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503화 (48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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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

"엇차. 미안."

"…읏! …아닙니다."

욕실이 넓다고는 하지만, 이동하다보면 종종 부딪힐 일도 있었다.

특히 난 지금 마틸다의 손을 잡아주고, 뒤로 걷고 있으니까 말이다.

수영 경기장처럼 코스별로 선이 그어져있거나 한 것도 아니다보니, 뒤로 이동하다보면 조금씩 방향이 틀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사라나 바넷사도 나처럼 발장구 연습부터 시키는 중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결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말이지.

바넷사도 그걸 알기 때문에, 나와 접촉이 있을 때마다 살짝 노려보기만 할 뿐 별 말은 없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거 바넷사를 놀리는 재미도 꽤나 쏠쏠한데?

상대방도 고의가 아니란 걸 아니까 항의를 할 수도 없는데다가, 수영복이 얇다보니 이렇게 신체 접촉이 있으면 마치 피부끼리 직접 닿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금 내 엉덩이에 닿은 바넷사의 엉덩이 감촉도, 마치 그 탄력과 부드러움을 직접 전해주듯이…크흠.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보니, 안 그래도 스킨십이 약점이란 의혹이 있는 바넷사로서는 상당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나랑 닿을 때마다 얼굴색이 살짝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저 철혈 집사의 얼굴색이 변하다니. 물 온도가 따듯해서 피부가 상기된 것만이 이유는 절대 아닐 거다.

"에? 구, 구워…히야앗! 사, 살려…!"

덤으로 내가 바넷사와 부딪힐 때마다, 바넷사와 손을 잡고 발장구를 치던 실비아도 나와 가까워졌다는 걸 인식하고 스플래시 데미지를 받았다.

"실비아님. 괜찮습니다. 진정하고 서시면 제대로 바닥에 발이 닿습니다."

…실비아야. 허리까지 안 오는 높이에 뭐하는 거냐.

아무튼 그렇게 바넷사를 놀려준다는 의외의 수확도 얻으면서, 나는 수영 연습을 만끽했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몸에 착 붙는 옷을 입고 물에 젖어있는 모습.

게다가 첨벙거리는 소리로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

최고다. 좀 더 노출이 있었다면 더더욱 완벽했을 텐데.

"좋아. 발장구는 그 정도면 대충 그럴듯해진 것 같네. 그럼 이제 팔도 같이 움직여볼까? 내가…."

"네에…. 구원씨…."

"…몸을 잡아줄 테니까 가라앉을 걱정은 하지 말고."

적어도 사람 말은 다 듣고 대답해주면 안되겠냐?

아니. 제대로 따라주는 건 기쁘지만 말이야.

마틸다는 여전히 핑크빛 모드와 통상 모드를 끊임없이 전환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우선 한 번 시범을 보여주고 나서, 나는 마틸다의 옆에 가서 몸을 붙잡아 준 상태로 팔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마틸다의 몸을 감싼 순간, 나는 전율했다.

이 세계의 기술력이 어떤 면에는 원래 세계보다 더 좋을지도 몰라.

이런 감촉이라니…진짜 맨몸을 만지는 것 같잖아.

아니. 가슴의 무브먼트가 심상치 않았을 때부터 살짝 기대는 했지만, 바넷사나 사라랑 살짝살짝 부딪히면서 실감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손으로 만져보니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아아…구원씨이…."

마틸다 역시도 맨몸을 만지는 기분이 들었는지, 황홀한 표정으로 내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야. 그만 둬, 물에 떠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얼굴을 비비면 절묘하게 높이가…!

안 그래도 손에 닿는 감촉 때문에 번뇌가 휘몰아치는데, 너까지 그러지 마라!

"으, 응. 자, 마틸다. 달라붙는 건 나중에 하고. 우선 팔다리부터 움직여보자. 내가 하는 말 들어줄 수 있지?"

"네에…그럼요…다름 아닌 구원씨의 부탁인 걸요…."

어차피 잠깐 정신을 차리게 해도, 내가 붙으면 다시 이 상태가 되어버릴 거다.

그렇다면 아예 이렇게 나한테 홀딱 반한 상태를 이용해서 연습에 매진하게 하자.

그런 의도로 마틸다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거기! 연습하다 말고 노닥거리지 마!"

바로 사라의 질투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어쩔 수 없잖아. 이러지 않으면 연습이 안 되니까.

그게 싫으면 레이아랑 바꿔주라고.

나도 레이아의 흉부 무브먼트를 더 가까운 곳에서…아니. 레이아의 연습도 도와주고 싶다고.

하지만 마틸다가 이렇게 솔직한 상태라면…내 질문에도 전부 곧이곧대로 대답해주는 게 아닐까?

가령 요즘 마틸다는 혼자 고민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일이 많은데, 그 일에 관해서라든가.

