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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08화 (39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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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첼과의 식사

    그리고 우리는 얼마동안, 이곳저곳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즐겼다.

    난 기본적으로 아이 쇼핑이었지만, 레이첼 누님은 달랐다.

    모처럼 휴가이니만큼 그동안 사놓지 못했던 걸 왕창 사려는 듯, 무척이나 의욕적이었다.

    특히 나라는 짐꾼도 있으니까 말이야.

    인벤토리로 인해 무게를 걱정할 일도 없이, 누님은 마음껏 쇼핑을 즐기셨다.

    솔직히 말해서 팔짱끼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으니, 데이트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나만 그렇게 느낄 뿐, 혹시 여자 사람 친구랑 같이 다닐 때 이런 게 보통인 건가?

    여자 사람 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그래. 젠장. 내가 그 전설의 남중 남고 군대 공대 테크를 탄 놈이다.

    핸드폰에 여자 사람 번호라고는 가족 번호밖에 없었던 놈이라고.

    때문에 이런 쪽에 관해선 내 상식은 믿을 게 못된다.

    그렇다면 레이첼 누님의 상식을 믿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나는 레이첼 누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쇼핑을 하며 즐겁게 미소 짓고 있지만, 내 팔에 그 풍만한 가슴을 마구 짓눌러오고 계시긴 하지만, 그래도 나한테 연애 감정 같은 건 없을 거다. 아마.

    피치 못할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섹스까지 했는데도 태도가 달라진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 누님은 내게 애인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디아나와는 꽤나 오래 알고지낸 사이로 보이고, 심지어 존경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데이트같은 짓을 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역시 여자 사람 친구와 이러는 건 보통인 건가?

    "응? 구원씨? 왜 그러세요?"

    너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걸까?

    레이첼 누님이 여전히 미소 지은 얼굴로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 눈을 마주봤다.

    "네? 아, 아뇨. 아무것도요."

    "으응? 후훗. 아무것도 아닌 표정이 아닌데요? 제가 맞춰볼까요?"

    "네, 네?"

    "지금 배고픈 거죠? 미안해요. 저 혼자 너무 들떠서."

    "아뇨. 저도 즐거웠어요. 누님은 예쁘시니까 눈 호강도 되고."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옷 가게.

    누님이 차례차례 옷을 갈아입으면서 감상을 물어왔기에, 나는 그렇게 대답해줬다.

    뭐, 물론 아직 몇 벌 안 입었으니까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거지, 이게 몇 시간이고 지속되면 과연 나도 질리겠지만.

    이것만큼은 사랑으로도 극복이 안 되더라.

    우리 애들이랑 있어도 몇 시간을 옷가게에 있다 보면 피곤하더라고.

    "후훗. 고마워요. 하지만 너무 그렇게 누나를 설레게 하면 안돼요. 디아나님한테 이를 거예요?"

    레이첼 누님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가 산 옷을 내게 건네주더니, 그대로 다시 팔짱을 껴왔다.

    "그럼 갈까요. 저 기대해도 되죠?"

    "그럼요."

    그 때문에 사전 조사도 확실히…잠깐.

    나는 손에 들린 옷을 인벤토리에 넣기 전에 잠깐 바라봤다.

    여성의 옷은 전혀 모르는 나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옷이었다.

    가게를 둘러보니 은근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감도는 것이, 손님들 중에서도 화려한 옷차림의 손님이 많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누님. 길드장 딸이었어.

    길드장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는 모르지만, 디아나와 친해보였던 걸 감안하면 상당한 위치라는 건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귀족.

    즉, 높으신 분.

    혹시, 혹시 레이첼 누님의 감각도 실비아와 비슷한 수준인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어제 알아봤던 그곳으론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니. 기숙사에서 사는 모습이나 쇼핑하는 모습을 보면 실비아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대하는 걸 보면 혹시….

    그래. 작전 변경이다.

    일단 더 좋은 데로 가보고, 반응이 조금 아니다 싶으면 그제야 원래 예정했던 곳으로 가자.

    더 떨어지는 곳부터 갔다가 반응 살피고 좋은 곳에 가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지.

    그리고 더 좋은 곳이라면 짐작 가는 곳도 많았다.

    디아나와 갔던 두 곳도 그렇고, 실비아가 처음에 안내해줬던 곳도 있다.

    그래. 어제 실비아가 처음 안내해줬던 곳으로 가볼까.

    어제 한 사전 조사를 물거품으로 만들기도 조금 그러니까.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고.

