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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
"뭘 그런 표정을 짓고 그래. 키스 정도면, 굳이 소원이니 뭐니하면서 부탁하지 않아도 해줄 수 있다는 말이야."
뭐, 확실히 지금까지는 행위 중에 키스할 분위기가 되도 내가 피하긴 했지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난 너와 더 깊은 관계가 될 결심을 끝마쳤다고.
그런 결심을, 나는 그렇게 돌려 말하는 방식으로 실비아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정작 실비아는 내 말을 듣고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갑작스런 말이다 보니, 머리 회전이 굳어져서 사고 속도가 내 말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하여간 진짜 어쩔 수 없는 애라니까.
"…죽지 마라."
나는 만약을 위해서 그렇게 중얼거리고, 천천히 실비아의 얼굴에 얼굴을 가져갔다.
"…엣? 엣?"
실비아는 그런 내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얼빠진 목소리만 간신히 흘렸다.
그리고 드디어 내 입술이 가볍게 실비아의 입술에 닿자, 실비아는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히야…아, 아아…아…키, 키스, 키스, 키, 키…."
…실비아가 망가졌다.
그러니까 미리 죽지 말라고 말했는데.
정말 가벼운 키스. 혀를 넣기는커녕, 입술과 입술 표면이 아주 가볍게 닿은 정도로 끝난 키스였다. 게다가 시간도 아주 찰나의, 아마 1초도 안 붙어있었던 거 아닐까?
어린애들과 하는 뽀뽀도 이것보단 더 농후할 거라고 생각될 정도의, 그런 가벼운 키스.
그런 키스 한 방에, 실비아는 완전히 망가져서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봤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 건지 그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키, 키, 히으으윽…."
그리고 결국, 실비아는 그대로 눈을 감으며 풀썩하고 뒤로 넘어갔다.
마치 과열된 기계가 그대로 푸슈욱하고 연기를 내면서 꺼져버리듯이.
"실비아아?!"
나는 황급히 실비아의 몸을 끌어안고 그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다. 그냥 시체인 모양이다.
"저, 정말로 죽었어…!"
일단 평소대로 장난을 걸어봤지만, 평소와 같은 실비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야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멀쩡히 살아남았던 평소와는 다르게, 지금의 실비아는 이미 숨을….
뭐, 제대로 숨 쉬고 있지만 말이야.
아무리 나라도 진짜 죽었으면 이런 장난 안친다고.
제대로 코에 손을 대서 숨 쉬는 것부터 확인하고, 이런 장난을 친 거다.
그야 그렇겠지. 사람은 의외로 튼튼한 법이라고. 고작 이런 걸로 죽을 리가 있겠어?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엔 조금 식겁하긴 했지만. 쓰러지는 모습이 너무 리얼했어.
과연 나도 놀라서 황급히 숨부터 쉬나 확인해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거, 어쩌지.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셈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얘기가 금방 끝날 줄 알고 다른 애들한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던 거다.
난 또 실비아의 부탁이 하루 종일 연인처럼 알콩달콩 데이트를 하거나, 한번 하룻밤을 통째로 자신과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이제부터 관계를 가질 때마다 키스를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더 나아가서 사도 임명을 해달라고 하거나, 뭐 그런 것일 줄 알았다고. 고작 키스 한 번 정도가 아니라 말이야.
소원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부끄러워 도망칠 정도니까, 뭔가 거창한 부탁을 할 줄 알았더니 부탁하는 게 고작 키스 한 번이라니.
과연 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가볍게 한 번 해준 건데, 설마 이렇게 기절까지 해버릴 줄이야.
진짜 내성 너무 약한 거 아니냐?
사도 임명을 하거나 첩으로 받아준다고 말하거나 하면, 진짜로 빼도 박도 못하고 행복사하겠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움직여야겠다.
실비아를 계속 여기에 둘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일어날 때까지 마냥 이렇게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혼자만이라면 모를까, 다른 애들도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까.
