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446화 (43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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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계 최초의

    "그럼 갈까."

    "우읏…! 어, 어디에 말입니까아아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는 곧장 구석으로 달려가 실비아를 포획했다.

    "어디기는. 그야 당연히 성이지. 난 이래 봬도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는 착실한 성격이거든. 자, 곧장 가자!"

    "신나 보이네."

    어젯밤에는 그렇게 사랑을 재확인했다고 하는데도, 사라는 역시 내가 공주를 안는 게 그리 탐탁지 않다는 듯 언짢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언짢으면 하지 말라고 말하면 될 텐데.

    난 분명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안 하겠다고 했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라 역시 펠리시아가 불쌍하기는 한 거다.

    하여간 생긴 거랑 다르게 마음이 약하다니까.

    "당연하잖아. 드디어 구원이다 뭐다 하면서 엉겨 붙는 사람들한테서 해방될 수 있어."

    "그래선 전혀 착실한 게 아니잖아…."

    사라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지만,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이니까.

    "뭐, 아무튼 사라도 따라온다고 했지?"

    "아, 응."

    "그럼 가자. 출발! 바넷사! 마차의 준비를…."

    "잠깐 기다리게."

    내가 신나서 방을 나서려고 했을 때, 디아나가 날 말렸다.

    "응? 뭐야?"

    "이 몸도 가겠네."

    "디아나도?"

    "음. 완성되었다곤 하나, 역시 현장에 가서 직접 조정을 해봐야 할 터이니 말일세."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처음 보는 마도구를 꺼냈다.

    "그건?"

    "영상 촬영을 위한 마도구일세."

    "어? 디아나가 그걸 왜 가지고 있어?"

    "그야 당연하지 않나. 여기서 만들었네. 기존에 존재하던 마법을 조금 손봐서 조정하는 정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마법구일세. 가장 정확하게 만들 수 있는 마법사는 여기에 존재하는 마법사들 아니겠나? 뭘. 걱정 말게. 경비는 제대로 받았네."

    아, 그런가. 과연. 촬영 장치는 이쪽에서 만든 건가.

    그래서 펠리시아에게 연락이 왔다는 말을 듣고, 디아나가 신전과의 협상이 끝난 것 같다고 얘기했던 거구나. 마법구가 어떻게 됐는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좋아. 그럼 디아나도 같이…."

    "그, 그런 것이라면 저도 같이 가야겠네요. 추기경으로서, 신전과의 협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된 건지도 신경 쓰이고 말이죠."

    디아나의 동행이 결정되자, 이번엔 마틸다가 시치미를 뚝 떼고 새침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나섰다.

    아니아니아니. 넌 따라오면 안 되지. 남의 성행위를 보는 건 금기 아니었냐?

    그렇게 궁금한 거냐? 우리 영상 촬영.

    뭐, 디아나가 마법구에 대해 말하는 걸 보면, 영상 촬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 세계에서 보편화되지 않은 모양이니까. 그야 궁금한 것도 이해는 가지만 말이야.

    게다가 이렇게 하나하나 곧장 따라갈 이유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즉흥적인 발언은 아닌 것 같았다.

    얘들 설마 밤새 따라올 이유거리만 찾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의심스럽다.

    "아, 저, 저기…. 저는…."

    유일하게 우리 천사님만이 따라올 이유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아마 레이아는 날 믿고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셈이었겠지.

    하지만 갑자기 자신을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따라가겠다고 나서자 조금 당황스러워진 모양이다.

    레이아는 이제야 허둥지둥 자신이 따라갈 이유를 생각해보려는 모양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이유가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은 듯 보였다.

    "레이아도 같이 가자."

    "네? 하지만…."

    "파티원 전원이 함께하는데, 레이아만 빠지면 쓸쓸하잖아? 파티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같이 따라 와줬으면 좋겠어."

    "아…네!"

    내가 그렇게 이유를 만들어주자, 레이아는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오늘도 천사님은 천사구나.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결국 전원이 다 같이 성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얘들 설마 영상 찍는 것까지 전부 지켜볼 셈은 아니겠지?

    아무리 나라도 그건 부끄러우니까 참아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자네도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구먼."

