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486화 (47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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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폭풍

    "뭐해. 빨리 싸."

    그래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냐면, 사라랑 같이 화장실에 들어와 있었다.

    원래 화장실 같은 데 올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야.

    그런 소동까지 벌여놓고 ‘역시 화장실에 안 갈래.’라고 해버리면 의심받을 거 아니야?

    그럼 방금 전에 그 소동까지 부렸던 건 뭐냐고. 사라를 떼놓고 어디로 가려고 했었냐고.

    그렇게 추궁당하면 할 말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마렵지도 않은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왔다는 얘기다.

    "적어도 문밖에서 기다리면 안 되냐? 어차피 문 앞에서 지키고 있으면, 내가 어디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오빠는 사라를 버리고 어디에도 가지 않을 테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싸기나 해."

    …이상하다. 분명 상식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건 내 쪽일 텐데, 내가 일방적으로 헛소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심지어 화장실 안에서, 볼 일 보려는 내 소매를 붙잡고 있는 애한테 이런 소릴 듣고 있어.

    "야. 진짜로 긴장 되서 안 나온단 말이야. 좀 나가라."

    "뭘 이제 와서. 어차피 구원이랑 나는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잖아?"

    사라는 당혹해하는 내 반응에,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즐기고 있는 건가? 날 놀리면서?

    그렇다면 아주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지.

    사라. 네가 지금 놀리려고 한 남자는, 네가 평소에 말하고 다니는 대로 바보에 변태라고.

    이런데서 놀림당하고 내가 상식적으로 행동할 거 같아?

    "그럼 싸봐."

    "뭐, 뭐어?"

    "어차피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라 상관없는 거잖아? 그럼 사라가 먼저 싸봐."

    나는 손가락으로 변기를 척 가리키면서 당당하게 요구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쌀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 당연히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사라의 대답을 듣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쌀 수 없다라. 어째서 쌀 수 없는 걸까요? 응? 사라양.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 나보고 빨리 싸라고 말하시던 분이. 심지어 같은 공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은근슬쩍 곁눈질로 내가 싸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까지 하려고 하셨던 분이. 응?"

    "과, 관찰은 안 했거든!"

    응. 마지막은 그냥 흥이 나서 덧붙여본 것뿐이야.

    반응을 보니까 진짜로 곁눈질하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럼 어디 저한테 제대로 설명을 해주실 수 있는 거겠죠? 왜 쌀 수 없는 건지. 응?"

    "그, 그게…자, 봐. 마렵지도 않은 걸 억지로 쌀 수도…."

    "오호라! 마렵지 않다! 아침 식사가 끝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화하면서 차를 몇 잔이나 마시고, 심지어 방금 전에도 비프슈트를 맛있게 드셨던 사라양은 소변이 전혀 마렵지 않다?"

    "그, 그래! 뭐 문제 있어?!"

    "그럼 기다릴게."

    "뭐, 뭐어?!"

    "마려울 때까지 기다릴게. 어차피 하루 종일 안 쌀 건 아닐 거 아냐? 하긴 어차피 내가 일을 볼 때도 따라온 사라니까, 당연히 사라가 일을 볼 때도 내가 붙어있어야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왕 왔으니 기다려줄게. 자, 언제든지 싸도 좋아. 난 방광이 터지는 한이 있어도 사라가 먼저 쌀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으, 으아아…아아…."

    날 따라 화장실까지 같이 들어온 주제에 정작 자기가 볼 일을 볼 때의 일은 상정하고 있지 않았는지, 사라는 말문이 막혀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 자아! 아님 뭐야?! 하루 종일 안 쌀 거야?! 어차피 오늘 종일 나한테 붙어있을 생각이잖아?! 아님 뭐야? 치사하게 자기가 볼 일 볼 때만 떨어질 생각이야?!"

    "우, 우아으으…. 으으읏…! 에잇!"

    내가 계속 몰아붙이자 나 소매를 잡고 있지 않은 쪽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당황하던 사라는, 결국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갑자기 자기 바지를 확 아래로 내려버렸다.

    아니. 아예 속옷도 같이 내려버린 건지, 사라의 예쁜 음부가 소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왓! 너 뭐하냐?!"

    "시끄러! 구원이 싸라고 한 거잖아!"

    당황하는 내게 아예 정색하고 그렇게 외친 사라는, 그대로 변기에 앉아서 자세를 잡았다.

    …진짜냐. 심지어 이럴 때조차 내 소매는 놓지 않고 있어.

