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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17화 (40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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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큐버스의 사정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속의 청개구리 근성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허나 거절한다."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땐 난 이미 펠리시아의 제안을 거절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으, 응? 자기?"

    펠리시아는 내가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듯이, 표정에서 여유가 살짝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의 구원은? 자기 곤란한 거 아니었어?"

    몰라 그런 거. 어떻게든 되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어떻게 될 거란 생각은 전혀 안 들지만.

    내가 아는 여자들 중 가장 문란한 펠리시아마저 처음엔 거절했던 거다.

    그런 걸 순순히 찍어줄 여자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펠리시아도 얼굴을 가린다고 했고, 다른 여자도 그런 조건이라면…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머릿속에 그동안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가능성들이 물밀 듯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까지 왜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지?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래. 어차피 얼굴을 가리면 그 사람의 정체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런 조건이라면 아마 흔쾌히 영상을 찍어줄 사람도 있을 거다.

    굳이 펠리시아한테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는 거다.

    난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굴을 가리려면 모자이크가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 세계에 그런 기술이 있을 리 없으니, 얼굴은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다.

    뭣하면 그냥 가면 같은 거라고 씌워놓으면 그만이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물론 고정관념도 한몫했지만, 그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기 전까지, 펠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다.

    설마 거절할 줄 몰랐던 펠리시아가 처음에 거절하니까 당황해서?

    펠리시아의 언변에 넘어가서?

    둘 다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 사고의 폭이 좁아지는 건 이상했다.

    그리고 난 떠올렸다.

    과거에도 딱 한 번 이런 경험이 있었다는 걸.

    마치 내 의지처럼 행동했지만, 실은 남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 적이 말이다.

    그때도 펠리시아가 상대였지.

    설마…설마….

    나는 스스로의 피부에 닭살이 돋는 게 느껴졌다.

    만약 펠리시아의 매혹이, 그냥 섹스하고 싶도록 유도하는 능력만 있는 게 아니라면?

    상대를 매혹시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끔 만드는 능력이라면?

    그렇다면 시종일관 자신만만했던 펠리시아의 태도도 납득이 됐다.

    그리고 어떻게든 나와 단 둘이 되려고 한 것도, 매혹상태로 만드는데 다른 사람이 방해됐던 건 아닐까?

    아니. 하지만 난 섹스의 유혹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는데?

    매혹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말이잖아.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건 전혀…그러고 보니 처음 매혹에 당해서 섹스를 했을 때도 그랬다.

    매혹에 당했다는 자각이 전혀 없었다.

    그냥 펠리시아의 도발에 스스로 넘어갔다고 생각하며 섹스를 했었다.

    설마 그런 건가.

    스스로 미리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매혹에 걸렸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가.

    뭐 그런 사기 스킬이 다 있어.

    아니. 스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너…아니. 됐어. 아무튼 제안은 거절한다."

    모든 걸 깨닫고 나자, 펠리시아에게 공포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추궁하기 보단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다.

    "…어머. 유감. 풀려버린 거야?"

    그리고 내가 다시 한 번 제안을 거절하자, 펠리시아가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역시 네가 뭔가 한 거냐?"

    "그래. 맞아. 하지만 대단하네. 보통 남자들은 자각도 못하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해주는데. 과연 신의 사자님."

    그리고 펠리시아는 미안하단 느낌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너…! 뭐 그렇게 뻔뻔한 거야?!"

    "어머? 뻔뻔하다니? 마치 내가 나쁜 짓이라도 했다는 말투네?"

    "아니라고 말하는 거냐?!"

    "당연하잖아. 갑자기 찾아와서는 약속도 지키려고 하지 않고, 섹스 영상을 찍어 공개하자고 하는 남자. 그런 남자를 조금 내 생각대로 움직이게 만든 것뿐이라고? 심지어 영상도 찍어준다고 했고, 그걸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하는데 원조까지 해준다고 한 거야? 나, 나쁜 짓 했어? 나쁜 짓을 한 건 오히려 자기 아니야?"

    그동안 애교부리는 것 같은 태도를 계속 유지하던 펠리시아가 처음으로 날 책망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이성적으론 알겠다.

    펠리시아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먼저 잘못한 건 나다.

