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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16화 (40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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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의 사정

"그, 그건…."

펠리시아의 지당한 말에, 레이아는 반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댔다.

만약 사라였다면 그런 거 상관없이 몰아붙였을 텐데.

역시 레이아로 펠리시아를 감당하는 건 조금 무리인 모양이었다.

"야. 우리 레이아 괴롭히지 마라."

"어머. 괴롭히다니. 난 그냥 자기랑 단 둘이 대화를 좀 하고 싶다고 말한 것뿐인걸?"

"그냥 여기서 하면 되잖아."

"안 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섹스 영상을 찍네 마네 하는 얘길 하다니. 부끄러운 걸. 나랑 단 둘이 얘기하는 게 그렇게 싫다면 이 얘기는 없던 걸로 하고 돌아가 줘. 물론 가기 전에 약속은 지켜주고 가야겠지만."

표정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으면서 뻔뻔하기는.

아무튼 펠리시아가 우리 레이아를 몰아붙이는 걸 보고, 나도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너무 나 좋을 대로만 하려고 한다는 자각은 있기 때문에 원래는 이 말은 되도록 안 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너, 나랑 한 약속 내용 제대로 기억하고 있냐?"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네가 다른 남자랑 자지 않으면 섹스 하는 것도 생각해본다고 했지, 확실히 섹스 해준다고는 안 했다."

"……흐으응?"

내 말을 듣고 잠깐 침묵하던 펠리시아는,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씨익 웃어보였다.

"정말로 그런 말장난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무슨 소리야?"

"실비아한테 들어서 알겠지만, 자기는 그런 말장난으로 용사의 피를 왕가에 복속시킨다는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방해한 거야. 어머니께서 자기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만 혼내신 거, 설마 진짜로 자기가 건드릴 수 없는 위치라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 그건…."

"확실히 자기가 건드리기 힘든 위치인건 맞아. 하지만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어머니께서 자기한테 아무 말 안 하신 건, 자기에게 한 번 배려를 베푸신 거야.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용사혈통 복속 계획을 방해한 그 내기가 단순한 말장난이었다고? 아무리 디아나님의 남자라도, 아니. 디아나님 본인이라도 그렇게까지 막 나갈 순 없어. 알겠어? 우리에게 명분이 생기는 거야. 자기를, 디아나님을 공격할 명분이."

"하지만 디아나가 진심이 되면…."

"그래. 정말로 디아나님이 진심이 되면 이 나라를 전복시킬 수도 있겠지. 안 그래도 지금 각 학파의 수장들도 모여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자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전 세계가 디아나님을 위시한 마법사를 경계하게 될 거야. 그 옛날에 있었다는 마법사 박해가 다시 한 번 시작되는 거야. 게다가 나라 하나를 뒤엎은 이상, 이번엔 예전처럼 디아나님이 마법사를 쪼개놓는 정도론 수습되지 않을 걸. 적어도 디아나님이 죽지 않는 이상은 끝나지 않을 거야. 자긴 정말로 그런 미래를 원하는 거야? 고작 말장난의 대가치고는 크다고 생각하지 않아?"

만약 펠리시아의 말대로 된다면 자기가 죽는 건 거의 확정일 텐데도, 펠리시아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가. 그래서 아까 저택에서 디아나도 그런 말장난이 통할 것 같냐고 그랬던 건가.

난 그저 단순하게 그렇게까지 쓰레기 짓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었는데.

솔직히 이런 문제엔 문외한이다 보니 펠리시아가 말하는 게 엉터리인지 어떤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냥 허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일단 대학물을 먹은 놈.

이 세계로 끌려와서 졸업은 못했다지만, 들은 얘기를 토대로 정말 그게 가능한 얘기인지 상상을 해볼 정도의 머리는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

"너…."

"하아….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말아줘. 무섭잖아. 나로선 자기한테 친절을 베푼 거야.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말해준거잖아. 오히려 감사라도 받고 싶은 심정인데 말이야."

펠리시아는 과장되게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친절한 나랑 단둘이 얘기 좀 나누자? 혹시 모르잖아? 단둘이 얘기하다보면 내 맘이 변해서 자기한테 설득될지도."

"…좋아."

나는 그런 능청스런 펠리시아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나와 단둘이 되고 싶어 하는 걸 보니, 펠리시아에게는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냥 섹스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만, 난 왠지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 구원씨?!"

"미안. 레이아. 여기서 실비아랑 같이 기다리고 있을래? 난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

"하, 하지만!"

"괜찮아. 날 믿어. 쟤가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힘으로 때려눕혀서라도 빠져 나올게."

"어머. 자기. 공주를 때려눕힌다니."

"시끄러! 넌 좀 빠져! 그러니까 레이아. 여기서 기다려줘. 알겠지?"

"……네."

