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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02화 (48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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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폭풍

    "얘들아. 난 말이지. 세상에서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딱 27명 있어."

    "무지하게 많구먼."

    "시끄러워! 아무튼 말이지, 그 27명 중 하나가 바로…래쉬가드를 유행시킨 놈이야! 그 녀석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용서할 수 없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들에게서 여름의 즐거움을 하나 뺏어간,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녀석! 그런데…그런데 너희는…!"

    "…저거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걸까요?"

    "아하하…그, 글쎄요…?"

    "한 마디로 말해서 왜 그렇게 몸을 꽁꽁 싸매고 있냐는 말이야!"

    아무리 말해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진에게,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수영복이면! 노출이! 있어야! 정상이잖아아아!"

    그래. 놀랍게도 여성진의 차림은…원래 있던 세계에서 일명 레쉬가드라고 불리던, 그 증오스러운 수영복 차림이었던 거다.

    분노를 폭발시키면서도, 나는 뺨을 타고 뜨거운 남자의 눈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자네는 이 몸들의 노출을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겐가?"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수영 연습을 도와주겠다고 달라붙는다 싶었더니…."

    그리고 여성진의 눈초리가 험악해지고 나서야, 나는 퍼득 정신이 들었다.

    아차! 분노에 몸을 맡긴 나머지 쓸데없는 말까지 해버리고 말았잖아!

    "그, 그럴 리가 있겠어?! 난 어디까지나 겸사겸사 눈 호강도 했으면…."

    "실비아하고 마틸다씨는 이렇게 죄책감을 가지고 노력하는데 그런 마음가짐으로 오다니. 부끄럽단 생각도 안 들어?!"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애초에 말이지. 만약에,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마아안약에 내가 그런 마음가짐으로 왔다고 쳐. 그래도 그게 오히려 실비아와 마틸다에게 도움이 되는 거 아냐? 조난당한 당사자인 내가 그 일에 대해서 이렇게 눈곱만큼도 신경을 안 쓰고 있으니까, 너희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뜻인 거잖아.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행위라고. 안 그래?!"

    "하, 하여간 말이나 못하면…."

    내가 너무 당당하게 나오자 할 말을 잃었는지, 사라는 반격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후하핫. 어떠냐. 이 완벽한 논리.

    물에 빠져도 입만 살아서 둥둥 떠오를 놈이란 게 바로 날 두고 하는 말이다!

    …말싸움을 이겨도 별로 성취감은 얻지 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결국 여성진이 노출이 없는 수영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허망하다. 난 대체 무엇을 위해….

    "구원씨, 이 세계에서 수영을 위한 옷은 이런 모습이 기본이에요. 구원씨가 있던 세계는 달랐나요?"

    갑자기 시무룩해지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레이아가 위로하듯이 그렇게 말해줬다.

    대놓고 노출을 원했는데도 저렇게 위로해주시다니. 천사님은 진짜로 천사야….

    하지만 잠깐만. 지금 천사님이 뭐라고 했지?

    레쉬 가드가…수영복의 기본이라고?! 그런 지옥 같은 곳이 실재했다는 말이야?!

    믿을 수 없어! 지금까지 이 세계는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리다니!

    천국과 지옥은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건가!

    그래.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찬양하고 존경해마지 않았던 여신조차, 실은 마신일 가능성이…!

    …뭐, 농담은 이쯤하기로 하고.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세계에 개혁을 가져올 필요성을 느꼈다.

    이런 건 성교육 영상 보급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난 성자보다는 계몽가라는 직업이 더 어울리는 모양이다.

    "잘 들어. 수영이란 말이지, 원래는 아무것도 안 걸치고 하는 게…."

    "이게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사라가 또 다시 울컥한 표정으로 내게 덤벼들려했지만, 난 엄숙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쫙 펼쳐서 사라를 제지했다.

    지금의 난 선지자다.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쳐주는 계몽가다.

    내 엄숙한 표정에 사라는 또 다시 멈칫하고 걸음을 멈췄다.

    "어허! 오빠 말끝까지 들어! 아무것도 안 걸치고 하는 게 제일 좋지만, 그래선 부끄럽지. 그래서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속옷 모양으로 가슴과 아래만 아슬아슬하게 가리고…아따가!"

    "끝까지 들어준 내가 바보였지."

    이 세계에 올바른 수영복의 기분을 전파하려는 내 계획은, 아쉽게도 가녀린 여인의 등짝 스매시 한 방에 의해 제대로 시작조차 못 해보고 그 끝을 고했다.

    "하아…뭐, 좋아. 레이아. 가자."

