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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501화 (48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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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폭풍

    "그래. 뭐, 나도 오늘 당장 소원을 빌 거란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내성을 기르는 연습은 하는 게 좋을 거야. 너도 평생 소원을 간직하기만 한 채로 끝내고 싶진 않지?"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실비아에게 다가가자, 실비아도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뭔가를 억누르듯 몸이 덜컥덜컥 덜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그건…그건…우, 우으으읏…!"

    하지만 내가 지근거리까지 다가가자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실비아가 벽을 따라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반신의 힘이 완전히 풀린 건지, 다리를 질질 끌고 팔로만.

    "…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아! 하, 하지마안! 하지만 지금은…!"

    내 허탈한 목소리에, 실비아는 반쯤 울면서 외쳤다.

    "…뭐 됐다. 일단 수영 연습이나 하러 가자. 설 순 있겠냐?"

    나는 하는 수 없이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아까 전에 했던 키스의 여파로 인해, 오늘은 더 이상 실비아랑 이 이상 진도를 빼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진전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 오히려 생각한 것만큼의 진도는 뺐다고 볼 수 있다.

    실비아와 제대로 키스도 했고, 우리 애들에게 더 깊은 관계가 되도 상관없다는 허락을 받은 것도 전했다.

    이제 남은 건 실비아가 좀 더 버틸 수 있게 내성을 기르고, 진도를 빼면 그만이란 얘기다.

    뭐, 내성을 기르게 하는 게 제일 힘들 것 같기는 하지만…아무튼 지금까지 이 이상 진도가 나가면 안 된다고 선을 긋고 있었던 마음의 장벽은 완벽히 허문 거니까.

    "조, 조금 다리에 힘이…히읏!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아!"

    벽에 손을  짚고 필사적으로 일어서려 하는 실비아에게 다가가자, 실비아는 또 다시 오들오들 떨면서 황급히 외쳤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쟤가 날 좋아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면 완전히 싫어하는 사람한테 보이는 태도란 말이야.

    극과 극은 통한다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그건 아닌가.

    "…너 진짜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정말 좋아합니다아아!"

    "오냐. 가자."

    나는 하는 수 없이 실비아를 부축해주는 걸 포기하고, 먼저 앞장서서 욕실로 향해 걸었다.

    실비아도 어떻게든 일어설 수 있었던 건지, 내 뒤를 따라왔다.

    어째선지 내 뒤를 바짝 쫒아오는 게 아니라, 모퉁이에 몸을 숨겨서 스토킹 하듯 따라왔지만.

    "구, 구원님과…구원님과아…헤헤엣…."

    …다 들린다, 이것아.

    하지만 뭐, 저렇게 좋아해주니 나도 우리 애들한테 그렇게 필사적으로 허락을 받은 보람은 느껴졌다.

    실비아 너도 좀 더 나한테 감사하고, 그리고 이 일이 헛되지 않도록 내성을 기를 노력을 하라고.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같이 가는 건지 따로 가는 건지 애매모호한 상태로 욕실에 도착했다.

    드디어.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이 문을 열면, 드디어 꿈에 그리던 파라다이스가!

    절세의 미녀들이 다 같이 알몸으로 수영하는 광경이라니. 그 누가 볼 수 있을까?

    누드 비치에 가면 볼 수 있다고?

    시끄러워! 중요한 건 안에 있는 게 전부 절세의 미녀라는 점이야!

    무엇보다, 전부 내 여자라는 게 중요하다고. 하렘이라고! 하렘!

    …뭐 약 한 명 내 여자가 아닌 녀석이 끼어있기는 하지만. 한 명 정도는 오차 범위 안이다.

    게다가 절세의 미녀라는 점은 마찬가지고.

    "…늦었잖아."

    내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문을 열자, 거기에는 완전히 옷을 갖춰 입고 있는 우리 애들이 있었다.

    엄청난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일까?

    극히 최근에 이런 일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너, 너희 수영 연습 안 하고 뭐해?"

    "슬슬 점심시간이니까요. 구원씨 말대로 무리하지 않고, 식사시간은 거르지 않기로 했어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레이아가 포근한 목소리로 대답해줬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순간 절망으로 물들었던 마음이 다시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전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어제는 저녁! 오늘은 점심! 즉, 식사를 마치고도 다시 한 번 찬스는 도래한다!

    "아, 아아! 과연! 그런 거구나! 아니. 늦어서 미안. 그러고 보니 시간을 확인 안 했었네. 내 생각보다 실비아가 꽤나 오래 기절해있었구나."

