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481화 (46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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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일보

    "세이비어스 클랜의 여러분들이 오셔서 구원씨의 구조 요청을 한 거예요. 길드에서는 바로 구조대를 파견했고, 저도 걱정이 되서 내려와 구원씨를 찾아다니다가 막 발견한 상황이고요."

    그 정도는 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누님이 내 구조를 위해서 내려왔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아무리 요즘 좀 서먹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그 원인은 누님이 내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고.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이 누님은 자기가 담당하는 모험가들의 안전을 각별히 신경 쓰는 모양이니까 말이다.

    3계층에서도 그 수인족 파티를 위해 자기 자신이 위험에 빠져가면서까지 구조 활동을 했고.

    하지만 내가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물어본 건, 그런 설명을 바란 게 아니었단 말이지.

    뭐, 누님의 말을 듣고 그 전에 먼저 질문할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러고 보니 우리 애들은요?! 우리 애들은 무사한 건가요?! 길드에 알렸다는 걸 보니 일단 돌아는 간 모양인데, 다들 어디 다친데 없이 멀쩡해요?"

    그래. 원래는 누님을 보자마자 이 질문을 제일 먼저 했어야 했는데.

    아무리 눈 떠보니 누님과 섹스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고는 하지만, 우리 애들의 안부를 물어볼 생각을 못 하다니.

    오랜 표류 생활로 나도 정신이 꽤나 피폐해지긴 한 모양이다.

    뭐, 잠들기 직전에 펄슨…허파 덩어리를 잃어버려서 충격 받기도 했었고.

    "네. 다들 몸은 괜찮으세요. 다만 구원씨가 던전에서 혼자 남겨진지 벌써 2주일이 넘었으니까요. 길드 카드를 통해서 살아계신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다들 불안했던 모양이에요. 다들 체력이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마법사 협회의 학파장님들과 같이 여기 4계층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모양이에요. 방금 전 낮에도 마을에서 우연히 얼굴을 마주치게 됐는데, 다들 식사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으시는 건지 무척이나 초췌해 보이시더군요. 그나마도 계속 구원씨를 찾겠다고 주장하는 걸, 마법사 협회 분들이 억지로 뜯어말리면서 쉬라고 설득하는 중이었어요."

    초조하게 질문을 던진 내 모습에 레이첼 누님은, 살짝 씁쓸해하면서도 자세하게 대답해주셨다.

    그런 표정하지 마세요. 돌아가면 누님과의 관계도 제대로 확실히 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가. 역시나 그렇게 걱정을 끼쳐버린 건가.

    하긴 반대 입장이었으면 나도 그랬을 테니까.

    그래도 일단은 다들 별 탈 없이 무사히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모양인지라, 그것 하나만큼은 크게 위안이 됐다.

    그럼 이제 어서 빨리 돌아가서 얼굴을 보여주기만 하면 해피엔딩이라는 거군.

    "…잠깐만요. 누님. 방금 낮에 우리 애들 얼굴을 봤다고 하셨어요?"

    "네. 그 반응을 보니 모르시면서 여기까지 오신 모양이네요. 구원씨. 여기 4계층의 마을 근처에요."

    "네에?!"

    뭐 이런 우연이!

    마을을 찾는 건 진작 포기하고 3계층 입구를 빠져나갈 셈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설마 마을 근처까지 왔을 줄이야.

    게다가 만약 레이첼 누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근처에 마을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거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기적이라고나 할까.

    "과연. 그래서 누님 혼자서 여기까지 오신 거였군요."

    "그게 아니더라도 원래부터 전 혼자서 수색을 하기는 했지만요. 3계층에서는 아이스 골렘과의 상성이 좋지 않아서 고전했지만, 여기 몬스터들은 제 정령마법과 상성이 무척이나 좋으니까요."

    하긴. 이 누님도 레벨이 낮은 게 아니고, 그러고 보니 3계층에서도 리자드 맨 같은 건 한 방에 처리하기도 했지.

    예전 구조 의뢰를 하던 도중 크게 부상을 입은 것도, 정신을 잃은 수인족 파티를 탱커도 아닌 누님이 혼자 보호하려다가 당한 거라고 들었고.

