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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보
"앗, 제, 제 정신도…흐읍. 네, 네엡! 위층에 계십니다. 여기입니다! 따라오십시오!"
실비아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몸에서는 조금도 떨어지려 하지 않은 채 몸을 끌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진동도 안 하고 있고.
역시 충격요법이 먹히기는 먹히는구나.
전에 섹스할 때 일부러 부끄러운 말을 하게 만드는 충격요법으로 내성을 키우려 했던 게 실패한 건, 그냥 충격이 작았기 때문이었단 건가.
좋아. 그럼 앞으로는 더더욱 큰 충격으로 실비아의 내성을 키워주도록 하자.
자신의 중대한 미래가 지금 이 순간 결정된 것도 모르는 실비아는, 내 몸에 딱 달라붙어서는 다른 애들이 머물고 있을 방으로 날 안내했다.
지금 얘한테 떨지도 않고 나랑 붙어있단 사실을 말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조금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과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마 우리 애들 중 누군가가 묵고 있을 방의 문 앞에 도착하자, 실아가 방문을 두드리며 다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 여러분! 구원님이! 구원님이!"
응? 여러분? 다들 같은 방에 머물러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실비아가 혼자 아래층에 있었던 것도 그렇고, 뭔가 하고 있었던 건가?
레이첼 누님 말로는 분명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하는 중인 것 같다고 했는데.
"실비아! 구원이…?!"
그리고 실비아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문이 엄청난 기세로 벌컥 열렸다.
반응 속도 엄청 빠르네. 뭐, 그만큼 날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엄청나게 걱정했을 얘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가슴 안쪽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위험해. 아까는 실비아 덕분에 잘 참았는데.
방심하면 눈물 나올 것 같아.
그간 고생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돌아왔다고."
나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문을 열고 나타난 사라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해줬다.
그러자 내 얼굴을 바라보며 딱딱하게 굳어있던 사라의 쿨한 눈매에 커다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매달리기 시작했다.
실비아도 그랬지만, 사라의 얼굴은 평소보다도 훨씬 더 수척해보여서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구워어어언!"
사라는 그대로 내게 달려들어서 내 목을 끌어안더니, 그대로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벼대며 울기 시작했다.
"그래. 나 구워어억…사, 사라야…모, 목은…잠깐만 놔줘…."
"싫어! 이제 절대 안 놔줄 거야!"
아니. 안 놔주면 내 목숨이 위험한데.
젠장. 눈앞에 주마등이 펼쳐지기 시작했어.
모처럼 그 역경을 헤치고 살아 돌아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
그래도 사라의 품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사, 사라양! 그만두게!"
"꺄악!"
"흐허억. 허억. 허억. 때, 땡큐…."
내 안색이 새파래지는 걸 보고 디아나가 마법을 쓴 건지, 사라의 팔이 활짝 펼쳐졌다.
나는 그 틈을 노려서 황급히 사라의 팔을 아래로 내려 내 가슴을 끌어안게 했다.
"구원씨!"
"당신!"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번엔 양 옆에서 각각 두 개의 커다란 봉우리가 내 팔을 품어왔다.
바로 레이아와 마틸다였다.
"구원씨…구원씨…구원씨…."
레이아는 내 뺨에 양 손을 가져다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게 만들더니, 그대로 내 얼굴 곳곳에 마구잡이로 키스를 해댔다.
마치 마킹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정말 당신 맞죠?"
그리고 마틸다는 마치 유령이라도 보는 것처럼 내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상태를 확인했다.
평소 같았으면 내 몸을 더듬는 순간 핑크빛 모드가 되어서는 표정이 몽롱하게 풀어졌겠지만, 지금의 마틸다는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진지하게 내가 어디 다친 곳은 없나 확인하는 눈치였다.
뭐, 레이아도 마틸다도 둘 다 사라와 마찬가지로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지만 말이다.
"…이제야 돌아온 겐가. 곧장 마을로 향한다고 말했던 주제에 늦지 않았나. 대체 이 몸들을 얼마나 기다리게 할 셈이었는가."