나는 실비아를 가볍게 들쳐 업고 내 방의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식당으로 내려왔다.
"무슨 얘기를 했길래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겐가?"
"미안. 조금 일이 복잡…넌 아직도 여기 왜 있냐."
"아,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아직도 안 가고 식당에 남아있는 디아나에게 한 소리 하자, 디아나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운동은 하기 싫어서 안 낀다고 한 주제에, 그렇다고 다 같이 하는 일을 혼자 빠지는 건 또 쓸쓸하다고 생각한 건가?
하여간 귀여운 녀석이라니까.
"…뭐 좋아. 아무튼 얘기하다보니 실비아가 살짝 기절해버려서 말이야. 미안한데 다들 먼저 가서 연습하고 있어줘. 나도 실비아가 깨어나면 곧바로 같이 갈게."
"대체 뭐가 어떻게 되면 얘기를 하다가 기절을 한다는 거야. 실비아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별 일 안 했어. 그냥 살짝…그…우리끼리 전에 했던 얘기 말이야. 그 관련된 얘기가 살짝 나오게 돼서 말이지."
"""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사라와 디아나, 그리고 레이아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셋 다 대충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감을 잡은 모양이다.
솔직히 말 하면서도 조금 떨렸는데, 다행이도 셋 다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진 않았다.
이미 본인들이 스스로 허락한 일이니 문제없다는 건…뭐, 절대 아니겠지. 아마 상대가 실비아라서 그런 걸 거다.
실비아야 같이 오래 지내면서 다들 원래부터 반쯤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건가요?"
그렇게 뭔가 미묘한 공기가 흐르는 와중에도, 우리끼리 했던 얘기가 뭔지 전혀 모르는 마틸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뭐, 그런 일이 있어. 아무튼 그런 고로 다들 먼저 가있어. 나도 실비아가 깨어나면 곧장 갈 테니까."
그렇게 대충 상황을 전달하고 애들을 욕실로 먼저 보낸 후, 나는 실비아가 잠들어있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실비아는 여전히 내 침대 위에서 죽은 듯이 잠들어있었다.
말해두지만 죽은 듯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비유로, 정말 죽었다는 게 아니니까. 제대로 살아있으니까.
나는 일단 의자를 끌어와서 앉고, 그런 실비아의 자는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굳이 침대에 앉지 않고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앉는 건, 실비아가 일어나자마자 다시 기절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단 말이지.
그땐 얘가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꽤나 차분한 성격으로 보인다.
아니. 실제로 내 앞만 아니면 차분한 성격이라는 모양이다.
제일 오래 알고지낸 펠리시아도 그렇게 말했고, 우리 애들도 나만 없으면 실비아는 꽤나 차분한 성격이라고 말해줬고.
뭐, 그런 모습을 내가 직접 보게 될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으응…. 으음…. 헤헷. 구원니이임…."
심심해진 내가 내가 실비아의 볼을 콕콕 찌르면서 놀고 있자, 실비아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불을 꼬옥 끌어안고 얼굴을 박았다.
무의식적으로 내 냄새를 맡고 좋아하는 건가?
하여간 얜 날 대체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아니 뭐, 그러니까 키스 한 방에 기절까지 했겠지만.
"으응…응? 여, 여긴…."
그렇게 내 이불을 끌어안고 좋아하던 실비아는, 드디어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는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일어났냐?"
"히야아아아아악! 아읏! 흐야아아아…!"
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실비아는 침대에서 거의 30cm 가까이 펄쩍 뛰어오르더니, 팔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여서 내가 있는 쪽은 반대쪽으로 몸을 뺐다.
당연히 침대의 크기는 한계가 있어서 실비아는 바로 침대 밑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실비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였다.
도중에 허리가 빠졌는지 거의 땅바닥을 기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무사히 벽까지 도착한 실비아는 전신을 벽에 찰싹 붙여서 내게 최대한 떨어진 채 오들오들 떨면서 날 쳐다봤다.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다."