    아무튼 마을이 가깝다면 잘 된 일이다.

    누님의 얘기를 들어봤을 때, 우리 애들도 마을에서 쉬고 있을 확률이 크니까 말이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다가, 누님과 내 하반신이 여전히 이어져있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누님."

    "네?"

    "사실 아까 했던 질문의 정확한 대답을 못 들었는데요. 결국 저희는 왜 섹스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앗! 으, 으응! 이, 이건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누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허리를 띄워서 내 물건을 빼내고는, 두 손을 파닥파닥 손사래 치면서 말했다.

    "아뇨. 추궁하는 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전 오히려 좋았어요. 그냥 이유가 궁금한 것뿐이에요."

    "그, 그게! 이런 곳에서 쓰러져 계시니까, 정말 어떻게 된 줄 알았다고요! 구원씨는 이러면 회복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전…! 오히려 감사 인사라도 듣고 싶을 정도에요!"

    "아아…네. 감사합니다."

    과연. 그렇게 된 거였나.

    나 어디 다친 데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잠들기 직전에 잡았던 식물형 몬스터도 잡는 게 오래 걸렸다 뿐이지 크게 데미지를 입거나 하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자던 중에 습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기절하듯 잠들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습격을 받았으면 일어났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뭐, 레이첼 누님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거의 20일 가까이 던전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채 발견된 거다.

    어디에 어느 정도로 상처를 입었는지 확인하기 전에, 일단 재빨리 긴급처치를 할 생각부터 들었겠지.

    "…서, 설마…필요 없었던 건가요?"

    내 반응을 보고 대충 상황을 파악했는지, 누님이 조금 새빨개진 얼굴로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사람 마음을 기가 막히게 읽어내신단 말이야.

    이것도 안내원의 능력인 걸까?

    "아뇨…전혀 필요 없었다고는…피로도 풀렸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됐고…."

    "하읏…차라리 그냥 필요 없었다고 해주세요…."

    내가 커버를 쳐주는 게 오히려 더 부끄러웠던 건지, 레이첼 누님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도움 됐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잠들기 전에는 몬스터 허파에 공기를 불어넣고 대화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 얘기는 더 하지 않는 게 레이첼 누님의 정신 건강상 좋을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잘도 생각해내셨네요. 제가 이걸로 회복된다는 거."

    때문에 나는 화제를 살짝 돌리기 위해 그렇게 말하며 옆에 놓인 하의와 갑옷을 다시 착용했다.

    참고로 내 갑옷과 하의는 벗겨져 있었지만, 레이첼 누님은 딱히 옷을 벗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언젠가 한 번 봤던 노출도 높은 옷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속옷만 살짝 옆으로 비끼고 삽입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 엄청나게 엘프 다운, 나뭇잎을 엮어서 만든 것 같은 그 옷 말이다.

    안 그래도 섹시한 차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저 옷만 보면 누님이 내 위에 올라탄 장면만 생각날 것 같아.

    "그거야…생각 못 할 리가 없잖아요? …저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게나…."

    누님은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 화제 역시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하긴 그도 그런가. 그런 일을 겪고도 기억 못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리고…."

    "응? 또 뭔가 있나요?"

    "사실 세이비어스의 클랜원 분들도 조사대 전원에게 그 사실을 알렸거든요. 만약 구원씨를 발견했을 때 상태가 위급해 보인다면 이런 방식으로 회복시켜주길 부탁하면서요."

    우리 애들이 그렇게까지….

    "누님. 죄송한데 바로 마을까지 안내해주실 수 없을까요?"

    "죄송하기는요. 바로 가죠. 두 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예요. 따라오세요."

    레이첼 누님에게 고백까지 해놓고 확실히 관계 정리 같은 걸 하지도 않는 건 소홀히 하는 감이 있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나 지금 내가 최우선시해야 할 건 우리 애들에게 무사한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나는 누님의 멋진 뒤태를 따라서 4계층의 마을로 향했다.

    누님이 말씀하신 대로, 누님의 정령마법과 이 계층의 몬스터들은 상성이 무척이나 좋은 모양이었다.

