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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77화 (46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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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일보

    "애초에 구원은 이 이상 암살자 레벨을 올리지 않는 게 좋으니까."

    "응? 어째서?"

    "어차피 암살자 레벨이 높아져봤자, 은신술로 이상한 짓밖에 안 할 거잖아?"

    "…그,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했는데?"

    과연 사라. 날 너무 잘 알고 있어.

    내가 이걸로 누굴 강제로 엿보거나 덮치거나 할 것도 아니고 말이야.

    …우리 애들한테 하는 건 강제가 아니라 합의잖아?

    그냥 조금 플레이의 폭이 넓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 그렇구먼! 자네도 그냥 평범하게 싸우게나! 평범하게!"

    내 은신술 레벨이 올라가면 제일 플레이 폭이 넓어질 당사자께서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당황해서는 필사적으로 평범한 플레이를 강조했다.

    하지만 디아나야. 너무 그렇게 필사적이 되면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란다.

    "…암살할 때만 아이젠 벗고 할까?"

    "그, 그만두지 못하겠나?!"

    디아나의 맹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펭귄 무리와 조우할 때마다 일단 암살을 시도해봤다.

    과연 아이젠을 벗는 건 농담이었지만 말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는 실패했지만, 가끔 성공할 때도 있어서 암살자 레벨은 착실히 올릴 수 있었다.

    내 암살자 레벨에 비하면 펭귄의 레벨이 꽤나 높은 편이라 잘 오르더라고.

    아무튼 그렇게 펭귄을 처리해나가면서 우리는 착실히 성장을 해나가며 얼음 동굴을 답파해갔다.

    지도 작성은 상당히 순조로웠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연 3.5 계층 정도 되니 코볼트 동굴을 탐험할 때처럼 속도가 빠르지는 못했다.

    아마 이번에 돌아가기 전까지 4.5계층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는 건 무리겠지.

    뭐, 만약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레벨 문제로 바로 갈 수 없겠지만.

    디아나가 말했던 대로 여기는 직업 레벨을 올리기에 매우 훌륭한 사냥터이기도 하니, 만약 길을 찾더라도 한동안은 여기서 직업 레벨을 올리는 작업을 계속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머? 저기 펭귄씨는 다른 펭귄씨보다 조금 더 키가 크시네요?"

    "저, 저건 저거대로 조금 귀엽네요…."

    그렇게 반쯤 이번 탐험 중에 길을 찾는 건 포기한 채 진행하고 있자니, 멀리서 다른 펭귄보다 조금 더 덩치가 큰 펭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마틸다. 그렇게 싸웠으면서 아직도 이놈들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래도 마틸다의 안에선 펭귄과 싸울 때와 그냥 펭귄을 감상할 때의 감정을 분리시켜놓은 모양이다.

    …그건 그거대로 꽤나 위험한 거 아닌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걸 사냥하는 거잖아?

    아니. 펭귄의 귀여움에 빠진 덕분에 던전의 마력에도 꽤나 신경을 덜 쓰게 된 것 같으니, 그렇게 따지고 보면 그런 사고방식이 도움이 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거기에는 레이아의 감상대로 일반적인 펭귄보다 조금 더 큰 펭귄이 한 마리 자리 잡고 있었다.

    뭐, 크다고 해봐야 고작 머리끝이 내 가슴 언저리에도 오지 않는 정도였지만.

    눈대중으로 봤을 때 대략 1.5미터 정도?

    자세히 보니 크기뿐만 아니라 생긴 것도 일반적인 펭귄과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 달랐다.

    일명 황제 펭귄이라는 녀석일까?

    "혹시 저 녀석이 이곳의 페이크 보스인가?"

    얼음동굴도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있어서 꽤나 복잡했다.

    우리는 어차피 여러 번 오게 될 거란 생각에, 천천히 여러 루트를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일단 한 쪽 루트만을 쭈욱 뚫고 가는 방식으로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일단  깊이 들어갔다가 나오고, 다음 방문 때는 또 다른 루트를 쭈욱 파고들어가는 방식으로 모험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얼음 동굴에 들어 온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때문에 적어도 깊이만 놓고 본다면, 페이크 보스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까지 깊은 곳에 들어오기는 했었다.

    다만, 저 놈을 페이크 보스라고 하기에는 너무 위압감이 없다고 해야 할지….

    전에 크기만 크다고 보스답다는 게 아니라는 둥 떠들어댄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보스치고는 너무 작잖아.