    그리고 잠시 후, 쪼르르르하고 맑고 고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귀, 귀 막아!"

    "네가 소매 붙잡고 있어서 못 막아."

    한 쪽 귀는 막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내 소매를 놔주지 않았다. 이쯤되면 진짜로 중증이다.

    아니. 유아퇴행 증상을 보일 때부터 이미 충분히 중증이었지만.

    "으으으으…."

    사라는 한 손으로 내 소매를 놔주지 않고, 쪼르르하는 자신의 오줌 소리를 들으며 부끄러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소변을 본 후 반사적으로 떠는 것일…아니. 그건 아닌가. 느낌이 좀 달라.

    아무튼 그거 봐라. 부끄럽지?

    …실은 나도 부끄럽다.

    왜 사라가 이러고 있는 나까지 부끄러워야하는 거냐.

    심지어 사라는 뒤처리를 할 때까지 날 놓아주지 않고 한 손으로 완벽하게 끝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사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일을 봤으면 손을 씻어야 한다는 커다란 난관이.

    이것만큼은 두 손을 쓸 수밖에 없겠지.

    자, 사라. 어떻게 할 거냐?

    "…내 허리 감싸 안고 있어."

    완전히 뒤처리를 하고 바지를 올려 입은 사라는, 부끄러운 나머지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소, 손 씻을 동안 허리 감싸 안고 있으라고!"

    …진짜냐.

    "절대 놓으면 안 돼? 절대야?"

    "알았다니까."

    그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뒤에서 허리를 감싸 앉아도, 사라는 좀처럼 내 소매에서 손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정말이야? 놓으면 나 울 거니까?"

    일견 귀엽게 들리는 협박이었지만, 진짜로 울어버리는 걸 벌써 몇 번이나 목격한 나로서는 이 협박이 상당히 무섭게 다가왔다.

    "빨리 씻기나 해라."

    이 이상한 공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뒤에서 가만히 사라를 안아주며 그렇게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디아나랑 레이아에게 합류하고 싶어.

    하지만 이 공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자, 이제 구원이 쌀 차례야."

    손을 씻고 다시 내 소매를 단단히 잡은 사라가, 날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그렇게 말했던 거다.

    "아니. 난 사라가 싸는 것만 봐도 후련해서…."

    "헛소리하지 말고 싸."

    ‘난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같은 느낌으로 말해봤지만,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니. 정말로 별로 안 마렵…."

    "잔말 말고 싸."

    무섭다야. 뭘 그렇게 쳐다보냐.

    아까까지는 내 소매를 놓지 않기 위해서 빨리 싸라고 종용했다면, 지금은 완전히 내가 싸는 걸 보기 위한 목적으로 협박해오는 사라였다.

    혼자 부끄러운 꼴을 당할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아니. 하지만 말이야. 실은 내가 싸기 위해선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어."

    "또 뭔데?"

    "남자는 말이지. 여자랑 다르게 두 손으로 잡아서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하지만 네가 이렇게 소매를…우오옷!"

    내 변명을 듣자마자, 사라가 한 손으로 내 바지를 내려버리더니, 그대로 내 물건을 손으로 붙잡고 각도를 조절했다.

    사라야. 화끈하구나. 내 소매만 놓으면 유아 퇴행하는 주제에.

    "자, 이제 됐…왜 커지는 건데?"

    "…생리적 현상이야. 그래. 한 발 빼주면…."

    "죽여."

    "넵."

    나는 결국 마나를 이용해서 물건을 죽이고 사라가 보는 앞에서 소변을 봐야했다.

    남이 이렇게 조준까지 해주는 상태에서 싸는 거, 의외로 엄청 굴욕적이더라고.

    "후흐흐흥."

    그리고 각자의 부끄러운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고 보여준 후, 사라는 드디어 비겼다는 듯이 얼굴 표정을 풀었다.

    아니. 풀어진 정도가 아니라, 기분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젠장. 이 지는 거 싫어하는 유아 퇴행녀 같으니라고.

    충격이었던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화장실 갈 때 정돈 좀 놓고 있어도 괜찮잖아.

    혼자만 개운한 표정 짓고 말이야.

    때문에 나는 돌아가자마자 사라에게 소소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늦었구먼."

    "큰 거였어."

    "뭣…! 사, 사라양…?!"

    "바, 바보! 야!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디아나! 레이아! 그런 거 아니에요!"

    "사라가 소매를 안 놔줘서 힘들었어."