    "응?"

    "영상 말일세. 영상. 설마 교육 목적으로 영상을 찍으려는 생각을 하다니. 가끔 느끼는 거지만 자네는 참 발상이 참신하구먼. 이 몸도 평소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의 마법도 여러 방면으로 활용하려고 마음먹고 있네만, 이렇게 모습을 비추는 마법을 원거리 통신용 이외의 방법으로 사용할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네.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구먼.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가 조금 한심하게 느껴지네."

    "아냐. 디아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해. 내가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었던 것도 단지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이런 게 일반적이라서 그런 것뿐이니까."

    뭐, 굳이 따지자면 인터넷 강의와 AV를 접목시킨 것이기는 하지만.

    "게다가 디아나도. 이렇게 스스로 만들고 있던 벽을 깨닫는 걸로 인해, 한층 더 발상이 자유로워진 거 아냐?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거니까 기뻐하라고."

    "흠.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먼."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조금 풀죽은 표정이었던 디아나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배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그래. 물론 레벨을 올리고 한계를 돌파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쪽은 어차피 안달한다고 빨리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동안은 이렇게 사고의 폭을 넓혀가는 걸로 발전을 꾀해보자고."

    "그러기 위해선 발상이 자유로운 자네와 좀 더 자주 얘기를 할 필요가 있겠구먼."

    "난 디아나랑 충분히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부족하네. 좀 더. 좀 더 많이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네."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옆에 허벅지가 찰싹 붙을 정도로 밀착해 와서는 내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저기 말이야."

    "응?"

    "마차에 우리도 있는데 디아나하고만 노닥거리는 거 그만둬줄래?"

    "부러워?"

    "당연하잖아!"

    어, 응. 그래. 부럽구나.

    그렇게 쿨하게 인정해버리니까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운데.

    "하아. 모처럼 좋은 분위기를 방해하다니. 사라양도 멋이 없구먼."

    "디아나가 앞으로 계속 구원을 독점하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방해는 안 했어요."

    "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먼. 이 몸은 마법의 얘기를 했을 뿐이네만."

    "그런가요? 구원. 난 저런 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냥 구원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

    으, 응. 사라야. 고마워.

    그런데 오늘은 묘하게 더 적극적이네.

    어젯밤에 오빠오빠 거렸던 효과가 아직 조금 남아있는 건가?

    뭐, 자기도 이런 말을 하긴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조금 빨갛긴 했지만.

    "뭣?! 잠깐! 그 말투는 뭔가?! 그럼 이 몸은 마치…! 치사하네, 사라양! 자네. 착각하지 말게! 이 몸도 좋아해서 같이 있고 싶은 것이니 말일세!"

    아아. 모처럼 디아나가 나랑 사랑 얘기를 하면서도 어른스러웠는데.

    아까까지의 따뜻한 분위기는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디아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서는 다급하게 그렇게 외쳤다.

    "그럼 역시 마법은 핑계잖아요."

    "핑계가 아니라 일석이조라는 것일세!"

    야. 날 사이에 두고 말싸움하지 말아줄래?

    마차 안이라 빠져나갈 수도 없잖아.

    진짜 얘들은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

    아니. 뭐, 사라의 의도를 조금 알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야.

    자신의 한계를 본 디아나가 씁쓸해하니까, 이런 식으로 싸움을 걸어서 원래의 태도로 돌아오게 만들어 준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사랑 반 마법 반인 디아나랑 다르게 전 100% 사랑이지만요."

    …그런 의도 맞지? 사라야?

    "이, 이 몸도 99%는 사랑일세! 아, 마법은 1%정도밖에…."

    "어머 1% 이겼네요?"

    "마, 마법 따윈 아무래도 좋네! 이 몸도 100% 사랑일세!"

    아니. 디아나. 고맙긴 한데 말이야. 진짜 고맙고 사랑스럽고 최고인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마법사 협회 누님들이, 아니 전 세계 마법사들이 들으면 눈물을 흘리며 졸도할 말이라고. 그거.

