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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96화 (48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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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폭풍

    하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다.

    나는 얼굴 표정을 딱딱히 굳히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한 손으론 막기도 힘들고, 게다가 어차피 막더라도 너랑 이렇게 붙잡고 있으면 들릴걸. 그러니까…자! 말해! 뭘 이제 와서 부끄러워할 게 있어! 어서 나에 대한 그 뜨거운 감정을 백주대낮에 숨김없이 털어놓는…크헉!"

    "하여간 이 바보는 진짜!"

    "자네! 방해하지 말게!"

    "넵…."

    사라 넌 훌쩍이면서도 등짝 스매시는 매섭게 때려 넣는구나.

    사라와 디아나 둘에게서 동시에 꾸중을 듣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떠들지 못하고 닥칠 수밖에 없었다.

    천사님. 어디계신가요. 헤어 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님이 그립습니다.

    그런 날 살짝 노려보더니, 사라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아…그러니까 감정. 감정 말이죠. 음…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두려웠어요. 손이 떨어지면 구원이 또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고…."

    "음. 음."

    "그렇게 되면 이번엔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닐까하는 두려움도 생기고…."

    "흐음. 흠."

    "그렇게 되면 전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그렇게 생각하니 어떻게든 구원과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과연…사라는 날 그렇게나…."

    "자네는 쓸데없는 추임새 넣지 말고 좀 가만히 있게나!"

    아무래도 이것도 안 되는 모양이다.

    "아니. 미안. 방해할 셈은 아니었어. 하지만 말이야. 이제 와서 굳이 다시 물을 필요도 없이 뻔한 얘기잖아. 사라는 날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날 잃을 뻔 하자 두려움이 생겨버린 거야."

    "설령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건 본인 입으로 제대로 생각을 듣는 게 중요한 걸세! 게다가 두려움만으론 사라양이 유아퇴행까지 되는 이유는 알지 못하지 않나!"

    "그거야…그래도 치료를 하는데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잖아. 아무튼 원인은 알았으니까…."

    사실 난 그것도 대충 예상을 하고 있지만 말이야.

    사라는 내가 없어질 뻔한 일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겹쳐보고 있는 거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응석부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걸 거다. …아마도.

    "…구원 혹시…그것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얄밉게 방해한 거였어?"

    내 말을 듣고 뭔가 마음에 짚이는 게 있었는지, 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감격에 벅찬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어? 으, 으응…."

    그런 사라의 반응을 보고, 나는 미묘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얄밉게 라니…. 너 말이야.

    아니. 뭐 살짝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나도 찔리는 게 있어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아니. 정말로 사라가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방해한 건 맞다.

    사라는 복수를 마친 지금도 그 일을 트라우마로 여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복수 이후로 사라가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한 것도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다만, 다만 말이지. 아주 살짝, 쪼오오금 정도는 아까의 등짝 스매시에 대한 가벼운 보복 차원으로 얄밉게 굴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것뿐이야.

    이런 걸로 찔려하다니. 나란 놈은 너무 양심적이라니까.

    "하지만 괜찮아. 난 정말 괜찮으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라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아니. 안 괜찮으니까 지금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사실 저희 할아버지가 조금 안 좋은 일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때 일과 구원을 잃을 뻔한 일을 겹쳐보는 바람에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라는 한 번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디아나를 향해 제대로 그렇게 얘기를 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었는가. 말해줘서 고맙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자와 할아버지는 다르다는 걸 인식시키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구먼. 어쩌면 섹스 후에 조금 상황이 나아진 것도, 그런 이유때문일지도 모르는 것이고 말일세. 으음…."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턱에 손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다.

    아, 그런 생각도 있을 수 있는 건가.

    그야 할아버지랑 그런 짓은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아니. 그 이전에 사라는 나하고밖에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그런 방법으로 단기간에 사라양을 치료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구먼."

    디아나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면서 중얼거렸다.

    얜 가끔 이런 표정을 짓더라. 미간에 주름 만들지 말라고 항상 말 하는데도 그러네.

    내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미간을 눌러주자, 디아나가 조금 움찔하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표정을 폈다.

    "크흠. 아, 아무튼 그렇다면 자네와의 섹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라양의 상태는 점점 호전될 거라고 생각하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증상이 완치 되겠지.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걸세. 완치가 될 때까지 계속 붙어있을 수만은 없는 일 아니겠나? 그래서 이 몸은 치료를 하는 것보다 우선 사라양이 자네에게서 떨어질 수 있게 만들어보려고 하네."

    "응? 그런 게 가능해?"

