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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67화 (45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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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바뀐 관계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작전은 제법 괜찮게 됐다.

    사라가 멀리서 펭귄들의 존재를 먼저 탐지해내고, 내가 암살로 접근.

    급소 공격으로 한 마리를 처리하고, 곧장 성역선포 발동.

    그 사이에 사라도 한 마리를 처리하고, 나머지는 내가 공격을 막는 동안 사라와 디아나가 처리한다는 방법이다.

    같은 전위인 실비아가 또 다시 전혀 활약을 못하게 되는 전법이기는 했지만, 뭐 아직까진 괜찮겠지.

    실비아나 마틸다는 이런데서 몬스터를 잡는다고 해서 직업 레벨이 오를 수준도 아니고.

    아무튼 펭귄은 많이 무리지어 다니지 않고, 기본이 두세 마리. 많아서 네 마리 정도가 뭉쳐 다녔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에 한 마리 상대로 고전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쉽게 펭귄들을 처리해나갔다.

    내가 좀 아픈 것만 빼고 말이다.

    아니. 이 녀석들, 디아나 말대로 정말 공격에 모든 스탯을 올인한 놈들이더라고.

    설마 내 방어력을 뚫고 데미지가 들어올 줄이야.

    공격력만 놓고 보면 4계층을 넘어서 5계층 몬스터들과도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물론 그만큼 방어력이 약해서, 한 대 때리면 그대로 죽기는 했지만.

    게다가 이 녀석들, 무작정 피할 때는 몰랐는데 부리뿐만 아니라 날개도 살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옆으로 펼치고 있는 짧은 날개가 마치 칼날처럼 몸을 베어버리는 거다.

    "구원씨. 괜찮으세요?"

    레이아는 전투가 끝날 때마다 황급히 내게 다가와 어루만지며 치료를 해줬다.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지 않도록 보폭을 짧게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뭔가 흐뭇했다.

    "…이 몸을 사이에 두고 그러는 건 그만둬주지 않겠나?"

    게다가 심지어 품에는 디아나를 안은 채로 그러는 거니까 더욱더.

    말로는 그러면서 레이아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는 디아나는 역시 귀여웠다.

    아마 또 레이아가 시무룩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고 있는 거겠지.

    뭐,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힘내라. 디아나. 최고 연장자다운 그 배려, 난 똑똑히 가슴에 새기고 있으니까 말이야.

    "괜찮아? 많이 아프면 차라리 성역 선포는 안 쓰는 게 어때? 나도 이제 펭귄들 속도에 제법 익숙해졌고, 이쪽으로 오더라도 다가오기 전에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괜히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지."

    그래 우리 애들이 조금이라도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좀 아픈 게 낫다.

    애초에 탱커란 그런 역할이잖아.

    …지금 내 스탯은 방어력만 쓸데없이 높으니까, 이럴 때라도 도움이 돼야지.

    아, 위험해. 그 생각만 하면 또 우울해진다.

    나는 우울해지는 마음을 겉으로 티내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괜찮아. 사라 네가 때리는 것보다 덜 아프니까."

    "뭐어?!"

    "죄송합니다. 농담이에요."

    "…그, 그렇게 아팠어?"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고 봤지만, 사라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미안한 표정으로 자신감 없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러지. 사라도 딱히 날 때리는 걸 즐기는 건 아니니까.

    내가 그렇게 아팠다고 하면 걱정하는 건 당연하지.

    좋아. 이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

    "응. 엄청 아팠어. 엄청. 그러니까…."

    "알았어. 다음부턴 조금 약하게 때려줄게."

    내가 말을 채 다 끝내기도 전에, 사라가 피식 웃으면서 내 코끝을 손끝으로 톡 치고 말했다.

    아니. 그럴 땐 다음부턴 안 때리겠다고 해야 정상 아니야?!

    젠장. 너무 속내가 빤히 보이게 행동했나.

    "쳇. 그럼 다시 가볼까."

    "하아…하지만 이래선, 이동 속도가 너무 느리네요. 3계층에서 이어진 길은 대체 언제쯤 발견될까요?"

    펭귄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걸 본 이후로 다시 던전의 마력에 고생하고 있는 마틸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걱정 마. 그다지 멀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적어도 맵 상으론 말이지.

    코볼트 동굴이나 개미굴도 그랬지만, 큰 계층에서 소규모 계층으로 이어진 길은 다른 계층으로 이어지는 길과 비교했을 때 길이가 그렇게까지 길지는 않았다.

    즉, 맵 상에 보이는 3계층과 가장 근접한 곳에 통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사실 통로를 발견하는 것보다는, 나는 다른 점이 더 걱정이었다.

    바로 열쇠 말이다.