    마음 같아서는 얘들이 전부 비키니를 입을 때까지 입을 놀리고 싶었지만, 언제까지 이 일로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일이었다.

    비키니는 언젠가 자주제작해서라도 꼭 입히기로 굳게 다짐하고, 나는 일단 당초 계획대로 수영 연습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 아무리 꽁꽁 싸매고 있어도 얇은 건 사실이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건 변함없다고.

    그러니까 이것도 나름 눈 호강이라고 생각하자.

    "네? 저, 저요?"

    임시 수영교실의 학생은 레이아, 마틸다, 실비아다.

    디아나도 일단 따라 들어온 상황이긴 하지만, 쟨 내가 봤을 때 분명 수영 연습 같은 거 안 할 거고. 기껏해야 옆에서 구경이나 하면서 놀겠지.

    그런 고로 학생 셋이라면 당연히 내 담당은 레이아다.

    그렇게 생각해서 레이아를 이끌고 가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레이아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뭘 아무렇지도 않게 레이아를 끌고 가려고 하는 거야."

    "자네 설마 이런 때마저! 그렇게 가슴이 좋은가!"

    그리고 사라와 디아나도 내가 자연스럽게 레이아를 데려가려 하는 걸 보고 뭔가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아냐! 진정해. 그야 물론 가슴은 좋지만 난 모두의 가슴을 평등하게 사랑해! 레이아의 거유도, 사라의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적절한 크기의 가슴도, 디아나의 조금 공간이 남지만 그래도 확실히 여자다운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귀여운…."

    "이 바보가 큰 소리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공간이 남는다는 게 뭔가?! 남는다니! 이, 이 몸도…이 몸도 성장만 하면…!"

    …이상하다. 난 분명 칭찬해준 건데 왜 반응이 이런 거지.

    심지어 가슴 크기에 제일 신경 쓰고 있는 디아나는 일부러 신경 써서 더 길게 칭찬해줬는데.

    게다가 주변 시선도 점점 더 싸늘해지고.

    특히 바넷사 쟤는 무표정이 한층 더 무서워졌고.

    "크흠. 아, 아무튼! 레이아도 같이 수영 배우려는 거 아니었어?"

    "네. 그건 맞지만요…."

    "그럼 당연히 레이아 담당은 나잖아."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데. 레이아는 오전부터 나한테 배우고 있었단 말이야. 갑자기 껴들어서 남의 학생 가로채가려고 하지 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사라 너, 설마 실비아를 죽일 셈이야?!"

    "가,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렇잖아! 오전 담당을 계속 이어나가는 거면, 즉 오전에 빠졌던 나와 실비아가 서로 짝을 이루라는 거잖아! 그게 실비아를 죽일 셈인 게 아니면 대체 뭐야! 자!"

    "흐햐아아앗!"

    내가 실비아를 향해 성큼 다가가자, 멍하니 내 얼굴을 보고 있던 실비아가 화들짝 놀라서는 벽 쪽으로 도망갔다.

    "…그 생각을 못 했네.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어."

    "…전보다 증상이 더 악화된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사라와 디아나는 바로 납득해줬다.

    "이제 알겠냐. 그런 고로 레이아는 내가…."

    "저기…구원씨. 죄송해요."

    그런 둘을 보고 내가 당당하게 레이아 담당을 선언하려 했을 때, 갑자기 예상치 못한 반대…아니. 거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처, 천사님?"

    내, 내가 지금 잘못들은 거지? 지금 천사님이…천사님이 나랑 같이하는 걸 거절한 거야?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천사님마저 이러시면 난 대체 무엇을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야…!

    "저기, 저 전부터 사라씨의 수영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수영을 할 줄 아는데도 수영 연습에 참가하고 있는 거고요. 물론 구원씨도 잘 가르쳐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이왕이면 같은 여성분께 배우는 게 자세 교정에는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레이아는 황급히 내게 다가와서 다독여주듯 등을 문지르며 그렇게 친절한 목소리로 말해줬다.

    그, 그렇지? 그럼. 그렇고말고. 천사님이 날 괜히 거부할 리가 없지.

    하지만 자세 교정인가.

    그야 사라는 생긴 것 답게 모델처럼 쭉쭉 뻗은 팔다리를 시원시원하게 움직여서 멋지게 수영하기는 하지만, 난 개헤엄 치는 천사님도 외모랑 갭이 느껴지고 귀여워서 좋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하지만 천사님의 생각이 저렇다면, 내가 막을 수도 없는 일이지.

    "그래도 실비아는 나랑 연습하면 진짜로 죽을 텐데. 보면 알겠지만 쟤 오늘은 평소보다 내성이 더 떨어진 상황이라고."