아니. 하지만 아무리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하는 질문이라도, 이 상태를 이용해서 대답을 들어내는 건 비겁한 짓인가?

그렇지만…아니. 그런 질문을 했다간 괜히 연습에 방해가 될 수도 있잖아.

게다가 역시 이 상태를 이용해 질문하는 건 비겁한 짓인 것 같아.

질문은 언제든 할 수 있는 거니, 나중에 마틸다의 저주를 풀어줄 때라도 물어보자.

아무튼 그렇게 크고 작은 트러블들이 있었지만, 저녁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레이아와 실비아, 마틸다 셋 다 몸을 잡아주지 않아도 물에 떠서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4계층에서는 몬스터가 언제 나올지 몰라 급한 대로 대충 가르쳤지만, 역시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1 대 1로 가르쳐주니 성과도 빨리 나오는 모양이었다.

뭐, 속도도 빠르지 않고, 가끔 가라앉거나 하는 문제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우리 목적은 사방이 물속인 4계층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인 만큼, 저게 숙달되면 이번엔 잠수 상태로 몸을 움직이는 연습도 해야 할 거고.

그래도 우선은 마틸다와 붙어있을 필요가 없어진 나는, 디아나가 놀고 있는 탕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디아나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턱을 짚고 뭔가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뭐하냐?"

"으햣! 노, 놀라지 않았는가!"

"대놓고 왔는데 눈치 못 챈 네가 문제지. 그래서 뭐하고 있었는데?"

"으, 음. 아무것도 아닐세. 잠깐 마나의 배열 구조를 말일세. 그보다 자네는 어쩐 일인가? 마틸다양은 어떻게 하고?"

디아나는 누가 봐도 말을 돌리려 한다는 걸 알 수 있는 태도로 그렇게 대답했다.

마나의 배열 구조라니…너 진짜 여기 왜 있는 거냐? 아니. 있어도 상관없지만 말이야.

"이제부턴 혼자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마틸다의 몸도 충분히 만끽했고 말이지."

그러자 뒤에서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라 역시도 레이아에게 혼자 연습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 모양이었다.

"마, 만끽 안 했거든?"

"그래? 그래도 이 수영복 대단하지 않아? 내가 살던 곳은 시골이었으니까, 이런 거 없었는데. 진짜 입은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착용감이 좋네. 게다가 겉으로 만져봐도 마치 맨살을 만지는 것 같아."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와 진짜 대단하다니까. 마틸다 몸에 손이 닿는데 무슨 맨살이 그냥 손에 착착 감기는…사라씨, 유도신문은 치사한 거 아닙니까?"

중간부터 사라의 의도를 파악한 나였지만, 이미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만끽 안 했다고?"

"그, 그렇지, 디아나! 너도 수영 연습 안 할래? 이왕 같이 온 거 너도…."

"안 할 걸세. 말 돌리지 말게. 대체 마틸다양의 살결이 어떻다는 겐가. 이 몸도 몹시 흥미가 있구먼."

"바넷사! 너도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좀 와서 쉬지!"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넌 계속 일만 하니까 쉴 수 있을 때 좀 쉬어야 된다고. 자, 디아나!"

"하여간 자네는…이 자 말이 맞네. 어차피 자주 연습을 시키는 거라면 바넷사 자네도 이쪽으로 와서 조금 쉬게."

"……네."

휴우. 내 필사적인 노력이 상당히 안쓰러워 보였던 건지, 아니면 그래도 꿋꿋하게 마틸다를 가르쳤던 것에서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 건지, 결국 사라와 디아나는 더 이상 날 추궁하지는 않았다.

디아나의 명령을 들은 바넷사는 우리가 몸을 담그고 있는 탕의 근처까지 왔지만, 안에는 들어오지 않고 가만히 옆에 섰다.

"뭐해? 들어오지 않고."

"……."

내 말에 무표정으로 아무 말도 안 하던 바넷사는,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자신도 탕 안으로 들어왔다.

이 탕은 아까 저기 셋이 수영 연습을 하는 곳과는 다르게, 상당히 크기가 작았다.

물론 넷이 들어온다고 해서 서로 몸이 밀착되거나 할 정도로 작진 않았지만, 마주보고 앉아있으면 서로의 발끝이 살짝 닿을 정도는 됐다.

아마 바넷사도 그걸 신경 써서 처음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던 거겠지.

불의의 사고라고는 하지만 아까 나와 계속 몸이 닿았던 것도 있어서, 상당히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라. 아무리 나라도 사라랑 디아나 옆에서 너한테 스킨십을 시도할 정도로 간이 크진 않다.

