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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
"역시나…예상대로 일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아직 식사조차 하지 않은 이른 아침.
나는 손을 턱에 가져다대고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잠 잘 자 놓고 아침부터 뭐하는 짓이냐고?
아니. 못 잤어. 어제는 밤새 사라랑…아무튼. 내가 지금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오자마자, 실비아가 창백한 표정으로 오들거리면서 내게 다가와서는 이런 말을 외쳤기 때문이다.
"구, 구원님! 큰일! 큰일 났습니다!"
"오냐. 좋은 아침. 그래서, 아침부터 무슨 일인데?"
"앗! 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 그게…펠리시아가! 펠리시아의 성욕이…!"
"뭐야, 실비아, 겨우 그런 걸로 호들갑 떨고 있었던 거였어?"
어제 키스한 이후로 내 반경 10미터 이내에 접근도 못 하던 애가 갑자기 이렇게 다가오기에 대체 얼마나 큰일인가 싶었더니 말이야.
"그, 그게…! 실은 대략 일주일 전부터…!"
"……일주일 전?"
즉, 펠리시아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한계에 달해있었고, 아직까지 성욕 해소를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경황 중에 그만 알리는 게 늦었습니다!"
과연. 일주일전이면 내가 조난당해있던 시점이다.
즉, 기사단 요청이니 뭐니 하면서 펠리시아와 접촉했을 때, 펠리시아가 슬슬 참기 힘들다는 얘기라도 했다는 건다.
그리고 실비아는 그때 들었던 얘기를 지금에서야 생각해내고 저렇게 창백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거고.
나로선 전달이 늦어진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내가 막 돌아왔을 때는 그야말로 다들 기뻐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이후에는 사라가 유아퇴행하면서 소동을 일으켰고, 그 다음엔 또 실비아 본인이 행복사할 만한 사건을 겪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실비아 본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성에서 지금도 성욕을 해소하지 못 한 채 고통에 떨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면, 저렇게 불안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나.
펠리시아, 넌 분에 넘치게 좋은 친구를 뒀구나.
아무튼 그런 사실을 전해 들어서, 나도 살짝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는 얘기다.
"…뭐, 벌써 일주일 참은 거니까, 하루 정도는 더 참아도 문제없겠지."
심각한 표정으로 잠깐 고민하는 척을 했던 나는, 곧장 턱에서 손을 떼고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건 페이크다.
실비아가 너무 불안해하니까 나도 조금 진지한 척을 해봤을 뿐이야.
"네, 네에에에엣?!"
내 결론에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해서 외치는 실비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나는 안심하라고 말하듯 그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줬다.
뭐, 오히려 역효과만 나서 몸의 떨림만 더 거세졌을 뿐이지만.
"…구원. 아무리 그래도 그런…."
그리고 나와 같이 식당에 들어온 사라도 내 대답에는 조금 기가 막혔는지, 뭐라 형용하기 힘든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펠리시아와의 관계를 허락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펠리시아를 싫어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는 사라가 그렇게 중얼거릴 정도로 내 대답은 황당무계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사라 얘, 바넷사가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바넷사가 부르러 오고 나서도 방문을 나설 때까지는 나한테 찰싹 달라붙어있었던 주제에, 방문을 나서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보이게 되자마자 다시 평소의 쿨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나랑 팔짱도 안 끼고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식당까지 왔다.
평소엔 이렇게까지 거리를 벌리진 않는데, 남들 눈이 없는 곳에서 너무 달라붙어있었다는 자각이 있는 건지 나와 가까이 달라붙어 있는 게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아니. 나도 그냥 대충 말하는 게 아니야. 생각해봐. 물론 내가 가서 처리해주는 게 제일이겠지만, 하루정도 늦는다고 펠리시아가 어떻게 되진 않을 거 아니야? 정 급하면 임시방편으로 다른 남자라도 불러서 급한 불은 끄겠지. 이젠 나랑 했던 내기도 끝난 상황이니까."
그래. 나와 정기적으로 관계를 맺는 걸 결정한 다음에도, 펠리시아한테는 다른 남자와 하지 말라든가 하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해서다.
체질상 성욕이 계속 생겨나는 애를, 그것도 내 여자도 아닌 애를 나하고만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 내가 무조건 제때 제때 타이밍 맞춰서 갈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말이야.
아무튼 그런 고로, 벌써 참기 힘들다고 하고도 일주일이나 지난 거다.
펠리시아는 지금쯤 다른 남자와 성욕을 조금이나마 풀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하루 정도는 늦어도 아무 문제없어.
내가 그렇게 말해도, 실비아는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볼 뿐이었다.
아니. 그냥 내가 계속 쓰다듬고 있으니까 슬슬 참기 힘들어져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뿐인가?
"하지만 자네. 애초에 왜 그렇게까지 해서 성에 가는 걸 하루 늦추려는 겐가? 뭔가 이유라도 있는 겐가?"
게다가 실비아뿐만 아니라, 디아나까지도 내 결론에 뭔가 납득이 안 된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물론 나로선 그런 질문을 던지는 디아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때문이잖아."
"음? 이 몸말인가?"
내 대답을 듣고도, 디아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여간 평소엔 그렇게 똑똑한 주제에 왜 이런 간단한 걸 추리해내지 못하는 걸까.
"그래.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디아나 너보다 펠리시아를 먼저 안을 수는 없잖아."
"아, 아아…그, 그런 것이었구먼…."
처음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디아나였지만, 이내 내 말의 뜻을 점점 이해한 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고 부끄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역시 나밖에 없지?"