    "……당신 말이죠. 아까부터 듣자듣자 하니. 왜 저는 후보로 거론조차 안 하는 거죠?"

    내 질문에, 아까부터 조용히 보고만 있던 마틸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한 발자국 나서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야 넌…."

    나랑 붙어있으면 핑크빛 모드가 될 거 아니야.

    1 대 1로 수영 연습을 도와주다보면, 자연스레 신체 접촉도 엄청 많이 일어날걸?

    "전 뭔가요?! 혹시 저주 말하는 건가요?! 상관없잖아요! 당신에게 찰싹 붙어서 오히려 더 말을 잘 들을 테니까요!"

    내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마틸다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야 확실히 그 상태가 되면 말은 더 잘 듣겠지만, 넌 정말 그걸로 좋은 거냐? 일단 저주 상태라고.

    "그럼 제가 실비아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실비아님. 이쪽으로."

    마틸다의 말을 듣고 결론이 났다는 듯이, 바넷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실비아를 데리고 갔다.

    그래. 뭐, 마틸다가 상관없다면야 나도 상관없는데 말이야.

    "알았어. 가자. 아, 참. 디아나. 넌 안 할 거지?"

    "음. 당연할 것을 묻는구먼."

    디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교적 작은 탕 안으로 들어가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물의 정령을 불러내서 헤엄치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팔다리의 움직임과 몸이 움직이는 타이밍이 완전히 엇박자였다.

    쟤는 진짜 뭐 하러 온 걸까.

    아무튼 혼자 노는 디아나는 내버려두고, 우리는 가장 큰 탕 안으로 들어갔다.

    웬만한 목욕탕보다도 훨씬 큰 크기를 자랑하는 이 욕실은, 탕 역시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제일 큰 탕은 넓이도 작은 수영장 정도에, 물의 높이도 가득 채우면 내 허리정도까지는 올 수준이 됐다.

    보통은 온탕이었지만, 지금은 물 온도를 살짝 낮췄는지 미지근함과 따듯함의 중간 정도의 물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장시간 연습을 위해 조절한 거겠지.

    "그럼 우선은…낮에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어?"

    "물에 뜨는 것까진 성공했어요."

    오, 그 부분은 끝난 건가.

    4계층은 그 연습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가르칠 필요가 없지만, 여기서 연습하려면 물에 뜨는 것도 배울 필요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그렇다면 잘 됐네. 그럼 다음은 발장구 연습을 해볼까. 자, 일단 내 손을 잡고 물에 떠봐. 가라앉을 것 같아도 무서워하지 말고. 내가 잡아주고 있을 테니까."

    "네. 구원씨…."

    아니. 이건 상냥한 말이 아니라, 그냥 교육을 위해 안심시키려고 한 말인데. 그걸 또 그 상태가 되어버리냐.

    그야 본인이 그래도 상관없다니까 나도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말이야.

    살짝 어처구니없긴 했지만, 그래도 마틸다의 말대로 이 상태가 된 마틸다는 내 말에 평소보다 훨씬 더 순종적이었다.

    확실히 가르치기는 쉬울지도.

    마틸다가 내 두 손을 마주잡고 물위로 눕자, 그 등 옆으로 살짝 가슴이 엿보였다.

    레이아가 너무 압도적이라 잘 눈에 안 들어와서 그렇지, 역시 얘도 상당히 크다니까.

    게다가 이렇게 얇은 수영복을 입고 있으니, 물결이 칠 때마다 가슴도 덩달아 흔들흔들 흔들리는 게 상당히 눈에 잘 들어왔다.

    생각해보니까, 이 수영복 바디 페인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얇지 않아?

    레쉬가드라는 거, 생각보다 좋을지도…핫! 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위험했어. 하마터면 사악한 술수에 당할 뻔했어.

    수영복은 비키니. 아니, 원피스 형이라도 여기저기 구멍뚫린 형태가 바람직하지.

    온몸을 가리고 있는 레쉬가드따윈 사도에 불과해.

    "그 상태로 다리를 쭉 펴고, 그 상태로 무릎을 굽히지 않은 채로 다리를 번갈아가면서…."

    으아아…하지만 철저하게 가린 상체와 대비되어 하반신의 노출은 꽤나 있으니, 이건 이거대로…. 저기 물에 뜬 엉덩이가 흔들리는 걸 보라고.

    안 돼! 구원아! 정신 차려!

    그렇게, 나는 사악한 레쉬가드가 내 뇌를 지배하려는 것을 겨우겨우 뿌리쳐가며 수영 연습을 도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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