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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34화 (4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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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발견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개미굴에 인접한 곳까지 가는 건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일직선으로 곧장 가더라도 며칠은 걸릴 것 같은 거리인데, 미로 같은 동굴을 빙글빙글 돌아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며칠의 야영 끝에, 우리는 드디어 개미굴에 인접한 곳까지 도착했다.

    이제는 굳이 맵을 확대하지 않더라도 저기 구석에 개미굴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개미굴로 이어질 것 같은 시점에서, 우리는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있었다.

    "구원? 아까부터 뭐하고 있는 거야?"

    딱히 책망하는 목소리도 아닌, 그냥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말투의 질문이었지만, 사라의 그 질문에 나는 살짝 민망해졌다.

    실은 사실이 드러났을 때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아직 얘들한텐 말 안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 설마 여기서 길이 막힐 줄이야.

    설마 이쪽 루트는 잘못된 루트고, 또 한참 돌아가서 다른 루트로 갔어야 했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차라리 뚫고 가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또 거리가 조금 있었다.

    아무리 몬스터를 사냥해도 시간이 흐르면 그 자리에 몬스터가 다시 생겨나는 것처럼, 던전의 지형 역시도 그 모습을 유지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몬스터들은 자연 번식하는 거 아니었냐고?

    그것도 물론 있지만, 전에 거대 마석에서 여왕개미가 태어나는 걸 생각해봐.

    몬스터가 늘어나는 건 아마 자연번식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아무튼 이런 소규모 계층은, 그런식으로 원래 모습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일반 계층들보다도 훨씬 더 강했다.

    개미굴에서 여왕개미가 부활하는 주기가 다른 계층의 주인이 부활하는 주기보다 더 짧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

    그러니 아마 뚫고 가려고 하더라도, 길을 뚫는 속도보다 땅속에 매장되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를 거다.

    "아까부터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만."

    예전에 자신은 맵퍼가 아니니 길 외우는 건 자신 없다는 선언까지 했던 디아나마저 저런 소리를 할 정도니, 우리가 얼마나 여기서 시간을 지체했는지 짐작이 갈 거다.

    어쩔 수 없나. 조금 쪽팔리더라도 솔직히 말하고 조언을 구해보자.

    "실은 이 너머로 가면 개미굴이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 길이 없네."

    "음? 뭣이?! 그게 정말인가?!"

    다른 애들은 그다지 격렬하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디아나만은 그게 무얼 뜻하는 지 파악했다는 듯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확실해. 아직 거리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렇다면 역시 6계층 너머로 향하기 위해서는 성기가 필요했다는 것이구먼! 그렇다면 아마 여기도 마찬가지일 걸세!"

    "응? 하지만…."

    "저기. 디아나. 미안하지만 우리도 좀 알 수 있게 설명해주실래요?"

    나와 디아나가가 둘이서만 통하는 대화를 나누자, 재미없다는 듯이 사라가 살짝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

    "으음. 그렇구먼. 자네들도 알다시피 현재 던전은 모험가들에 의해 6계층까지 개척된 상황이네. 아라크네 클랜을 필두로 최상위 클랜들이 6계층 공략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네만, 실은 6계층의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몬스터는 이미 확인이 된 상태라네."

    "네? 그렇다면 계층의 주인에 막혀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건가요?"

    "아니. 그렇지 않다네. 확실히 계층의 주인이 강력하긴 했고, 클랜 하나의 힘만으로 처리하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강력하기는 했지. 하지만 최상위 클랜들도 바보가 아닐세. 클랜 하나의 힘으로 안 된다면, 둘이 합치면 되는 법. 이전에 최상위 클랜들의 최정예 멤버들이 총집합하여 6계층의 주인 토벌 작전을 펼친 적이 있다네. 결과는 훌륭히 성공. 다들 승리의 기쁨과 다음 계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떴지만, 실은 계층의 주인을 처리한 후에도 7계층으로 이어진 통로는 발견되지 않았다네."

    "그렇다면…."

    "음. 때문에 대부분의 모험가들에게 던전은 6계층에서 끝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됐지. 아라크네 같이 아직 포기하지 않고 모험을 하는 클랜도 있기는 하지만 말일세. 그런데 저번에 이 자가 여신님과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6계층 이후가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시 되지 않았는가."

    "아, 그렇군요. 그래서 그 이후 모험가 분들이 갑자기 그렇게…."

