 더 악질이야! 애초에 성욕을 풀려고 이용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게다가 벌써라니! 반나절이나 있었거든?! 나도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어머. 그러네. 자기랑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여기 있다간 계속 저 장난질에 어울려야 될 것 같아서, 나는 결국 그렇게 말을 끊고 방을 뒤로했다.

    "간다!"

    돌아가면서 힐끔 뒤를 돌아보자, 펠리시아는 마치 내가 돌아볼 걸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아까의 그 비극의 히로인 자세 그대로 손만 살랑살랑 흔들며 날 배웅해줬다.

    "나 역시 저 여자하고 만큼은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아. 실비아는 잘도 저런 여자랑 친구로 있네요."

    방을 나서면서, 사라는 갈 곳 없는 분노를 토해내기라도 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보통 이럴 때 마음에 담아두는 일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해소하는 만큼, 내가 중간에서  말리는 바람에 제대로 말싸움도 못하고 끝난 오늘은 상당히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페, 펠리시아도 나쁜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그냥 조금 장난을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그건 보면 알지만요…. 역시 장난에 익숙해져 있어도 상대가 다르면 또 그건 그거대로 화가 나네요."

    "응? 장난에 익숙해?"

    "뭘 시치미 떼고 모르는 척 하는 거야! 구원이 틈만 나면 장난쳐서 그런 거잖아!"

    아, 과연. 그런 건가.

    아니. 하지만 난 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아마도.

    아무튼 그렇게 무사히 볼 일을 마치고 우리는 마차를 타고 성을 뒤로했다.

    나갈 때 힐끔 밖을 쳐다보자, 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여전히 조금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왜 저렇게 혼란스러운 모습인 걸까?

    물론 자기가 지키는 성의 성주님이 그런 상태였으니까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는 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수선하지 않나?

    고작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그 기운에 영향을 받았을 리도 없고 말이다.

    말단 병사들에게까지 이렇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펠리시아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는 걸까?

    걔가 그렇게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게 잘 상상은 안 되지만 말이야.

    아무튼 아침 먹고 바로 집을 나섰던 우리였지만, 나설 땐 이미 시간이 오후 2시를 넘어 3시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는…역시 계획대로 움직여야겠지?

    실은 아침에 디아나가 감사 인사겸 성에 다녀오라고 말한 뒤로 계속 생각해둔 게 있기는 했었다.

    예상치 못한 해프닝에 시간이 조금 많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늘 중으로는 어떻게든 다 끝마칠 수 있겠지?

    그렇게 결정한 나는, 마부석에 얼굴을 내밀고 바넷사에게 말을 걸었다.

    "바넷사."

    "으읏…! …뭡니까."

    바넷사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내밀자, 바넷사가 한 번 움찔하고 떨더니 내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대답했다.

    역시나 평소보다 반응이 격렬하다. 얼굴도 여전히 조금 붉고.

    계속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지.

    "나는 조금 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난 여기서 내려주고, 넌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 있어."

    "구원? 어디 가게?"

    "응. 디아나가 감사 인사를 하고 오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이왕 나온 거, 신전이랑 길드에도 감사 인사를 하고 오려고."

    사실 지금 길드에 가는 건 내가 며칠 전에 생각했던 예정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뭐 이정도 변수야 괜찮겠지.

    "사라는 당연히 따라와야 하고…실비아는 어떡할래? 따라올래?"

    "저기, 저, 전…그게…."

    내 질문에 실비아는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나와 같이 다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신이 따라가는 건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실비아. 혹시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괜찮아요. 같이 가죠."

    사라는 실비아가 나와 자신의 데이트를 방해할까봐 걱정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먼저 나서서 그렇게 실비아에게 말해줬다.

    아마 다른 애가 상대였다면 절대 이런 말 안 했겠지.

    역시 사라도 은글슬쩍 실비아한테 약하단 말이야.

    뭐 실비아가 그만큼 깍듯이 대우해주니까 그런 거겠지만.

    "아, 아뇨. 넷.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기, 그뿐만 아니라 수영 연습을…."

    하지만 실비아가 걱정하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과연. 마틸다는 집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자기만 이렇게 빠져나온 걸 미안하게 여기는 건가.

    "…그런 것이라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그때, 바넷사가 갑자기 그렇게 말을 했다.

    "으, 응?"

    "시간이 늦었으니,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선 이동에 마차를 이용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예상외의 말에 내가 당황하고 있자, 바넷사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야 마차를 이용하면 조금 더 빠르긴 하겠지만….

    혹시 실비아가 같이 동행할 수 있도록 생각해서 이렇게 해주는 건가?

    겉으로 티는 안 내고 있지만, 말하는 타이밍이 딱 그런 모양새인데?

    마차로 다 같이 이동하면 혼자 저택으로 돌아가기 조금 어색해지니까, 실비아로서도 스스로에게 변명거리가 생기고 말이다.

    실비아, 너란 애는 대체…어느 틈에 우리 철혈 집사까지 자기편으로 만든 거냐.

    무서운 아이일세.

    "하지만…너, 괜찮냐?"

    아무튼 바넷사의 마음씀씀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지금 바넷사의 상태는 그럴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아니. 그거 있잖아. 그거. 혼자 안 해도 되냐?"

    "……쓸데없는 걱정이십니다."

    시치미를 떼는 바넷사에게 일단 신경 써서 돌려말 해줬지만, 그래도 역시 부끄럽긴 한 건지 바넷사는 얼굴을 조금 더 붉게 물들이고는 평소보다 더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진짜로 괜찮은 거냐? 무리하는 거 아니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얘가 자기주장을 굽힐 애도 아니라서, 나는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마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뭐, 정 힘들면 내가 감사인사 하는 사이에 혼자 화장실이라도 들어가서 해결하고 오겠지.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차를 타고 우선 길드에 도착하게 됐다.

    길드는 이 도시의 한 가운데에 있는 만큼, 신전보다 거리가 비교적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어머. 구원씨! 어서 오세요. 설마 벌써 다시 던전에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안 돼요! 좀 더 쉬시지 않으면. 안내원으로서의 조언이에요. 던전 탐험은 좀 더 쉬고 나서 하세요."

    그리고 내가 안내 데스크에 가자마자, 내 얼굴을 본 레이첼 누님이 말 안 듣는 동생을 타이르는 누님처럼 그렇게 말해왔다.

    그런 와중에도 제대로 인사부터 했다는 점이, 과연 프로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올라오는 건 오히려 빨리 쓰고 잔 다음 일어나서 올리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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