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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85화 (46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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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폭풍

    "실비아랑 마틸다도…."

    "아, 아닙니다!"

    "…응?"

    당연히 실비아나 마틸다도 포함해서 다 같이 느긋하게 보내려고 했는데, 어째선지 실비아가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저, 저기, 그러니까 그게…!"

    "오늘은 네 분이서 느긋하게 보내세요. 저희도 그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렇죠? 실비아씨?"

    "넵! 바로 그겁니다!"

    당황하는 실비아를 마틸다가 바로 커버해줬고, 실비아는 마틸다의 말을 긍정하며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렇게까지 신경써줄 필요는…."

    어젯밤에도 너희 나간다음 우리끼리 다 같이 잤는데.

    아침에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알잖아?

    "그럼 저흰 볼 일이 있어서 이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비아와 마틸다는 둘이서 사이좋게 물러나버렸다.

    안 그래도 레이첼 누님이랑 먼저 키스해버린 것 때문에, 적어도 레이첼 누님에게 제대로 다시 고백하기 전까진 실비아와 마틸다의 관계를 좀 더 진전시키려고 했는데.

    전에 말했던 레이첼 누님과의 관계를 확고히 하기 위한 사전 작업 중 하나가 바로 그거였다.

    하지만 이래서야 오늘은 아무래도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저 둘이 모처럼 저렇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걸 또 붙잡고 늘어져서 사이를 진전시키려하는 것도 뭔가 좀 아니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오늘은 그냥 넷이서 오붓하게 보내기로 하자.

    그렇게 모처럼 넷이서 하루를 보내게 된 우리는, 정말로 별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그냥 차를 마시며 담소만 나눴을 뿐이었다.

    하지만 18일이라는 시간이 길기는 길었던 건지, 그렇게 대화만 하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주로 우리 애들이 날 찾는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말하고, 나는 일방적으로 들어주기만 했다.

    조난당한 18일에 관해서 나는 할 말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애들 상대로 할 말이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만약 사내새끼들만 모인 자리였다면 내가 18일 동안 얼마나 엄청난 모험담을 했는지 있는 말 없는 말 다 섞어가며 일장연설을 했겠지만, 얘들한텐 그랬다간 괜히 더 걱정만 끼칠 테고.

    특히 사라. 아까 내가 조금 떨어지려고 하니까 패닉상태에 빠졌던 걸 생각해 봤을 때, 그런 얘길 했다간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자네가 그 향유고래에 휩쓸린 후, 사라양이 얼마나 엉엉 울어 대던지."

    "후훗. 정말로요. 사라씨가 그렇게 흐트러지실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라씨도 구원씨가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는 거네요."

    "뭐, 뭣…! 레, 레이아!"

    "뭘 부끄러워하냐. 다 사실이잖아. 안 그래? 자, 사라야. 너무 좋아서 어절 수 없는 이 오빠 품에 더 안겨도…."

    "시, 시끄러워! 구원은 조용히 해!"

    내가 너스레를 떨자, 사라가 내 가슴을 찰싹찰싹 때려왔다.

    후하하핫! 다시 안 아프다! 무투가 레벨이 오르면서 내구 스탯도 다시 엄청 올랐거든!

    …덕분에 내구 스탯이 한 층 더 한계치에 가까워져서, 이제는 레벨을 올릴수록 내구 스탯이 공중 분해될 일만 남았지만.

    크흑. 그때 보너스 스탯을 내구에 퍼붓지만 않았어도….

    뭐, 우울한 얘기는 접어두고, 아무튼 보시는 바와 같이 사라는 일단 다시 멀쩡해진 상태였다.

    뭐, 겉보기만 그런 것처럼 보일 뿐이지만 말이다.

    실제로 이렇게 내 가슴을 찰싹찰싹 때리는 와중에도, 한 손은 내 옷 소매를 단단히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아마 이거 슬쩍 빼버리면 또 유아퇴행해서 엉엉 울지 않을까?

