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420화 (40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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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큐버스의 사정

    저택에 돌아오자 다들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나 디아나, 심지어 마틸다마저. 다들 일이 어떻게 됐는지 상당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때문에 굳이 모이게 할 필요조차 없이 바로 설명을 시작할 수 있었고, 나는 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기로 했다.

    일단 제일 먼저 펠리시아가 한 제안.

    영상을 찍고 그 보급을 지원도 해준다. 대신 정기적으로 자신과 섹스를 해 달라.

    "저어어얼대 안 돼!"

    그걸 말한 순간, 사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팔로 엑스자까지 그리면서 반대했다.

    "믿을 수 없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반대야! 난 절대 반대야!"

    뭐, 이런 반응은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어차피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안 할 생각이었다.

    "그래. 그럼…."

    "자, 자. 너무 그러지 말고 기다려보게 사라양."

    하지만 내가 제안은 거절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디아나가 화내는 사라를 다독거리며 진정시켰다.

    "뭐에요 디아나?! 그럼 디아나는 구원이 그 여자랑 정기적으로 붙어먹어도 상관 없다는 말이에요?!"

    "그런 게 아닐세. 하지만 생각해보게나. 이 자가 그런 얘기를 바로 거절하지 않고 이 몸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걸세. 뭔가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나? 일단 얘기를 끝까지 들어봐도 늦지 않는다는 걸세."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한 시선을 내게 보내왔다.

    만약 아무 이유 없이 거절 안 하고 온 거라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듯이.

    이왕 믿어주는 거니까, 그런 표정 하지 말고 완전히 믿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구원?"

    "그래. 디아나 말이 맞아. 바로 거절하기엔 펠리시아가 조금 걸리는 말을 해서 말이야. 그 뭐냐. 만약 다른 여자를 구해서 하게 되면 그 여자는 절대 내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매달릴 거라나."

    음. 새삼 내 입으로 말하려니 조금 쑥스럽다.

    "그건 그 여자도 마찬가지잖아?"

    "걔 말론 자기하곤 육체관계뿐, 정신적으로 자기가 날 좋아하게 될 일은 없다는데. 애초에 자긴 다른 사람한테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나."

    "그게…."

    "흠. 과연. 그렇구먼. 그런 거였구먼."

    "디아나?! 그 여자 말을 믿는 거예요?!"

    "음. 전에도 말했지만 이 몸은 한 때 공주의 스승 역할을 한 적도 있었다네. 하지만 한창 연애에 흥미진진할  나이였음에도 공주는 전혀 그런 쪽으론 관심이 없었다네. 그때는 조금 사춘기가 늦는다고 생각했네만,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납득이 되는구먼."

    "하, 하지만…."

    "그리고 사라양도 공주를 봤으니 알겠지마는, 공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인 중 하나일세. 게다가 신분마저 완벽하니, 당연히 구애하는 남자도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라네. 개중에는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좋은 가문과 명성, 외모를 겸비한 사내들도 여럿 있지. 하지만 공주는 지금까지 그런 사내들의 구애를 전부 거절했다고 들었네. 이 몸은 일단 공주의 얘기에 믿음이 가는구먼.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제쳐두고 말일세."

    "으윽…. 하, 하지만 그건 다른 남자들 얘기잖아요? 이번엔 상대가 구원이라고요?"

    "그, 그건…."

    최대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사안을 판단하는 듯 했던 디아나지만, 사라의 반박 한 번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응? 아니. 고맙긴 한데, 너희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정도는…."

    "시끄러! 내가 좋아하는 남자 비하하지 마! 이 천연 카사노바!"

    넵. 조용히 할…아니. 잠깐만. 그거 난데…. 내 얘기 하는 건데….

    "음! 자네는 자각이 너무 부족하네!"

    사라에 이어 디아나마저….

    하여간 디아나도 나랑 관련된 일이 되면 냉정한 판단을 못 한다니까.

    "그리고 구원씨. 제안을 받아들이면 공주님은 영상을 찍고 그걸 공개까지 하는 거잖아요? 아무리 그…쾌락을 좋아하신다지만 구원씨가 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결단을 내린 건가요?"

    아니. 거기서 그리고라고 말을 잇는 건 이상하지 않아?

    설마 천사님도 동의하는 거야?

    너희들 대체 날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 거야.

    아니. 고맙긴 한데 말이야.

    "아, 응. 그거 말인데. 영상을 찍긴 찍는데 얼굴은 가리고 찍겠다고 하더라."

