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447화 (43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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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계 최초의

    "남자 둘에 여자 셋. 응. 적당하네. 수고했어. 실비아."

    펠리시아는 우리를 하나하나 찬찬히 바라보면서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남자 둘?

    나는 반사적으로 우리 일행을 천천히 살펴봤다.

    일단 제일 키가 작은 디아나.

    그리고 거대한 어깨 뽕으로 로브가 붕 떠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풍만한 가슴을 전부 숨길 수 없는 레이아.

    레이아에게는 조금 뒤처지지만 역시나 가슴이 조금 부풀어올라있는 게 보이는 마틸다.

    그리고…응. 그래. 사라가 여자치곤 키가 좀 크긴 하지.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어림잡아 170대 초반정도 되려나.

    이렇게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으니, 키가 조금 작은 남자라고 해도 충분히 먹힐만한 모습이었다.

    "……!"

    그렇게 내가 빤히 보고 있지, 사라도 남자 둘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사라는 바로 욱해서 펠리시아에게 뭐라고 하려 했지만, 그 전에 내가 손을 들어 올려서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진정해. 사라야. 이건 그냥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그런 거니까.

    "나 진짜 쟤 싫어…."

    내 뜻을 알아줬는지 사라는 결국 하려던 말을 집어 삼켰다.

    대신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나는 그런 사라를 달래듯 엉덩이 위, 사도 인장이 있는 부분을 로브 위로 톡톡 두드려줬다.

    "그럼 바로 갈까. 따라와."

    펠리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역시나 한가운데에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는 방이었다.

    거기서 긴히 할 일이 있다면서 시종들을 모두 물리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로브를 벗을 수 있었다.

    "영상에 나오는 여자가 너란 걸 모르게 하기 위해서 이러는 건 알겠지만, 솔직히 별로 소용없지 않아?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우리라고 눈치 챘을 텐데?"

    "괜찮아. 이런 건 확실한 증거만 주지 않으면 되는 거야. 만약 의심하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이지."

    펠리시아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전에 우리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부탁하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그래서. 디아나님. 물건은 완성된 건가요?"

    "음. 문제없네. 바로 설치하면 되겠는가."

    "네. 부탁드려요."

    디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허리춤에 매단 주머니에서 이것저것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에 보여줬던 마법구는 전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상당히 많은 물건들을 꺼낸 디아나는, 그대로 하나하나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보다 교황님은요? 공주님. 당신 교황님을 설득한 건가요?"

    "네. 몇 가지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흔쾌하게 허락해주셨어요."

    마틸다의 질문에, 펠리시아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니 뭐니 해도 여신님의 사자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요. 교황님께서도 여신님의 뜻이라고 이해해주신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 조건이라는 건 뭔데?"

    "응…그렇네. 자잘한 조건은 우리와 교단 측의 거래 같은 거니까 자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다만 한 가지 자기가 신경 써야 할 게 있다면, 영상을 찍을 때 자기 얼굴도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일일까."

    자기라…. 너 이제 디아나 앞에서도 대놓고 말하는구나.

    아니. 내가 편한 대로 말하라고 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사라는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원래 이런 애란 걸 알고 반쯤 포기했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응? 너뿐만 아니라 나도?"

    "응. 둘 다 얼굴을 가려서 정체가 누구인지 모르게 할 셈인가봐. 그래봤자 자기는 말로 설명까지 해야 할 테니까 바로 들키겠지만. 그래도 성직자는 다른 사람의 섹스를 보지 않는다는 규율을 깨기 위해선 필요한 모양이야. 남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러므로 아무런 감흥도 가질 수 없는 단순한 교육 영상이라는 명분으로. 잘 된 거 아냐? 어차피 나도 자기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응?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당연하잖아. 이번만큼은 나도 저 여자 말에 동의해."

    내가 질문을 하자, 사라가 옆에서 끼어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사라는 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영상을 보는 게 꼭 남성분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남성분이 교육을 위해 보게 되더라도, 곁에 같이 보는 여성 성직자분이 계실 테고. 그런 분들이 구원씨의 행위를 보면 분명…."

    레이아의 말을 듣고, 나는 겨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지금까지 펠리시아에게 AV배우 같은 역할을 시키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틀렸다. 이 세계는 내가 원래 있던 세계와 달리 성생활에서 남녀가 완전히 평등했다.