    하지만 하마터면 그냥 조종당할 뻔 한 거다.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제안은 거절할 거야. 꼭 너하고 찍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일단 네가 왕위 계승 문제로 곤란할 까봐 말해줬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내 제안을 받아주면 되잖아. 별로 자기한테 나쁜 건 없다고 보는데 말이야."

    "거절한다!"

    확실히 척 보기에 내게 나쁠 건 없다.

    정기적인 섹스도, 필요에 의해 하는 거니까 우리 애들한테 책잡힐 것도 없고.

    마틸다랑 하는 거랑 비슷하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방금 그걸로 확실히 깨달았다.

    얘랑 단 둘이 있으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는 걸.

    "하아…. 왜 그렇게 꼬인 걸까. 정말로 자기한테 나쁠 거 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뭐 됐어. 그럼 약속이라도 지켜줘."

    "뭐, 뭐어?"

    "약속 말이야. 약속. 자기랑 만날 때까지 계속 섹스도 안 하고 참았으니까, 내기는 내가 이긴 거잖아?"

    "넌 이런 상황에서마저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당연하잖아. 난 그거 때문에 왕위 계승까지 문제가 생겼는걸. 게다가 너무 참아서 슬슬 정말로 이상해질 것 같단 말이야."

    진짜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몇 번이나 생각했던 거지만, 정말로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거절…!"

    나는 곧장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다가, 잠깐 멈췄다.

    아까 펠리시아가 했던 협박 때문은 절대 아니다.

    내가 약속마저 거절해버리면 나는 물론 디아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협박.

    매혹에서 풀린 지금이라면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 얘들이 날 공격할 명분이 생기는 것도 맞고, 만약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디아나가 파국에 치닫는 것도 맞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에는 결정적인 모순이 있었다.

    바로 그 모든 게 이 왕국의 몰락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왕국이 몰락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과연 여왕이 날 공격하려고 할까? 고작 약속 좀 어겼다고?

    그럴 리가 없지.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시점에서, 난 이미 펠리시아의 매혹에 반쯤 걸려있었다는 건가.

    그땐 레이아도 옆에 있었는데.

    너무 섹스에만 초점을 맞춰서 매혹의 능력을 한정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선뜻 거절하지 않은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차라리 약속대로 섹스를 한 번 하고, 아무것도 걸릴 게 없는 상태에서 연을 딱 끊어버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버리면 그걸 빌미로 얘가 계속 달라붙어올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실제로 매혹으로 조종하려한 게 들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섹스하자고 들이대고 있는 애니까.

    혹시 이것도 매혹에 걸려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펠리시아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등을 돌리고 몇 번이나 재차 생각해봤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면 걸린 지도 모를 정도로 위험한 기술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일단 제대로 경계만 하고 있으면 저항할 수 있는 모양이니까.

    좋아. 매혹 상태는 아니야.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키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레이아를 더 기다리게 만드는 건 미안했지만, 어차피 딱 한 번 하는 거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이걸로 얘와의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면, 약속은 지켜두는 편이 더 나을 거다.

    "어머. 다행이네. 이것마저 거절하려고 하면 이번엔 정말로 맘먹고 조종하려고 했는데."

    펠리시아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소름끼치는 소리 하지 마라! 이쪽은 장난 아니거든!

    역시 아무리 그래도 얘랑 섹스하려는 건 잘못된 생각 아닐까?

    또 섹스하면서 내게 매혹을…아니. 그럴 리는 없나.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바로 그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나랑 섹스하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

    아무리 서큐버스라도 말이야.

    "그럼 벗어."

    "어머. 자기 너무 급하다. 너무 그렇게 안달하지 말고, 이왕 하는 거니까 즐겁게…."

    "당장 벗고, 침대에 올라가서 다리 벌려."

    "응읏…하아…아, 알았어."

    내가 명령조로 말하자, 펠리시아가 살짝 다리를 꼬더니 천천히 침대를 향했다.

    쟤 지금 신음소리 낸 거야?

    섹스하는 게 벌써부터 그렇게 기대되는 건가?

    펠리시아는 침대 끝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아서, 입고 있던 드레스를 어깨부터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요염하고 섹기가 흐르는 것이, 역시 서큐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신 팔리지 말자.

    저건 요물이야.