    아니. 그게 말이야. 물론 지금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기는 해. 하지만 그래도 디아나와 갔던 식당은 말이지…. 좀 그렇잖아?

    그런고로 나는 자연히 실비아가 처음 안내했던 식당으로 향하게 됐다.

    "어머? 구원씨가 이런 곳도 알고 계셨어요?"

    "누, 누님. 절 대체 어떻게 보시고…."

    "후훗. 미안해요. 구원씨는 조금 털털한 이미지가 있어서."

    레이첼 누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윙크하고 혀를 배꼼 내밀었다.

    저런 귀여운 표정을 지으시면 뭐라고 할 수가 없잖아.

    이 누님은 자기 외모를 너무 잘 활용하신다니까.

    특히 외모나 일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지적으로 보이셔서, 저런 행동을 할 때 그 갭이 극대화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여기, 꽤나 비싼 곳이에요."

    그리고 이번엔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역시 누님도 여기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 모양이다.

    "그럼요. 괜찮고말고요. 누님도 대충 제가 얼마나 버는지 아시잖아요. 들어가요."

    하지만 그 표정은 순수하게 내 지갑사정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일 뿐, 부담감 같은 감정은 그다지 엿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당당하게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뭐, 돈 걱정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취미가 게임이었던 난 이 세계에서 돈 쓸 일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야.

    개인적인 돈은 우리 애들이랑 가끔 놀러가면서 선물을 주거나 식사하는데 쓰는 게 전부다.

    게다가 아까의 쇼핑도 결국 난 한 푼도 안 썼고 말이야.

    레이첼 누님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해드릴까 싶었지만, 그건 레이첼 누님 쪽에서 부드럽게 거절하셨다.

    그러니 식사 정도는 이런데서 해도 되는 거다.

    어차피 보답으로 대접하는 거기도 하고.

    "후훗. 오랜만이네요. 요즘은 일 때문에 좀처럼 올 기회가 없어서."

    여전히 나와 팔짱을 끼고 있는 레이첼 누님은, 기쁜 얼굴로 그렇게 속삭였다.

    기뻐하시는 걸 보니 저도 기쁩니다.

    예정을 변경해서 여기로 온 게 정답이었다.

    식당은 겉보기와 마찬가지로 고급 레스토랑.

    티를 내진 않았지만, 들어가자마자 종업원이 우릴 훑어본 걸로 보아 신분검사까지 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레이첼 누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허리를 숙이고 자리로 안내해줬지만.

    어쩌면 누님은 내 생각보다 더 높으신 분인 건지도 모르겠다.

    하긴. 이 도시의 중심이 되는 길드의 장. 그 딸인 건데 이정도가 당연한 건가?

    아무튼 식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직 익숙지는 않고 틀리는 부분도 많았지만, 저번에 디아나한테 배웠던 테이블 매너도 어설프게나마 지킬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보니 그때 참 좋았는데 말이야.

    이 식당의 테이블도 테이블보가 발까지 가려줄 정도로 길게 내려와 있어서, 디아나와의 추억이 더욱 떠올랐다.

    "어머. 테이블 매너도 제대로 잘 지키시네요. 처음 봤을 때는 이대로 놔둬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이 세계에 익숙지 못한 모습이었는데."

    레이첼 누님은 조금 놀라운 듯, 하지만 어딘가 아쉽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핫. 이게 다 노력의 성과죠."

    "후훗. 알아요. 항상 지켜보고 있었는걸요."

    누님. 저만 지적할 게 아니라 누님도 문제에요.

    무의식중에 남자가 반하게 만들 말들을 내뱉으시잖아요.

    누님 같은 미인이 그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착각한다고요.

    뭐, 난 안 하지만! 사라야, 디아나야, 레이아야, 내가 이런 남자야.

    "하지만 이번 틀렸네요. 고기를 써는 나이프는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에요."

    "네? 아?!"

    당황한 나는 나이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뭐냐 이 데자부는. 언젠가 한 번 본적 있는 장면인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번 같은 전개는 기대할 수 없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땅에 떨어진 나이프를 주우려다가, 동작을 멈추고 종업원을 부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눈은 정말 우연히도 식당의 정문 쪽을 향했고, 지금 막 식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라, 디아나, 레이아.

    한 명도 아니고 셋이서 사이좋게 식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셋은 서로 사이좋게 얘기를 하면서 들어오는데, 자세히 보면 조금 시무룩해진 레이아를 사라와 디아나가 달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사님이 왜 저런 표정을 지으시지?

    당연히 궁금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그런 걸 알아볼 상황이 아니었다.