    원래 세계에선 남자는 여러 여자와 자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구석마저 있지만, 여자는 여러 남자와 자면 걸레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여기선 그런 식으로 남녀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론 완전히 남녀가 완전히 평등하다는 말이다.

    애초에 원래 세계와 달리 요직에 있는 사람은 여자가 더 많기도 하고.

    솔직히 여성 우위 사회가 아닌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러고 보니 남자답다느니 여자답다느니 묘하게 원래 세계와 일치하는 표현이나 사상도 남아있었고. 그런 거랑 관계가 있는 걸까?

    뭐,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하면, 펠리시아만 AV배우가 되는 게 아니라, 나도 AV배우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원래 세계의 남자 AV배우만큼 비중 없는 역할이 아니라, 여자 AV배우처럼 주목을 받게 되는 거다.

    "……."

    설마 영상을 본 여자들이 한 번이라도 나랑 자보려고 들이대거나 하는 걸까?

    원래 세계에서 AV여배우들은 그런 경우가 꽤나 많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솔직히 내 가치관으론 아무 문제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우리 애들한텐 그렇지 않겠지.

    "설마 지금까지 자기가 어떤 상황이 될지 눈치 못 채고 있었던 거야?!"

    "사, 사라씨. 진정하세요. 구원씨는 저희와 조금 가치관이 다르시니까요."

    "하지만 레이아! 분명 영상 본 여자들이 구원이랑 해보려고 달려들 텐데…역시 지금이라도 멈추는 편이…."

    "괜찮아요. 전 구원씨를 믿는 걸요."

    "저, 저도 믿어요! 믿지만…구원! 알고 있지?!"

    사라는 불안한 눈으로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사라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괜찮아. 조금 예상 못하고 있던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어.

    "얼굴 가리고 나 아니라고 시치미 떼야겠네."

    "그런 거지. 이미 어떻게 소문을 낼지는 생각해놨어. 영상에 나오는 남녀는 둘 다 엄선한 모험가야. 그리고 둘은 구원의 지도를 받은 후 영상을 찍게 됐다는 거지. 그리고 그 영상은 내 철저한 지원 하에 제작되고, 배포된다는 말씀."

    "너 여왕님 설득하는 건 나한테 정기적인 정액을 얻는 걸로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 영상 제작 쪽에서도 꽤나 자기 명성을 퍼뜨리려고 하네."

    "그야 물론이지. 성에서 찍는 거잖아. 그 정돈 하지 않으면 굳이 여기서 찍은 이유를 얼버무릴 수 없는 걸. 그리고…결국 찍히는 건 나니까 그 정도 명성은 얻어도 되잖아."

    "뭐, 그야 그렇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럴 거면 차라리 진짜 너 말고 다른 여자를 준비해서 찍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아? 나는 대체제가 없다고 쳐도 말이야."

    "하지만 자기와 영상을 찍으려면 상당히 레벨이 높지 않으면 안 되잖아? 현재 6계층을 공략하고 있는 수준은 돼야 버틸 수 있을 텐데. 아무리 나라도 그런 사람들한테 영상을 찍으라고 막무가내로 강요할 수는 없어.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찍을 수밖에."

    "그런 거냐?"

    "응. 그런 거야."

    어쩔 수 없는 것 치곤 상당히 상쾌한 미소인데 말이지.

    뭐, 됐나. 이제 와서 다시 다른 여자 구해오라는 둥 시간 끄는 것보다 그냥 빨리 끝내는 게 나로서도 더 좋기도 하고.

    "흠. 다 됐네. 이러면 되겠는가?"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디아나가 마법구의 설치를 완료한 모양이었다.

    마법구는 침대의 옆쪽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침대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마법구 뒤쪽의 벽에 프로젝터를 비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거든. 현재 마법구가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오오. 촬영하는 모습을 집적 확인 할 수 있도록 한 건가. 잘 만들었네."

    "음! 당연하지 않나. 이 몸을 뭐라고 생각하는 겐가?"

    디아나는 가슴을 쫙 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디아나가 만든 거 아니지 않아?"