    소규모 계층과 다음 계층을 넘나들 때, 그러니까 1.5계층과 2계층, 2.5계층과 3계층 사이를 넘어갈 때는 거대 마석이 있는 곳에 통로가 뚫려 있어서 그대로 보스를 쓰러뜨리고 지나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소규모 계층에서 이전 계층, 즉 1.5계층과 1계층, 2.5계층과 2계층 사이를 넘나들 때는 열쇠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 여기서 3계층으로 가는 것도 열쇠가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지금 여기서는 구할 수 없는, 3계층의 몬스터가 드랍하는 성기가.

    일단 3계층을 다닐 때 얻은  성기를 한 종류씩은 전부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몬스터의 성기가 열쇠라면, 우리는 여기서 3계층으로 나갈 방법이 없다는 거다.

    게다가 실은 내 수중에 있는 3계층 몬스터의 성기 중에는…아냐. 설마. 그럴 리가.

    아무튼 괜히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않고 있었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곳의 페이크 보스를 잡고 4계층으로 나갈 수는 있겠지.

    다행히 식량도 충분히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선 마틸다가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었다.

    아니. 굳이 마틸다가 아니더라도 계속 이런 식으로 발밑이 불안한 상태로 탐험을 하는 건 다들 지칠 거다.

    이왕이면 일단 3계층으로 나가서 재정비를 하고 탐색을 하고 싶은데, 과연 어찌될지.

    나는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일단 맵에서  3계층이 가깝게 보일 때부터 주변을 철저히 뒤졌다.

    물론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펭귄들도 상대하면서.

    "여기 보세요! 이거 아닌가요?!"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여전히 구멍을 찾아다니던 우리는 마틸다의 환희에 찬 목소리에 모여들었다.

    "오오! 구멍! 여긴 펭귄이 뚫은 거 아니지?!"

    "그럴 거예요! 분명 그럴 거예요!"

    무슨 소리냐고?

    아니. 그게 말이야. 가끔 펭귄 녀석들의 공격을 피하다 보면, 놈들의 부리가 땅이나 벽에 박힐 때가 있거든.

    물론 그러면 여지없이 벽과 바닥에, 심지어는 천장에도 구멍이 생겼지만, 전투로 정신이 없을 때 그 위치를 일일이 기억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아니. 만약 전부 기억하더라도, 만약 펭귄위 부리가 우연히 원래 구멍이 있던 자리에 박힌 거라면?

    그 가능성을 버릴 수 없었던 우리는 펭귄이 뚫어놓은 구멍까지 합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구멍에 3계층 몬스터의 성기를 쑤시고 다녔다는 얘기다.

    슬슬 몬스터 성기를 벽에난 구멍에 쑤셔 박는 행위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나는 일단 마틸다가 발견한 구멍을 조심스레 관찰했다.

    크기는 펭귄의 무리가 뚫은 것과 거의 동일한 크기였다.

    이 정도라면 리자드맨의 성기가 알맞겠군.

    나는 인벤토리에서 리자드맨의 성기를 꺼내 떨리는 손으로 구멍에 쑤셔 박았다.

    "……젠장…젠자아앙!"

    또냐! 아직도 더 구멍에 성기를 쑤셔 박아야 되는 거냐!

    슬슬 몬스터의 성기를 만지는 것도 싫다고!

    3계층 몬스터의 성기라면 이제 손의 감촉만으로도 어떤 몬스터의 성기인지 알 정도가 돼버렸단 말이야! 젠자아앙!

    "포, 포기하면 안 돼요! 일단 다른 것도 시험해보죠!"

    마틸다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틀렸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틀렸어! 이 크기를 보라고! 예티의 성기는 물론 북극곰의 성기도 들어가지도 않을 사이즈라고! 그렇다고 해서 올빼미 건 너무 작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일단 인벤토리에서 성기를 하나하나 다 꺼내서 전부 구멍에 넣어봤다.

    물론 뭘 넣어도 구멍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구, 구원씨 진정하세요. 분명 괜찮…구, 구원씨?!"

    "그래! 아직 이게 있었지!"

    절망에 빠진 나는 날 다독이기 위해 다가온 레이아보다도, 그 손에 들린 스태프에 오히려 주목하게 됐다.

    레이아의 손에서 빼앗듯이 스태프를 건네받은 나는 맛이 간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성기로 만들어진 거잖아. 이거라면 분명…."

    "지, 진정하게. 자네. 마음은 이해한다만…."

    쿠구구구궁.

    "…여, 열렸다."

    스태프의 끝을 구멍에 쑤셔 넣자, 땅울림과 함께 눈앞의 얼음벽이 갈라지며 통로가 나타났다.

    "열렸다! 열렸다고!"

    "꺄아악! 당신! 잘했어요!"

