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457화 (44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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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로

    …응? 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아니. 야. 맞는 말 하는 것 같으니까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말이야.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니. 그런 말 한 마디도 안 했거든? 그냥 우리 애들이 슬퍼하는 얼굴을 보기 싫다고 했지. 은근슬쩍 사실 왜곡하지 마라."

    "그, 그게 그거잖아요!"

    내가 냉정하게 지적하자, 방금 전까지 완전히 추기경의 얼굴이었던 마틸다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당황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뭔가 석연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냄새가 나."

    "…넷? 시, 실례네요!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음모의 냄새가 나."

    "그, 그런데 냄새 안 나거든요! 당신 얼버무리려고 갑자기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틸다는 갑자기 자기의 음부 쪽에 손을 뻗었다.

    "…응? 아니. 무슨 소리야. 그 음모 말고."

    "……아. 아아아…."

    마틸다는 그제야 자기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 깨달은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다는 표정이 됐다.

    네가 얼굴 만지고 있는 그 손, 방금 음부로 뻗었던 손인데 괜찮냐?

    얼굴이 애액으로…뭐, 말하지 말고 그대로 두자.

    자신의 애액으로 얼굴을 적신 추기경님이란 것도 제법 흥분되니까.

    아무튼 이렇게 되고 나니 방금 전까지 신성하게까지 보였던 마틸다가 다시 평소의 마틸다로 보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는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잠깐 눈이 이상해졌던 거겠지.

    이런 마틸다가 신성해 보였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무슨 생각으로 사실을 왜곡한 건데?"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난 분명 우리 애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고민한 거였어. 그런데 관계의 유지라고 말을 바꾼 건, 분명 뭔가 이유가 있는 거지?"

    "그, 그런…그런 것보다 당신의 고민이 말이죠!"

    마틸다는 다시 내 고민 얘기로 화제를 전환하려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말 해."

    "읏…."

    평소라면 이런 사소한 언어사용 하나하나에 일일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예감이 들었다.

    마틸다가 이렇게 말을 바꾼 것에는 필시 뭔가 중요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마틸다가 당황하며 화제를 전환하려는 것을 보고,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하, 하지만…하지만…."

    그렇게 되풀이하면서 말하기를 주저하는 마틸다를 가만히 쳐다보며, 나는 마틸다 스스로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들의 슬픈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다른 모든 여자들과의 관계를 부정하면…제가 끼어들 자리가 완전히 없어져 버리잖아요."

    그리고 한참을 주저한 끝에, 결국 마틸다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시선을 피했다.

    마틸다는 아마 자기 좋을 대로 말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딱히 죄책감을 느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왜곡이라고 해봤자, 자기 스스로 마주하기 힘든 사실을 조금 바꿔 말한 것뿐이고.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도 이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정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마지막 그 말로 사실을 왜곡한 것만 제외하면, 마틸다가 내 고민에 적절한 조언을 해준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마틸다가 전부 자기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게 내 판단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고작 그 정도 행동으로 이렇게 죄책감까지 가지고 있는 애다. 그렇게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지.

    애초에 얘가 그렇게 이기적이었으면 이 저주부터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끝이었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추기경이란 지위가 그 정도 힘은 있을 테니까.

    아무튼 그런 마틸다의 살짝 자기 좋을대로 말한 행동보다, 나는 더욱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뭐? 너 그 말은 즉 날…."

    "…네. 좋아해요."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마틸다는 사랑스런 눈빛을 내게 보내며 애틋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그 얼굴이 지금 상황과 안 어울릴 정도로 너무 황홀한 표정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아니. 완전히 저주 때문이잖아."

    "핫! 아, 아니 거든요! 저, 전 정말로! 자, 봐요! 지금 이 상태에서도 이렇게나 사랑해요오…."

    …얘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겠지?

    내가 아무런 반응을 못하고 있자, 마틸다가 다시 핑크빛 모드가 풀려서는 끙끙 거리기 시작했다.