    들키면 죽는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죽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몸은 생각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이프를 줍기 위해 살짝 굽혔던 몸을 그대로 더 굽히며 테이블 안으로 들어간다.

    "꺄악! 구, 구워…."

    당연히 레이첼 누님은 깜짝 놀랐지만, 나는 지금 그런데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미안해요. 레이첼 누님! 하지만 잠시만 참아주세요! 들키면 저 죽어요!

    나는 눈앞에 보이는 레이첼 누님의 다리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염원했다.

    중심부를 가리기 위해 한 손으로 그 부분을 꽉 누르고 다리를 오므린 모습이 무척이나 섹시…아니.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음? 오오. 레이첼양 아닌가. 우연이구먼. 오늘 휴가를 쓴 겐가?"

    그리고 하필이면 또 레이첼 누님의 비명을 들었는지, 디아나가 접근해왔다.

    아니. 이 발소리는 디아나뿐만이 아니다. 사라도, 레이아도 전부 다가오고 있다.

    위험해. 죽는다. 살해당한다.

    "안녕하세요. 레이첼씨."

    그리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사라와 레이아의 인사소리도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나는 곳 바로 자신의 숨소리를 억눌렀다.

    혹시 사라한테 숨소리라도 들키면 그날이 내 제삿날이다.

    "네?! 디, 디아나님? 그, 그리고 여러분! 아, 안녕하세요! 이,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정말 우연이네요! 네. 휴가! 휴가에요!"

    그리고 레이첼 누님도 디아나를 보고 상당히 놀랐는지, 깜짝 놀라서는 평소보다 상당히 빠른 말투로 말했다.

    "음. 잘 생각했네. 자네 어머니도 꽤나 걱정을 하시더구먼. 일도 좋지만, 가끔은 그렇게 휴식도 필요하다네."

    "하지만 이런 곳에…혹시 혼자 오신건가요? 만약 괜찮으시면 합석…."

    사라야!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니!

    쿨한 얼굴대로 흥미 없는 척 하라고! 왜 남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야?! 왜 친절하게 구는 거야?!

    "아, 아니에요. 그게 데이트. 데이트에요!"

    레, 레이첼 누님! 잠깐만요! 그거 들키면 오히려 더 위험해지는 대답인데요?!

    농담 아니라 저 진짜로 죽어요!

    눈앞에서 파닥이는 다리를 보니 누님이 얼마나 당황했는지는 알겠는데요, 그래도 그 대답은 아니잖아요!

    쟤들 제 애인이라고요!

    "호오. 자네가 데이트라니. 드디어 좋은 남자라도 찾은 겐가?"

    "어머. 어떤 분이신가요? 레이첼씨의 데이트 상대라니. 분명 무척이나 훌륭하신 분이겠지만요."

    망했다! 레이아까지 떡밥을 물어버렸어!

    레이아가 제일 위험하다고요!

    만약 내 냄새라도 맡는 날에는…!

    아냐! 난 여기 음식의 힘을 믿어! 내 냄새따윈 지워줄 수 있을 거야!

    내 체취가 그리 강한 것도 아니잖아?! 제발!

    "그, 그게, 저, 실은 그게, 어, 어머니께도 아직 비밀인 사이라! 부탁이에요! 제발 못 본척하고 넘어가주세요!"

    레이첼 누님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면서 외쳤다.

    그때마다 치마가 조금씩 들썩이며 그 안의 팬티가…검정…화려한 레이스까지 달리고,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곳도 있는…의외로 섹시한 걸 입으시는구나. 분명 전에는…. 아니. 그러니까 지금 그런 거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후훗. 자네도 슬슬 그런 걸 생각할 나이니, 딱히 숨길 건 없지 않나."

    "그, 그건 그렇지만! 그게! 진심으로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는 분이셔서! 태, 태어나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고! 어, 어머니께 말씀드리기는 아직 조금 쑥스럽다고 할지!"

    레이첼 누니이이이임!

    사실 절 죽이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냥 차라리 암살자를 고용해주세요! 죽을 거면 편하게 죽고 싶어요!

    이 사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죽음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차라리 죽음을 택할까. 혀 깨물고 죽는 게 지금 이 자리에서 들키는 것보단 조금 덜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그 레이첼양이 그렇게까지 새빨개지다니. 이거 단단히 반한 모양이구먼. 더더욱 궁금…알겠네. 알겠네.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이 몸들은 물러나겠네. 좋은 시간 보내게나."

    "레이첼씨 다음에 봐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내가 혀를 내밀어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끼우고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모두가 멀어져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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