    통로를 탈출하는 것보다, 나와 마틸다는 일단 서로를 끌어안고 함박 미소를 지었다.

    나도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마틸다도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건 마찬가지였나 보다.

    나와 끌어안고도 핑크빛 모드로 변하지 않은 채, 그저 순수하게 기쁨을 공유할 뿐이었다.

    "3계층이다아아!"

    "바닥이 안 미끄러워요! 마나 농도도 아까보다 훨씬…!"

    "그래! 이제 몬스터 성기 따윈 안 만져도 돼! 크하하하하하!"

    3계층으로 나와서도, 나와 마틸다는 서로를 끌어안거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했다.

    서로 기뻐하는 이유가 조금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신경 쓰면 지는 거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구먼. 다른 성기로는 열리지 않던 것이, 레이아양의 스태프로 열리다니. 물론 성기로 만들어져서 성기로 강화된 물건이기는 하네만, 그래도 전부 자네가 가지고 있던 물건으로 강화한 것 아닌가?"

    "……그러게 말이야."

    "자네 뭔가 알고 있구먼."

    "하여간 알기 쉽다니까."

    나는 일단 시치미를 떼 봤지만, 날카로운 디아나와 사라의 시선을 속일 수는 없었다.

    에에잇. 어째서 들킨 거지? 완벽한 연기였을 텐데?!

    "…그게 실은 말이야. 우리가 3계층에서 수컷은 딱 한 번밖에 못 잡은 몬스터가 있잖아?"

    "…하프 물범 말이구먼."

    "그래. 너희가 하도 귀엽다고 난리라서 못 잡았던…아무튼. 걔 성기를 말이지. 4계층에 내려간 다음부턴, 어차피 3계층엔 볼 일도 없을 거란 생각에…."

    "레이아양의 스태프 강화 재료로 썼다는 것이구먼."

    "네엣?! 제 스태프에 그 아이의 성기가?!"

    …천사님. 부탁이니까 그렇게 충격 받은 표정 짓지 말아주세요.

    아무리 귀엽게 생겼어도 몬스터라고요.

    뭐, 몬스터치고는 아무 공격도 안 해온 덕분에 나도 잡을 때 미안하긴 했었지만.

    제길. 이래서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뭐,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까 그 얘기는 넘어가자고. 스태프로도 길을 열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까지 덤으로 하게 됐고."

    그동안 3계층 몬스터의 성기를 일일이 꽂아봤던 내 고생은 대체 뭐가 되냐는 얘기가 되기도 하는 거지만, 생각하면 슬퍼지니까 그만두자.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아…하지만 정말 운이 좋았네. 그 구멍이 정말 통로를 여는 구멍이 아니었으면 평생 모른 채로 4계층까지 가야 할 뻔 했다는 거잖아."

    "…그 말대로 입니다만."

    "아, 아니. 탓하는 건 아니야. 구원도 설마 이렇게 될지는 몰랐을 거고."

    내 시무룩해진 표정을 보자 탈출 전까지 반쯤 정신 줄을 놓고 있던 내 모습이 다시 떠오르기라도 한 건지, 사라는 당황해서 날 다독여줬다.

    쳇. 이제 와서 그래봤자 늦었다고. 상처받은 내 마음은 치료되지 않아.

    나는 곁에 있던 실비아를 끌어안아 힐링을 하기로 했다.

    "흐이잇! 구, 구원님…?!"

    요즘 나에 대한 내성이 떨어지긴 했어도, 그래도 여전히 전투 시의 실비아는 평소보다 훨씬 침착했다.

    덕분에 끌어안았을 때 잠깐 떤 것 말고는 진동이 없어서 심심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비아 테라피는 심신 안정에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후우. 힐링 됐다. 좋아. 그럼 일단 돌아갈까."

    "…이제 어디부터 딴죽을 걸어야 될지도 모르겠어."

    "하핫. 뭘 이제 와서."

    "웃지 마! 칭찬 아니거든 이 바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얼음 동굴을 탈출한 게 기쁜 건 사라도 마찬가지였는지, 평소보다도 내 바보짓을 잘 받아주는 사라였다.

    얼음 동굴의 입구에서 3계층의 마을까지의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도중에 하루 더 야영을 한 끝에, 우리는 3계층의 마을을 통해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님! 돌아왔습니다! 여기 약속했던 모기의 성기요."

    "어머! 구원씨! 이번에는 평소보다 무척이나 빨리 돌아오셨네요? 후훗. 혹시 저와의 약속을 빨리 지키고 싶어서 서두르신 건 아니죠?"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asfdgads // 감사합니다. 쓰다가 중간에 펭귄 머릿수를 줄였는데 고칠 때 못보고 지나쳤네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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