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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42화 (42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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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발견

    다행이도 누구에게 들키기 전에 간신히 실비아를 붙잡아서 옷을 입힐 수 있었다.

    실비아 이 녀석, 나보다 신체 능력이 좋으니까 하마터면 놓칠 뻔 했어.

    중간에 다리가 풀려 넘어지지 않았다면 정말로 위험했다.

    실비아가 있는 쪽을 힐끔 쳐다봤다.

    "으으으읏…!"

    그러자 역시나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실비아는 화들짝 놀라서 그대로 벽에 놓인 갑옷 뒤로 숨어버렸다.

    저녁때도 저러더니 또 저러네.

    평소보다 더 부끄러워하는 실비아는 식사시간이 되자 식탁 구석 끝으로 가는 것도 모자라 아예 식탁 아래에 숨어서 먹으려는 짓까지 하려고 했다.

    바넷사를 시켜서 어떻게든 의자에 앉혀 놓기는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식사를 마치고, 이렇게 우리 파티원들 끼리만 모여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되어서도 저러고 있는 거다.

    뭐, 오늘은 더 이상 쟤한테 시선을 안 주는 게, 실비아를 위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디아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아침이나 점심이면 모를까, 지금까지는 저녁식사가 끝나면 다들 각자 자기 방에 곧바로 돌아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암묵의 룰이라고 할까? 이 시간부터는 오늘 밤 나와 잘 차례인 사람을 위해 배려를 해주는 거다.

    하지만 오늘은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파티원들끼리 따로 모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으, 음? 뭐, 뭔가? 마, 말해두지만 별로 이상한 말 안 했네!"

    내가 다들 모여보라고 했을 때부터 기장하고 있던 디아나가, 바로 과민반응을 보여왔다.

    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 너무 찔려하는 거 아니냐?

    뭐, 아까 살짝 엿들은 내용을 생각해보면 저런 반응을 보일 법도 하긴 하지만.

    걱정 마라. 난 내 여자에겐 한없이 따뜻한 남자니까. 용서한다.

    레이아도 결국 설득당하지 않은 모양이고.

    게다가 너희 얘기 덕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고.

    옆에 있는 레이아를 바라보자, 레이아가 내 시선을 눈치 채고는 싱긋 웃어줬다. 하아. 역시 천사님이야.

    아, 새로운 아이디어가 뭐냐고? 뭐긴 뭐겠어. 성벽의 개발이지.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우리 애들의 타고난 성벽을 그저 자극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낮에 셋의 대화를 엿듣고 나서 깨달은 거다.

    그래! 레이아처럼 특별한 성벽이 없는 애라도, 개발을 해버리면 그만인 거야!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특수 성벽을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야.

    어디까지나 다양한 성생활을 위해서 말이지. 응.

    뭐, 만약 정말로 레이아의 성벽을 뭔가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레이아는 일단 구미호 상태부터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우선이지만.

    "찔려?"

    "아, 안 찔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아…우리 디아나는 뒤에서 몰래 낭군님 욕이나 하고…. 난 슬프다."

    "요, 욕이라니! 애정표현일세! 애정표현! 다 이 몸이 그만큼 자넬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레이아를 더 좋아하면 어쩌나 불안해진 것뿐이라고?"

    "그, 그건…. 으, 으음…뭐…."

    "걱정 마. 말했잖아. 나 디아나도 엄청 좋아한다니까."

    "우으읏……."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디아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움츠러들었다.

    "디아나. 대답은?"

    "이, 이 몸도 좋아하네…."

    내가 다시 한 번 디아나를 몰아넣자, 디아나는 결국 솔직하게 대답을 해줬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이런 감상이 떠올렸다.

    디아나. 이건 이거대로 수치 플레이네.

    뭐, 이런 말 하면 한 대 맞을 테니까 입 밖으로 내진 않겠지만.

    아니. 상대는 디아나. 굳이 토닥토닥 공격을 맞는다는 방법도 나쁘진….

    "크흠! 구원. 질문이란 게 그런 거였어?"

    식사 중에 갑자기 나와 디아나 사이에 깨가 쏟아지는 게 맘에 안 들었는지, 사라가 그런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아, 응. 물론 아니었지."

    "아니었는가아?!"

    우왓. 놀래라. 갑자기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라.

    자기 머리까지 양손으로 쥐어 잡고는 말이야.

    "왜? 나한테 좋아한다고 한 게 그렇게 억울해?"

    "그런 건 아니네만! 그런 건 아니네만 말일세!"

    디아나는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디아나. 그런 귀여운 표정으로 노려봐봤자 하나도 안 무서워.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야.

