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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06화 (39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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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첼과의 식사

    "우우우…."

    "응? 왜 그래?"

    "…자네는…! 하아…됐네."

    일어나자마자 날 노려보던 디아나는, 뭔가 말하려다가 결국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뭔데? 궁금하잖아. 말해봐."

    "잇…!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겐가?! 자네는…! 벌 받을 때 정도는 좀 져주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끈질기게 물어보자, 디아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그렇게 외치면서 내 머리를 토닥토닥 때렸다.

    물론 그래봤자 토닥토닥. 아무리 공격받는 곳이 머리라고 하더라도 데미지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런가. 디아나는 질 걸 알고 있었지만, 벌이니까 내가 져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벌을 줬던 건가.

    하긴 디아나가 바보도 아니고, 나랑 몸을 한두 번 섞은 것도 아니니 내가 진심이 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는 걸 모를 리가 없지.

    응? 그럼 설마 사라도?

    설마 내가 안 져줘서 아침에 디아나를 미끼로 날 구박한 건가?

    하핫. 귀여운 녀석들. 내가 밤일로 져줄 리가 없잖아?

    가끔 플레이한다는 기분으로 져주는 것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난 주도하는 게 좋다고.

    "에이. 왜 그래. 디아나 누나. 밤에 그러는 대신 낮엔 항상 져주잖아."

    "애, 애교 부리지 말게! 그, 그런 게 이 몸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겐가?!"

    응. 엄청. 너 지금 목소리 떨리고 있거든.

    하지만 이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모양이네.

    아까 디아나가 그냥 말 안 하려고 했을 때 넘어갈걸.

    어차피 그냥 넘어가려고 한 걸 보면 디아나도 내가 물어봤으니 괜히 더 생각나서 이러고 있을 뿐, 진심으로 화난 건 아닐 거다.

    이럴 땐 얼버무리는 게 상책이다.

    "그보다 디아나. 지금은 낭군님이라고 안 불러주는 거야?"

    "흥. 그렇게 불리고 싶으면 좀 더 그러어으응!"

    "아야. 아파. 때리지 마."

    디아나가 말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허리를 살짝 움직이자, 디아나가 반사적으로 신음성을 내더니 말없이 내 가슴을 토닥토닥 때렸다.

    아무튼 이걸로 사라와 디아나, 둘에게 모두 벌을 받은 거다.

    이걸로 한 건 해결인가.

    둘 다 간단하게 용서해줘서 다행이다.

    솔직히 던전에서 하고 난 다음에는 디아나한테 어떻게 혼나게 될지 엄청 무서웠는데 말이야.

    나는 결국 아침부터 디아나와 한 번 더 행위를 한 후, 식사를 하러 갔다.

    "구원씨!"

    식사를 하러 내려가자, 그렇게 밝은 목소리로 날 제일 먼저 맞이해 준 건 바로 천사님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언제나 포근한 미소를 짓는 레이아지만, 오늘은 유독 그 미소가 눈부셨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좌우로 맹렬하게 흔들리고 있는 꼬리가 레이아가 지금 얼마나 기분 좋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응. 좋은 아침. 오늘은 유독 기분이 좋네?"

    "후훗. 네."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앉은 내 팔을 꼬옥 끌어안아왔다.

    음. 여전히 훌륭한 감촉이다.

    하지만 어제 저녁때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평범,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조금 기운 없어 보였는데 말이야.

    밤사이에 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나는 레이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지만, 레이아는 내 얼굴을 마주 보면서 살포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청순하시다. 아니. 이게 아니지.

    아무래도 레이아는 왜 기분 좋은지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크흠!"

    나와 레이아가 그렇게 달라붙어서 서로를 빤히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자, 옆에서 명백히 고의로 내는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앗차. 또 디아나의 가슴 트라우마가…!

    "하지만, 구석에 실비아양이 없으니 조금 허전하구먼."

    하지만 디아나는 웬일로 나와 레이아가 이러고 있는 것을 터치하지 않고 넘어갔다.

    어젯밤 내내 나랑 붙어있었으니까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걸까?

    실비아 언급까지 해주고 말이야.

    뭐, 디아나가 허전한 이유는 모르는 거지만 말이야.

    혹시 마음의 버팀목이 사라져서 허전하다든가 하는 건 아니겠지? 주로 가슴 크기적인 의미로.

    "구석에라니…. 그냥 얼굴 안 보이니까 허전하다고 해줘라. 그야 물론 항상 구석에 있기는 하지만."

    실비아도 빨리 특훈의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 말이야.

    물론 덜덜 떠는 게 귀엽긴 하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도록 말이다.

    제일 이상적인 건 떨지 않아야 할 땐 안 떨고, 떨어도 될 땐 떨게 되는 거다.

