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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58화 (44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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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로

    "…우리가 싫다고 하면?"

    "물론 너희가 싫어할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래. 그렇게나 하렘을 만들고 싶다는 거네. 만약 하렘을 만들 거면 내가 떠난다고 해도?"

    "아니. 그게……뭐?"

    그런 말을 할 가능성조차 생각 안 하고 있었던 사라의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야 반발이 있을 거라곤 당연히 생각했다.

    욕을 먹을 각오도 했고, 뺨을 맞을 각오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애들이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자체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거야. 울고 싶은 건 이쪽이라고."

    아무래도 난 상당히 형편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라는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더니, 살짝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내뱉듯 쏘아붙였다.

    "…자네. 이 몸들이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용납했던 건, 그래도 자네가 결국에는 이 몸들을 가장 좋아해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일세. 하지만 자네는 그런 길을 택한 겐가…."

    그리고 디아나 역시도 나와 있을 때 자주 보여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표정이 아닌, 연륜이 느껴지는 무거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화나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었다.

    너무 분노한 나머지 오히려 차분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모습이었다.

    "아,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너희를 가장 좋아한다고!"

    "지금 하렘을 만든다고 했잖아! 그 말은 다시 말해서 다른 여자들도 우리랑 같은 취급을…아니.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다른 여자들을 만들고 다니겠다는 얘기잖아?!"

    나는 진심을 얘기할 셈이었지만, 사라는 내 대답을 변명이라고 느낀 건지 오히려 화가 난 듯 그렇게 외쳤다.

    "…구원씨. 실비아씨와 마틸다 추기경. 그 이외에도 이미 하렘에 편입시킬 다른 여자들을 만들어 놓고 있는 건가요? 제게 했던 말들은…전부 거짓말이었던 건가요?"

    그리고 레이아마저도,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어둡게 중얼거렸다.

    디아나와 마찬가지로, 레이아 또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적 없었던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화를 계속해나가기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나는 일단 오해를 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잠깐만. 잠깐만 진정하고 내 얘기를 들어줘."

    "이제 와서 변명을…!"

    "사라. 잠깐만 진정하고 내 얘길 들어줘! 너흰 오해하고 있어! 확실히 내가 하렘을 만든다고는 했지만, 다른 여자들을 너희랑 똑같이 취급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만들어놓은 다른 여자들도 없어! 기껏해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실비아 정도고, 마틸다도 저주가 풀리기 전에는 모르는 상황이야!"

    내가 진심을 다해서 그렇게 외치자, 다들 조금은 진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여전히 셋 다 화내고 있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한 번 이 몸들도 납득을 할 수 있는 설명을 해보게. 애초에 어째서 하렘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게 됐는지부터, 그런 결심을 내린 이유까지 말일세."

    디아나는 후욱하고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듯 한숨을 한 번 내뱉더니, 기회를 주겠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애초에 발단이 됐던 펠리시아의 발언부터 지금까지의 고민들.

    여신님의 사명을 통해 다른 여자들과도 어쩌면 사도 임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애들이나 나 스스로의 감정을 무시하기 힘들 것 같아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는 것까지 전부 털어놨다.

    아까 변명은 일절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걸 바로 깨면서.

    뭐? 뭐가 어때서? 그런 조그만 프라이드 따위보다는 우리 애들과의 관계가 내게는 훨씬 소중해.

    "그리고 만약 내가 다른 여자들과 깊은 관계가 된다고 하더라도, 가장 우선시하는 게 너희란 건 변함이 없어. 오히려 여자가 늘어났다고 해서 쓸쓸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즉, 하렘을 만든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자로서의 사명 상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지금 생각해두고 있는 건 실비아씨 밖에 없다. 그런 뜻으로 해석하면 되는 건가요?"

    내 말을 전부 들은 레이아는, 조금씩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그렇게 얘기를 요약했다.

    아아. 다행이다. 레이아가 다시 천사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어.

    물론 지금도 평소 모습이랑은 많이 차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눈가에 생기는 돌아오고 있었다.

