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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33화 (4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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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발견

"…왠지 엄청 지친다."

야영준비와 저녁식사를 마친 후, 나는 드러누워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왠지는 무슨. 솔직히 말하면 왜 이렇게 피곤한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던전탐험이 힘든 건 아니다.

그냥 걸어 다니는 것과 별다를 게 없는데 뭐가 힘들겠어.

여긴 아마 1.5계층 정도의 수준일 거라고 짐작되지만, 우리한텐 1계층 몬스터들이나 여기 몬스터들이나 톡 치면 억하고 죽는 건 마찬가지라서 솔직히 1계층보다 난이도가 높은 게 맞는 건지 어떤지도 확신하기 힘들었다.

상황이 그러니 체력적으로는 전혀 문제없었다.

야영하지 않고 더 돌아다녀도 문제없을 수준으로 말이다.

문제는 정신적으로 피곤하다는 거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수컷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

대부분 수컷밖에 보이지 않던 오크를 상대하면서도 품지 않았던 감상을, 나는 지금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혹시나 있을 성기를 얻기 위해 꾸준히 성자 스킬을 사용했다.

물론 더 이상 직접 공격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접 공격으로도 정신적 데미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성역 선포를 사용하고 사라에게 마무리를 짓게 만들면, 사라가 공격하기 직전의 그 짧은 틈에 발정 난 암컷 코볼트들이 날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성자의 파동으로 한 방에 끝내버리면 암컷 코볼트들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분수를 뿜으면서…으윽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썩는 기분이야.

안 본 눈과 뇌를 살 수 있다면 사고 싶다.

이 내가 차라리 수컷 새끼들이 낫단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괜찮으신가요?"

지친 표정의 내가 걱정됐던 건지, 레이아가 내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왔다.

크흐흑. 네. 천사님이 이렇게나 걱정해주시는데 당연히 괜찮아야죠.

천사님의 존안을 뵙는 것만으로도 썩어가던 눈이 정화되는 기분입니다.

"응. 레이아 덕분에 훨씬 괜찮아졌어. 고마워."

"후훗. 다행이에요."

앞으론 실비아를 껴안고 뒤로는 레이아의 손길을 느끼면서, 나는 빠르게 정신이 안정되어가는 걸 느꼈다.

레이아와 실비아라니. 힐링의 종합선물세트를 한 번에 맛보면서 어떻게 안정이 안 되겠어.

아, 던전에서 실비아 가지고 뭐하는 거냐고?

괜찮아. 지금 여기는 동굴에서도 움푹 들어간, 등 뒤와 좌우, 위아래가 꽉 막힌 지형이다.

게다가 유일한 디아나의 알람 마법도 정면의 통로에 쳐놨으니, 기습당할 염려는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자기 전 힐링 정도는 괜찮잖아?

실비아도 그걸 아니가 이렇게 전투 모드가 풀려서는 진동하고 있는 거고.

"하아…안정된다."

"그, 그, 그, 그러씁니까아아…."

내 정신 안정을 위해, 오늘의 실비아는 도망갈 생각도 못하고 그저 꾹 참은 채 덜덜 진동만 하고 있었다.

뭐, 던전 안에서 도망 가봤자 어디로 도망가겠냐는 것도 있겠지만.

"적당히 해두고 쉬게나. 실비아양도 푹 쉬어야하지 않겠나."

"무슨 소리야. 실비아는 푹 쉬고 있다고. 그렇지 실비아?"

"우…네, 네에에에…!"

내가 축 늘어진 실비아의 팔을 들고 휙휙 움직이면서 말하자, 실비아가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르지 못한 채 말했다.

음. 음. 그럼 그럼. 파티원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파티장의 일이니까 말이지.

…뭐 장난은 이쯤하고 그만 쉴까.

이러다 내일 실비아가 실수라도 해버리면 할 말이 없어진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또 실비아랑 섹스하는 거 까먹었으니까 말이야.

너무 놀다가 또 저번처럼 혼자 해소도 할 수 없는 성욕만 쌓게 만들면 미안하니까.

뭐, 전에 그렇게 확실히 말해둔 만큼, 실비아도 이제 참기 힘들면 나한테 얘기할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낮에는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밤에 쉴 때는 정신을 회복하는 걸 반복하면서, 우리는 동굴을 탐험해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

"…2계층이네."

"…응. 그렇네."

코볼트의 보스 같은 놈을 쓰러뜨린 우리는, 개미굴에서와 마찬가지로 2계층의 한복판으로 이어진 통로를 발견했다.