    "그럼 됐잖아. 그런 것보다 내가 묻고 싶었던 건, 왜 마석 정산을 하지 말라고 했는지에 대해서야."

    "으으읏…. 고작 그런 거였나. 그런 거 당연한 게 아닌가."

    "당연하다니?"

    "이 몸들의 추측이 들어맞는다고 한다면, 던전의 아래로 내려갈 열쇠는 온전히 자네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이 되지 않나."

    "뭐, 그렇지."

    "여신님이 굳이 그렇게 던전을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응?"

    "그러니까. 자네 없이는 6계층의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설계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는 말일세. 그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이 몸으로서도 아직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말일세."

    과연. 그런 건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저 던전을 여신님이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그 의도를 생각해보자.

    던전은 일단 환경적인 측면으로 사람의 입장을 막고, 강력한 몬스터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사람의 침입을 거절하고 있다.

    그것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강하게. 마치 이 이상 아래로는 내려오지 말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확실히 사람들을 접근시키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뭐, 여신님이 직접 아래로 내려가라고 명한 나는 예외겠지만.

    "하지만 이미 다 밝혀버렸잖아. 성기가 비밀 통로 역할을 한다는 것도, 던전 안에 소규모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도. 게다가 아라크네 클랜에 5계층의 성기를 모아주기도 했고. 걔들이 5.5계층을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겠지. 이미 공표해버린 건 어쩔 수 없네. 하지만 아직 소규모 계층들끼리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정보는 밝히지 않았지 않나. 그것만 밝히지 않으면 되네. 그렇다면 아라크네 클랜이 5.5계층을 발견하더라도 아무 문제없네. 심지어 소규모 계층은 대부분 암컷으로 구성되어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지 않나. 그들은 거기서 성기를 얻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페이크 출구인 6계층으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하고 그걸로 끝이겠지."

    "과연. 그럼 일단 코볼트 동굴의 존재 자체를 밝히는 건 상관없다는 말이지?"

    "음. 뭐, 개미굴의 존재가 밝혀진 이상 늦든 빠르든 소규모 계층은 차례차례 발견 될 것이라고 생각되니 말일세."

    "알았어. 그럼 다음에 마석 정산할 때는 코볼트 동굴의 존재만 밝히는 걸로."

    "음."

    "그럼 앞으로의 던전 탐험은 4계층에 가기보다는 소규모 계층의 연결된 길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출 생각인 건가요?"

    나와 디아나의 대화가 일단락되자, 마틸다가 어딘가 기뻐보이는 말투로 그렇게 물어왔다.

    저번 탐험이 상당히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상층은 이질적인 마나 농도가 약한 것도 있지만, 몬스터가 약하다보니 그다지 경계하고 있지 않아도 되는 환경 자체가 좋았던 거겠지.

    "뭐, 적어도 3.5계층까지는 그럴 셈이야. 거기서부턴 바로 4.5계층에 가는 것보다 4계층에서 레벨을 올리고 가는 편이 좋겠지만."

    "그렇군요!"

    마틸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면서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넌 개미굴에서 3.5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빨리 발견되지 않기를 비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이기적인 생각 같은 건 안 해요. 열심히 탐험하는 여러분께 실례잖아요. 제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나요?"

    "뭐, 솔직히 지금 그 틱틱거리는 성격만 보면."

    "뭐, 뭐라고요오?!"

    "아무튼 난 별로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 안 해. 오히려 늦게 발견되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말이야. 너 이번엔 괜찮았지만, 아직 3계층 이후는 조금 버거운 거잖아?"

    "거, 걱정해주는 건가요?"

    "그야 당연하지. 뭐, 네가 던전에 익숙해지면 우리로서도 도움이 되고."

    "당신…."

    아니. 너 방금 내가 성격 운운한건 까먹었냐? 왜 눈빛이 핑크빛으로 물드는데?

    이런 거 볼 때마다 진짜로 저 잘 반하는 성격이 원래 그런 건지 저주 때문인 건지 긴가민가 한다니까.

    저렇게까지 극적으로 변하는 걸 보면 확실히 저주 때문인데, 레이아의 말에 따르면 다른 사람은 저렇게까지 되지 않는다는 모양이고.

    그게 궁금해서라도 쟤 저주를 푸는 데 앞으로는 더 신경을 써볼까.

    …그래봤자 내일부터지만.

    "그보다 자네. 영상쪽 준비가 끝났다는 모양이네만, 얘기 들었는가?"

    "네? 교황님이 설득되신 건가요?!"

    사랑에 빠진 눈으로 날 바라보던 마틸다가, 디아나의 말에 깜짝 놀라서는 외쳤다.