    "응. 바로 그거야."

    "이 몸들을 가장 우선시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겐가?"

    "그거야 지금처럼 밤에는 너희와 같이 자고, 제일 챙기고…너희가 본처라면, 다른 여자들은 첩이라는 느낌?"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라고 이 바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라가 바로 내 명치에 레프트 훅을 꽂으며 외쳤다.

    크허억…! 사, 사라야. 넌 안 그래도 세니까 기습 공격은…!

    물론 사라의 표정을 보니, 도저히 그런 불평은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라는 울고 있었던 거다. 그것도 어린 애처럼 펑펑.

    "난 또 우리한테 질려서 다른 여자를 만든다는 건 줄 알았잖아!"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무슨 그런 천벌 받을 소릴!"

    "그럼 애초에 갑자기 하렘이니 뭐니 이상한 말을 하지 말라고!"

    "아니. 그래도 결국 다른 여자들을 더 들일지도 모른다는 건 사실이고, 그러니까 충격요법으로 처음부터 임팩트 있게 나가는 편이 좋을까 하고…."

    "바보 아냐?! 임팩트라니! 진짜 그런 게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참고로 말해두는 데, 나 지금도 실시간으로 사라한테 맞고 있는 중이다.

    임팩트가 필요 없다는 사라는, 내 전신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사, 사라야…분위기상 일단 참고는 있는데…슬슬 버티기 힘들어지는데 멈춰주면 안 될까?

    나는 일단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날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 같으면 치유 마법을 걸어준다면서 다가오는 레이아도 살짝 토라진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고, 디아나에 이르러선 팔짱을 끼고 오히려 더 맞아야 된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요. 실비아씨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얘기였다면 저희도 그렇게까지 화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번엔 전적으로 구원씨가 잘못했어요."

    "음. 게다가 앞으로 그래야 할지도 모르니까 하렘을 차리겠다니. 헛소리도 정도껏 하라고 말해두고 싶구먼."

    "하지만 그건 정말로 가능성이 높…."

    "그 정도는 자네가 말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네. 그런 문제가 아닐세. 자네가 다른 여자를 받아들이는 것에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의 문제일세."

    아니. 나도 일단 소극적으로 할 생각이었어.

    적극적으로 여자를 꼬드기고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실비아나 마틸다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이 섹스를 하게 됐을 때, 만약 그런 감정이 생긴다면 받아들여도 될까…수준으로.

    뭐, 하렘을 만든다고 말해버렸으니까 적극적으로 여자를 후리고 다닐 거라고 해석해도 할 말이 없지만.

    네. 전적으로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사라의 공격을 멈춰주세요.

    "구원씨도 참. 처음부터 저희와 상담하셨으면 좋았을 걸요."

    "아니. 그래도 이런 결정은 너희에게 맡기는 것보다 내가 결정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틀린 말은 아니네. 주도적이 되는 건 좋지. 하지만 독불장군이 되는 건 좋지 않네. 이 몸들과 상의는 해야 했던 게 아닌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의견 조율을 위해 너희를 불렀…"

    "그래서 나온 말이 ‘난 하렘을 만들 거야.’ 인가요?"

    ……천사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평소의 천사님으로 돌아와 주세요.

    평소 안 그러시던 분이 공격하시니까 데미지가 너무 살벌해요.

    육체적 데미지와 정신적 데미지가 겹쳐져서, 내 난 이제 진짜로 울고 싶어졌다.

    "흠. 아무튼 의견 조율인가. 그렇구먼. 일단 자네가 여신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다른 여자와 더 관계를 가져야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어쩌면 사도 임명을 해야 할지도 모른 다는 것도 이해는 하겠네."

    "…그러네요. 다른 여성분과의 관계를 가지고, 사도 임명을 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이 저희가 양보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하아. 뭐, 그 정도는 성자를 낭군님으로 뒀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구먼. 다만!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행위에 한해서만 인정을 하겠다는 것일세. 애초에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길지 어떨지도 모르는 것이고 말일세."