내가 어처구니없어서 중얼거리자, 이리저리 방황하던 실비아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내 입술에.
"으아, 아, 아아…키, 키스…키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 나랑 이미 섹스까지 몇 번이나 한 사이면서."
나는 일단 태연한 말투로 실비아를 달래보려고 했다.
뭐, 이 세계는 섹스보다 키스가 더 의미가 있으니, 이 말은 틀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하, 하지만…! 키스가! 키스…! 키스를…!"
실비아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는지, 실비아는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마치 항의라도 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싫었냐?"
"좋았습니다아아! 하지만! 하지마아아안!"
…좋았으면 그렇게 오열하지 마라.
그래서야 내가 뭐 나쁜 짓 한 것 같지 않냐.
"그래. 알았어. 기습적으로 해서 미안해. 미안하니까 좀 진정해라."
일단 미리 죽지 말라고 말해뒀으니까 기습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실비아를 달래봤지만, 실비아는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저래선 좀처럼 진정될 것 같지가 않네.
그래도 일단 기절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나는 아까 하려던 얘기나 마저 하기로 했다.
"말해두는데, 방금 키스는 네 소원으로 한 거 아니다. 아직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는 약속은 유효해. 그러니까 키스해달라는 부탁정도로 쓰지 마라.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수영 연습에 빠져달라는 시시한 부탁같은 것도 안 들어줄 테니까."
"키, 키스가…키스…정도오…?"
내 말을 들은 실비아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하는 표정으로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야 의미 있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난 너와 내 관계가 고작 소원을 빌고 나서야 겨우 키스를 할 정도로 약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 아, 아, 아아아…?!"
"야. 그러니까 기절하려고 하지 말라고. 기껏 기다려줬더니 또 기절하려고하고 말이야. 너 이런 기회 좀처럼 없다? 이번에 또 기절해버리면 나 그냥 가버릴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 네헷! 네헤엣!"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실비아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듯 자신의 볼을 찰싹찰싹 때려대기 시작했다.
…너무 세게 때리는 거 아니냐?
귀여운 볼이 좀 빨개진 거 같은데.
"방금 전 일로 짐작했겠지만, 네 소원의 허용범위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키스 같은 거 말고, 좀 더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해서 신중하게 부탁해라. 무슨 말인지 알지? 좀 더 욕심을 부려서, 네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진짜 소원을 말하라고."
"하, 하, 하지만…하지만 그런 건…."
내 그런 말을 듣고, 실비아는 떨림이 더욱더 거세졌다.
얼마나 강하게 떠는 건지, 실비아가 달라붙어있는 벽에 걸린 그림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진동할 정도였다.
"난 그걸 받아줄 각오가 되어있어. 그리고…우리 애들한테 허락도 이미 받았어."
"아, 아아…! 아아아…!"
실비아가 하려던 말이란 게, 우리 애들에 대한 걱정이 맞았던 모양이다.
내 말을 듣고, 실비아는 뭔가 울컥하고 감격이 벅차오른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 몸에 달라붙어서 그런 표정을 지었으면 더 그림이 됐을 텐데 말이야.
왜 나한테 제일 멀리 떨어진 벽에 달라붙어서 저러고 있는 걸까.
"구, 구원니이이임…!"
"오냐. 네 구원님 여기 있다. 그래서, 소원으로 뭘 빌지 대충 생각나는 건 있냐?"
내가 그렇게 질문하자, 그때까지 펑펑 눈물을 흘리던 실비아는 갑자기 눈물이 뚝 그치더니 울던 모습 자세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으아, 아, 아아…무리! 무리무리무리! 무리입니다아! 주, 죽…그, 그런 짓을 하면…그런 짓을 하며어언…!"
그 자세로 한동안 가만히 있던 실비아는, 갑자기 해동이 풀리더니 전신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아까보다도 더 거세게 진동하면서 외쳤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나는 일단 확인차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 짓이 무슨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짓을 하면 뭔데?"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죽습니다아아아!"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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