    "뭐야 그게?! 그럴 거면 굳이 공주가 아니어도 되잖아! 더 생각해볼 것도 없어! 내가 찍을래!"

    "절대 안 돼."

    "읏…."

    사라가 다시 한 번 반대를 했지만, 이번엔 내가 그런 사라를 막았다.

    "절대 안 돼."

    "아, 알었어…두 번 말 하지 않아도 알아들었으니까…."

    드물게도 내가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서 기가 죽었는지, 사라가 답지 않게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얼굴을 가리더라도 네 몸을 다른 놈들한테 보여주다니. 절대 안 돼. 죽어도 용납 못 해."

    "그 말은 공주의 몸은 보여줘도 상관없다는 말로 들리는 데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마틸다가 살짝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거야 뭐…내 알 바가…그래! 나 이기적인 쓰레기다! 사라뿐만 아니라 너희들 모두 알몸을 딴 놈한테 보이는 건 절대 안 돼! 딴 애 몸이 보이는 건 내가 알 바 아냐! 뭐 불만 있어?!"

    "따, 딱히 그런 말 안 했잖아요?"

    내가 정색하고 외치자, 마틸다는 어째선지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내 발언으로 내가 펠리시아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재차 깨달았는지, 사라도 디아나도 아까보다 더 차분한 표정이 됐다.

    "흠. 하지만 그러면 정작 중요한 왕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 아닌가?"

    "그거야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뭐, 보급을 지원한다고 했으니까 그걸 소문내서 자기 명성을 올린다음 여왕에게 어필하려는 속셈 아닐까?"

    사람들을 구원해줬다는 내 명성을 나눠가지겠다는 속셈이지만, 솔직히 그건 나도 별로 상관없었다.

    명성 따위 알게 뭐야. 난 그냥 거리에서 사람들이 귀찮게만 안 하면 돼.

    "그것만으로 여왕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되네만…. 이 몸이 생각지 못하는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구먼."

    디아나는 뭔가 걸린다는 듯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구원씨. 구원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반반이야. 레이아와 비슷한 사정을 생각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매혹을 걸었던 걸 생각해보면 또 조금 그렇고…."

    "저랑 비슷한 사정이요?"

    "매혹이라니?"

    "아, 응. 실은 걔 종족이 서큐버스더라."

    "서큐버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디아나마저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디아나가 알 리가 없나.

    나처럼 종족명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전에 설명할 때도 왕가 사람들은 성욕이 강하다는 식으로만 말했으니까.

    "내가 있던 세계에 알려져 있는 것과 여기 서큐버스가 완벽히 일치하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대충 레이아의 종족인 구미호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쪽은 정기라기 보단 정액을 필요로 하고, 그게 생명의 원천이라는 점 정도일까."

    뭐, 자세히 파고들면 다른 점이 훨씬 많겠지만, 난 게임 같은 걸로 대충 알고 있는 게 전부니까 말이야.

    "그, 그럼…공주님은 성행위를 못 하면 죽는 건가요?!"

    "뭐…그렇지 않을까? 아니, 내가 있던 세계에 알려진 것과 같다면 말이지만."

    "그건…그건 너무…."

    역시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인지, 펠리시아를 가장 먼저 동정하는 건 레이아였다.

    게다가 레이아는 적어도 섹스를 안 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내가 안 해준다고 해서 공주가 섹스할 상대를 못 구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섹스할 수 있는 상대가 한정된 레이아의 사정이 더 딱하다고 생각되는데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를 동정하는 모습에, 나는 천사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성에서 공주한테 그렇게 밀렸는데도 어쩜 이리 마음씨가 고우실까.

    "흠. 과연. 어쩌면 공주에겐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구먼."

    "응?"

    "그런 제안을 한 이유가 그저 색욕에 눈이 먼 것 때문만이 아니라는 말일세. 만약 정말로 생명이 관련된 일이라면, 전부 납득이 되네. 무한정으로 사정할 수 있는 자네는 정액이 필요한 공주에게 딱 좋은 상대일 테지. 그리고 여왕을 설득하는 것 역시, 영상 보급을 통해 얻은 명성이 아니라 자네와의 약속을 바탕으로 가능할지도 모르네."

    디아나는 드디어 맘에 걸리던 게 없어졌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그러네요. 던전에 한 번만 다녀와도 일주일은 지나버리고…."