    레이아는 뭔가 짐작가는 것이 있다는 듯, 디아나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7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발견되지 않고 있었지. 하지만 모험가들에게는 또 하나의 희망이 있었지. 바로 이 자가 공표한, 성기를 통한 비밀 통로 개척일세."

    "하지만 디아나. 전에 6계층은 구원의 스킬이 통하는 몬스터가 전혀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음. 그랬지. 아라크네 클랜에서 이 자를 데리고 6계층이 아니라 5계층의 몬스터들의 성기를 수집한 것도 그 때문일세. 솔직히 말해서 이 몸은 과연 그런다고 7계층으로 가는 통로가 발견될지는 회의적이었네만, 지금 발견으로 정말로 그 가능성이 생긴 걸세. 생각해 보게. 만약 여기서 개미굴로 이어지는 통로가 발견 된다면, 소규모 계층들끼리는 서로 이어져있다는 얘기가 되네. 게다가 소규모 계층들은 큰 계층의 중간에 위치하여 두 계층 모두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 그렇다는 말은, 5.5계층을 통해서 6.5계층으로. 그리고 6.5계층에서 7계층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세! 이건 정말로 엄청난 발견일세!"

    디아나는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설명을 해주면서 기뻐해줬다.

    아니. 허세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애초에 난 5계층에서 성기 수집할 때 아라크네 클랜 사람들에게 사정을 대충 들었으니까 말이야.

    "문제는 여기서 막혔다는 거지만 말이야. 아무리 위치가 가까워도 개미굴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통로가 없어서야…."

    "그러니까 성기일세! 성기가 열쇠일세! 이곳도, 개미굴도, 성기가 없으면 윗 계층에서 출입 자체가 불가능한 곳 아닌가?! 심지어 아래 계층에서 오려고 하더라도, 통로가 숨겨져 있는 곳일세.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발견하기란 불가능한 곳이지."

    하긴. 개미굴에서 3계층으로 통하는 곳도 눈으로 가려져 있었고, 여기서 2계층으로 통하는 곳도 모래에 파묻혀있었다.

    "애초에 이 던전은, 구원 자네의 힘이 없으면 6계층 이후로 내려가기 힘들게 설계된 곳이었다는 말일세!"

    그 말은 여신님이 이 던전을 만들었다는 설에 힘을 보태주는 얘기가 되어버리지만 말이야.

    우리 여신님. 혹시 진짜로 나쁜 사람…아니. 신님인 거 아니겠지?

    모처럼 이런 힘까지 줘서 이런 훌륭한 세계에 던져준 거니, 나로선 이왕이면 계속 믿고 싶은데 말이지.

    덕분에 우리 애들이랑 만나기도 했고.

    "즉, 디아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소규모 계층사이를 이어주는 통로 역시 성기를 통해 열릴 거라고."

    "음! 바로 그것일세! 애초에 성기가 없으면 들어오기 힘든 곳이니, 다른 곳으로 넘어갈 때도 성기가 필요한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기, 성기를 드랍하는 몬스터가 없잖아."

    일단 만나는 코볼트들마다 계속해서 성자 스킬은 쓰고 있었다고.

    정신력이 퍽퍽 깎여나가는 걸 감안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여전히 성기를 드랍하는 놈들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개미굴에서도 성기를 드랍하는 놈들은 단 한 마리도 없었고.

    "흠. 하지만 번식을 하려면 성별이 한쪽으로 쏠려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네. 심지어 여기는 한 종류의 몬스터만 생식하고 있는 구간 아닌가."

    "여왕개미가 그랬던 것처럼 거대 마석에서 생겨나고 있을 가능성은?"

    참고로 말하자면 코볼트 보스가 있는 곳에도 제대로 거대 마석은 있었다.

    이번에도 디아나가 잠깐 조사를 한 결과, 개미굴에 있던 것과 거의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는 것 같았다.

    "흐으음. 이 몸은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구먼."

    "거대 마석을 조사해보니 그런 것 같아?"

    "그것도 있네만, 솔직히 말하자면 직감에 의존한 면도 있네. 여신님께서 굳이 자네에게 6계층 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라고 한 것은, 필시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되네."

    설마 그 디아나가 이런 때에 직감 같은 얘기를 할 줄이야.

    아니. 그만큼 날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얘기겠지만.

    "저도 디아나씨의 말에 동의해요. 분명 그럴 거예요."

    그리고 언제나 날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레이아가 눈을 빛내면서 디아나의 말을 긍정했다.