    "애초에 그렇게 따지고 보면 디아나도 레이아도 마찬가지였잖아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사라는 평소의 쿨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강한 척을 해댔다.

    "무슨 소리인가. 이 몸은 정확한 판단으로 자네들을 위까지 이끌지 않았나."

    사라의 반격에도 디아나는 당당하다는 듯이 가슴을 쭉 펴고 말했지만 말이다.

    "뭣이?! 디아나는 내가 조난당해도 냉정했다고?! 사, 사랑이 식은 거야…?"

    "왜 그렇게 되는 겐가! 그 대놓고 연기인 것이 보이는 충격 받은 표정 그만두지 않겠는가! 그땐 냉정하게 대처를 했어야 자네를 구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지 않았겠는가! 이 몸은 자네를 위해서 감정을 죽이고 정확한 판단을 한 걸세!"

    "그것도 다 나이…크흠. 그건 인정하지만, 위로 올라와서는 패닉 상태에 빠졌잖아요. 낭군님의 위기일세! 자네들 빨리 가게! 빨리! 빨리! 낭군님을 찾는 걸세!"

    아, 지금 나이 얘기 하려다가 접은 거지?

    아무리 사라라도 디아나의 나이까지 공격하는 짓은 도저히 못하겠는 모양이다.

    "그, 그 정도는 허용범위 아닌가?!"

    "허용범위 치고는 꽤나 반응이 격렬했는데요. 울기까지 하면서. 우에엥…낭구…낭군니미이이…."

    야. 넌 또 왜 이렇게 디아나한테 딜을 넣는 거야.

    하여간 조금만 부끄러워지면 딜 미터기를 터뜨려버리려고 한다니까. 누가 용사 아니랄까봐.

    꽤나 실감나게 디아나의 성대모사를 하는 사라를 보고, 나는 디아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살짝 사라가 잡고 있던 팔을 빼봤다.

    "낭구…엣? 우, 우에에엥! 왜애?! 왜애애?! 지금 왜 뺏어어?"

    그러자 디아나의 우는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하던 사라가 잠깐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짜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니. 그, 미안. 응."

    아니. 그러니까 반응이 너무 심하잖아.

    도망간 것도 아니고 그냥 팔만 뺀 거잖아.

    좀 침착하라고.

    그래도 대화하면서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조금 증상이 완화됐을 줄 알았는데.

    "구원씨. 아무리 장난이라도 해도 좋은 장난과 안 좋은 장난이 있어요. 지금 사라씨는 조금 불안정한 상태니까요. 조심하세요."

    그리고 레이아도 이번 내 행동이 심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날 꾸짖었다.

    "넵. 죄송합니다."

    나는 순순히 사과하고 사라의 손에 깍지를 끼고 잡아줬다.

    "훌쩍…진짜…이 바보가…."

    그러자 사라는 다시 점점 제 상태를 찾아갔다.

    바보라고 하면서 강한 척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코를 훌쩍이는 걸 보니 역시 나랑 떨어지는 게 상당히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라양. 이 몸이 뭐가 어땠는지 다시 한 번 말해보겠나?"

    "…우…."

    "훗."

    야. 디아나. 넌 내가 도와준 거잖아.

    오랜만에 이겼다고 우쭐해하지 마라.

    "한 때는 어떻게 되는가 싶었지만, 지나가고 나니 그런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구먼."

    하지만 우쭐한 건 잠시.

    디아나는 사라에게 추격타를 넣지 않고 그냥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지금 뭔가 엄청 좋은 얘기인 것처럼 마무리 지었지만 말이야, 전혀 좋은 얘기가 아니니까. 너랑 사라가 언제 웃고 떠들었냐? 서로를 치부를 무자비하게 후벼 파며 공격해댔지.

    "후훗. 그러네요. 게다가 구원씨의 얼굴을 볼 때 전보다 더 행복한 기분이 드니까요.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네요."