    "이 바보! 야!"

    "심지어 사라도 싸느라 늦었어."

    "잇…우에에엥…왜애? 왜 거짓말하면서 괴롭혀어? 사라, 나쁜 짓이라도 했어어?"

    "구원씨이…!"

    그리고 결국, 극도로 당황한 사라가 순간적으로 내 소매를 놓고 말았다.

    이후의 결과는 뭐, 상상하시는 대로다.

    젠장. 사라 녀석. 유아 퇴행 좀 했다고 진짜 어린애가 된 건 아닌데.

    어린애 좋아하는 레이아까지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서는.

    아무튼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나니, 슬슬 사라에게 본격적으로 심리 치료 같은 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사라가 계속 내게 딱 달라붙어 있으려고 하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계속 이러면 불편하니까 말이다.

    단적인 예로 오늘 밤은 레이아 차례잖아.

    사라의 상태가 이래서야 도저히 레이아와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사라. 지금부터 훈련이다."

    "훈련? 뭘?"

    내 소매를 잡고 다시 안정 된 사라에게, 나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내게 떨어지는 훈련 말이야."

    "왜? 쭉 이러고 있으면 되잖아?"

    하지만 사라는 애초에 훈련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내 소매를 단단히 붙잡은 채,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하지만 저런 반응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씀.

    "큰 일 볼 때도?"

    "훈련하자."

    그렇게 사라의 유아 퇴행 증상 치료가 시작됐다.

    도우미는 물론 같이 있는 디아나와 레이아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은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벌려본다든가?"

    치료하면 역시나 우리 중에선 레이아가 전문이지만, 과연 레이아도 이런 증상의 치료에 관해선 자세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라. 해볼래? 일단 1센티미터 정도만 떨어지는 걸로."

    "…응."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와 사라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전부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사라는 대답만 했을 뿐, 좀처럼 내 소매에서 손을 놓으려하지 않았다.

    "사라?"

    "아, 알고 있어. 잠깐만 기다려봐. 후우…후우…. 읏…우, 우으으으…우에엥."

    진짜냐. 이정도로 살짝 놓는 것도 안 되는 거냐.

    레이아가 제시한 치료법은 첫 번째 단계부터 실패로 끝나게 됐다.

    "이 몸도 자세한 건 결코 아니네만…심리적인 문제이니만큼 정신적으로 안정을 시키는 게 좋지 않겠는가?"

    다음은 디아나가 제시한 치료법.

    "…일리 있군. 좋아. 사라. 내 눈 똑바로 봐."

    "으, 응…."

    내가 정면에서 빤히 두 눈을 마주바라보자, 사라는 살짝 쑥스럽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두지 않겠다는 듯이 사라의 양 볼에 손을 가져다 대서 얼굴을 고정시키고, 날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껏 분위기를 잡아서 사라가 안심할 수 있을만한 말을 속삭였다.

    "들어봐. 사라. 난 어디에도 가지 않아. 쭉 네 곁에 있을 거야. 너의 든든한…."

    "옆에서 저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울컥울컥 하는구먼."

    "지, 진정하세요. 디아나씨."

    외야의 방해만 없었다면 좀 더 완벽했을 텐데.

    디아나 저건 자기가 제시한 방법이면서 말이야.

    뭐, 기분은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거기. 분위기 잡는데 좀 조용히 좀 해주시지. 크흠. 아무튼 중요한 건, 우리 몸의 거리가 조금 멀어진다고 해서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응."

    "그리고 난 성자야. 여신님이 사명을 맡기고 내려 보낸 성자. 웬만해선 죽거나 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너흴 놔두고 먼저 사라지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안심해. 오빠 믿지?"

    "…응. 믿어…."

    좋아. 중간에 방해가 좀 있기는 했지만,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거라면 할 수 있어.

    나는 사라의 뺨에 가져다댔던 한쪽 손을 살며시 내려서, 사라의 팔뚝을 잡았다.

    그 손은 사라가 내 소매를 잡고 있는 손이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팔뚝을 겹치듯 마주잡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팔뚝을 쓰다듬듯 손을 당기자 사라의 팔이 가늘게 떨리며 힘이 빠졌고, 소매를 잡고 있던 손이 떨어졌다.

    물론 아직 내 손이 닿고 있기 때문에 방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나는 반쯤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살며시 그 팔뚝에서 손을 떼는 순간….

    "우에에엥…구워어어언…놓지 마아아…."

    이런. 이것도 안 되는 건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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