레이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이 원망스럽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 된 거지? 그럼 가자."

펠리시아는 다시 내게 다가와서 손을 잡더니, 그대로 나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갔다.

시중드는 메이드들조차도 없이 완벽히 단둘이 된 상황.

"자, 그럼 영상 얘기를 해볼까?"

거기서 펠리시아는 날 향해 빙글 돌아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으, 응?"

그 행동에 허를 찔린 나는 잠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왜 그래?"

"아니. 분명 일단 섹스부터 하자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얘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라온 거긴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섹스부터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어머, 자기가 그러고 싶으면 그래도 되는데? 뭐야? 역시 자기도 실은 하고 싶었던 거야?"

펠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지 위로 내 물건을 천천히 쓰다듬어왔다.

"아, 아냐! 떨어져!"

"아핫. 뭐야? 그 귀여운 반응. 뭐 좋아. 그럼 일단 영상 얘기부터 하자. 결론부터 말할게. 내가 말하는 조건을 포함하면 허락해도 좋아."

아깐 그렇게 싫다고 하다니 바로 이런 태도라니. 역시 뭔가 꿍꿍이가 있었군.

"조건?"

"그래. 조건.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자기가 앞으로 정기적으로 나와 섹스를 하러 와주는 게 내 조건이야."

"뭐?! 그런 말 하려고 단둘이 되자고 한 거였어?!"

"그래. 아, 물론 그렇게 자주 안 와도 돼. 나도 너무 욕심 부리진 않을 테니까. 그렇네…일 주에 한 번 정도면 되려나? 어때? 자기한텐 엄청 좋은 조건이지?"

"그게 어디가 좋은 조건이야?!"

"어머? 나 같은 미인이랑 정기적으로 기분 좋은 섹스를 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거야. 좋은 조건이잖아?"

"원하는 바라니! 난 네가 왕위계승을 못하면 곤란하니까…!"

"에이. 자기 또 그런다. 사람들을 구원해주지 않으면 곤란한 건 자기잖아? 지금은 사람들이 그냥 달려드는 것만으로 끝나지만, 구원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힘들어질걸? 절박해진 사람들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교황이 자기를 정식으로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했으니, 교단에서도 여신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길 압박할 테고. 자기도 그 정도는 아니까 그렇게 안달내고 있는 거잖아?"

"그, 그건…."

"그렇다고 자기 애인들과 영상을 찍자니 알몸을 보여주긴 싫고. 그래서 생각한 게 방탕하게 노는 날 이용하겠다는 거잖아?"

"뭐, 너 거기까지 알고…."

"자기. 나 이래 봬도 능력 면에선 꽤나 인정받는 공주라고? 당연히 그 정돈 알아."

"…그걸 알면서 섹스만 해주면 영상을 찍겠다는 거야?"

"그래. 나 자기랑 하는 섹스 정말로 맘에 들었거든. 아, 물론 영상 찍을 때 얼굴은 가릴 거야. 나라고 밝히지도 않는 것도 물론 조건 중 하나고."

"뭐? 그러면 너 여왕이랑 다툰 건? 영상의 주인공이 너란 걸 밝히지 않으면 명성이고 뭐고…."

"아하하. 내 생각도 정말로 하긴 한 모양이네? 하지만 괜찮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긴 그냥 내 조건에 승낙만 해주면 돼. 정기적으로 나와 섹스를 해줄 것. 그럼 바라는 대로 영상을 찍어줄게. 음…좋아. 인심 썼다. 거기에 더해 보급 문제도 처리해줄게. 영상 마법구 꽤나 비싸잖아? 아마 찍어봤자 이대로라면 일반 사람들의 교육용으로 파는 건 불가능할 테니. 어때? 자기한테 엄청 득 되는 조건이지?"

확실히 매력적이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제안이다.

과연 서큐버스. 사람을 유혹하는 기술이 장난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러 오라니.

아니. 펠리시아가 양보를 많이 해준 건 알겠다. 진짜로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래도 고민하는 거야? 어째서?"

설마 내가 이래도 고민할 줄은 몰랐는지, 펠리시아는 오늘 처음으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냐니. 너도 알잖아. 나한텐 사랑하는 애인이 셋이나 있다고. 정기적으로 다른 여자랑 섹스하란 조건을 쉽게 승낙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어차피 자기는 모험가잖아? 그냥 쉽게 생각하면 돼. 나랑 섹스하는 건 그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 뿐. 애정표현이 아니야. 딱히 미안해 할 거 없는 거라고. 어차피 지금도 실비아나 마틸다 추기경하고도 관계를 맺고 있잖아? 나 한명 더 늘어나는 것뿐이야."

"…난 그렇다고 치고, 넌 정말 그걸로 되는 거야?"

"응? 뭐가?"