허무하다.

게다가 날 더 허무하게 만드는 건, 결국 성기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거다.

심지어 보스마저도 암컷이었다고.

그간 소모된 내 정신력은 어떻게 보상할 건데.

"흠. 여긴 위치가 어디쯤인가?"

어딜 보나 거기가 거기로 보이는 2계층 사막을 둘러보다가, 결국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듯 디아나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응? 잠깐만. …2계층의 오크 주둔지네."

그리고 맵을 확인 결과, 의외의 사실이 판명됐다.

예전에 1계층에서 오크형 계층의 주인을 쓰러뜨리고 내려왔던 그 곳의 근처였던 거다.

아니. 생각해보니 의외도 아닌가.

애초에 연못 자체가 굳이 말하자면 오크 주둔지 쪽에 더 가까웠고.

"그렇다는 말은 기존 입구보다는 마을 근처라는 얘기구먼."

우리가 오크 주둔지를 통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한 후, 이후로 다른 모험가들도 오크 주둔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길 통해 2계층으로 진입하는 모험가들도 꽤나 생긴 모양이다.

거기서 2계층으로 내려오면 바로 만나는 적들이 또 사막 오크니까 말이다.

사막 오크가 2계층 몬스터들 중에선 제법 강력한 편이기는 하지만, 일단 상대하는 방법 자체는 1계층 오크와 다를 게 없어서 선호하는 모험가들이 많다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그간 진척이 별로 없던 이쪽 지도도 꽤나 활발하게 메워지게 됐는데, 그 결과 2계층 마을까지의 거리는 이쪽 루트가 더 가깝다는 게 판명됐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면, 레이첼 누님이 전에 신나서 얘기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레이첼 누님 화도 풀어야 하는데, 이번 탐험은 너무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누님이 화난 이유를 생각해낼 짬이 안 생긴단 말이지.

그리고 오늘 우리가 발견한 코볼트 동굴을 통한 루트는, 오크 주둔지를 통하는 것보다 마을과 더 가까운 곳과 연결된다는 얘기다.

아, 응. 그렇네. 뭐, 신인 모험가들한테는 엄청나게 좋은 정보네. 이거.

우리가 지나온 코볼트 동굴의 입구가 물속이란 것만 제외하면, 아직 2계층으로 넘어오지 못한 모험가들에겐 천금 같은 정보가 될 거다.

뭐, 입구가 물속이란 장애도 솔직히 그다지 문제될 건 없고 말이다.

우리는 바닥을 샅샅이 살피느라 마스크까지 썼지만, 제대로 숨을 참고 재빨리 통로를 열어 이동하면 잠수만으로 이동 못할 거리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고생을 하고 얻은 정보란 게 고작 신인 모험가들을 위한 정보인가."

"뭐, 뭐, 명성은 쌓이지 않겠어?"

그간 내가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직접 봤기 때문인지, 사라도 이번만큼은 날 놀리지 않고 솔직하게 위로를 해줬다.

명성이라…그거 쌓아서 지금까지 좋은 꼴을 본적이 없단 말이지.

웬 시답잖은 놈들이 구원해달라고 달려들기나 하고.

"그렇게 낙담할 거면 차라리 그 동굴을 더 조사해보는 건 어떤가요? 아직 다 돌아본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게 내가 허무해하고 있자, 마틸다가 그런 제안을 해왔다.

뭐, 확실히 다 돌아본 게 아니긴 하다.

아니. 일단 보스가 있는 곳이 끝이기는 했어.

하지만 그 동굴, 디아나가 던전 안의 던전이라고 표현할 만큼 꽤나 넓단 말이지.

중간에 갈림길도 여럿 있었고, 과연 우리도 그걸 일일이 다 확인하면서 맵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벌써 보스까지 잡았는데, 이제 와서 거길 다시 돌아다녀봤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틸다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을 때, 나는 문득 마틸다의 표정이 살짝 불안해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아, 그런가. 이번 탐험은 반드시 뭔가 새로운 발견을 하겠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물론 새로운 발견을 하면 좋겠지만, 실비아와 마틸다의 수영연습. 그리고 마틸다가 던전의 마력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수영연습은 물 건너갔어도, 마틸다가 던전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건 충분히 성과를 보이고 있었잖아. 적어도 동굴 안에서 마틸다의 안색이 나빠 보였던 적은 없다.

하지만 저 얼굴을 보면, 아직 2계층은 조금 불안한 건가.

바보 같기는. 그렇다면 그렇다고 솔직히 말해주면 되는데.