    "후훗. 저도 100% 사랑이에요. 구원씨가 설령 여신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분명 전 구원씨의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 사라와 디아나의 다툼을 보면서, 레이아도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한 손을 두 손으로 포개듯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서 꼬옥 끌어안았다.

    "레, 레이아! 중간에 가로채는 건 치사해요!"

    "그, 그렇다네! 가슴으로 유혹하려 하지 말게나!"

    너희 진짜 사이가 좋은 거냐, 나쁜 거냐.

    뭐, 됐어. 이래선 가는 내내 이런 분위기일 것 같고. 그렇다고 끼어들면 지뢰밭에 돌진하는 꼴이니까.

    주변의 소란에서 눈과 귀를 돌리고, 힐링이나 하기로 할까.

    "쥬, 쥬거어어…저, 저어어어…."

    아니. 그러니까 안 죽는다고.

    나는 식당에서부터 끌어안고 와서, 마차에서도 계속 품안에 안고 있던 실비아의 머리에 코를 파묻고 냄새를 맡으며 온 몸으로 진동을 느꼈다.

    "하아…."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가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 사이로 누군가의 한숨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실비아테라피를 만끽했다.

    "구, 구워, 구원니이이이임…."

    "응? 왜 그래?"

    "자, 잠깐, 우아우으으…자, 잠깐 해방으으을…."

    그리고 성에 다다르기 직전, 죽음을 각오한 표정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내게 안겨있던 실비아가 갑자기 버둥거리면서 해방을 요구했다.

    무슨 일이지?

    내가 실비아의 몸을 놔두자, 실비아는 마차 안에서도 재주 좋게 후다다닥 구석으로 도망가서는 숨을 골랐다.

    "흐앗…하앗…하앗…이, 이번엔 잠깐 여신님의 얼굴이 보였어…."

    아니. 실비아야. 귀여운 목소리로 위험한 말 중얼거리지 말아줄래?

    아무리 나라도 그런 혼잣말을 들으면 조금 걱정되잖아. …껴안는 걸론 안 죽는 거 맞지?

    "아, 아무튼 여러분. 가기 전에 이걸 입어주시길 바랍니다."

    숨을 다 고른 실비아는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안에서 검은 천으로 된 무언가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실비아가 내민 건 로브였다.

    다만 로브는 일반적인 로브와는 조금 달랐는데, 일단 나조차도 전신을 완전히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컸다. 게다가 뭔가 어깨에 커다란 뽕 같은 것이 달려 있어서 착용하고 나면 착용자의 신체 라인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아니. 신체 라인은커녕 웬만하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별할 수 없지 않을까?

    …뭐, 레이아는 이걸 입어도 가슴 부분이 부풀어있을 것 같지만.

    "이건?"

    "영상을 촬영하는 게 공주님이라고 특정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과연. 그런 건가.

    나는 대충 펠리시아가 어떻게 행동하려는 건지 짐작이 갔다.

    "그럼 성 문을 통과할 때 경비에게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럼 전 성문 통과를 위해 잠시."

    우리가 각각 로브를 하나씩 착용하자, 실비아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렇게 말하고는 마부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실비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통과 핑계대고 나한테서 도망가려는 건 아니지?"

    "아, 아, 아, 아닙니다아!"

    "그럼 성문 통과하면 다시 이쪽으로 오겠네?"

    "우, 우으으…네, 네에…."

    "왠지 슬퍼 보인다?"

    "기, 기뻐서 그렇습니다아!"

    "구원. 실비아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

    "아니. 괴롭히다니. 실비아가 나한테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지?"

    "…네. 죽을 정도로."

    야. 비장하게 말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 농담으로 안 들리잖아.

    아무튼 우리는 성문을 통과하는 동안 로브를 뒤집어쓰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성문 경비는 그런 우리를 보고 조금 의심스런 시선을 보냈지만, 마부석에 타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실비아이다 보니 결국 신분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

    "어머. 실비아 어서와. 그 분이 전에 말했던 그 모험가분들?"

    그리고 성에 도착하자, 펠리시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아니. 기다렸다는 듯이가 아니라 실제로 기다린 거겠지.

    그건 그렇고 모험가분들이라. 과연. 역시 그런 식으로 얼버무릴 셈인 건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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