    그냥 약속대로 딱 한 번 섹스만 해주고, 그걸로 끝내는 거야.

    "자아…자기. 얼른 와줘."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속옷까지 전부 벗어던진 펠리시아는, 한쪽 다리를 들어서 그 발을 침대 가장자리에 걸치듯 올렸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발끝은 여전히 땅을 짚은 채로,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우리 애들이 가끔 무의식적으로 보여주는 섹시한 자세와는 다르게, 펠리시아는 자기가 어떻게 하면 섹시하게 보이는지 잘 알고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확실히 섹시하기는 하다.

    벌써 흥건히 젖어서 번들거리는 음부가 날 유혹하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섹스한다는 생각만으로 저렇게 젖는 게 가능한 걸까?

    저것도 서큐버스의 특징? 아니면 이 섹스 좋아하는 애가 그동안 금욕생활을 해왔던 반동인가?

    아니. 뭐, 아무래도 좋지만.

    "그게 아냐. 누가 그렇게 다리를 벌리라고 했어. 침대에 누워서, 스스로 다리를 잡고 박기 좋게 활짝 벌리라고."

    "으흣…네, 네에…."

    저 섹시에 현혹되면 안 돼. 그런 마음가짐으로 내가 평소보다 더 거친 말투로 그렇게 명령하자, 펠리시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침대에 천천히 몸을 뉘였다.

    쟤 지금 나한테 존댓말 한 거야?

    확실히 처음 봤을 때부터 자기 자기 하면서 애교는 부렸지만, 나한테 저런 식으로 존댓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게다가 침대에 누워서 자기 허벅지를 붙잡고 다리를 벌리자 숨김없이 완전히 드러난 그 음부에서는, 꿀럭하고 투명한 애액이 더 새어나왔다.

    누가 봐도 아까보다 더 흥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아까 신음 소리도 흘렸었지.

    아까 전과 지금. 공통점은 둘 다 내가 명령을 내렸다는 점이다.

    그걸 깨닫게 되자, 지금까지 보였던 펠리시아의 행동에서도 그런 냄새를 풍기는 행동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얘 설마….

    이거 한 번 확인해볼 가치는 있어 보이는데.

    나는 단단히 선 물건에 마나를 돌려서 일부러 죽게 만들었다.

    왜 벌써 서있냐고? 어쩔 수 없잖아.

    얘가 일단 외모는 끝내준단 말이야.

    그런 애가 음부를 흠뻑 적신 채 유혹하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면서 알몸으로 다리를 활짝 벌리고 누워 있는 거라고?

    남자인 이상 안 설 리가 없잖아.

    "펠리시아. 일어나봐."

    "으, 응? 뭐야? 왜 그래 자기?"

    바로 박을 것 같이 말해놓고는 다시 일어나라고 했던 게 이상했는지, 펠리시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일어나 앉았다.

    나는 그런 펠리시아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살짝 거칠게 내 쪽으로 당겼다.

    그 안면이 내 가랑이 사이에 밀착하도록.

    "네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네가 스스로 벗겨."

    내가 다시 명령조로 말하자, 펠리시아의 손과 물건 너머로 펠리시아의 몸이 흠칫하고 떨리는 게 느껴졌다.

    역시나. 역시나 그런 거였어.

    "흐읏…으, 으응…."

    아까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건지, 펠리시아는 이번엔 존댓말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명령은 확실히 먹혔는지 천천히 내 바지춤으로 손을 뻗어왔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두 시 전후로 한 편 더 올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몇몇 분들이 구원이 중간에 펠리시아를 위하는 척 하는 장면이 이상하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전 그런 걸 쓴 기억이 없어서 저번 화를 다시 한 번 읽어봤습니다.

    확실히 설명 없이 대사만 있어서 그렇게밖에 안 보이는 부분이 있더군요.

    죄송합니다. 가끔 습관처럼 혼자 생각만 하고 설명을 빼먹을 때가 있는데 또 그랬네요.

    그 장면은 구원이 펠리시아를 위하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의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펠리시아가 정신적 교감 없이 사무적으로 육체적 관계만 가지자고 유혹하는데, 말만 그렇게 하고 실은 자길 좋아해서 나중에 어떻게 해볼 속셈은 아닐까 떠본 거죠.

    저번 화에도 그런 심리 묘사를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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