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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35화 (4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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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발견

    이 넓은 동굴에서 미행을 해봤자 걔들이 수컷한테 갈 확률이 얼마나 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아예 수컷이 없는 거라면 모를까, 만약 수컷이 있다면 이 근처에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도 그렇잖아?

    만약 정말로 이 모든 것의 실마리가 되는 게 몬스터의 성기라면, 여신님이 이 던전을 만들었단 것도, 그리고 여신님이 날 던전에 보내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는 것도 거의 기정사실화되는 거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기를 사용할 통로 근처에 성기를 드랍하는 몬스터를 놔두는 식으로 던전을 만들지 않았겠어?

    그리고 이건 지금까지 성기를 이용한 비밀통로들이 전부 그렇기도 했다.

    그러니까 개미굴과 인접해있는 이 근처야 말로, 수컷 코블트들이 존재할 확률이 가장 크다는 거다.

    나는 은신술을 발동하고는 근처에 있던 코볼트들의 움직임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내 암살자 레벨이 낮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3, 4 계층 수준에서나 나오는 얘기로, 이 근처라면 몬스터들에게 은신술이 간파당할 위험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가 있다면 정기를 다 써서 은신이 풀리는 경우지만, 뭐 은신만 쓰고 있는 거라면 그럴 일은 없겠지.

    아까 오기 전에 디아나한테 마나 보충도 받았고.

    아무튼 한동안 지루한 미행이 계속됐다.

    놈들은 마치 경계라도 하는 것처럼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니고 있어서, 정말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이놈들이 언제부터 여기서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길드에서조차 그 존재를 몰랐던 동굴 안이다.

    긴 세월동안 쳐들어온 세력이라곤 우리밖에 없었을 텐데도 이렇게 성실히 경계를 하다니.

    이런 행동들도 그렇게 하도록 여신님께 프로그램 된 건가?

    너무 따분하다보니 별 잡생각을 다 드네.

    하지만 이렇게 돌아다녀도 안 보이는 걸 보니, 역시 수컷 코볼트 같은 건 없는 게 아닐까?

    슬슬 애들이랑 약속한 시간도 다가오고 있으니, 이제 그만 포기하고 돌아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돌리려고 했을 때, 나는 드디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코볼트를 포착했다.

    내가 따라다니던 코볼트는 여전히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중이었지만, 저기 한쪽 벽면에서 암벽등반을 하고 있는 코볼트를 발견한 거다.

    지나가던 다른 코볼트들이 아무 반응도 없는 걸 보아, 적어도 저 행위가 저 개체만의 특이한 행위가 아니란 것은 명확했다.

    하지만 뭐지? 저 동굴 벽을 기어 올라가 봤자 아무것도….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내 머리 위보다도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코볼트의 모습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건 설마…!

    물론 디아나의 마법이 없는 상태라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시야가 좋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부자연스럽게 한순간에 사라진 그 모습을 보고 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분명 저기에 뭔가가 있어.

    나는 곧장 암벽등반 하던 놈이 사라진 벽면을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정확히 놈이 사라진 부근의 높이에 도착했을 때, 뻗었던 손이 갑자기 쑥 들어가면서 몸이 앞으로 쏠려서 그대로 꼬꾸라졌다.

    벽 너머 위로, 반대편으로 통하는 공간이 있었던 거다.

    솔직히 말해서 완전히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코볼트들의 키는 잘 해봐야 내 허리 언저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수준.

    당연히 다 같이 탐색을 할 때도 아래쪽을 좀 더 샅샅이 살피며 돌아다녔었는데, 설마 저런 식으로 위쪽에 통하는 곳이 있을 줄이야.

    아니. 이 높이면 설령 위쪽에 주목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까 같은 곳을 빙빙 돌면서 몇 번이나 지나쳐왔던 곳이었는데 전혀 눈치를 못 챘다니.

    제법 머리를 쓰잖아. 코볼트 주제에.

    그렇게 생각하며 무릎을 털고 일어나 고개를 들었을 때, 한 쌍의 이글이글 거리는 눈과 제대로 눈이 마주쳤다.

    그래. 눈이 마주친 거다. 방금 전에 이쪽으로 굴러 넘어오면서 은신이 풀려버린 거다.

    눈동자의 주인은 역시나 코볼트였다.

    다만 그 크기는 코볼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내 키를 훌쩍 뛰어넘어 2미터 이상은 확실히 되어 보이는 신장.

