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497화 (481/1,205)
  • 497====================

    후폭풍

    이렇게 된 이상, 이게 효과가 없길 바랄 수밖에…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가.

    확실히 효과가 없다면 그걸 구실로 이 마법구를 폐기처분 시킬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과가 없으면 사라는 계속 이 상태라는 얘기가 된다.

    효과가 있길 바라면서 한 편으론 또 없었으면 좋겠다는 미묘한 기분으로 나는 방을 나서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문 앞에서 가만히 대기했지만, 1분이 지나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성공한…건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구먼. 어떤가?! 이 몸에게 걸리면 이 정도 쯤이야 식은 죽 먹기란 걸세! 자네도 조금은 이 몸을 다시 보는 게 어떻겠나?!"

    내가 다시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디아나가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사라는 옆에서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효과가 있길 바람과 동시에 한 편으론 또 없길 바랐던 건, 아무래도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다시 볼 것도 없이 원래부터 계속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그런가…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이 몸을 대하는 태도가…."

    얜 항상 이런다니까.

    정작 안 한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애정표현이야. 애정표현. 싫으면 지금부턴 놀리지 말까?"

    "시, 싫다고는 하지 않지 않았는가!"

    거 봐. 저렇다니까.

    하여간 우리 디아나는 가끔 솔직하질 못하다니까.

    어떨 땐 남들 앞에서도 대놓고 낭군님 낭군님하면서 애정표현을 하는 주제에, 또 어떨 땐 이렇게 새침한 반응을 보여준단 말이야.

    "그럼 좋아?"

    "좋…좋을 리 없지 않은가?!"

    "복잡한 녀석."

    "자네 성격이 나쁜 것이 문제 아닌가!"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디아나가 욱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외쳤다.

    다만, 평소처럼 토닥토닥 공격을 감행해오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에 빛을 내뿜는 마석을 쥐고 있었으니까.

    "…눈앞에서 둘이서만 노닥거리지 말아줄래?"

    "미안. 미안. 축하해. 드디어 나랑 떨어질 수 있겠네."

    "축하할 말이 틀렸잖아…. 난 별로 구원이랑 쭉 같이 붙어있어도…구원은 싫었어?"

    "싫은 건 아니지만 조금 불편했던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 붙어있을 수 있고. 말만 해. 내가 계속 손잡고 다녀줄게."

    "돼, 됐거든!"

    내가 사라의 손을 덥석 잡으려 하자, 사라가 가볍게 손을 쳐내면서 말했다.

    하지만 행동과는 달리, 사라의 얼굴은 마냥 싫지만은 않다는 듯 미묘하게 뺨이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 정말로 효과가 있을 줄이야. 앞으론 완치될 때까지 쭉 가지고 다니면 되겠네. 뭐, 디아나는 필요 없겠지만."

    "우갹! 뭐, 뭘 하는 겐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디아나가 쥐고 있는 마석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왜냐하면, 마석 째로 디아나가 딸려왔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꽉 쥐고 있었던 거야.

    내가 손을 높이 들어 올리자, 덩달아 디아나도 들어 올려지면서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그대로 대롱대롱 매달리게 됐다.

    아무래도 이 마석을 포기할 각은 죽어도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디아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딱 잘라 말했다.

    "아니. 넌 이거 필요 없잖아."

    "괜찮지 않은가! 괜찮지 않은가! 이 몸도 가지고 싶단 말일세!"

    디아나도 자신의 행동이 논리적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는지, 답지 않게 떼를 쓰면서 말했다.

    아니. 정말로 답지 않다. 평소 행동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디아나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경우는 정말로 흔치 않다.

    때문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그, 그 정도냐…."

    "음! 음! 낭군님! 부탁일세!"

    그런 내 반응에서 희망을 엿봤는지, 디아나가 귀여운 척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귀여운 척이 아니라 실제로 귀엽지만.

    젠장. 어디서 이런 앙증맞은 애교를 배워가지고는. 굳잡이다.

    "그래라. 그럼."

    뭐, 내 위치를 알 수 있다곤 해도 어차피 반경 100미터. 가까운 듯하면서 은근히 먼 거리다.

    그다지 자세한 위치까진 모를 거라는 얘기다.

    아니. 그 이전에 애초에 내가 얘들한테 비밀로 어디 다닐 일도 없을 거고.

    결국 나는 디아나의 애교에 패배해서 순순히 마석을 놔줬다.