"뭐, 뭔가요오?"

내가 손을 뻗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마틸다가 깜짝 놀라서는 톡 쏘는 말투로 말하려다가 점차 말꼬리가 늘어지며 목소리가 풀려갔다.

아니. 그러니까 너 너무 쉽다고.

"그래. 이왕 발견한 거, 좀 더 돌아다녀보자."

나는 마틸다의 머리를 더 쓰다듬어 주고, 다시 한 번 코볼트 동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진짜 쓸데없이 복잡하고 기네. 혹시 개미굴도 딴 데로 가면 이렇게 넓은 건가?"

또 다시 달려드는 코볼트를 한 방에 처리하면서, 나는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전투 중에 긴장 풀고 잡담이나 한다고 뭐라 하지 마라.

시각 테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집중을 안 하는 거니까.

게다가 여기 보스도 결국 한 방이었다고.

방심하면 위험하다고 하기엔, 우리 수준이 너무 높았다.

"음. 그렇다고 하더구먼. 거기도 모험가들이 꽤나 개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완벽한 지도는 작성되지 않았다고 하더구먼."

그렇기 때문에 디아나도 이번만큼은 별 다른 주의도 하지 않고 내 잡담에 어울려줬다.

하지만 디아나가 그걸 어떻게…아. 개미굴에서 마법사 협회 사람들이 거대 마석 조사를 하고 있었지.

그 사람들을 통해서 들은 건가.

"만약 여기도 개미굴과 마찬가지라면, 우리들만으로 맵을 전부 밝히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네."

"굳이 다 밝힐 필요 없이 적당히 하다 돌아가죠?"

자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여길 더 돌고 있다는 자각이 있는 건지, 마틸다가 살짝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표정 안 해도 되는데 말이야.

어차피 얘가 던전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도움이 되는 거고.

지금 이건 마틸다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투자를 하는 거라고 보는 게 옳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마틸다는 던전에 다닐 이유도 없는 애니까.

"응. 괜찮아. 그 정도는 파티장으로서 내가 알아서 조절할게. 조금 믿음직스럽지 않을 진 몰라도 맡겨둬."

"아, 아뇨…그런 건…."

설마 내가 다정하게 말해줄지 몰랐다는 듯, 마틸다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도 참. 뭐야 그 반응은. 나 이래 봬도 다정한 남자라고.

아니. 뭐, 평소에 마틸다한텐 조금 막대한 감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정말 넓…."

그렇게 말하면서 맵을 확대 시켜 코볼트 동굴의 맵 전체를 둘러보려고 했을 때, 나는 한 가지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맵 저쪽 구석에, 이미 밝혀져 있는 곳이 존재하고 있는 거다.

아니. 어차피 이 동굴과 2계층이 연결되어있다는 건 확인했으니,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쪽은 아까 보스 룸이 있던 곳과는 꽤나 떨어진 곳인데?

설마 여기서 2계층으로 연결 된 통로가 한 군데가 아닌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별생각 없이 맵을 조작해 구석의 맵이 밝혀진 곳이 중앙에 위치하도록 끌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 이건 어쩌면 내 생각보다도 더 엄청난 발견이 될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맵 구석의 이미 밝혀져 있던 곳은, 2계층이 아니라 개미굴이었던 거다.

그렇다는 말은 뭐야?

즉, 던전 안의 던전이라고 불리는 이 소규모 던전들은 큰 계층으로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도 이어져있다는 건가?

그렇다는 말은 즉…!

이 발견의 중요성을 깨달은 나는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구원? 왜 그래? 갑자기 눈을 빛내고."

"과연. 사라. 날 잘 보고 있다니까."

"바, 바보…으읏! 오빠! 큿! 그래서 무슨 일인데?!"

야. 이왕 오빠라고 할 거면 좀 더 애교를 담아서 불러달라니까.

게다가 부른 후에 왜 그렇게 분한 표정을 짓는 건데.

너 그런 표정 남들한테 함부로 보여주지 마라.

평소 쿨한 표정이랑 대조돼서 괜히 정복욕이…뭐, 아무튼. 일단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는 모습은 칭찬해주지.

"우리 어쩌면 생각보다 엄청난 발견을 한 건지도 몰라."

"응?"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일단 가서 확인부터 해보고 설명해줄게."

갑자기 생뚱맞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하는 다른 애들에게 더 이상의 대답은 해주지 않고, 나는 저기 맵 구석 개미굴이 보이는 쪽을 향해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나친 설레발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을 셈이지만, 역시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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