    "잘 될지 안 될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긴 하네만, 사라양이 아까 말한 감정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네. 자네, 전에 분명 사도 인장의 위치를 옮길 수 있다고 했었지?"

    "응. 그런데."

    "그렇다면 지금 당장 사라양의 인장 위치를 옮겨주게. 사라양 스스로가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말일세."

    과연. 그런 건가.

    나는 디아나가 무슨 뜻으로 그런 걸 시켰는지 깨닫고, 곧장 사라의 사도 인장의 위치를 조절했다.

    엉덩이가 안 된다면 어디에 할까….

    지금은 성감대 표시 보다는, 디아나가 말한 대로 언제든 잘 볼 수 있는 곳이 좋겠지?

    나는 인장의 크기를 줄이고 사라의 손등 위에 인장을 자리 잡게 했다.

    덤으로 색도 희미한 탄 자국으로 보일 정도에서 커피색 정도로 진하게 만들어줬다.

    "자, 됐어."

    "…정말로 옮길 수 있었구먼."

    "…그러게요."

    내가 인장의 위치를 옮기자, 디아나와 사라는 조금 예상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니. 디아나 넌 네가 옮기라고 한 거잖아.

    설마 내가 거짓말한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왜? 디아나도 평범한 데로 옮겨줘?"

    "우…괘, 괜찮네…."

    내가 살짝 기분 나쁜 티를 내면서 말하자, 디아나가 두 손으로 자기 하복부를 감싸듯 가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역시 거기가 제일이지?"

    "…자네 악취미는 그렇다 쳐도, 이왕 처음 새긴 곳이니 말일세. 아무튼 사라양! 어떤가! 이 사도 인장은 만약 이 자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사라지는 구조일 걸세. 즉, 이 인장이 제대로 보이는 한, 이 자는 안전하다는 얘기가 되네. 이렇게 눈에 보이면 조금은 안심이 되지 않나?"

    "응…그러네요.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사라는 사도 인장의 위치가 성감대에서 평범하게 손등으로 옮겨진 것이 묘한 기분인지, 뭔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다시 손을 떼보게. 사도 인장을 제대로 의식하면서 말일세."

    "네. 그럼 어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한 번 내 손에서 손을 천천히 떼는 사라.

    시선은 쭉 자신의 손등에 고정시키며, 사라는 손을 점점 내게서 떼어냈다.

    그리고 완전히 손을 아래로 내렸을 때도, 사라는 아까와 같은 유아퇴행을 보여주지 않았다.

    "돼, 됐어요! 디아나! 이거라면…!"

    "오오! 멀쩡한 겐가?!"

    "네! 고마워요! 디아나의 조언대로였어요. 인장을 보면서 구원은 안전하다고 계속 되새기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리고 할아버지와 구원이 다르다고 해줬던 조언도요. 다 디아나 덕분이에요!"

    "아닐세! 자네가 멀쩡히 이 자와 떨어질 수 있다면 이 몸도 기쁘네!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일은…으읏."

    디아나는 살짝 촉촉해진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디아나야…. 너란 애는 대체…. 아니. 뭐 이해는 한다만 말이지.

    "자, 그럼 이대로 한 번 거리를 벌려보게! 분명 괜찮을 걸세!"

    "네!"

    기운찬 대답과 다르게, 사라는 내게서 거리를 벌리는 걸 주저했다.

    아무래도 그런 경험을 한 직후이다 보니, 역시 조금 두려운 마음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힘들면 내가 멀어질까?"

    "아니. 괜찮…우으…부, 부탁해…."

    내 질문에 언제나처럼 쿨하게 대답하려 했던 사라지만, 결국 약한 모습을 보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맡겨두라고. 힘들 땐 언제든 날 의지해도 되니까.

    "그럼…."

    내가 천천히 거리를 벌리자, 사라의 몸이 조금씩 움찔움찔 하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억누르곤 있지만,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고 싶다는 반응이었다.

    "사라양! 힘내게! 사도 인장을! 사도 인장을 의식하는 걸세! 저 자는 무사하네! 자네 할아버지도 아닐세!"

    "네, 넷!"

    디아나의 응원에 힘입어, 사라는 어떻게든 자신의 몸을 억눌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는 방문 앞까지 도착했다.

    "아예 난 나가볼까?"

    "음. 그렇게 하게."

    나는 디아나의 승인을 얻어서 밖에 나갔다.

    그리고 문을 닫자마자….

    "우에에에엥! 구워어어어어언!"

    …역시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디아나가 제안한 갖가지 방법을 시험해봤다.