물론 스킨십이라고 해봤자 친구끼리 하는 정도의 가벼운 수준으로 끝낼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입고 있는 옷이 이렇다보니 가벼운 스킨십도 농도가 진한 것처럼 느껴질 우려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디아나."

"음? 뭔가?"

"나 성자 스킬 레벨 엄청 오른 거 알아? 진짜 엄청나. 한 방이면…아야!"

"이 바보가!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바넷사도 있는데!"

"아냐! 그런 게 아니라 디아나는 내 스킬을 연구하고 있다고! 그렇지?"

뭐, 요즘은 직접 몸으로 경험해본다느니 하는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가 동의를 구하자, 디아나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음? 뭐, 뭐어…그렇구먼."

"…너 설마 나랑 스킬 연습 어쩌구한거 다 핑계였냐? 사실 처음부터 내 몸을 목적으로 접근한…."

"아, 아닐세!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겐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마치 충격적인 사실을 눈치 챈 듯 가련한 소녀가 빙의되어 중얼거리자, 디아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고함을 질렀다.

"당황하는 게 더 수상해! 역시 디아나는…으윽!"

"뭐, 뭔가?!"

"아, 아니. 장난 좀 쳐 봤어."

그렇게 말하고, 나는 정면에 앉아있는 바넷사를 힐끔 쳐다봤다.

…이 녀석. 지금 내 발을 밟았어.

유백색 물 때문에 사라랑 디아나한텐 안 보이는 걸 이용해서.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원래는 사라나 디아나 앞에서 괜히 접촉하는 건 자제하려고 했지만….

"웃…!"

나는 바넷사에게 밟혔던 발을 움직여서, 바넷사의 발을 건드렸다.

바넷사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발을 빼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마치 발로 깍지를 끼듯, 나는 발가락을 바넷사의 발가락 사이에 얽히게 만들었다.

그 상태에서 발을 움직여 마치 발가락 사이사이를 어루만지자, 바넷사는 무표정 상태에서 눈썹만 움찔움찔하고 떨었다.

후하핫. 감히 성자한테 신체 접촉을 시도하다니!

그게 바로 네 패인이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면 이상하게 말을 끌었던 이유가 뭔데?"

물속에선 발끝으로 바넷사의 발을 가지고 놀면서,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디아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말일세. 요즘은 거대 마석의 분석 결과가 상당히 흥미로운지라 자네 스킬은…."

아아. 과연. 그냥 내가 이렇게 협조적으로 행동해주는데 소홀히 했던 게 조금 미안했던 것뿐이란 건가.

"애초에 구원의 스킬은 여신님이 직접 주신 능력이잖아요? 분석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기는 한 걸까요?"

"그렇게 따지면 거대 마석도 마찬가지일세. 거대 마석 역시 여신님의 손이 들어간 건 거의 확실해 보이니 말일세. 스킬도 결국은 마나의 흐름. 오리지널보단 당연히 위력이 떨어지겠지만 제대로 분석만 하면 물론 언젠간 사용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네."

"그건 디아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사용이 가능해진다는 거죠? 그럼 저도 가능해질까요?"

처음에는 별로 흥미 없다는 태도의 사라였지만, 디아나의 대답을 듣더니 갑자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던져왔다.

"음? 그야 당연히 그렇다네. 이 몸은 모든 마법을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으니 말일세. 하지만 사라양은 왜 굳이…아. 자, 자네! 다음부턴 스킬 연구도 다시 제대로 재개해 봐야겠네! 스킬이 강해졌다고 했나? 그렇다면…."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데."

희망으로 눈을 반짝이는 디아나에게, 나는 딱잘라 말해줬다.

"무, 무엇이 말인가?"

"날 한 번 이겨보려는 거 아냐? 그런데 너희 요즘 내가 스킬 안 쓰고 상대해주고 있는 건 알고 있지? 만약 너희가 그런 짓하면 나도 스킬 쓴다."

"…역시 됐네. 지금은 거대 마석이 더 중요하니."

야. 너무 티나게 실망하는 거 아니냐?

하여간 요게 요즘 어떻게든 날 이겨보겠다고.

그렇게 날 이기고 싶을까?

저렇게까지 필사적인 걸 보니, 한 번 쯤은 져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첨벙!

"우왓! 바, 바넷사! 뭔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 갑자기 바넷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디아나는, 깜짝 놀라서 내게 달라붙어왔다.

참고로 사라는 이런 것으론 전혀 놀라지 않는 다는 듯 쿨한 표정을 짓고 내 팔을 꽉 끌어안았다.

"전 다시 가서 세 분의 모습을 더 보고 있겠습니다."

아무튼 내 발가락 공격을 견디지 못한 바넷사는, 결국 그렇게 꼬리를 말고 도망을 갔다.

물론 실제로 꼬리는 없…아니. 있었지. 아무튼 지금은 안 보이지만.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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