    "이렇게 만들도록 지시하고 마법 술식을 짜준 건 이 몸일세!"

    "과연. 역시 디아나. 내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네."

    그러고 보니 촬영용 마법구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할지 디아나한테 전혀 말하지 않았었다.

    디아나도 이런 건 처음이라고 했으니까, 내가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됐는데.

    "음. 자네가 생각하는 것쯤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다 통하고 있네."

    "역시! 그럼 편집 기능 같은 것도 있지?"

    "…펴, 편집?"

    야. 잠깐만. 거기서 말을 더듬으면 어떡해.

    어떤 의미론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아니. 미리 말 안 해준 내가 잘못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제발. 제발 가능하다고 해줘.

    그게 불가능하면 난….

    "촬영하다가 실수하면 지우고 거기부터 다시 찍거나 하는 기능 말이야."

    "그, 그게, 그게 말일세…."

    "…없구나."

    망했다.

    한 번의 실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롱 테이크로 찍어야 된다고?

    "괘, 괜찮네! 그 정도 기능! 지금부터라도 추가할 수 있네! 자, 잠시만 기다려보게!"

    내가 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디아나가 얼굴을 붉히면서 황급히 외쳤다.

    내 생각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다 통하고 있다느니 뭐니 떠들어 놓고 이렇게 된 게 상당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디아나는 황급히 마법구에 달라붙어서 뭔가 조작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네. 그럼 자기. 그 사이에 우리도 준비할까? 실비아. 가져왔지?"

    "네."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까 로브를 꺼냈던 주머니에서 이번엔 갑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뭐라고 할까, 역전의 용사들이 입을 것 같은 느낌의 갑옷이었다.

    튼튼하고 좋아 보이지만, 여기저기 헤지고 닳은 모습이 역사를 느끼게 했다.

    "뭐야 이거?"

    "뭐기는. 변장이지. 시작할 땐 이걸 입고 시작하는 거야. 투구까지 있으니까 얼굴도 이걸로 가릴 수 있고. 완벽하지?"

    "너 왠지 들떠 보인다?"

    "어머. 그렇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펠리시아는 평소의 색기 넘치는 미소가 아닌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뭐, 매일 성에 틀어박혀있는 공주님으로선 이런 걸 입을 기회란 좀처럼 없을 테니까 말이야.

    이런 거에 들뜨는 그 모습은 평범한 공주 같이 보여서 조금 신선했다.

    "후훗. 그럼 준비해볼까. 실비아. 도와줘."

    그렇게 말하면서, 펠리시아는 입고 있던 화려한 드레스를 훌러덩 벗어던졌다.

    "다 벗는 거냐?!"

    이 녀석, 심지어 안에 속옷도 안 입고 있어!

    "어머. 뭐 문제라도? 어차피 곧바로 알몸이 될 텐데."

    "그야 그렇지만 너…."

    역시 이 녀석은 평범한 공주 같은 게 아니야.

    조금 좋게 봐주려고 하면 바로 이런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펠리시아의 몸을 빤히 쳐다봤다.

    뭐? 남자가 예쁜 여자의 알몸을 쳐다보는 건 본능이잖아. 뭐 문제 있어?

    "그리고 다른 준비도 필요한걸. 자기도 필요하지 않아?"

    "다른 준비? 무슨?"

    "털 말이야. 털. 밀지 않으면 색으로 들키지 않겠어?"

    아…. 확실히 그렇긴 하지.

    이 세계 사람들은 머리색이 하나같이 각양각색이라 의외로 머리색만으로 사람을 구별할 수 있거나 하기도 한다.

    게다가 펠리시아의 머리카락은 그 중에서도 특히 보기 드문, 아니 솔직히 얘 말고는 본 적 없는 핑크 블론드였다.

    물론 음모의 색도 마찬가지. 그게 보이면 무조건 들키겠지.

    "그렇게까지 신경 쓰면서 왜 진작 안 밀었는데?"

    "어머. 내 몸은 항상 시중들이 씻어주는 걸. 그리 간단히 밀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아. 밀면 한 동안 느긋하게 목욕도 못하겠네. 당분간은 마법으로 씻는 게 전부인가."

    펠리시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우울하면 그냥 다른 여자를 준비해 놓았으면 됐잖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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