    아니. 그야 물론 오는 중에 만났던 초월종들도 일반 펭귄들과 몸집이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말이야.

    뭐, 여기서 고민하고 있어봤자 소용없나. 일단은 가 보자.

    만약 놈이 정말로 페이크 보스라면, 저 방 어딘가에 거대 마석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거다.

    "저기 봐. 거대 마석이야."

    그리고 역시나, 놈이 있던 방의 한쪽 벽면에는 예상대로 거대 마석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흠. 자네. 어쩌겠나? 지금 녀석을 상대할 겐가?"

    놈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직 전투를 피하고 물러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로 디아나는 내게 판단을 맡겨왔다.

    "음…."

    디아나가 내게 굳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잘 알겠다.

    아마 디아나는 지금 싸울 필요가 없는 상대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확실히. 4계층으로 향하는 길보다는 4.5계층으로 이어진 길을 찾는 게 우리 진짜 목적이고, 직업 레벨을 올리는 것도 아직 4계층보다는 이곳이 훨씬 더 좋은 사냥터였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일단 놈을 해치우고 4계층에 가는 것도 나쁠 게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해보면 이 소규모 계층에서 다음 계층으로 이어지는 출구는 그 계층의 중간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즉, 저길 통해 나가면 아마 4계층의 중간.

    그 말은 즉, 정석대로 3계층에서 4계층으로 가는 것보다 4계층의 마을이 가까울 거라는 말이었다.

    아직 4계층의 텔레포트 마법진에 등록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4계층의 텔레포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4계층에서 여기로 오는 게 3계층에서 오는 것보다 더 편할 거고 말이다.

    "싸우자. 일단 한 번 4계층의 텔레포트에 등록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흠. 그렇구먼."

    중간과정을 완전히 빼먹은 내 말로도 충분히 알아들은 건지, 디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과연. 이심전심이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계층의 주인들과는 다르게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구먼. 조심하는 것이 좋겠네. 저런 녀석일수록 오히려 위험한 법이니 말일세."

    디아나는 신중한 얼굴로 내게 조언을 했다.

    하긴. 크기라는 건, 그것만으로 힘이다. 덩치가 큰 놈은 그냥 주먹만 휘둘러도 범위 공격이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기가 작은 저 녀석은 저 크기로도 계층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는 건가.

    나는 디아나의 조언을 가슴 깊숙이 명심하면서 은신술을 쓰고 천천히 녀석에게 접근했다.

    "꾸에엑?"

    물론 내 은신술 따위, 계층의 주인 앞에선 곧바로 들통 났지만 말이다.

    "쳇! 역시 안 되나! 얘들아! 언제나처럼 내가 어그로를 끌게! 무지개 색 총공격이다!"

    나는 곧장 성역선포를 사용했고, 그와 동시에 황제 펭귄이 내게 미끄러져 왔다.

    …빠르다!

    그리고 그 공격은 역시나 크기가 작은 만큼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듯 보통 펭귄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빨랐다.

    아직 가속도가 붙지도 않았는데 불구하고 일반 펭귄들의 최고 속도를 상회하는 속도로 쏘아져오는 펭귄 미사일.

    척 봐도 그냥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그 모습에, 나는 막을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황급히 몸을 뒤틀어 피했다.

    쿠과과광!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놈이 장점으로 삼는 건 스피드뿐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날 비껴간 펭귄 미사일은, 그대로 벽을 뚫고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엣?! 잠깐! 저래선 공격이…!"

    "당황하지 마! 어차피 놈도 우릴 공격하기 위해선 다시 튀어나올 거야! 그때를 노려!"

    예상외의 사태에 당황하는 사라를 진정시키고, 나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설마 벽을 뚫고 가서 그대로 모습을 감출 줄이야.

    일단 성역 선포의 영역 안에 있었으니 다시 날 공격해오긴 하겠지만, 이렇게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야 대책을 할 방법이 없었다.

    어디서 다시 튀어나올지 모를 펭귄 미사일에 잔뜩 긴장하며 몸을 굳히고 있자, 이내 쿠콰콰콰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공간이 진동한다고 할까…정확히는 바닥이…!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황급히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펭귄 미사일이 내가 있던 자리의 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아슬아슬했다. 살짝 다리가 스쳤다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놈이 스친 다리 방어구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찢겨져 나갔다.