    "…훌쩍. 그래. 허락해줬다고 해서 이걸 아무렇게나 휘두르고 다니면 잡아 뜯어버릴 거야."

    겨우 공격을 멈춘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물건을 바지 위로 턱하고 잡아왔다.

    잡아 뜯는다니. 네가 하면 농담으로 안 들리니까 그런 무서운 얘기 하지 말아줄래?

    아니. 애초에 아무렇게나 휘두르고 다닐 생각도 없지만 말이야.

    나는 사라에게 그렇게 대답하는 것보다, 대신 그 눈물에 젖은 얼굴을 가슴에 꽉 끌어안아줬다.

    사라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내 품에 안겨서, 가슴에 눈물을 닦았다.

    아무튼 필요할 때에 한해서 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렇게 다들 사도 임명을 허락하는 뉘앙스의 말을 해줬다.

    사도 임명을 허락한다는 말은 즉 다른 여자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는 건 인정해 준다는 거다.

    하렘을 차린다고 했을 때 그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다른 여자를 들이는 걸 싫어했으면서, 결국에는 그렇게 허락을 해주다니.

    우리 애들이 얼마나 양보를 해준 건지, 나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얘들이 한 번 더 양보를 해주길 원할 수밖에 없었다.

    뇌리에 소원을 말하길 주저하는 실비아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안. 난 실비아도 받아들이고 싶어. 내 감정이나 실비아의 감정을 무시하고 싶지 않아. 약속할게. 만약 다른 여자들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난 절대 너희를 소홀히 하지 않을 거야. 지금처럼…아니. 지금 이상으로 잘 할게. 그러니까…."

    아마 실비아는 지금까지 내가 실비아에게 한 것보다 더 진도가 나가기를 부탁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한다.

    소원을 말하려고 했던 때의 반응을 보면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진도가 나간다고 하면, 남은 행위는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키스를 하거나, 사도 임명을 하거나, 애인으로 삼거나. 뭐 그런 거겠지.

    어느 것도 실비아에게 하면 실비아가 행복사하기에 충분한 행위다.

    실비아가 죽을지도 모른다면서 도망 가버린 것도, 그런 행위를 부탁하고 싶은 거였다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아니. 과연 실비아는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서 부탁을 주저한 걸까?

    분명 그것도 이유 중 하나는 확실하겠지만, 주저한 이유가 그것 뿐만은 절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실비아는 자신이 그런 부탁을 할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누구보다도 자기 위치를 잘 자각하고 있었던 실비아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애들이 실비아를 쉽게 받아들이기도 한 거고.

    그러니까, 그런 실비아를 위해서라도 내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애초에 다른 여자도 받아들이고 싶다고 결심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바로 실비아니까.

    물론 실비아를 받아들이는 건 아까 우리 애들이 말했던 꼭 필요한 상황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안하지만 우리 애들이 한 발자국 더 양보를 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먼."

    "실비아씨라면…."

    "하지만 그래선…."

    과연 우리 애들도 그동안 실비아와 친해진 만큼, 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이게 실비아하고만 관련된 문제였다면, 아마 쉽게 허락을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도 세 번도 일어나는 법. 이렇게 한 번 예외를 만들면, 앞으로도 또 다른 예외가 생겨날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다들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잠깐 기다리게."

    결국 셋은 뭔가 합의를 보려는 듯, 다 같이 모여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뭔가 격렬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결론이 날 때까지 일부러 대화 내용을 듣지 않고 생각에 빠졌다.

    솔직히 지금까지의 내 모습으로 믿음은 충분히 줬다고 생각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쭉 우리 애들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런 내가 처음으로 다른 여자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다.

    과연 우리 애들이 날 떠나겠다고 해버리면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되도록 허락을 받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눈을 감고 만약 우리 애들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어떻게 설득할지를 생각했다.

    "좋아. 구원. 결론이 났어."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셋의 토론이 끝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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