    "정말인가?! 무르기 없기네!"

    "그렇게 말하니까 무르고 싶어졌…."

    "안 되네! 무르기 없기일세!"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석을 품에 넣었다.

    저렇게 기분 좋을까. 저 미소를 본 것만으로도 저걸 가지도록 허락해준 보람은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밤이 되기 전에 해결돼서 다행이네."

    "그러게."

    "응? 사라도? 아까 나랑 떨어진다고 아쉬워하지 않았어?"

    "나, 나라도 디아나나 레이아한테 계속 폐 끼치는 건 미안하다고 생각하거든?!"

    "괜찮네. 괜찮네. 신경 쓰지 말게."

    사라는 그렇게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최대의 피해자인 디아나는 마석을 가지게 돼서 기분 좋은지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해줬다.

    아니. 넌 괜찮다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아무튼 효과 범위가 반경 100미터니까, 사라 방에서 내방까지 충분히 발동 되겠지? 이걸로 드디어 오늘 밤부턴 정상적으로…."

    레이아랑…잠깐. 레이아?

    사라와 떨어지게 되고 나니, 나는 문뜩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드디어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거다.

    그리고 레이아는 지금, 실비아 마틸다와 같이 욕실에서 수영 연습 중.

    아까는 어쩔 수 없이 포기했지만, 지금이라면…지금이라면!

    나는 살짝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식사 시간까지 그리 얼마 남진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조금의 시간은 남아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나는 당장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그럼 난 이 기쁜 소식을 레이아한테도 알려주러 갈게!"

    "뭐? 야! 구원! 이럴…!"

    뒤에서 사라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의는 나에게 있다!

    나는 암살자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최대한 빨리 욕실로 달려갔다.

    "레이아! 들어 봐!"

    그리고 욕실문을 벌컥 열자 거기에는…바로 눈앞에 여성진의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다. 여기 문을 열면 바로 욕실이 아니라 우선 탈의실인데.

    왜 쟤들이 다 여기 있지? 그것도 옷도 다 입고.

    레이아, 실비아, 마틸다, 그리고…바넷사 쟨 여기 왜 있지?

    아무튼 넷 다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젖어서는 이미 옷을 다 입은 채 탈의실을 나오려고 하던 도중이었다.

    "꺄악! 구, 구원씨? 어쩐 일이세요?"

    "으, 응? 아니. 임시방편이지만 사라 문제가 해결돼서 알려주려고. 그보다 수영 연습은?"

    "네? 후훗. 혹시 곧장 도와주려고 오신 건가요?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려고요. 이제 곧 저녁시간이니까요."

    "그런…어째서! 아직 저녁 시간은…!"

    "가르쳐주는 바넷사가 준비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잖아요. 뭔가요 당신. 왜 그렇게 필사적인 거죠? 혹시 다른 목적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내가 물고 늘어지자, 마틸다가 수상하단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칫! 감이 좋은 녀석 같으니라고!

    "아니. 다른 목적은 무슨. 그냥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랬지. 그런가. 그럼 저녁 먹고…."

    나는 미련을 못 버리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문득 시야에 레이아의 얼굴이 들어왔다.

    오늘은 내가 귀환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잠자리다.

    저녁 시간 이후로는 계속 레이아랑 같이 있는 게 좋겠지.

    "…까지 연습하는 건 그만둬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너무 그렇게 안달할 것도 없으니까."

    나는 결국 미련을 뒤로하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어차피 수영 연습도 오늘로 끝나는 게 아니고.

    미녀들이 잔뜩 모여서 알몸 수영 강좌를 받는 광경을 보는 건 아쉽지만 내일을 노려보자.

    "조금은 안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애초에 저희가 수영만 가능했으면…."

    "아니. 그건 아니야. 만약 너희가 수영이 가능했더라도, 난 똑같이 너희에게 구하러 나오지 말라고 말했을 거야. 저번 일은 사고지, 너희 탓이 아니야."

    죄책감이 느껴지는 말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틸다에게, 나는 딱 잘라서 그렇게 말했다.

    이건 내 진심이다. 실비아나 마틸다를 다독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다, 당신…."

    그러자 마틸다가 다시 핑크빛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촉촉한 머리카락과 상기된 피부 때문인지, 그 분위기가 평소보다 살짝 더 요염해….

    "그럼 전 이만 식사 준비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내가 마틸다에게 살짝 정신이 팔렸을 때, 바넷사가 그렇게 대화의 맥을 끊으며 말했다.