    나는 완전히 안심해서는 그렇게 말했다.

    "하아…. 그래서, 실비아는 어디 있어?"

    내 대답을 듣고, 사라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조금 의외네. 이렇게 늦었으니까, 내가 실비아랑 섹스라도 하고 온 거 아닌가 의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라는 의외로 아무 말 없이 쿨하게 넘어가줬다.

    "저기. 구석에."

    "…구원, 뭔가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하지만 구석에 숨어있는 실비아를 보자 과연 사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는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당연하지. 오빠 못 믿어?"

    "…자기가 우리한테 무슨 부탁을 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다시 한 번 말해봐."

    "…죄송합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말 오늘은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그랬다. 이 건에 관해선 내가 얘들한테 이길 요소가 단 하나도 없었다.

    젠장. 어쩌다 바보같이 하렘 선언까지 해서는.

    "앗! 저, 저기!"

    우리가 그렇게 장난치고 있자, 자신 때문에 내가 그런 의심을 받는 게 미안했는지 실비아가 구석에서 나와서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3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마치 장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뚝 멈춰 섰지만.

    "디아나님! 사라님! 레이아님! 저, 전…전…!"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실비아가 감격에 벅찬 얼굴로 뭔가 말하려고 했다.

    …나 때문에 달려온 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디아나. 그러고 보니 너도 있었구나. 수영 안 한다면서 결국 따라온 거냐?

    "…그럼 우린 먼저 식당에 가 있을게. 마틸다. 바넷사. 가자."

    뭐, 아무튼 우리 애들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으니, 나는 여기선 신사답게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과연 여기까지 오자 대충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은 듯, 마틸다와 바넷사도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여러분…정말로…."

    "괜찮네. 괜챃네."

    욕실에서 멀어져가는 우리 등 뒤로, 희미하게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진짜 여자들은 참 잘 만났다니까.

    "…그렇군요. 실비아씨도 결국…."

    그리고 우리 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말 없이 따라오던 마틸다가 그제야 입을 열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표정은 괴로운 것같이도, 부러운 것같이도 보이는 묘한 표정이었다.

    참고로 마틸다와 같이 내 곁을 따라오던 바넷사는 아까부터 날 엄청 노려보고 있었다.

    디아나에게 최선을 다 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다른 여자를 정식으로 또 받아들인 게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마틸다에 레이첼 누님까지 받아들인다고 말하면, 우리 애들보다 먼저 분노한 바넷사한테 찢겨죽는 거 아닐까?

    자연스레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엄청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바넷사에게 먼저 가라는 뜻으로 훠이훠이하고 손짓을 했다.

    뭐, 어차피 바넷사 얘는 먼저 가서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할 테고.

    바넷사는 아주 미묘하게 표정을 움찔거리더니, 그대로 먼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저거, 무표정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울컥한 표정이었지?

    보통은 형식적으로나마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갈 텐데, 그마저도 하지 않고 그냥 간 걸 보면 상당히 화난 모양이다.

    그렇다고 저걸 또 달랠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바넷사를 보내고 마틸다에게 눈을 맞췄다.

    "…마틸다. 난 너 역시도 저주가 풀리면…."

    "아아…! 구원씨이…!"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마틸다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달라붙어왔다.

    아니. 아직 말 안 끝났는데. 변하는 거 빠르지 않냐?

    "지금 말고 저주 풀리면 말이야. 저주 풀리면."

    뭔가 분위기 잡은 게 바보 같아져서 마틸다의 이마를 밀면서 말하자, 마틸다가 힘없이 밀려나며 깜짝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다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죠. 저주가 풀리면…."

    …미안. 마틸다. 심각한 표정인데 방금전까지 달라붙다가 그러니까 하나도 안 심각해 보여.

    하여간 저주가 문제라니까 저주가.

    "지금 상황에선 아무래도 네 마음에 확신을 가질 수 없으니까. 너도 만약 저주가 풀려서 날 좋아하는 마음이 싹 사라졌는데 나와 깊은 관계가 되어있거나 하면 싫을 거 아니야."

    "…전 그런 게…으응. 아무튼 저주를 푸는 게 우선이란 거네요. 저주를 풀면…."

    "그래. 미안하게도 오늘은 못 할 것 같지만…."

    "아뇨. 저도 수영 연습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마 당신이 하자고 했어도 제 쪽에서 거절했을 거예요."

    마틸다는 여전히 살짝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역시 내가 조난당한 것에 이렇게까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건가?