"흐, 흠. 이 몸의 낭군님으로서 그 정도 마음가짐은 당연한 것일세."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디아나는 우쭐해하지 말라는 듯 조금 새초롬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하여간 부끄러워하기는. 긴 귀가 끝까지 완전히 새빨개졌으면서.
"으햣!"
내가 그 긴 귀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자, 디아나는 살짝 이상한 소리를 흘리면서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을 떼어놓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예상외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 몸이라면 괜찮네. 그런 일이라면 오늘은 성에 다녀오게나."
"응?"
"괜찮네. 이 몸과는 이미…. 그렇지 않나?"
디아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아꼈다.
아무래도 전에 화장실에서 내가 덮쳤을 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야. 하지만 그건…."
둘만의 시간이 아니었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디아나는 황급히 내게 다가와 두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까지 알려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괘, 괜찮네! 애초에 이 몸들이 왜 자네와 공주의 관계를 허락했는지 생각해보게. 도움을 주라고 허락했는데,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모른 채 하고 나중에 가서 관계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그거야말로 이 몸들의 뜻을 반하는 행위일세."
"그건…확실히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게다가 공주는 멀리서 기사단까지 파견하려고 했었던 걸세. 물론 기사단이 오기 전에 상황이 마무리 지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노력에 대해서는 자네가 공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하러갈 필요가 있을 걸세."
내가 더 뭐라고 하기도 전에, 디아나는 오늘 내가 성에 가는 건 확정이라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정말 괜찮아? 사실은 싫은데 무리하는 거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나한텐 디아나가 최우선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듣고도 곧이곧대로 납득할 수 없었다.
디아나 얘는 평소에는 꽤나 제멋대로고 떼를 쓴다는 인상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때는 연령에 걸맞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내 대외적인 시선이랄까, 그런 것 때문에 한 발 물러서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면….
"하여간 자네는. 벌써 괜찮다고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는가. 정 미안하면 오늘 밤에는…."
뒷말은 목소리가 너무 작았기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대충 디아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짐작이 됐다.
그래. 져주는 것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게.
그런 고로, 나는 식사를 마치고 곧장 성으로 갈 준비를 했다.
사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잠수 상태에서 수영하는 법을 가르칠 생각이었지만, 그건 또 나중으로 미뤄야겠네.
물속에서 직접 흔들리는 가슴을 볼 수 없다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지.
괜찮아. 어차피 기회는 있다.
나만 빠지는 거면 모를까, 수영 선생 전원이 빠지는 거니까.
오늘 날 빼놓고 진도가 나가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 성에 가는 멤버는 공교롭게도 수영 강의의 선생역할 셋이 전부 포함되어 있었다.
나랑 100미터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사라와,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 마차를 몰고 가야할 바넷사로 말이다.
그리고 덤으로 수영을 배우는 입장인 실비아까지.
다른 애들도 다 같이 가는 건 어떻겠냐고 말해봤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거절당했다.
디아나는 자신까지 따라갔다가는 공주에게 괜히 압박을 주는 것처럼 비칠 우려가 있다면서 거절했고, 레이아와 마틸다는 자주적으로 수영 연습을 한다는 모양이다.
실은 실비아도 남아서 수영 연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던 모양이지만, 내게 펠리시아의 상태를 전달하는 것이 늦었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직접 사과를 하기 위해서 따라오게 됐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장 성으로 출발한 우리였지만, 뭔가 오늘은 기분 탓인지 성문 근처부터 소란스런 느낌이 들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평소에는 질서 정연하게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통제가 안 되어있다고 해야 할까? 다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풀풀 풍겼다.
"…대체 무슨 일일까? 실비아, 뭐 아는 거 없어요?"
"…으읏…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아…."
그렇게 느낀 게 나 뿐만은 아닌지, 사라 역시도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실비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작 실비아는 나와 지근거리에 앉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서, 성자님이다아! 성자님이 오셨다아! 어서 가주십시오! 어서!"
그리고 우리가 탄 마차가 문지기 앞까지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문지기가 한줄기 희망을 발견했다는 듯 큰 소리로 그렇게 외치기 시작했다.
뭐야 대체?
왜 다들 이렇게 소란인 건지, 그 이유를 나는 성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대충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으읏…! 이, 이건…!"
"히읏…!"
"읏……!"
밖에 있던 병사와 마찬가지로 묘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메이드에게 안내받아 펠리시아에게 향하던 도중, 갑자기 사라와 실비아, 그리고 바넷사가 동시에 몸을 움찔 거리면서 날 쳐다봤기 때문이다.
"뭐, 뭔데? 왜 그래?"
"…구원. 혹시 지금 스킬 같은 거 쓰지 않았어?"
내가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있자, 사라가 대표로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아니. 전혀."
"…거짓말 아니지?"
내 대답에도, 사라는 뭔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 표정은 뭔가 화난 것 같은…아니. 뭔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표정과 방금 전 질문을 종합해보면…내 스킬에 당한 느낌이라도 들었다는 건가?
그것도 셋 다 동시에?
"당연하잖아. 내가 뭣 하러 그런 거짓말을 해. 애초에 여기서 뭣 하러 스킬을 쓰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스스로의 몸을 점검해봤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흥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엔 그냥 지금부터 펠리시아와 하게 될 거란 생각에 그런 느낌이 드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셋의 반응과 종합해보니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코끝을 통해 달콤한 냄새가 전해져 오는 것 같기도 하고….
"고, 공주님의 방은 저쪽으로 가셔서 오른쪽으로 꺽고, 거기서 복도를 따라가시면 제일 안쪽에 있는 방입니다. 죄송합니다. 전 이 이상은…."
그리고 앞장서서 안내를 하던 메이드가 몸을 떨면서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나는 대충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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