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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71화 (45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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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급효과

    "…저기. 구원. 영상 보고 든 생각인데."

    "응?"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사라는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왠지. 나랑 할 때보다 영상에서 설명하는 구원이 더…뭐라고 할까…."

    "여자를 아껴주는 느낌이라고?"

    "그래! 그거! 바로 그거야! 나랑 할 때는 맨날 장난치고 그러면서! 저건 뭐야! 사랑을 속삭이라고 하질 않나! 강하지 않게 부드럽게 만져주라고 하질 않나!"

    "아니. 어제 너도 그렇게 만져주니까 안타까워서 정신을 못 차렸잖아. 가만 놔두면 혼자서 자위까지 할 기세였는데."

    "그, 그건 구원이 일부러 가지고 논 거잖아?!"

    …뭐, 부정은 안 하겠다만.

    "그래. 그럼 사라는 평소에 나랑 할 때는 내가 널 아끼거나 사랑한다는 느낌을 못 받는다는 거야? 그렇다면 제대로 말해줘. 만약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난…."

    나는 일단 진지한 표정으로 사라에게 물었다.

    아니. 일단이고 뭐고 진짜로 진지한 문제이기는 하다.

    지금까지 내가 사라랑 장난쳤던 건, 물론 내가 얘랑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사라도 그걸 즐기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쭉 그렇게 해왔던 거다.

    만약 사라가 좀 더 애정이 넘치는 행위를 하길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할 의향이 있었다.

    "그,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잖아…. 제대로 느끼고 있다고…그…사랑…."

    하지만 내 의외로 진지한 태도에 당황한 건지, 사라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그렇지? 난 항상 애정을 담아서 하고 있으니까. 휴우. 다행이다. 앞으로도 계속 장난쳐도 되는 거지?"

    "잠깐! 뭐야 그 태도?! 방금 그건 연기?! 속인거야?!"

    "무슨 말이신지?"

    "진짜 이 바보는!"

    내가 히죽하고 웃자, 사라가 얄미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가슴을 찰싹찰싹 때렸다.

    하지만 사라 역시도 방금 전에 내가 진심으로 말했다는 걸 알긴 아는지, 그 손은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라도 그냥 나랑 장난치고 있을 뿐인 거니까.

    "후하핫. 내가 너랑 장난치는 것도, 가끔 밤에 괴롭히는 것도 다 애정이 있어서…크헉! 잠깐만, 사라야. 왜 갑자기 힘이…."

    "내가 때리는 것도 다 애정이 있어서 때리는 거니까. 이 바보야."

    아뇨.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애정이 너무 지나치신데요.

    나 지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으니까, 맨살이면 진짜로 따가우니까. 조금만 살살…에잇!

    "에잇! 에잇! 에이햐앙! 자, 잠깐! 갑자기 움직이지 마! 이상한 소리 내버렸잖아!"

    "괜찮아. 귀여웠어."

    "내가 괜찮지…하앙! 진짜…바보오…."

    은근슬쩍 또 바보라고 했겠다.

    바보라고 할 때마다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을 텐데.

    몇 번 착실히 지키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 다시 은근슬쩍 안 지킨다니까.

    나는 사라가 더 불평하지 못하도록 입으로 입을 막아버리고 그대로 허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바넷사가 부르러 올 때까지 아침의 즐거운 한 때를 보낸 후, 우리는 식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식사를 다 하고 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난 식당에 혼자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기 구석에서 실비아가 날 엿보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다들 오늘은 무슨 볼 일이라도 있는 건가?

    뭔가 잽싸게 다들 방으로 돌아가 버렸네.

    레이아나 마틸다는 이해가 된다. 저번에 던전에 가기 전에도 신전에 간다는 걸 미루고 간 거였으니까.

    영상이 보급되기 시작하기도 했고, 당장이라도 신전에 찾아가보고 싶겠지.

    하지만 사라나 디아나는 무슨 일이지?

    …뭐 별 일 아니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식당에서 혼자 팔짱을 껴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 애들이랑 같이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지만, 역시 이렇게 혼자 있으니까 아무래도 레이첼 누님의 그 쓸쓸해 보이는 표정이 다시 생각나버린다.

    나 때문에 누님이 그런 표정을 짓게 하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우리 애들의 애정을 재확인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금방 다른 여자를 만들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레이첼 누님은…으아아! 진짜! 원래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내 성미에 안 맞는데!

    좋아. 다른 데에 집중하자.

    이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봤자 또 계속해서 해결도 못 할 레이첼 누님의 생각만이 날 뿐이다.

    그렇다면 혼자 있지 않으면 되는 거다.

    나는 구석에서 여전히 날 훔쳐보고 있는 실비아에게 눈을 돌렸다.