    "으으읏…그,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빨리 저주를 풀어 주면 되잖아요!"

    눈가에 살짝 눈물까지 띄우고 중얼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미안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까지 그렇게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들다니.

    "알았어. 일단 저주를 푸는 것에 집중하기로 할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제대로 마틸다의 기분도 제대로 의식하면서.

    "흐읏…가, 갑자기 그렇게…!"

    "아깐 확실히 미안한 짓을 했으니까 말이야. 보답으로 이번엔 제대로 감정을 듬뿍 담아서 섹스를 해줄게."

    마틸다의 아까 전 그 조언으로 고민이 깨끗이 해결됐다거나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레이아와 헤어졌을 직후부터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어지던 무게추가 다시 원상복구가 된, 아니 오히려 반대편으로 넘어간 기분마저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직 어느 쪽으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상, 그렇게 기계적인 섹스를 한 건 확실히 잘못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응…으읏…."

    "그렇게 기분좋은 와중에도 민감하게 알아차렸는걸. 좋아하는 거지? 감정이 듬뿍 담긴 섹스."

    "흐응…네에…좋아…흐응…좋아해요오…."

    아니. 마틸다. 그런 표정으로 말하면 섹스가 좋다는 건지 내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잖아.

    뭐, 됐나. 어느 쪽이든.

    나는 아까의 행위를 보상하듯이, 마틸다의 안쪽 민감한 곳을 물건으로 자극해나갔다.

    "후우…오늘은 이쯤 할까?"

    "하헷…네, 네헤에…."

    그리고 수 시간 후.

    아까는 내가 몇 번을 사정하던 와중에도 핑크빛 모드가 되지 않고, 오히려 행위를 중단시키고 설교까지 했던 마틸다였지만, 이번에는 온 몸에 힘이 풀려서는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느끼게 됐다.

    이번엔 마틸다도 충분히 만족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충분히 만족한 덕분에, 저주의 흔적도 오늘의 목표로 삼았던 위아래 10cm 정도씩 줄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잠깐 멈췄을 때는 사정한 양에 비해서 그다지 흔적이 줄어있진 않았지.

    역시 기계적으로 허리를 움직이기만 하는 섹스보다는, 제대로 즐기면서 하는 섹스가 효율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물의 정령을 불러내어 나와 마틸다의 몸을 씻도록 명령하고는, 깨끗해진 마틸다의 몸 위에 이불을 살며시 덮어줬다.

    그리고 옷을 입고 방문을 나서려고 했을 때, 뒤에서 마틸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앗, 자…잠깐만요…."

    "응? 왜 그래?"

    "…그런 당신의 고민을 이용한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이런 말을 해도 믿기 힘들 거라는 건 알지만…제가 당신에게 했던 말들은 진심이었어요. 성자란 걸 떠나서라도, 당신은 충분히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신님이 그걸 원하실 거라는 것도요. 당신에 대한 제 감정과는 별개로, 전 그렇게 확신해요. 다시 한 번 당신이 고민을 상담하더라도 전 망설임 없이 똑같이 대답할 거예요."

    마틸다는 절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달뜬 숨을 내쉬면서도, 침대에서 상체를 힘겹게 일으키고는 날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응. 알고 있어. 믿어."

    나는 그렇게만 말해주고, 마틸다의 방을 뒤로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나는 잠깐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마틸다의 말에 전부 설득당한 건 아니다.

    여전히 마틸다의 말은 이상론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잘 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아무리 잘하더라도, 만약 내가 다른 여자와 그런 감정적 교류를 하게 되면 우리 애들이 상처를 입을 거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만약 셋이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건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한다기 보다는 날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받아들여주는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처럼 섹스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 교류를 해나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그를 통해 다른 여자를 더 받아들이는 결과가 되더라도 말이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처럼 그냥 하렘은 남자의 로망이니 그리 한다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그런 결심을 한 게 아니다.