    뭐, 그렇게 내 형편에 좋게 변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말이야.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실비아가 없는 식사를 했다.

    평소엔 구석에서 말도 잘 없는 실비아지만, 그래도 역시 없으면 쓸쓸한 법이구나.

    그래도 아마 오늘 돌아올 테니까, 그다지 쓸쓸해할 건 없겠지.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에 집중하자.

    "아참. 나 이따가 조금 나갔다가 올게."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어, 어디에요?"

    하지만 그런 날 보고 가장 먼저 반응하며 불러 세운 건, 의외로 레이아였다.

    차라리 사라나 디아나가 불러 세웠으면 불러 세웠지, 레이아는 그냥 웃으면서 ‘다녀오세요.’라고 해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안 그래도 레이아가 붙잡는 건 예상외의 사태인데, 심지어 그 레이아가 뭔가 애절한 표정까지 짓고 있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다행이도 질문 자체는 사라나 디아나가 할 거라 예상한 내용과 똑같았다.

    덕분에 나는 태연을 가장하고 미리 준비해놨던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응? 아, 친구랑 잠깐 만나기로 해서."

    "뭐? 구원이 친구가 어디 있어."

    "있거든! 그 정도는! 너 내가 그렇게 사교성 없는 놈으로 보여?"

    "그치만 구원, 남자만 보면 항상 더러운 사내새끼가 어쩌고 하잖아."

    아,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너희에게 마수를 뻗으려는 사악한 놈들을 상대로…그야 가끔, 아주 가끔 안 그런 놈들한테도 그런 말을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게다가 친구라고 했지, 그게 남자란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여자라고, 특히 자주 대화하는데다가 예쁘기까지 한 레이첼 누님에게 식사 대접하러 간다는 게 들키면 폭발할 테니까 말은 안 하겠지만 말이야.

    아니. 찔리는 건 없다.

    그냥 순수하게 디아나를 찾는 걸 도와준 보답을 해주는 것뿐이다.

    친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거짓말도 아니고.

    하지만 그냥 괜히 오해사기 싫어서 말은 안 하는 것뿐이야.

    "아니. 나도 의외로 다른 놈들이랑 잘 지내…."

    "전에 3계층에서 구해줬던 호인족 수인 모험가. 이름이 뭐야?"

    "……."

    야.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치사하지 않냐.

    "그렉이야. 알다시피 남자를 싫어하는 나도 그 정돈 기억한다고. 그런데 그것도 기억 못하는 구원이? 다른 남자들이랑 잘 지내?"

    "그, 그놈은 맘에 안 드는 놈이라 기억을 안 하는 것뿐이야! 다른 놈들하곤 잘 지낸다고. 그 왜, 브린이라든가…."

    "누구야 그거."

    누구냐니. 2계층에서 나한테 친한척하다가 엄청 당한 놈 말이야.

    남자 모험가들 사이의 룰 같은 걸 알게 된 후에는 제대로 사과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게다가 브린 말고도 남자 모험가들과 대화가 없는 게 아니다.

    의외로 정보교환이나 안부 인사 같은 걸 하기도 하고 한다고. 이래 봬도.

    나 혼자 마석 교환을 하고 난 후 길드 안에서라든가, 가끔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라든가 말이야.

    사실 이 세계의 남자들 중에는 모험가들이 제일 상대하기 편하기도 하고 말이야.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더욱더.

    "아, 아무튼 난 친구랑 좀 놀다 올게."

    이대로 가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이란 건 길게 말하면 말할수록 허점만 늘어날 뿐이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황급히 저택 밖을 빠져나왔다.

    젠장. 당황해서 그만 벌써 저택을 나오고 말았어.

    레이첼 누님과의 약속은…약속은…그러고 보니 시간 약속을 안 했잖아.

    난감하다.

    그냥 지금 곧바로 가볼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너무 이른가.

    그 누님 일하시는 걸 봐선 아직 안 일어났다든가 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모처럼 휴가이니 느긋하게 식사중인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나도 식사를 마치고 나온 직후다.

    만약 지금부터 식사를 대접하러 가더라도, 나는 음식을 입에도 안 대고 레이첼 누님이 식사하는 걸 구경만 하다니.

    그것도 참 실례니까 말이야.

    결국 나는 점심 즈음에 레이첼 누님을 찾아가기로 하고, 일단 조금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산책이라고 하더라도, 이놈의 로브 때문에 답답해 죽을 것 같지만 말이야.

    결국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길드였다.

    길드 안은 모험가나 그에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성역.

    물론 의뢰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모험가들이 드나드는 곳과는 별개의 구역에서 접수를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길드 안에서 대규모로 소란을 피우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일단 위험한 던전을 둘러싸고 관리하는 곳이니까 말이야.