    그래. 지금 다른 여자를 생각할 때야?

    계속 내 곁에 있었으면서 아직 제대로 된 관계 진전도 없었던 실비아도 있잖아.

    차라리 레이첼 누님보다는 실비아와의 관계 진전을 꽤하는 게 정상 아니겠어?

    애초에 우리 애들한테 그런 허락을 받은 이유가 뭐였는데?!

    뭐, 실비아하고 관계 진척이 생기면 실비아가 행복사할 위험이 엄청나게 높다고는 하지만, 그건 훈련 같은 걸로 극복해낼 수 있을 거야! 분명!

    "히앗!"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안 그래도 나랑 눈이 마주칠 때부터 떨고 있던 실비아가 귀엽게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래도 지금부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본능적으로 눈치 챈 모양이다.

    "흐흐흐…실비아아…."

    "아우…아, 아아…그, 그게…저…죄, 죄송합니다! 무리입니다!"

    "어? 야! 잠깐!"

    내가 능글능글 미소 지으면서 다가가자, 실비아는 화들짝 놀라서는 쏜살같이 도망가 버렸다.

    아니.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잖아. 대체 뭐가 무리라는 건데.

    쳇. 하는 수 없지.

    어느 샌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실비아를 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나는 실비아와 노는 걸 보기하고 다른 타겟을 물색하기로 했다.

    레이첼 누님에 대한 생각을 안 하려면 누군가 곁에 있어줘야 하니까 말이야.

    "바넷사!"

    나는 바로 박수를 치며 바넷사를 불렀다.

    아니. 바넷사랑 놀려는 건 아니야.

    다만 우리 애들이 저택 어딘가에 있다면 장소는 바넷사가 제일 잘 알 테니까 말이야.

    덤으로 이렇게 혼자 있으면 또 잡생각이 날 것 같으니, 우리 애들을 볼 때까지 데리고 있을 수도 있고.

    "……."

    하지만 왠일인지 우리의 슈퍼 집사는 내 부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다시 한 번 박수를 치며 바넷사를 불렀지만, 여전히 주위는 적막에 휩싸여있었다.

    말도 안 돼. 바넷사가? 어디 다시…아, 이거 설마.

    나는 또 다시 박수를 치려는 스스로의 손을 보고, 문득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바넷사…."

    나는 시험 삼아 박수를 치지 않고 바넷사의 이름을 조그맣게 속삭여봤다.

    "…부르셨습니까?"

    그러자 내 바로 뒤에서 바넷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왓! 깜짝이야! 역시 근처에 있었잖아! 왜 대답 안 하는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 한, 구원님께는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실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니아니아니. 넌 집사고 난 주인님. 오케이?

    집사가 주인님을 버릇 들이려하지 말라고. 뭘 자연스럽게 조교하려고 하는 건데.

    그야 매번 박수치면서 부른 건 내 잘못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하아…뭐 됐어. 그보다 바넷사. 사라나 디아나가 어디 있는지 알아?"

    레이아나 마틸다는 아마 신전에 가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사라나 디아나의 위치를 확인하기로 했다.

    "두 분이라면 현재 디아나님의 방에 계십니다."

    "…응? 둘이 같이?"

    "네. 레이아님도 함께 계십니다."

    으응? 셋이 같이? 레이아는 신전에 가는 거 아니었어?

    아니. 그보다 대체 무슨 일로 셋이 같이 있는 거지?

    "그렇단 말이지…."

    "구원님."

    "응? 왜?"

    "아무리 친밀한 관계여도 엿보기는 범죄입니다."

    "…마치 제가 지금부터 누굴 엿보기라도 할 것 같은 말투시네요?"

    "…괜한 참견이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래! 괜한 참견이었다고! 아무튼 그럼 난 이만!"

    나는 곧장 디아나의 방을 향해 달려갔다.

    당연히 도중부터 은신술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금 그런 말까지 해놓고 무슨 짓이냐고? 무슨 짓이기는.

    엿보지 않는다고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사이는 엿보더라도 범죄가 성립 안 될 정도로 끈끈한 사이라고 주장했을 뿐이야.

    "자, 그럼 대체 셋이서 무슨 얘기를 하나…."

    "……."

    디아나의 방문 앞에 당도한 나는 곧장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 전에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왓! 놀라라! 왜 나보다 먼저 와있는데?!"

    "…할 말은 그것뿐입니까?"

    "조, 조금 정도는 괜찮잖아! 나 없을 때 무슨 말 하는지 궁금하다고!"

    "…그러다 언젠간 미움 받게 되더라도 모릅니다."

    "괜찮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사이는 훨씬 더 끈끈하게 이어져있으니까."

    심지어 다른 여자를 더 들이는 것조차 허락한 애들이라고.