    마틸다의 말을 통해, 그리고 마틸다와의 행위를 통해 깨달은 거다.

    아무런 감정 교류 없이 기계적으로 하는 섹스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그리고 우리 애들의 기분에 신경 써서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건 우리 애들의 기분에만 너무 신경써버린 나머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신경을 안 쓰게 되어버리는 꼴이 된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물론 내게는 우리 애들의 감정이 최우선이기는 하지만, 그걸 위해 다른 사람들 모두의 감정을 소홀히 대해도 좋을 리가 없다.

    날 좋아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의 감정을.

    문뜩 신전에서 레이아와 날 결혼시키려고 꾸몄을 때 레이아가 거절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혼을 하면 레이아 본인은 행복하겠지만, 사라와 디아나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난 아마 그렇게까지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 레이아 본인도 결국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했던 말.

    그게 바로 레이아의 본심인 거다.

    아니. 레이아뿐만 아니라 사라나 디아나도 그럴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만약 실비아가 내게 제대로 감정을 부딪혀온다면, 그리고 그걸 거부한다면 나는 엄청나게 죄책감이 들겠지.

    그리고 마틸다 역시 저주가 풀린 후에 내게 감정을 부딪혀 오면, 그때도 마찬가지일 거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나는 실비아나 마틸다도 받아들이고 싶은 거다.

    내 제멋대로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애들 역시도 둘에게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날 보기 보다는, 그냥 둘을 받아들이는 쪽이 좋다고 생각할 거다.

    그야 물론 반발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틸다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누구보다도 셋을 사랑한다는 걸 확인시켜주면 결과적으로는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갑자기 그런 표정으로. 또 이상한 변태 같은 짓을 꾸미려는 건 아니겠지?"

    방을 나선 나는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를 황급히 한 자리에 모았다.

    물론 아까의 결심을 모두에게 얘기하기 위해서다.

    스스로 결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승인은 받고 해야 하지 않겠어?

    솔직히 말하자면, 뺨 한두 대는 맞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거 엄청 떨리네. 기분 탓인지 오늘따라 사라의 쿨한 얼굴이 더 차가워 보이기까지 했다.

    "얘들아. 미안. 난…하렘을 만들 거야!"

    "…하? 뭐라고?"

    각오를 정하고 내뱉은 내 말에, 제일 처음 반응을 보인 건 사라였다.

    차가운 눈빛이 심장을 얼리는 기분이었다.

    "자네. 이 몸들을 불러서 진지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그런 농담을 하려고 부른 것이었나."

    디아나는 내 말을 농담으로 생각하는 듯, 어차구니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아니. 미안한데 농담이 아냐. 난 앞으로 하렘을 만들 거야."

    그런 디아나의 말을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고,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원씨. 무슨 말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그제야 내가 진심이라는 걸 인지한 듯, 레이아가 내 손을 양손으로 포개잡더니 말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이미 너희 말고도 다른 여자들 관계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더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져야 할 거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재주 좋게 행위와 감정을 분리시킬 수 있는 놈이 아니라서. 관계를 허락해준 너희에겐 미안하지만 실비아나 마틸다에게도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됐어. 걔들도 내 여자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미안해."

    여신의 사명 때문에 난 앞으로도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져야한다.

    사도 임명을 발동시킬 조건이 갖춰질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좋든 싫든 지금부터라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변명 같은 말은 일절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여신의 사명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린 결론이니까.

    때문에 당당히 바람피우겠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말을, 나는 셋에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당당하게 선언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전 편에서 마지막 마틸다의 대사 가독성 문제 수정했습니다.

    마틸다와 실비아도 사라가 용사인 건 압니다. 382화에서 다 같이 있을 때 말하죠.

    저도 몇 화에 있었던 일인지 기억이 안 났었는데, 댓글로 알려주신 난피케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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