그리고 날 생명의 위험에서 구해준 디아나는, 조금 새초롬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디아나의 눈가는 이미 새빨개져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디아나가 입고 있는 로브 자락이 살짝 젖어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디아나는 자신이 최고 연장자인 만큼, 자신마저 울부짖으며 달려들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평소에는 제멋대로면서, 정작 이런 중요할 때는 항상 저렇게 연상 티를 낸다니까.
"디아나는 안 우는 거야?"
"우, 울 것 같나! 자네가 무사하단 사실은 길드 카드로도, 이 몸과의 수명 공유가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도 이미 알고 있었네! 게다가 이 사도 인장 역시, 자네가 죽으면 사라지는 것 아닌가! 자네가 무사하단 건 어느 점으로 보나 명백했네!"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로브를 젖히고 상의는 조금 들어 올리고 하의는 조금 내리면서 자신의 사도 인장 표식을 보여줬다.
디아나의 예쁜 하복부에는 여전히 옅은 색으로 선명하게 사도 인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또박또박 이론적인 얘기로 대꾸를 하면서도 저런 행동을 취하다니.
디아나 역시도 억지로 억누르고 있을 뿐 상당히 감정으로 되어있다는 증거였다.
"응. 그랬지. 그래도 걱정은 했잖아?"
"그,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그렇게 걱정했던 낭군님이 멀쩡하게 돌아왔어요. 자, 이래도 안 울 거야?"
"아, 안 울 걸세!"
그렇게 말하면서도, 디아나의 눈가에는 점점 눈물이 고여 가기 시작했다.
좋아.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군.
아니. 눈물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억지로 참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울어."
"자네는 그저 이 몸을 울리고 싶은 것뿐인 겐가! 으아아앙!"
결국 디아나는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진 모양이다.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내게 쪼르르 다가와서는, 사라와 내 사이에 파고들어서 내 복부를 토닥토닥 몇 대 때리더니 그대로 내 허리를 끌어안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내가 돌아온 게 기뻐서 우는 건지, 아니면 내가 괴롭혀서 우는 건지 분간이 힘들잖아. 뭐 딱히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아마 디아나도 내가 괴롭혀서 울었다는 핑계가 있으니 저렇게 맘껏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걸 테고.
그래. 최고 연장자로서의 역할은 잘 수행해줬으니까. 지금은 맘껏 울어.
"…다녀왔어."
나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다섯의 몸을 한꺼번에 꽉 끌어안고 말했다.
나 지금, 인생에서 제일 하렘 같은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 애들을 따라 조금 흘러나올 것 같은 눈물을,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통해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아까 디아나 상대할 때 참는 건 좋지 않다면서 울리지 않았냐고?
그거랑 이건 상황이 틀리지.
그냥 남자로서 울 수 없다는 마초 같은 생각 때문에 울지 않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울어버리면, 그동안 그렇게 고생했던 거냐고 우리 애들이 괜히 더 걱정할 거 아냐.
최대한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최대한 멀쩡한 척 하는 게 좋다는 거다.
아무튼 그렇게 한동안 끌어안고 울고 다독이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너희 여기 모여서 뭘 하고 있는 건데? 다 같이 한 방에서 묵는 건 아니잖아? 듣기론 너희 지금 강제로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 그걸 어디서…!"
"다 아는 수가 있지. 그래서 뭐하고 있었는데?"
"그냥 자네의 구조 계획을 조금 더…."
역시나.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어.
저기 테이블 위에 4계층의 지도가 펼쳐져있기도 했고.
"날 위해서 그러는 건 알지만, 쉴 땐 쉬어야지. 다들 얼굴 꼴이 말이 아닌 거 알아?"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품에 안겨있는 사라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원래 젖살 같은 거 없이 어른스럽고 쿨한 얼굴의 사라였지만, 그 뺨은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도 더 홀쭉하게 느껴졌다.
"구원. 나, 꼴이 말이 아니야?"
"뭐, 그래도 예쁘기는 하지만 말이야."
조금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 사라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사라였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기는 정말로 심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완전히 유아퇴행…까지는 아닌가. 원래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참고로 아까 절대 놔주지 않겠다고 했던 말은 아직도 유효한 건지, 그 두 팔은 내 몸에 단단히 둘러져 있었다.