    때문에 전에 그 잠자리에서 여자들에게 기를 못 펴고 사는 불쌍한 남자들이 길드 밖을 에워싸고 있었던 거다.

    안에서 집적 그러지는 못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들 때문에, 길드 안으로만 가면 이 로브를 벗어버릴 수 있다.

    깔 맞춤을 한 디아나는 내 로브 모습이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이었지만, 아쉽게도 난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아니. 디아나와의 깔 맞춤 자체는 기쁘다.

    다만 익숙하질 않아서 그런지 거추장스럽단 말이야.

    특히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어야 되는 것이.

    시야도 은근히 좁아지고.

    그리고 겨우 길드에 도착한 난, 일단 거추장스런 후드부터 얼른 벗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언제나 레이첼 누님이 있던 안내원석을 바라봤지만, 역시나 오늘은 휴가를 냈는지 비어있었다.

    그리고 내가 잠깐 바라보던 그 사이에도, 레이첼 누님의 데스크까지 갔다가 실망스런 표정으로 다른 곳에 가는 남자 모험가가 벌써 둘이나 있었다.

    역시 인기 많으시구나.

    여기 안내원들은 다들 한 미모 하기는 하지만, 역시 그 중에서도 레이첼 누님이 단연 눈에 띄니까 말이야.

    애초에 나도 처음 왔을 때 제일 예쁜 안내원 찾아서 간 거였고.

    아무튼 자, 그럼. 여기까지 온 건 좋지만, 이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어디 괜찮은 의뢰라도 있는지 한 번 살펴볼까?

    "어? 서, 설마 구원님?!"

    의뢰가 붙어있는 게시판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을 때, 갑자기 뒤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름에 님 자를 붙여가며 부르고, 게다가 남자 목소리.

    이런 젠장! 설마 길드 내에서도 나한테 달라붙으려는 놈이 있단 말이야?!

    "오, 오랜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나는 기겁하며 뒤를 돌아봤지만, 다행이도 자기 섹스 테크닉 좀 어떻게 해달라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너 이 새끼 크랑! 잘 만났다! 감히 내 소문을 퍼뜨리고 다녀?!"

    다만 다른 의미로 짜증나는 놈이었다.

    바로 아까 사라와의 대화에도 잠깐 등장했었던, 그 호인족 음유시인. 크랑이었다.

    대장간의 그 합법꼬맹이와 더불어, 내가 남자들을 구원할거란 이상한 소문이 생기게 만든 장본인.

    "자, 잠깐만요. 구원님! 다른 호인족과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전 그렉입니다! 3계층에서 구원님이 구해주셨던…."

    "그래 이 새끼야! 너 맞아! 잘 만났다! 뭐 모두를 구원해주실 성자?!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아?!"

    "네?! 죄, 죄송합니다!"

    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고개를 푹 숙여 사과부터 하고 봤다.

    "죄송하면 모험가 생활이 끝나…후우. 아니다. 됐다."

    젠장. 이렇게 나오니까 또 막 심하게 갈굴 수도 없잖아.

    애초에 이놈을 갈군다고 해서, 지금 이 사태가 어떻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혹시 괜찮다면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새끼야 그렇게 말하면 이미 질문 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뭐가 혹시 괜찮다면 이야.

    "진짜 몰라서 그러냐? 거리 전체에 소문이 그렇게 났는데? 게다가 너 음유시인이라며? 소문엔 빠삭할 것 아니야."

    "죄송합니다. 실은 근래 저도 정신이 없어서…."

    "뭐? 음유시인이 무슨…그러고 보니 너 전에 있던 동료들은 다 어디 갔냐?"

    "그게…실은 파티가 해산됐습니다. 두 사람은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된 모양인지…."

    크랑…크랙? 에이 뭐 아무래도 좋아.

    아무튼 호인족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몇 죽었다고 했지.

    친하던 사람이 죽는 걸 눈앞에서 봤을 테니, 그야 모험가 생활도 때려 칠만 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손에 쥐고 있는 종이, 자세히 보니 파티원을 모집하는 글이었다.

    파티가 해산 되서 절찬 파티 모집 중이라는 건가.

    이 녀석은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굴하지 않고 던전 탐험을 계속하겠다는 건가.

    어떤 의미로 대단한 놈이기는 하다.

    "그러냐. 잘 있어라."

    물론 내가 신경 쓸 바는 전혀 아니지만.

    드디어 남성 파티원이 추가되는, 흔하디흔한 이벤트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어? 그거 유감이네.

    우리 파티는 미인 빼곤 사절이라서 말이야.

    만약 남성 파티원을 받게 되도, 이 녀석은 아니야.

    의도야 어찌됐든 내 소문을 퍼뜨려 피해를 준 이 녀석은 말이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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