    "흐음. 그렇구먼…."

    "으으으으으음…."

    넷은 전부 짜기라도 한 듯이 어려운 표정으로 고민스런 소리를 냈다.

    아니. 마틸다. 넌 뭘 자연스럽게 거기 껴있는 거냐.

    "아무튼 자네는 판단을 이 몸들에게 맡기겠다는 겐가?"

    "그런 걸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안 할 거야. 뭐, 펠리시아 말처럼 나랑 섹스한다고 여자들이 무조건 나한테 빠진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냥 딴 여자 찾아보면 그만이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그것만은 절대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 반응이 펠리시아 때보다 더 안 좋은 것 같다?

    이미 한 번 하기도 했고, 게다가 섹스가 필요한 나름의 사정이라도 있는 펠리시아가 그나마 낫다는 걸까?

    "하아아…아무래도 금방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네요. 내가 어쩌다 이런 남자를 좋아하게 돼서는…."

    "야. 사라야. 아무리 그래도 그 말투는 조금 상처받는데. 날 좋아하는 걸 후회하는 거야?"

    "그, 그런 게 아냐! 그, 그러니까…씨이…바보!"

    얘 요즘 심심하면 나한테 바보라고 하더라.

    슬슬 말버릇을 고쳐줄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맞아. 난 바보야. 너밖에 모르는 바보."

    나는 원래 세계에서 유행 한참 지난 대사를 카운터펀치로 날려줬다.

    "이, 이, 이…!"

    그러자 사라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바보라고 말도 못하고 굳어져버렸다.

    후하하. 어떠냐. 부끄러워 죽겠지?

    난 부끄럽지 않냐고? 당연히 부끄럽지! 하지만 사라의 저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아주겠어!

    그야 말로 살을 내주고 뼈를 끊는 전법!

    사라 넌 앞으로 날 바보라고 할 때마다….

    "…구원씨?"

    사라의 반응을 보고 통쾌해하는 내 옆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날 불렀다.

    "으헉! 아, 아니! 사라뿐만 아니라 너희! 너희밖에 모르는 바보!"

    이상하다. 분명 천사님은 평소처럼 포근하게 웃고 계시는데 지금 살짝 무섭다고 느꼈어.

    "구원씨도 참…."

    내가 왜 그렇게 느꼈을까. 오늘도 천사님은 이렇게 천사님이신데.

    "이…바보!"

    그리고 스턴에서 풀린 사라는 약간 억지를 부리는 느낌으로 다시 한 번 그렇게 바보를 외쳤다.

    저게 진짜…. 언제 한 번 날 잡고…아니. 그러고 보니 마침 오늘 사라 차례잖아.

    좋아. 아무래도 바넷사의 메이드 복이 다시 한 번 활약할 때가 된 모양이군.

    "아무튼 사라양 말대로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구먼. 자네가 이 몸들에게 판단을 맡긴다고 했으니, 이 몸들은 좀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네."

    "응. 그럼 그렇게 해. 나는 너희가 정하는 대로 할게."

    "……."

    내 대답에도 불구하고, 다들 조용히 내 얼굴만 볼 뿐 아무 말도 시작하지 않았다.

    얘기 나눠본다면서? 왜 나만 보고 있는데?

    "저기…혹시 나 방해야?"

    "음."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그렇게 확실히 얘기하는 거 아니냐?!

    "구원씨. 남성분이 계시면 조금 하기 힘든 얘기도 있으니까요. 조금만 자리를 벗어나 주실 수 있을까요?"

    봐! 이렇게! 천사님처럼! 이렇게 하라고!

    저 부탁하는 눈빛! 얼마나 좋아!

    "응."

    그럼 나도 순순히 이렇게 물러나잖아?!

    방문 밖으로 나와서, 내 마음 속에 공허한 외침만이 울려퍼졌다.

    쳇. 됐거든. 난 바넷사랑 놀 거거든.

    나는 곧장 손뼉을 쳤다.

    "바넷사!"

    "…구원님.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아, 응.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튼 바넷사. 중요한 부탁이 있어."

    "네? 무슨 일이십니까?"

    "드디어 돌려받을 때가 왔어. 내놔. 전에 그 메이드 복."

    그래. 아직도 안 돌려받고 있었단 말이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바넷사는, 등장했을 때처럼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 나 왠지 지금 표정은 읽은 것 같아.

    주기 싫다는 표정이지?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잠이 안 오는 김에 기습 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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