    마치 오크를 보는 듯한, 아니 그 이상으로 두터운 팔다리는 근육이 불끈거리고 있었고,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서는 위협하는 것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그리고 전신을 찌르는 그 살기를 느끼고, 나는 곧바로 놈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이 일반적인 코볼트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아니. 일반적인 코볼트는 물론, 며칠 전에 상대했던 보스 코볼트보다도 아득하게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가. 그게 그렇게 되는 거였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

    거대 마석이 꽁꽁 숨겨져 있던 일반 계층과는 다르게, 개미굴이나 여기 같은 소규모 계층에서는 두 번 다 보스 룸 한 복판에 거대 마석이 휘황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박혀 있었다.

    마치 여기가 보스 룸이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게다가 개미굴에서 여왕개미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봐라.

    보통의 계층의 주인은 절대로 자기 정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왕개미는 벽을 뚫고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던 거다.

    마치 자기에게 유도라도 하듯이.

    그래. 지금까지 우리가 소규모 계층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놈들은, 전부 페이크 보스였던 거다.

    아마 진짜는 성기를 드랍하는 놈이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놈처럼.

    "키에에에에!"

    놈은 덩치에 안 어울리게 꽤나 높은 고음을 질러대더니, 내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던 코볼트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조그만 코볼트의 머리가 수박처럼 갈라지면서 그대로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게 됐다.

    여기까지 적을 끌어들인 놈을 벌한 건가.

    손속은 잔혹하기 그지없다는 얘기군.

    게다가 방금 그 동작으로 보아, 완력 역시도 덩치에 걸맞게 굉장한 걸로 보였다.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거지만, 확실히 다른 코볼트들하고는 차원이 달라.

    "키에에에에!"

    놈은 숨이 끊어진 코볼트의 머리를 여전히 쥔 채로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더니, 그대로 내게 돌진해서는 손에든 코볼트의 몸을 휘둘러왔다.

    부웅!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생명체의 몸을 휘두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인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뭐. 그래서 어쩔 거냐는 얘기지만.

    나는 피가 튀는 게 더러워서 일부러 옆으로 크게 점프하여 그 공격을 피하고는, 그대로 주먹에 성자의 손길을 두른 채 놈의 복부를 강타했다.

    "끼히이이잉!"

    …끝났다.

    응. 미안. 그냥 심심해서 위기감 좀 한 번 조성해봤어.

    아니. 물론 이 녀석이 코볼트 보스보다 강해보이는 건 사실이야. 아마 실제로 더 강하기도 할 거고 말이야.

    하지만 말이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고작 1.5계층에 있는 놈한테 내가 당할 리가 없잖아.

    이런 쓸데없이 겉모습만 박력 있게 생긴 조루새끼한테 말이야.

    나는 바닥에 엎어져서 움찔움찔 떨고 있는 놈의 몸을 발로 밟아 고정하고, 대충 나이프를 쑤셔 넣어서 마석을 캐냈다.

    그러자 놈의 모습이 썩어가면서, 발기된 양물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 녀석은 진짜로 이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놈인가?

    다른 아이템은 아무것도 없이 이것만 떨구고 사라지네.

    그렇다는 말은, 즉 개미굴과 이어진 통로도 이 방 어딘가에 존재할 확률이 크다는 건가.

    그럼 미리 조사를 해둘까?

    아니. 일단 돌아갈까.

    혼자보단 여럿이서, 디아나의 마법으로 빛도 밝혀놓고 찾는 게 편하다.

    게다가 걱정하고 있을 우리 애들은 언제까지나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성기를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 황급히 우리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얘들아. 나 왔어. 많이 기다렸지?"

    "오, 오오. 왔는가. 딱 시간에 맞춰서 왔구먼. 음음. 칭찬해주겠네."

    어, 어라? 뭔가 예상했던 거랑 반응이 다른데?

    분명 다들 걱정스럽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내 귀환을 환영해줄 줄 알았는데.

    뭐야 이 분위기.

    다들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특히 디아나는 갑자기 내게 달라붙어 와서는 머리를 쓰다듬는데, 그러는 이유가 내가 제시간에 돌아온 것 때문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표정도…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하나. 부끄러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복잡한 표정이다.

    그리고 사라는 어째선지 날 노려보고 있었고, 레이아와 마틸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실비아는 평소처럼 덜덜 떨고 있었지만, 나와 접촉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던전 안에서 이러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뭐야. 뭔데 이 분위기. 무슨 일 있었어?"

    "…몰라. 이 변태야."

    "너 오빠한테 또…뭐 한 번만 봐줄게."