    "아, 네. 바넷사씨.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닙니다. 그럼…아, 구원님.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바넷사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탈의실 밖으로 나가려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서 날 불렀다.

    "응? 나? 무슨 일인데?"

    "구원님께서 안 계신 동안 있었던 일에 관해서, 잠시 할 얘기가 있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있었던 일?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살짝 어리둥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바넷사를 따라갔다.

    하지만 내가 따라붙어도 바넷사는 좀처럼 얘기를 꺼내지 않고, 뚜벅뚜벅 앞만 보면서 걸어났다.

    그리고 인적이 없는 빈 방으로 날 안내하고 나서야, 겨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뭐야. 이런 데까지 데려오고. 남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일이기라도…크헉!"

    혹시 펠리시아가 슬슬 성욕이 쌓여서 저택에 사람을 보냈었나?

    아니. 하지만 그런 거라면 실비아가 연락을 했을 때…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바넷사에게 용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바넷사가 내 멱살을 틀어잡고는 날 벽으로 밀어붙였다.

    "…앞으로 또 한 번 디아나님을 울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내 얼굴에 바싹 얼굴을 들이밀고 답지 않게 눈동자를 이글이글 불태우면서, 바넷사가 내게 조용히 하지만 힘입게 말했다.

    "…너 설마 그런 얘기하려고 부른 거였냐?"

    "그런 얘기? 당신은 이 얘기가 고작 그 정도…!"

    "아니.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잖아. 내 말은, 굳이 네가 말 안 해줘도 된다는 거야. 디아나를 울리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너 말이야. 디아나에게 엄청 충성하는 건 알겠는데, 나도 너 이상으로 디아나를 좋아하거든? 애초에 이번 일은 불가항력이었던 거 너도 들었으면 알 거 아니야? 괜히 날 구하겠다고 거기서 버텼으면 디아나가 우는 정도로 안 끝났을 수도 있었다고."

    "……."

    내가 멱살이 잡힌 채로 그렇게 말하자, 바넷사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날 노려보기만 하면서 침묵을 유지했다.

    "너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닐 텐데 말이야. 혹시 이 말 할 기회를 보려고 사라가 나한테서 떨어지자마자 부른 거야? 답지 않게 머리에 피가 너무 몰렸잖아. 게다가 사라가 붙어있었던 동안에 식지 않을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화가 났던 거야."

    "…아무튼 다음부턴 이런 일이 절대 없도록 하십시오."

    내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침묵을 유지하던 바넷사는 툭 내뱉듯 그렇게 말했다.

    "말 안 해도 안다니까 그러네. 나도 이번 일은 상당히 반성하고 있어. 앞으론 더 조심할 거야.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애들이 슬퍼할 거란 건, 이번 일로 뼈에 사무치게 느꼈다고."

    "…아셨다면 됐습니다."

    내가 한 발 물러나주는 자세로 그렇게까지 말해주자, 그제야 바넷사는 눈에 힘을 풀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덤으로 내 멱살을 잡은 손에도 살짝 힘을 풀어줬다.

    아니. 그냥 놓으라고.

    "나 참. 그 바넷사가 이렇게 화를 내다니. 넌 대체 디아나를 얼마나 따르는 거냐. 아니. 그런 점이 믿음직스럽기 그지없긴 하다만. 이럴 때는 보통 생환을 축하하는 말부터 해줘야 정상 아니야?"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조금 숨쉬기 편해진 내가 능청을 떨자, 바넷사는 마지 못 해 말한다는 티를 팍팍 내뿜으면서 그렇게 말해줬다.

    "오냐. 그래. 바넷사 너도 조금은 내 걱정했었냐?"

    "…아뇨. 별로. 슬퍼하는 디아나님의 걱정은 했습니다만."

    야. 이럴 땐 겉치레라도 조금 걱정했다고 말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하아. 진짜 이 철가면 집사는.

    이래서야 언젠간 울리고 말겠다는 내 야망이 실현될 날이 오긴 하는 걸까.

    "…그러냐. 그럼 할 말 다 끝난 것 같으니 이제 좀 떨어져라. 그러고 있으니까 숨 막힌다. 후우."

    "으으읏!"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크게 입김을 후하고 불었다.

    여전히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있었던 바넷사는, 내 불의의 공격에 깜짝 놀랐는지 몸을 크게 움찔하며 황급히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오? 이 반응은…이거 뭐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