    하여간 얘는 얘대로 뭔가 상당히 심경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는 걸 보면, 이 이상 괜찮다고 위로해봤자 별로 소용은 없을 것 같네.

    어설픈 위로의 말보다, 차라리 얼른 수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오히려 마틸다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고로 식사를 마친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살짝 배가 꺼지길 기다린 후 다시 욕실에 들어왔다.

    드디어! 드디어 이때가 왔다!

    "구워…읏!"

    탈의실에 오자마자 어째선지 내게 접근한 바넷사를 무시하고, 나는 입고 있던 옷을 전부 훌러덩 벗어던졌다.

    그러자 바넷사는 내게 뭔가를 내민 자세로 우뚝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뭐야 이거. 번들번들하고 미끌미끌해 보이는…가죽? 천?

    "뭐하냐. 너도 얼른 벗지 않고."

    수 많은 여자들 사이에 나 혼자만 남자.

    아까 내가 없을 때와는 달리, 지금 이 상황에 다들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솔선수범해서 벗기는 했지만…과연 이렇게 빤히 쳐다보면 조금 부끄러워지기는 했다.

    미묘하게 하반신에 반응이 오려고 하기도 하고…하지만 나는 마나를 돌려서 발기를 막고, 최대한 부끄러운 티를 내지 않으며 멈춰 서서 날 빤히 보고 있는 바넷사에게 쿨하게 말했다.

    "자, 자, 자, 자네는 뭘 갑자기 훌러덩 다 벗고 있는 겐가아아아!"

    그러자 갑자기 디아나가 달려들어서 끼치발을 들어서 한 손으로 바넷사의 눈을 가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날 차박차박 때리기 시작했다.

    "진짜 바보 아니야?! 바보 아니야?!"

    그리고 사라 역시도. 가세해서 내 등짝에 스매시를 날려댔다.

    그리고 그런 우리 모습을, 레이아는 살짝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실비아는 저기 구석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며 진동했고, 마틸다는 핑크빛 모드로 변해있었다.

    다들 이 자리에서 옷을 벗을 생각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다.

    "무슨 소리야. 욕실에 들어가려면 벗어야지."

    "지금은 씻는 게 아니라 수영을 하러 들어가는 것 아닌가! 옷을 입게! 옷을!"

    "하지만 아무리 수영이라도 옷을…."

    "어서!"

    "넵."

    나는 디아나의 기세에 눌려서 황급히 옷을 입었다.

    그제야 디아나는 바넷사의 눈에서 손을 뗏고, 우리 슈퍼 집사 바넷사도 다시 기동을 시작했다.

    "……구원님은 먼저 들어가서 이 옷으로 갈아입어 주십시오. 저희도 갈아입고 가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바넷사가 손에 든 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설마 그거…수영복이었어?!

    …젠장! 설마 판타지 세계에 수영복이 있었다니! 말도 안 돼! 보통 없잖아!

    아니. 이 세계가 그냥 판타지 세계치고는 묘하게 기술이 발달되어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내 꿈이! 내 희망이! 알몸 수영장이!

    "그, 그런가…응. 알았어. 하지만 굳이 나만 안에서 갈아입을 필요는…안에서 갈아입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겉으로 티낼 수도 없었다.

    적어도 갈아입는 모습이라도 관찰해주겠단 마음으로 저항해보려 했지만, 그 시도 역시도 우리 애들의 무서운 눈빛에 의해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어쩐지. 그래. 어쩐지 내가 같이 수영한다고 하는데도 저항이 생각보다 약하다 했어.

    하긴, 알몸으로 수영하는 거면 저항이 그 정도로 끝날 리가 없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알몸 수영장은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절세 미녀들의 수영복 차림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디겠어!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수영복의 재질은 탄력이 있고 덤으로 방수까지 되는, 정말 원래 세계에 있던 수영복의 기능을 거의 다 갖춘 물건으로 보였다.

    디자인은 수영선수들이 입는 것 같이, 하반신에 딱 달라붙는 타입.

    개인적으로 수영복은 통 큰 반바지 타입을 좋아하지만, 나는 수영복을 입고 오히려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내 수영복의 재질이 이렇다는 건, 여성진이 입는 수영복의 재질 역시도 이렇게 몸에 착 달라붙는 재질이라는 거니까.

    "구원씨. 기다리셨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우리 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기다리기는 뭘…."

    "구원씨? 왜 그러세요?"

    그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여성진의 수영복 차림을 보고, 나는 이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500화 축하 코멘트도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완결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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