    식사하는 동안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아이디어를 짜낸 건지 궁금할 정도로 많은 방법을.

    과연 지고의 대마법사님이 진심으로 방법을 찾으려고 하면 이렇다는 건가.

    다만, 그 어떤 방법도 결국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는 시점에서 실패로 끝났다.

    "이래선,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더 확실한 뭔가가 필요할 것 같구먼."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조금 안달 난 표정이 된 디아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늘 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같이 자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디아나. 눈에 보이는 거라면 사도 인장도 있잖아요. 그건 벌써 실패로…."

    "아니. 그게 아닐세. 이 자의 안전 같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이 자가 근처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거라는 말일세. 이 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효과가 없어진다는 것은, 이 자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생겼다는 것 아니겠나?"

    "그거야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걱정 말게. 이 몸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네. 사라양은 혹시 몸에서 절대 떨어뜨려놓지 않는 물건이 있는가?"

    "네? 절대 떨어뜨려놓지 않는 것? 그거라면…."

    사라의 시선은 자연스레 자신의 손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손이 아니라, 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에.

    언젠가 내가 셋에게 각자 하나씩 준 바로 그 반지였다.

    "…이 몸의 설명이 부족했구먼. 마법세공이 들어가도 상관없는 물건 중에 그런 꼭 가지도 다니는 물건은 없는가? 그 물건은 이 몸이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군요. 그럼…이건 어떤가요?"

    그렇게 말하고, 사라는 이번엔 품에서 호신용 나이프 하나를 꺼냈다.

    …쟤 아직도 저런 거 품에 지니고 다녔구나.

    하긴. 날 제외한 남자는 아직도 혐오하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앞으로 사라한테는 은신으로 접근해서 장난치는 것만큼은 절대 하지 말자고, 나는 이 순간 굳게 다짐했다.

    애정 어린 등짝 스매시라면 모를까, 배에 칼을 맞는 건 사양이야.

    "흠. 나이프인가. 흠. 손잡이 부근에 마석을 박으면 괜찮겠구먼. 어디 이리 줘보게."

    디아나는 사라에게 나이프를 건네받더니,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조그맣게 뭔가를 중얼거렸다.

    "흠. 자네들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게. 이 몸은 이 나이프에 마법세공을 하고 오겠네."

    그리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렇게 말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디아나의 손에 들린 나이프는 날 부분에 뭔가 룬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반대쪽 손에는 마찬가지로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마석이 들려있었다.

    "자네. 이 나이프와 마석에 각각 피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보게."

    디아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나이프와 마석을 내밀었다.

    "피를? 뭐, 상관없지만. 이게 뭔데?"

    나는 건네받은 나이프로 손에 살짝 피를 내고는, 마석과 나이프에 각각 피를 묻혔다.

    그러자 내 피가 흡수되듯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나이프의 날과 마석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자네가 100미터 반경 안에만 있다면 밝게 빛을 내는 마법을 새겼네! 이거라면 자네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자네가 가까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내 질문에, 디아나는 가슴을 쫙 펴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귀여운 녀석.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히 가슴을 펴고 말할 만큼 대견한 일을 해냈다. 과연 우리의 대마법사님.

    "오오! 과연! 확실히 그렇겠네! 하지만 그럼 이 마석은? 나이프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마석은 이 몸이 가지고 다닐 걸세!"

    …응? 잠깐만 기다려. 얘가 지금 은근슬쩍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말은 즉….

    처음엔 마냥 감탄만 했던 나였지만, 그제야 이 마법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이제부터 어디 있는지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는 거야?"

    "뭐야? 구원. 우리한테 들키면 안 될 만한 데라도 다니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한 번도 없었다고!

    레이첼 누님과의 식사? 그런 감정으로 식사 대접한 게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아무튼 이거, 즉 그때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앞으론 무조건 들키게 될 거란 거잖아.

    아니. 앞으로 그런 오해받을 짓은 아예 안 할 생각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사람에겐 사생활을 보장할 권리라는 게 말이야…너희도 내가 너희 위치를 알 수 있는 마법구를 가지고 다니면 싫잖아?"

    "응? 전혀 상관없는데."

    "부탁하면 만들어주겠네."

    "…그러신가요."

    은근슬쩍 항의를 해본 나였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내게 많은 걸 허용하고 있는 둘에게 그대로 격침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분명 나중에 뭔가 이걸로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데.

    아니. 확실히 사라가 내게 떨어지고도 유아퇴행하지 않도록 도움은 주겠지만 말이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풍령화객 // 여신강림 쿨은 한 달이 아니라 1년입니다.

    육식곰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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