"아무튼 나도 무사히 돌아온 거고, 이제 너희도 조금 쉬는 게 어때? 그동안 전혀 쉬질 못한 거지?"
"하, 하지만 구원씨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시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신 건지 자세히 알고 싶어요. 결국 저희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듣고 구원씨가 겪으신 고행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고 싶어요. 그 정도는 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손을 두 손으로 포개듯 꼬옥 잡아왔다.
굳은 의지로 빛나는 그 눈동자를 보니, 아무래도 전부 얘기해주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레이아씨. 이 사람도 지금 막 돌아와서 피곤할 테니…."
"아, 아앗! 그, 그렇네요. 죄송해요. 그런 당연한 일에 신경을 못 쓰다니…."
하지만 마틸다의 지적에, 레이아는 곧바로 뜻을 굽히고 정말로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니. 난 전혀 안 피곤해. 방금 전까지 푹 자다왔고. 알았어. 얘기해줄게.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크게 고생은 안 했지만 말이야."
나는 그동안의 여정을, 대충 좋은 부분만 추려서 설명을 해줬다.
직업 레벨을 효과적으로 올리는 법을 알아내고, 그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몬스터를 학살하고 다니며 마을 근처까지 접근.
그때 레이첼 누님에게 발견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말이다.
"그런 고로 고생은 전혀 안 했어. 그냥 조금 오래 던전에 있었다는 느낌밖에 없을 정도야."
그동안 했던 고생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만, 우리 애들이 괜히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조금 거짓말을 하는 게 훨씬 났다.
특히 몬스터 허파를 말동무 삼아서 가지고 다녔단 얘기라도 해봐라. 아주 그냥 난리가 날 거다.
그리고 레이첼 누님에 관한 얘기도 대부분 생략하고 그냥 발견되어서 여기까지 안내받았다는 얘기만 했다.
레이첼 누님과의 관계에 대한 얘기는 지금 할 얘기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실비아나 마틸다는 첩이니 뭐니 하는 얘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얘네 둘 때문에 하렘이니 뭐니 바보 같은 얘기까지 꺼내면서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허락받았던 건데, 결국 얘네 둘 보다 레이첼 누님과 먼저 키스를 하게 됐네.
나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았지만, 역시 레이첼 누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그때의 나는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를 느껴서 조금 감정적이 됐었던 건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이첼 누님과 더 깊은 관계가 되고 싶다는 마음엔 변함이 없고, 키스를 한 것도 후회는 하지 않지만 말이다.
다만 실비아나 마틸다 보다 먼저 키스를 하게 된 게 조금 미안할 뿐이었다.
"아무리 직업 레벨이 올랐다지만 잘도 무사했구먼. 식물형 몬스터는 자네와 상성이 좋지 않았던 것 아닌가?"
"아, 응. 그건 그냥 지표면 근처에 다가가지도 않는 걸로 해결했어. 어차피 나 혼자면 굳이 지표면에 갈 이유도…."
"쿠흐으응…."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실비아와 마틸다가 심각하게 죄송스런 표정을 지으며 움츠러들었다.
"아, 아니. 너희가 짐이라는 얘기가 아냐. …반응이 좀 과하지 않냐?"
"…두 분은 수영을 못하셔서 구원씨를 수색하는 작업에도 따라가지 못하셨으니 까요. 마틸다 추기경님은 그나마 저희가 중간중간 마을로 돌아왔을 때 피로회복 마법을 걸어주며 도움을 주셨지만, 실비아씨는…."
당황하는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레이아가 그렇게 속삭여줬다.
과연. 실비아가 혼자 식당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냐.
"괜찮다니까. 결국 이렇게 멀쩡했던 거고, 수영은 배우면 그만이지. 신경 쓰지 마."
"흐야아앗! 네, 네헷!"
내가 실비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다독여주자, 실비아가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아, 이제 다시 진동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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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닭구 // 네. 아무래도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 편이 어울릴 것 같아서 돌고래의 허파를 상상하고 썼습니다. 던전에 있는 건 그냥 물고기가 아니라 몬스터인 만큼 대형 어류도 있으니 부레였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