    천사님은 예외다. 천사님은 언제나 좋은 얘기만 하신다.

    저도 천사님 얼굴을 보니까 전보다 더 행복한 기분입니다.

    "레이아…. 응. 나도."

    "이, 이 몸도! 이 몸도 자네 얼굴을 보니 행복하네!"

    나와 레이아가 지그시 마주보자 위기감을 느낀 건지, 디아나가 끼어들어서는 분위기를 흐트러뜨렸다.

    얼굴이 새빨간 걸 보니, 일단 다급해서 말하긴 했지만 부끄럽긴 한 모양이다.

    그야 그렇겠지.

    저런 말. 우리 천사님이니까 가능한 거지. 보통은 부끄러워서 솔직히 입 밖으로 못 내뱉지.

    "아, 응. 그래."

    "자네 반응이 너무 다른 것 아닌가!"

    "원래 이런 건 후발주자한테 불리한 법이야. 그리고 디아나 얼굴은…."

    "뭐, 뭔가?! 이 몸의 얼굴이 어쨌다는 겐가?!"

    내가 이리 오라고 손짓하자, 디아나가 불안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디아나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사라나 레이아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네 얼굴은 심심할 때마다 영상으로 봤거든."

    뭐, 실은 더 그리워져서 한 번 보려다 제대로 못 보고 그 이후론 봉인해뒀지만.

    "뭐, 뭐, 뭣…!"

    귓가에 닿는 내 입김에 살짝 간지럽다는 듯 목을 움츠렸던 디아나는, 내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신세졌습니다."

    "무, 무슨 신세를 졌다는 겐가아아!"

    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합장하자, 디아나가 재빨리 내 가슴을 토닥토닥 때려대기 시작했다.

    "에이. 알면서."

    "자, 자네느은…자네란 사람으은…!"

    "디, 디아나씨? 왜 그러세요?"

    "수상해…."

    "자, 자네들은 몰라도 되네!"

    물론 디아나가 갑자기 이렇게 행동하니 나머지 두 사람은 의아해할 따름이었고, 그 때문에 디아나는 더 당황한다는 부의 스파이럴이 이어졌다.

    "아니. 실은 말이지."

    "자네도 그 입 다물게!"

    내가 장난삼아 말하려는 척을 하자 디아나가 한 손으로 내 입을 막고 나머지 손으로 내 가슴을 톡톡톡 두들겨댔다.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마침 점심 식사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러 바넷사가 찾아왔다.

    "후우. 디아나도 실컷 놀렸으니까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갈까."

    "자네느은! 자네느은!"

    "구원씨도 참. 디아나씨를 너무 귀여워하신다니까요."

    "이게 어디가 귀여워하는 겐가아?!"

    "일단 제일 어린 건 난데…."

    "뭐야. 사라. 질투해?"

    "그, 그럴 리 없잖아?! 바보!"

    "오빠라고 불러주면 사라도 놀려줄게."

    "그, 그러니까 필요 없다고 했잖아! 누가 오빠라고…."

    "훠이."

    "오빠아아! 사라 버리고 가지 마아아…!"

    그렇게 평소대로…아니. 사라는 평소랑 조금 다르지만.

    아무튼 떠들썩하게 떠들며, 우리는 우르르 식당으로 향했다.

    "어? 실비아하고 마틸다는?"

    식당에는 이미 마법사 협회의 사람들까지 전부 모여 있었지만, 딱 실비아와 마틸다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마틸다는 그렇다 쳐도, 실비아는 무조건 나보다 빠르니까.

    "두 분은 나중에 따로 드신다고 하십니다."

    "응? 둘 다?"

    "네."

    …그러고 보니 아까 아침에. 마틸다가 나가면서 저희는 볼일이 있어서 가본다고 했었지.

    그냥 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실비아랑 둘이서 볼 일이 있다는 뜻이었나?