    "자세한 얘기는 이 몸도 모르겠네만. 연락이 왔다는 건 그런 것 아니겠나?"

    "설마 교황님이…."

    저 반응을 봐선, 역시 마틸다도 힘들다고 생각했구나.

    나도 놀랐다. 펠리시아의 수완이 좋은 건지, 아니면 교황님이 엄청나게 진보적인 타입인 건지. 보통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보수적이기 마련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말이야.

    뭐, 생각해보니 어디서 굴러온 뼈다귀인지도 모를 날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해주신 분이다.

    아무리 여신님을 불러내어 대화를 나눴다고는 하지만, 본인이 그 모습을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꽉 막힌 성격일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던 건가.

    "하지만 공주로서도 영상에 출연한 게 본인이란 건 밝히고 싶지 않은 거잖아? 어떻게 숨길 셈이지? 교황님과 그런 교섭을 하기도 했고, 우리가 성으로 가는 순간 소문이 쫙 날 텐데? 그냥 당당히 가서 영상을 찍고 와도 되는 거야?"

    "네. 그건 문제없습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응? 그래? 실비아는 뭘 좀 아나 보지?"

    "히우으읏!"

    대답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실비아가 다시 벽에 있는 갑옷 뒤로 숨었다.

    갑옷이 덜컥덜컥 움직이는 걸 보니, 아마 진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실비아. 너랑 나랑 지금 거리가 얼마나 멀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직까지 낫질 않다니. 더 부끄러운 경험을 해서 내성을 키우자는 작전도 결국 실패로군.

    아니. 쟨 오히려 특훈을 하면 할수록 내성이 떨어진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그건 그거대로 내성이 떨어지고.

    대체 어쩌라는 건지.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을 거지만.

    "뭐, 아무튼 실비아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좋아. 내일이라도 가볼까."

    "흥. 그러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거지."

    내 중얼거림에, 사라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그 속담. 여기에도 있구나.

    아니. 그런 것보다.

    "사라. 너 설마 따라오게?"

    "당연하잖아! 그럼 혼자 갈 생각이었어?! 그 여자랑 단 둘이서는 절대 안 둘 거야!"

    아무래도 사라는 여전히 펠리시아가 맘에 안 드는 모양이다.

    펠리시아와의 정기적인 관계는 인정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럼 앞으로 정기적으로 할 때도?"

    "당연하잖아!"

    "…너 설마 그냥 자기 성적 취향을…."

    "바, 바보!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응? 사라양. 설마 엉덩이 말고도…."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디아나도 피해자니까 잘 알잖아요! 애초에 엉덩이도 아니라고요!"

    "으, 음. 이 몸도 피해자니 말일세. 잘 알고말고."

    잠깐 흥미롭다는 듯 껴들었던 디아나였지만, 사라의 반박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야. 너희 둘 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서로를 못 믿는 눈치인 걸로 보이는데. 내 기분 탓이냐?

    진짜 얘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니까.

    "아, 아무튼! 할 얘기란 건 이걸로 끝인 거지?"

    "응? 아, 응."

    "그럼 가자! 오늘은 내 차례잖아! 다들 좋은 밤 되세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날 끌고 황급히 방을 나서려고 했다.

    야. 이러면 역효과 아냐? 누가 봐도 도망가는 걸로밖에 안 보이잖아.

    "우왓! 야. 끌지 마. 다들 잘 자. 뭐, 제일 좋은 밤은 우리가…크헉! 조, 좋은 밤을 보내겠다는 게 뭐가 문제인 건데…."

    "어차피 음흉한 생각하고 말한 거잖아!"

    "당연하잖아! 그거 말고 뭐가 있다는 거야!"

    "지금 그러면서 뭐가 문제냐는 말이 나와?! 이 변태!"

    사라는 손바닥으로 날 찰싹찰싹 때리면서 방밖으로 끌고 나갔다.

    "후훗. 가끔 사라씨는 구원씨와 너무 사이가 좋아서 질투 날 정도네요."

    아뇨. 천사님.

    제가 천사님 말에 대부분 무조건으로 동의하는 놈이기는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맞고 있는 걸 사이좋다니….

    얘는 손바닥으로 때려도 진짜 아프다니까요? 엄살이 아니라 진짜로.

    으앗! 따가! 젠장. 사라 너 방에 가서 두고 봐.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무꾸914 // 죄송합니다. 이후 전개될 스토리에 대해서는 답변을 안 하는 걸 고수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댓글로 앞으로의 전개를 맞추신 분은 단 한분도 계시지 않으니, 특별히 조금 힌트를 드리죠. 질문하신 내용에 대한 복선은 이미 스토리 중에 나온 상태입니다.

    illya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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