"그러니까. 애정 따윈 전혀 없는, 그냥 의무로 하는 섹스 말이야. 너 나 좋아하는 거잖아?"

그래. 공주는 아마 날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공주의 말에 선뜻 수긍할 수 없었다.

지금은 우선 저런 식으로 정신적 연결 없는 육체관계뿐이라고 말해서 날 안심시킨 다음에, 나중에 관계를 점점 맺어감에 따라 날 꼬드겨보려는 수작은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응. 자기 여기 엄청 좋아. 첫 눈에 반해버렸어."

"그러니까 일일이 만지지 말라고! 나 농담하는 거 아냐! 물건 얘기가 아니라고!"

"응? 무슨 소리야? 내가 좋아하는 건 자기 물건뿐인데?"

"…뭐, 뭐?!"

"아하핫. 뭐야? 자기, 내가 자길 사랑하기라도 한다고 생각한 거야? 아냐. 아냐. 내가 자기랑 직접 본 게 몇 시간이나 된다고 좋아하겠어. 첫눈에 반하는 사랑? 난 그런 거 안 믿어. 그러니까 만약 의무적인 섹스만 하게 되면 내가 불쌍하다든가 그런 생각하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 난 그냥 자기랑 하는 섹스가 좋은 것뿐이야."

"뭐, 뭐, 너 하지만 아까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아, 응. 그건 진심이었지만 말이야. 응…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 사랑이라든가 그런 감정 가져본 적 없거든. 남자랑 섹스하는 건 좋지만, 어디까지나 육체관계뿐. 정신적으로 이어지고 싶다든가 그런 기분은 든 적 없단 말이지. 만약 내가 그런 감정을 갖게 되더라도 어차피 신분 상 그게 이뤄지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이왕 결혼할 거면, 몸의 상성이라도 좋은 사람이 좋잖아? 그런 점에서 자기는 최고야. 몸의 상성도 최고고, 덤으로 정략결혼도 충분히 성립될 위치고. 그러니까 결혼은 진심이었어. 하지만 뭐, 자기가 싫으면 됐어. 섹스만 해줘도 돼."

뭐,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공주의 대답은 내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황당함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세계는 이런 게 보통인 거야? 아니. 그럴 리 없어.

아무리 이 세계의 상식이 원래 세계랑 달라도, 이 정돈 아니야. 그냥 얘가 이상한 거야.

"정신적으로 바람피울 일도 없고, 정기적으로 그냥 의무적인 섹스만 해주면 되는 미인. 어때? 이래도 내키지 않아?"

"자, 잠깐. 잠깐 생각할 시간을…."

"하아. 정말. 보통 이러면 넘어와야 정상인데 말이야. 자기도 참 지나치게 성실하네. 자기가 살던 세계는 다들 그래?"

아니. 성실하다니. 난 지금까지 살면서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확실히 펠리시아의 제안은 좋다.

게다가 정기적인 섹스 자체도, 솔직히 말하자면 승낙해도 된다고 생각할 될 정도였다.

어차피 우리 애들도 필요할 땐 해도 된다고 허락해줬으니까 말이야.

이런 경우는 조금 판단이 애매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필요에 의해 하는 섹스인 건 맞다.

하지만….

"기한은 어떻게 되는데? 설마 평생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라는 건 아니겠지?"

"응? 그렇네…. 좋아 그럼. 내가 결혼할 때까지. 이걸로 어때?"

"그럼 네가 결혼 안 하면 평생이란 거잖아."

"그럴 일은 없어. 나 공주라고? 나중엔 왕까지 될 몸이니까? 후사 문제도 있어서 어차피 결혼은 해야 돼."

"으으으음…."

"고민할 게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잖아? 응? 자기. 그냥 정기적으로 나랑 기분 좋은 것만 하면 그만이니까."

펠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또 다시 요염한 눈빛을 보냈다.

큭! 이게 단둘이 되곤 안 그러나 싶더니 또 매혹을…!

"으윽! 그 눈 안 치워?! 생각 좀 하자!"

"어머. 나같이 예쁜 애가 이렇게 봐주는 건데 그런 말은 실례 아냐?"

"예쁘니까 정신 사나워진다고!"

지금은 옆에 레이아까지 없으니 더 위험하다.

나는 일단 매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부로 들릴 수 있는 말까지 내뱉었다.

뭐,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어머, 자기도 참. 그런 거라면."

펠리시아는 충분히 생각해보라는 듯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겨우 매혹의 영향에서 벗어난 나는 잠시 펠리시아를 노려봤다.

엄청나게 여유로운 얼굴.

그 얼굴은 내가 자신의 제안을 수락할 거라 걸 믿어 의심치 않는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소설 분위기가 그래왔듯, 공주 안 불쌍해집니다.

색정광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주인공 좋을 대로 순순히 이용당할 정도로 만만한 애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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