    또 한 번 사라의 귀여운 오빠 소리를 듣고 싶었던 나지만, 그 찔리면 피가 나올 것 같이 날카로운 시선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야. 디아나. 너 뭐 한 거냐?"

    "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이, 이 몸이 뭘 했다는 겐가?"

    내가 조용히 디아나에게 물어보자, 디아나는 역시나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분위기만 봐도 명확하잖아. 왜 그렇게 혼자 생글생글 웃고 있는데."

    "이, 이러는 편이 예쁘지 않나? 자네도 보기 좋지?"

    …젠장.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는 게 분해.

    하여간 예쁘게 생겨서는. 그래. 생글생글 웃으니까 예뻐 죽겠다. 이것아.

    "그, 그보다. 자네 미행은 어떻게 됐나? 제 시간에 왔다는 것은, 역시 실패했다는 겐가?"

    노골적으로 말을 돌리려는 게 뻔히 보였지만,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금 상황에선 이게 더 중요하기도 하고, 어차피 지금 아무리 추궁해봤자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궁금하긴 하지만, 어절 수 없지. 나중에 잠자리에서라도 느긋하게 알아내보자.

    "아니. 제대로 가져왔어. 역시 수컷이 있더라고."

    "음. 역시 그렇구먼! 이 몸의 직감은 정확했다는 것일세!"

    "잠깐. 가져왔다고? 구원 혼자서 싸웠어?!"

    아까부터 날 노려보고 있던 사라가, 마치 건수라도 잡았다는 듯 내게 달려들었다.

    아니. 대체 왜 화가 난 건데?

    분위기를 보니 오랜만에 또 디아나랑 둘이서 내 정실 자리를 놓고 싸우기라도 했나?

    그래서 이번엔 디아나가 이겼다면 디아나와 사라의 이 반응이 이해가 되는데 말이야.

    아니. 그럼 레이아와 실비아, 마틸다의 저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데.

    대체 무슨 얘기들을 한 거야.

    "아, 아니. 그게 말이야. 갑자기 튀어 나오기에 반사적으로 주먹 한 번 휘둘렀는데 픽 죽더라고."

    미안하다. 이름 모를 수컷 코볼트야.

    그래도 뭐 대충 비슷하잖아? 어차피 명예로운 죽음은 아니었으니까 봐줘라. 산 사람은 살고 봐야지.

    "흐으응…."

    "정말. 정말로. 며칠 전에 보스도 한 방에 잡는 거 봤잖아. 아, 아무튼 놈이 있던 곳으로 가보자. 내 생각엔 거기에 통로가 있을 것 같으니까."

    나는 사라의 불합리한 분노를 달래주면서, 수컷 코볼트가 있던 방으로 모두를 안내했다.

    "…이런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니. 대체 어떻게 발견하신 건가요? 역시 구원씨는 대단하세요."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레이아였지만, 이내 평소처럼 푸근한 표정을 짓고는 날 향해 웃어줬다.

    하지만 레이아야. 평소보다 한발자국 정도 거리가 멀어진 것 같다고 느끼는 건 내 기분 탓이니?

    아니. 물론 그 천사님 스마일만으로도 행복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이왕이면 좀 더 밀착해서 가슴…아니. 사람의 온기를 전해줬으면 좋겠어.

    "우연히 여기로 오는 놈을 발견해서 말이야. 운이 좋았지."

    "아무튼 이제 이곳이 개미굴로 이어진다는 것만 증명해내면 되겠구먼. 자, 그럼 어서 찾아보세나!"

    디아나는 여전히 기분 좋아보였지만 말이다.

    아니. 좀 억지로 기분 좋아 보이는 척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살짝 괴롭히고 싶다.

    아니. 뭐, 저번에 그런 일까지 저질렀으니 한동안 괴롭히는 건 자제해야겠지만 말이야.

    평생 괴롭히지 말라고? 에이. 그건 불가능하지. 지키지 못할 다짐은 하지 않는다.

    아무튼 방을 탐색한 결과, 역시나 코볼트의 성기를 꽂는 곳은 이 방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예상대로,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바로 개미굴이었다.

    "와아! 개미굴이에요! 역시 구원씨는…!"

    이로서 던전을 공략하는데 있어 내 능력이 필수라는 사실이 증명된 거다.

    덤으로 여신님이 던전을 만들었다는 것도.

    뭐, 난 가설이 들어맞았다는 사실보다 우리 천사님이 드디어 날 안아줬다는 사실이 더 기뻤지만.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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