    하지만 둘이서 대체 어떤 볼일이?

    물론 우리 파티원들은 나 빼고도 다들 사이가 양호하다.

    실비아는 그 태도 덕분에 처음부터 파티에 잘 녹아들었고, 마틸다 역시도 주위에 남자만 없으면 멀쩡한 성격이기 때문에 다들 두루두루 다 친하게 지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실비아와 마틸다가 둘이서만 대체 무슨 볼 일이 있다는 건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둘이 지금 뭘 하고 있는데? 나중에 따로 먹는다는 건, 일단 저택 안에 있기는 한다는 거지?"

    뭐, 애초에 마틸다가 함부로 어딜 나갈 형편도 아니고.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엄청나게 잘 알고 있다는 반응인데.

    "그럼 걔들 지금 어디에 있는데? 그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

    "…욕실에 계십니다."

    아아. 과연. 씻고 있는 중이었나.

    무슨 이런 시간에 목욕을 하나 싶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렇다면 굳이 바넷사가 뭘 하고 있는지 대답을 안 한것도 이해가 갔다.

    아니. 내가 무슨 욕실에 난입해서 이상한 짓을 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목욕중이라고 얘기해줬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나한테 말 못할 다른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 아무튼 알았어."

    뭔가 미묘하게 찝찝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일단 실비아와 마틸다 없이 식사를 했다.

    "너희는 먼저 가있어. 난 잠깐 화장실 좀…."

    그리고 아무래도 뭔가 찝찝함을 느낀 나는, 식사를 마친 후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살짝 실비아와 마틸다가 뭘 하는지 보고 오기로 했다.

    합법적으로 욕실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든가, 그런 생각을 한 게 결코 아니다.

    다만 식사까지 거르면서 둘이 이 시간에 목욕을 한다는 건 역시 이상하잖아?

    그래서 신경 쓰인 것뿐이야. 응.

    하지만 그런 내 시도는, 시작도 하기 전에 가로막혔다.

    바로 우리 쿨한 얼굴의 유아퇴행녀의 손에 의해.

    "…사라야. 나 화장실…."

    "응. 가면 되잖아."

    "…이걸 놔줘야 가지 않겠니?"

    "안 놔줄 거야. 신경 쓰지 말고 가."

    "…안 놔주면 화장실까 따라오게 될 텐데? 내가 볼 일 보는 모습도 보게 될 텐데?"

    "응. 난 신경 안 써."

    "난 신경 쓰거든?! 얍!"

    나는 사라가 방심한 틈을 타서 팔을 빼내고, 전력으로 욕실을 향해….

    "으아아아앙! 구원어언! 사라 두고 가지 마아아!"

    도망갈 수 없었다.

    "구원씨! 사라씨는…!"

    게다가 우리 천사님까지 저러시니 더더욱.

    "네. 죄송합니다."

    나는 결국 순순히 사과를 하고 사라에게 다시 내 옷 소매를 쥐어줬다.

    그러자 또 순식간에 울음을 그치는 사라였다.

    이 녀석…혹시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겠지?

    아니. 그건 아닌가.

    그 자존심 높은 사라가 연기로 이렇게 엉엉 울 수 있을 리가 없지.

    뭐,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면 그건 그거대로 더 곤란하지만.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어차피 나중에 풀 떡밥도 아니니 여기서 설명하자면, 게시판은 그냥 별 거 아닌 내용이었습니다.

    공고문에 구원 얼굴이 걸려있으니 사람들이 계속 떼가려고 해서 경고문을 붙여놓은 것뿐입니다.

    영상의 파급 효과에 관련된 짤막한 얘기였죠.

    아, 그리고 피임 마법은 디아나가 물건을 만지작 거린 시점에 이미 다시 건 상태였습니다.

    1인칭 시점이라 구원이 눈치를 못 채서 묘사가 안 된 것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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