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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66화 (45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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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바뀐 관계

    "그러고 보니 마틸다. 어때? 버틸만해? 개미굴에서 한동안 익숙해지잔 얘기도 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금방 길을 찾아버렸네."

    앞장서서 가기 전에, 나는 일단 마틸다의 상태를 확인했다.

    뭐, 어차피 힘들어도 곧장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는 하지만.

    괜찮을까? 여기부터는 슬슬 마틸다도 전투에 참가할 일이 생길 텐데 말이야.

    "네, 네에? 괘, 괜찮아요. 이 정도는…아…."

    하지만 내 질문에, 마틸다는 예상 외로 멀쩡하게 대답했다.

    마치 던전 안의 공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아니, 그보다는 다른 데에 정신을 팔린 것처럼.

    "응? 왜 그래?"

    "귀, 귀여워어어…."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설마 나보고 그런 거야?

    그야 얼마 전에 나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해온 이후로는, 날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핑크빛 모드에 빠지지 않으면 말투뿐 아니라 눈빛도 조금 오만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톡 쏘는 느낌이었는데, 고백 이후로는 미묘하게 부드러운 시선이 섞이고 있는 건 나도 느끼고 있었다.

    마치 더는 숨길 것도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멋지다고 하는 거면 몰라도 귀엽다니.

    레이아도 그렇고, 혹시 여기 종교인들은 귀여움의 기준이 조금 다른 걸까?

    "꺄아악!"

    게다가 마틸다는 귀엽다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새된 비명까지 질렀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나는, 마틸다의 시선이 미묘하게 날 향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펭귄 한 마리가 뒤뚱뒤뚱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응.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마틸다. 몬스터한테 귀엽다는 감상을 할 정도인 걸 보면 상당히 여유 있는 모양이네.

    아무래도 마틸다도 점점 던전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뭐, 그냥 펭귄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던전의 마력이 가지는 압박감을 잊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일단 마틸다에게 신경을 끄고, 펭귄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확실히 귀여운 외모이기는 하다.

    이 세계의 동물형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원래 있던 세계의 동물들보다 어딘가 흉포한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1계층 초반에 나오는 토끼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이 펭귄은 아무리 봐도 원래 세계의 펭귄과 그다지 차이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귀여워도 여기에 나타난 이상 몬스터.

    나는 자세를 바로 잡고 일행의 앞에 서서 펭귄을 마주했다.

    하지만 뒤뚱뒤뚱 걸어오는 펭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적의가 생기지 않는다.

    정말 몬스터가 맞기는 한 걸까?

    이동속도부터 엄청 느린데다가, 저 몸으로 공격한다고 해봐야 쪼기 공격정도밖에 할 게 없지 않아?

    그렇게 점점 적의가 사라져가고 있었을 때, 펭귄의 행동에 변화가 나타났다.

    어느 정도 거리까지 다가온 놈들이 갑자기 바닥에 배를 깔고 미끄러져오기 시작한 거다.

    그러자 아까와는 달리, 놈들의 속도가 대폭으로 빨라졌다.

    하지만 아무리 속도가 빨라져봤자 저 상태로 공격은….

    "꺄아악! 뭐야 저거?!"

    아니. 그러니까 좀 집중하자고.

    귀여운 건 이해하지만 말이야.

    젠장. 몬스터 녀석. 깜찍한 외모로 우리 애들을 매혹하려 들다니.

    나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빠르게 미끄러져 온 펭귄은, 우리와의 거리가 대략 3미터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날개를 파닥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웬걸, 놈들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방금 전까지 미끄러져오던 속도도 전혀 잃지 않은 채.

    그래. 놈들은 뾰족한 부리를 내밀고 그 몸을 미사일처럼 쏘아 올려 공격을 하는 타입이었다.

    "이런! 피해!"

    물론 내 방어력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바닥이 미끄러운 상태에서 저런 공격을 받으면, 확실히 자세가 무너진다.

    아니. 내 자세가 무너지는 것 정도는 그나마 낫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막더라도, 분명 저 펭귄 미사일은 궤도만 바뀔 뿐 분명 어디론가 쏘아져 나갈 거다.

    그러면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차라리 우리 애들이 자칫 반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아버릴 가능성도 있으니까.

    차라리 궤도가 예측 가능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몸으로 막는 걸 포기하고 황급히 옆으로 피했다.

    다행히 펭귄의 공격은 아무에게도 명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착지한 펭귄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이번엔 바닥에서 벽으로, 그리고 천장 근처까지 미끄러져 올라간 후 이번엔 공중에서부터 습격을 해왔다.

    바닥과 벽, 천장이 각진 모서리로 이뤄져 있지 않고 둥글게 되어있는 얼음 동굴의 지형을 완벽히 살린 공격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전 방위에서 공격을 해오게 되면, 전위 후위를 나눈 우리의 진형도 전혀 쓸모가 없어져버린다.

    게다가 놈은 똑똑하게도 한 번의 공격에 한 명만 노리는 게 아니었다.