    누님은 물과 바람의 정령을 다루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혼자 다니면서 엄청나게 성장한 나 역시 식물형 몬스터가 아니라면 순식간에 처리할 능력이 있었고. 아니. 설령 식물형 몬스터라도, 지금 내 레벨에 걸 맞는 단검이라도 하나 있으면 쉽게 처리가 가능할 거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몬스터의 방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수준으로 쭉쭉 나아갔고, 누님이 말했던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4계층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각 계층에 있는 마을들은 저마다 텔레포트 마법진 말고도 계층 특색에 맞는 마법이 같이 발동되고 있어서 나름 특징이 있었다.

    2계층의 마을은 주변 기온을 조금 떨어뜨려주는 마법이 걸려있었고, 3계층의 마을은 주변 기온을 상승시켜주는 마법이 발동되어 마을에만 눈이 없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4계층의 마을은, 마을 전체를 거대한 공기 방울이 덮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속의 마을이라고 하니, 혹시 다들 마스크를 착용한 채 물속에서 지내는 건가 싶었는데, 저렇게 비용이 엄청나게 들 것 같은 마법으로 해결을 본 모양이었다.

    뭐, 덕분에 그 규모는 3계층의 마을보다도 한층 더 작았지만 말이다.

    "여기가 4계층의 마을…."

    설마 이런 식으로 여기에 오기 될 줄이야.

    감개무량…이라고 표현하는 건 조금 아닌 것 같고, 뭐라고 할까. 신기한 기분이었다.

    "아마 동료 분들은 저기 보이는 저 건물에 숙박하고 계실 거예요. 이 계층의 유일한 여관이거든요. 구원씨가 행방불명이 된 이후로 한 번도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고 들었으니 확실해요."

    "넵! 감사합니다!"

    마을에 도착한 누님이 가장 몇 안 되는 건물 중 가장 큰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님의 말을 들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그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주인장! 여기…."

    "구, 구, 구, 구…."

    들어가자마자 여관 주인을 불러 우리 애들이 묵고 있는 방을 알아내려고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식당도 겸하고 있는 여관의 1층에 실비아가 초조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를 들은 실비아는 목이 꺾이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이 쪽으로 돌리더니,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마치 화면을 정지라도 시킨 것처럼 우뚝하고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는 비둘기라도 된 마냥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구원니이이이임! 으아아앙! 구언, 흐그윽…구원니이이임!"

    그리고는 내 가슴에 태클이라도 하듯 달려들어서는, 내 몸을 꽈악 껴안고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주변 시선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큰 목소리.

    갈비뼈가 삐걱삐걱하고 울릴 정도로 격렬한 포옹.

    힘 조절도 안 하고 이렇게 꼬옥 껴안은 채 펑펑 우는 모습을 보니, 실비아가 날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던 건지 그 마음이 절실히 전해져왔다.

    "그래. 그래. 네 구원님 여기 있다."

    나도 실비아의 몸을 마주 안고는, 그 등을 톡톡 가볍게 두드려줬다.

    그러자 실비아는 내 가슴에 볼을 마구 비벼대면서 더욱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오랜만에 실비아의 얼굴을 보자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는 했다.

    다만 실비아의 반응이 워낙 격렬하다 보니, 오히려 조금 차분해진다고 할까.

    실비아야. 나 갑옷 입고 있는데. 그렇게 볼 비비고 있으면 아프지 않니?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는 차분해졌다.

    뭐, 다른 사람들도 있는 곳에서 꼴사납게 우는 모습은 안 보였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흐그윽…구원님…여기까지…흑…혼자서 돌아오신 겁니까아?"

    그렇게 한동안 펑펑 울던 실비아는, 겨우 고개를 들고는 날 쳐다보면서 여전히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렇게 질문했다.

    "아니. 여기 레이첼 누님이…."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돌아봤지만, 레이첼 누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따라오시지 않은 건가? 우리 애들과 재회를 만끽하라고 배려해주신 건가?

    그렇게까지 신경써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실제로 누님이 없었으면 난 여기 오지도 못했을 거고.

    "자세한 얘기는 다들 모인 자리에서 해줄게. 다른 애들도 여기 있는 거지?"

    나중에 레이첼 누님에게는 따로 또 감사의 인사를 하기로 하고, 나는 일단 나머지 애들부터 만나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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