    "뭐, 뭐어…. 그렇다면 일단 성기를 드랍 할 수컷 코볼트란 놈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네."

    나에대한 기대로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마주한 나는, 조금 쑥스러워져서 시선을 피한 후 얼버무리듯 그렇게 말했다.

    "후훗."

    내가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았는지, 레이아가 귀엽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면서 쿡쿡 웃었다.

    동굴 안인데도 미소가 빛이 나시네요. 천사님.

    "크흠! 자, 그럼 가자고! 다들 눈 크게 뜨고 샅샅이 찾아봐! 자, 출발!"

    "히우으…으으읍!"

    나는 쑥스러운 마음을 감추듯 언제라도 내가 절대 우위에 설 수 있는 실비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기며 외쳤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진동을 하다니. 실비아야. 집중력 떨어진 거 아니냐?

    지금 살짝 전투 모드 풀리려고 했다고.

    풀리기 직전에 실비아가 자기 뺨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다시 전투 모드로 돌아갔지만 말이야.

    그래. 아무리 여기 몬스터들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우리 이왕이면 방심하지는 말자.

    그 이후로도 우리는 꽤나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동굴 안을 탐색해봤지만, 역시나 수컷 코볼트는 발견되지 않았다.

    "역시 없는 거 아닐까."

    "흐음…. 어쩌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발견되지 않는 건지도 모를세."

    나는 슬슬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디아나는 자신의 가설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아니. 뭐, 마틸다의 훈련도 포함해서 여기 더 머무르는 것 자체는 나도 찬성이지만 말이야.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서야 의욕이 죽어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좋아. 그럼 오랜만에 그걸 해볼까."

    "응? 그거라니? 구원. 또 이상한 거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아니거든!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입만 열면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미행 말이야. 미행. 우리 예전에 1계층에서 비밀 장소 발견했을 때 생각 안 나?"

    그때도 웨어 울프를 미행해서 비밀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지.

    그 이후론 딱히 그럴 일이 없어서 몬스터 미행 같은 걸 한 적이 없지만, 오랜만에 내 실력을 발휘할 때가 온 것 같군.

    정말로 번식을 위한 수컷이 있다면 분명 암컷들 중 몇몇은 수컷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될 거다.

    "하지만 이렇게 여럿이서? 아무리 그래도 들키지 않을까?"

    "응. 그러니까 나 혼자 다녀올게."

    "뭐어?! 절대 안 돼!"

    "괘, 괜찮다니까. 내 직업 중에 암살자도 있는 거 알잖아? 적어도 여기 수준의 몬스터들한텐 절대 안 들킬 거라고."

    사라가 생각보다 훨씬 강하게 반대를 했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서 사라를 다독여줬다.

    "그래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괜찮다니까. 여기 애들 떼거지로 덤벼도 나한테 흠집 하나 못 내. 전에 여기 보스 놈이랑 싸울 때 봤잖아?"

    성자의 파동 한 방에 끝났지.

    응. 허무했다.

    그리고 쓸데없이 덩치만 커서는 느끼는 모습이 더 역겨웠다.

    끄윽. 일부러 봉인하고 있었던 기억이…힐링, 힐링이 필요해….

    "흐야아아앗!"

    후우…이제야 조금 안정이 되는군.

    나는 품안에서 진동하는 실비아의 감촉을 느끼면서 정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아니. 감촉이래봤자 갑옷 입어서 딱딱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우리 실비아는 좋은 냄새가 나고, 진동도 기분 좋으니까.

    "하지만…."

    "정말 괜찮아. 위험한 짓도 안 할게. 너흴 놔두고 먼저 죽을 생각 따윈 절대 없어. 그러니까 안심하고. 응?"

    "그럼 적어도 둘이서…."

    "그것도 안 돼. 나 혼자 은신술을 쓰고 돌아다니는 게 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만약 둘이 돌아다니다가 중간에 떨어져버리기라도 하면? 너 여기 길 기억할 수 있어?"

    "으읏…그, 그건…."

    나처럼 맵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미로처럼 얽힌 이 동굴의 루트를 다 기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지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걸.

    "그러니까 다 같이 여기서 쉬고 있어. 나 혼자서 금방 다녀올게."

    사라 이외에도 다들 반대를 하고 나서기는 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모두를 설득하여 혼자 몬스터를 미행해보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 풀린 떡밥들로 제가 스토리 진행을 계속 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 다들 믿어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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