    직선상에 두 명 이상이 있게 되는 루트만 골라서 돌진하며, 놈은 우리의 진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큭!"

    이번에도 어떻게 피해내기는 했지만,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바닥을 미끄러져서는 방향을 바꿔 공격해올 뿐이었다.

    쳇. 이대로 피하고 있기만 하다가는 끝이 없겠어.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놈의 몸은 가속도가 붙어서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라, 디아나! 공격해!"

    "고, 공격하라고 해도 이래선…!"

    하지만 사라는 펭귄의 공격을 피하는데 급급하여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틈틈이 활을 날려보기도 했지만, 기파의 화살은 번번이 펭귄이 지나가고 난 자리를 꿰뚫었다.

    미끄러운 얼음 바닥 위에서 균형을 잡고, 펭귄의 공격을 피하면서 그 빠른 몸체를 맞추기까지 한다는 건 아무리 사라라도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디아나 역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실드로 놈의 공격을 방어했던 디아나지만, 놈이 실드를 타고 궤도를 바꿔 다른 사람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하는 걸 보고는 바로 실드의 사용을 중지했다.

    그리고는 몸 주변에 바람을 감싸 놈이 공격해올 때마다 아무도 없는 방향으로 그 몸을 흘려보냈다.

    아마 자신뿐만 아니라 레이아까지 지키기 위해서 저런 화려한 방법을 쓰는 거겠지.

    덕분에 디아나 역시도 추가 공격까지 할 여유는 없어보였다.

    젠장. 그렇다면!

    "놈이 나만 노리게 만들게! 예측해서 공격해!"

    나는 저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놈이 나만 공격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다들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을 거다.

    또한 놈이 움직이는 루트도 자연스레 한정될 것이기 때문에, 공격의 명중률도 대폭으로 증가할 거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장 성역 선포를 사용했다.

    우리 애들도 말려드는 기술이기 때문에 되도록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성자의 파동은 당연히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고, 성자의 손길을 두른 손을 놈에게 닿는 것도 솔직히 어려워보였다.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넘어지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 한계인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성역 선포를 발동한 순간, 무작위로 움직이던 놈이 단번에 날 타겟으로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아. 이거라면 사라나 디아나의 공격도…!

    그렇게 생각했을 때, 갑자기 옆에서 콰직하고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어느 샌가 곁으로 다가온 실비아가 바닥에 방패를 꽂는 소리였다.

    실비아는 그 방패에 발을 올려서 몸을 고정시키고, 그대로 검을 수평으로 들어서 펭귄이 돌진하는 타이밍에 맞춰 옆으로 힘차게 그었다.

    촤아아아!

    "꺄아아아악!"

    시원한 소리와 함께 펭귄의 몸이 그대로 깔끔하게 이등분 됐다. 과연 실비아. 레벨 180대의 기사님다운 솜씨다.

    아니. 그보다 시원한 소리 말고 뭔가 다른 소리도 들렸던 것 같은데 말이야.

    "괜찮으십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펭귄을 갈라버린 실비아는, 뭔가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 전투 상황인데도 그 특유의 멍한 무표정이 아니구나.

    고백한 이후로 태도가 조금 변한 마틸다처럼, 실비아도 소원 얘기가 나온 다음부터 뭔가 나에 대한 내성이 더 약해진 느낌이 든단 말이지.

    원래는 전투 상황에선 절대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는데.

    아니. 방금 전 모습을 봐선 전투는 제대로 집중하는 모양이니까 상관없지만 말이야.

    "어, 응. 그래. 괜찮고말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뭔가 묘한 기분이 되어서 반사적으로 실비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니. 그도 그렇잖아? 펭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게 이등분낸 애가, 피에 젖어서 부끄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거라고. 그야 미묘한 기분도 된다고.

    그러고 보니 내 손도 피투성이잖아. 함부로 머리 만져도 괜찮은 건가?

    …부르르 떠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괜찮은 모양이다.

    아니. 물론 마석만 캐내면 사라질 피지만 말이야.

    기사님은 터프하네.

    실비아는 종종 기사 수행으로 익숙해져 있으니 괜찮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이런 것도 그런 걸까?

    그렇다면 대체 어떤 식으로 수행을 한 걸까?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절대로 직접해볼 맘은 들지 않았지만.

    나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까 비명 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완전히 멘탈이 나간 표정을 짓고 무너져 내린 마틸다의 모습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때 귀엽다고 소란까지 피웠던 마틸다인 만큼, 이 모습은 상당히 쇼크인 모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고작 몬스터를 죽인 것 가지고 그런 표정을 지어서야 앞으로 어떻게 하겠냐고 말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그럴 맘이 들지 않았다.

    정면에서 펭귄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걸 보고, 그대로 피와 내장을 뒤집어 쓴 몸으로서 말이다.

    "마틸다. 괜찮아? 버틸 수 있겠어?"

    나는 펭귄의 잔해에서 마석을 뽑아내고는 몸이 말끔해진 이후 마틸다에게 다가갔다.