    솔직히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우리 애들이 나에 대한 애정이 식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그걸 빌미로 무슨 짓이든 맘대로 할 생각은 죽어도 없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레이첼 누님도…아아! 젠장! 괜히 다시 생각나버렸잖아!

    나는 바넷사를 찌릿하고 노려봤지만, 바넷사는 내 눈빛에 겁먹긴커녕 오히려 자기도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말했다.

    "…읏…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번 디아나님과도…."

    "야! 그때 일은 잊으라니까!"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끈질기지?

    "그땐 정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랬단 말이야! 애초에 넌 거기서 왜 그러고 있었던 건데?!"

    "읏…! 그, 그건…! …용무가 없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내뱉은 바넷사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워낙 순식간에 없어진지라 자세히 본 건 아니지만, 쟤 방금 얼굴 시뻘겋게 변했지?

    게다가 도망가듯 사라진 것까지.

    역시 쟤도 내게 자위하는 모습을 들킨 게 부끄럽기는 한 모양이다.

    …좋아하냐고 물어보자 제정신이냐고 대답했던 내가 상대라도 말이다.

    …뭐, 됐어.

    나는 바넷사에 대해 생각하는 걸 멈추고, 원래 계획대로 우리 애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레이아. 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말하기 힘든 일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은신술을 쓰고 살며시 문을 열자, 안에서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뇨! 말할게요! 말하게 해주세요! 약속했으니까요!"

    "약속?"

    "저, 저, 저 실은…그게, 그러니까…주도하는 걸 좋아하는 걸 지도…몰라요…."

    "으응? 레이아양.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겐가?"

    "그러니까 저기…그…서, 성벽…말이에요…."

    뭐 이리 절묘한 타이밍에 듣게 되냐.

    그래. 오늘 이렇게 셋이 모여있는 이유는, 무려 레이아가 성벽을 고백하기 위해 불러낸 거였다.

    어려운 결심을 했구나! 장하다! 레이아!

    우리 애들끼리 변태적인 성벽을 공유하며 결속력이 강해지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되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하? 잠깐만요. 레이아. 주도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그, 그런 의미죠?"

    "아, 아마…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상대는 당연히 구원인 거죠?"

    "다, 당연하잖아요! 사라씨! 아무리 저라도 화낼 거예요!"

    "미, 미안해요. 하지만 저기. 그런 뜻이 아니라…이긴 거예요? 밤에? 구원을?"

    "레이아야아아앙!"

    사라의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디아나가 레이아에게 달려들었다.

    "어떻게 한 겐가!? 제발 이 몸에게 전수를 부탁하네! 레이아양! 아니, 레이아 선생!"

    …아니. 디아나 넌 왜 그렇게 필사적인 건데. 그야 내가 평소에 좀 많이 가지고 놀기는 했지만 말이야.

    게다가 선생이라니. 먼저 산 걸로 따지면 네가 훠어어얼씬…뭐, 아무튼.

    "그, 그런 전수라니…전 별로…."

    "큭! 아무리 레이아양이라도 역시 그런 귀한 정보를 함부로 알려줄 수는 없다는 겐가?!"

    "레이아. 저도 부탁드려요. 어떻게 한 건지 꼭 좀 알려주세요."

    아니. 디아나에 이어서 사라 너까지 왜 그래?

    우리 아까 전 아침에 계속 장난치기로 합의본 거 아니었어?

    "두,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전 그런…."

    물론 그런 둘의 반응에 레이아는 당혹스러워할 뿐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자기 딴에는 맘먹고 부끄러운 고백을 한 건데, 둘은 전혀 다른 부분에 주목하고 있으니까.

    "큿! 이렇게 된다면!"

    디아나는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굳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레이아의 무릎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천천히 등을 레이아에게 기댔다.

    당연히 디아나의 등과 목 부근에는 레이아의 폭발적인 가슴이 꾸욱 눌리게 됐다.

    "끄으윽…레, 레이아야앙. 알려줄 수 없겠나아?"

    디아나는 일순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레이아에게 귀여운 말투로 말했다.

    그래. 디아나는 지금 레이아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는 거다.

    가슴 트라우마를 뛰어넘고, 저런 굴욕까지 감수해내면서 비법을 전수받으려고 하다니.

    디아나 너 대체 얼마나 필사적인 거야.

    나는 더 보고 있기 힘들어져서, 천천히 문을 닫았다.

    어떤 일로 모여있는지는 알았고, 이 이상 지켜보는 건 아까 바넷사의 말대로 매너 위반이겠지.

    디아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이상은 보지 말아주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하면서.

    밤에 디아나가 그 어떤 짓을 해오더라도 절대 져주지 말아야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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