    그렇게 기세 좋게 솟구쳐 오른 놈은, 그대로 천장을 뚫고 다시 한 번 모습을 감췄다.

    아무래도 놈을 잡기 위해서는, 모습을 보이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에 공격을 명중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모양이다.

    진짜냐. 피하면서 동시에 맞추라니. 이게 무슨 슈팅 게임도 아니고.

    "흠. 과연. 그런 겐가."

    아마 디아나조차도 이런 녀석은 처음 보는 걸 텐데.

    디아나는 묘하게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양. 공격은 사라양에게 맡기고 이 몸은 보조에 집중하겠네."

    그렇게 말하고는, 디아나는 엄청난 양의 마나를 한꺼번에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 안 전체에 엄청난 광풍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또 다시, 쿠콰콰콰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벽에서 펭귄 미사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방 안을 휘몰아치고 있는 광풍에 휩싸여, 놈의 속도가 아까보다는 훨씬 느려진 상태였다.

    과연. 디아나는 이걸 노렸던 건가.

    나는 곧장 놈을 향해 성자의 파동을 마구잡이로 날렸다.

    하지만 굳이 내가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앗!"

    콰아아앙!

    황제 펭귄의 속도가 느려진 때를 놓치지 않고, 사라의 화살이 놈에게 날아들었던 거다.

    디아나가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공격보다도 마나를 듬뿍 머금은 화살이.

    파란 빛이 강렬하다 못해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강렬한 빛의 화살은 황제 펭귄의 몸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지나가서도 멈추지 않고 벽을 뚫고 지나가며 그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걸로 전투는 끝이었다.

    "흠. 역시 예상대로 방어력은 별 거 없었구먼."

    그리고 그제야 방 안에 휘몰아치는 광풍을 멈춘 디아나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듯 주저앉으면서도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너 괜찮냐? 마나 엄청 쓴 거 아냐?"

    "뭘 이 정도가지고 그러나. 이 몸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겐가. 괜찮네. 조금 쉬면 계속해서 탐험이 가능해질 정도로는 회복될 걸세."

    전투가 끝나자마자 주저앉은 주제에 하여간 잘난 척은.

    나는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번엔 사라를 칭찬했다.

    "사라도 잘 했어. 장난 아니던데?"

    "그렇지? 구원도 맨날 날 놀리기만 하면 언제 한 번 크게 다칠지도 몰라."

    "……."

    "노, 농담이야. 내가 그런 공격을 구원한테 할 리가 없잖아."

    알아. 그냥 장난 좀 친 거야.

    순간적으로 정말 오싹해졌던 거랑은 별개로 말이야.

    그렇게 페이크 보스와의 전투를 끝내고, 우리는 일단 그 자리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사라나 디아나의 마력이 회복되는 걸 기다려야 하기도 했고, 보스가 없는 보스 룸은 던전 안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벌써 던전에 들어오고 며칠이 지났다.

    오랜만에 주변 경계를 할 것도 없이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사라와 디아나의 컨디션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거대 마석의 아래쪽 벽에 뚫린 통로를 빠져나갔다.

    오랜만에 4계층인가.

    결국 1계층에서 실비아와 마틸다의 수영 연습을 돕는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얼음 동굴을 지나면서 다들 직업 레벨이 올랐다.

    설령 4계층의 중반부라고 하더라도, 전보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을까?

    통로는 중간부터 물에 잠기게 됐고, 우리는 호흡용 마스크를 착용한 채 좁은 통로를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통로를 벗어나서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가게 됐을 때, 제일 앞장서서 가던 내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깨달아지게 됐다.

    어떻게 대비를 할 틈도 없었다.

    넓은 공간에 살짝 몸을 내민 순간, 내 몸이 엄청난 물의 흐름에 말려들어가면서 4계층 한 복판에 그대로 내던져지게 된 거다.

    "ㅡㅡㅡ!"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우리 애들의 표정을 보니 뭐라고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거겠지.

    아직 통로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우리 애들을 향해, 나는 필사적으로 팔을 휘저어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나조차도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거다.

    다른 애들이 여기로 나오게 되면 그대로 끝장이다.

    나는 우리 애들이 나오려는 걸 손짓으로 저지하면서, 물의 흐름에 휩쓸려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컨트롤하려고 노력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파이팅맘 // 구원은 모든 상태이상 면역이 아닙니다. '불굴의 성욕' 스킬을 말하는 거라면 성행위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에 한정해서 면역입니다.

    벨쨩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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