    "네, 네에…. 힘낼게요."

    "그래. 최대한 빨리 3계층으로 가는 길을 찾자."

    아까와는 대답이 전혀 달랐지만, 나는 이해해주기로 했다.

    "흠. 하지만 한 마리에 이렇게 고전해서야. 조금 대책을 세우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구먼. 이대로 가면 서너 마리가 동시에 튀어나오는 순간 누구 하나 크게 다칠 걸세."

    "후우…그건 그렇지. 적어도 발이 미끄럽지만 않았어도 할만 했을 텐데 말이야.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음…아무래도 여기서 그 대책을 세우는 건 힘들 걸세."

    "차라리 우리가 먼저 기습을 하는 건 어때? 처음 봤을 때는 뒤뚱뒤뚱 걸어왔었잖아. 그때를  노리는 거야."

    "음. 확실히. 공격력과 속도에 특화된 몬스터로 보이니 말일세. 방어력은 그다지 없어보였으니, 기습으로 일격에 죽이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먼. 실비아양 어떤가? 직접 베어본 소감은."

    "네. 디아나님과 사라님의 공격이라면 충분히 일격에 처리 가능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수컷 개미도 한 방에 잡았으니까 말이야. 암살이 가능할 것 같은데."

    뭐, 수컷 개미는 조금 특이 케이스였긴 하지만.

    아무튼 수컷 개미는 2.5계층의 페이크 보스보다도 강력한 적이었을 거다.

    그 정도면 3.5계층의 일반 몬스터보다는 강하다고 봐도 되겠지.

    그렇다면 내 암살 콤보도 충분히 먹힌다는 말이다.

    뭐, 3계층의 주인도 내 성자의 손길에는  허무하게 뻗었으니까 말이다.

    "흠. 그럼 그렇게 하세. 이 몸의 마법은 암습에는 적절하지 않으니 말일세. 상대가 한 마리라면 자네가. 두 마리라면 사라양도 포함해서, 그 이상이라면 일단 빠르게 둘을 없애고 상대하는 것으로 하세."

    "그래. 그러자. 그리고 내가 암살로 앞에 나서는 거면 너희가 말려들지 않게 성역 선포도 쓸 수 있을 거고. 만약 세 마리 이상 나타나더라도 아까보단 훨씬 상대하기 쉬울 거야."

    아까는 나와 다른 애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것도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혼자서 멀리 떨어져서 어그로를 끌고 있는 거라면, 굳이 도탄을 걱정하여 놈들의 공격을 일일이 피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결정한 우리는, 다시 진형을 정비하고 앞으로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레이아? 왜 그래?"

    "…죄송해요. 전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서…."

    아까부터 말이 없던 레이아를 바라보자, 레이아는 드물게 풀죽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도움이 안 된다니."

    "하지만 제가 없었다면 분명 방금 전에도 디아나님이…."

    아, 과연. 하긴. 확실히 디아나가 방어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방금 전에도 그렇게 졸전을 펼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레이아는 반쯤 억지로 디아나를 끌어안고 다녔던 만큼 더 죄책감이 커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이아가 없으면 만약 누가 다쳤을 때 치료해줄 사람이 없잖아? 마틸다의 치료 마법은 레이아보다도 효율이 떨어지고 말이야. 걱정 마. 지금부터는 내가 앞장서니까. 도움 될 일이 잔뜩 생길 거야."

    "구원씨도 참…구원씨가 다치는 거면 차라리 이대로 짐짝이 되는 게 나아요…."

    레이아를 다독이기 위해서 그렇게 능청을 떨자, 레이아는 그제야 조금 풀린 표정으로 날 곱게 흘겨보면서 꼬리로 살며시 날 토닥였다.

    "그래. 바로 그러야. 레이아가 할 일이 없다는 건 결국 모두에게  좋은 거니까 말이야. 풀죽지 말라고."

    "음. 이자가 말하는 대로일세."

    그리고 그때 디아나가 우리를 향해 천천히 날아오더니, 레이아의 앞에 가서 살며시 등을 돌렸다.

    "디, 디아나씨?"

    "…이 몸 혼자선 균형을 잡고 걷기 힘드니 말일세."

    하여간 디아나도 참.

    그렇게 싫어했던 주제에, 결국 레이아가 풀죽어있으니까 오히려 자기가 나서서 레이아에게 저러는 거다.

    하여간 우리 애들은 다들 하나같이 왜 이렇게 착한 건지.

    "디, 디아나씨!"

    "우왓! 그러니까 가슴을 머리에 올리지 말게! 적어도 뒤통수에 가져다대게! 굳이 올릴 건 없지 않나?! 으긋…뒤, 뒤통수에 대는 건 이것대로 굴욕이…."

    …뭐, 아무리 그래도 레이아의 가슴이 싫은 건 여전한 모양이지만.

    뭐, 고생하라고.

    완전히 미소를 되찾은 레이아를 바라보며 싱긋 한 번 마주 웃어주고, 우리는 다시 탐험을 재개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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