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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404화 (38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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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음? 공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리고 저녁 시간.

    실비아가 없는 이유를 알려주자, 디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넷사. 이 몸들이 던전에 가있는 동안 뭐 들은 얘기라도 있는가?"

    "바넷사가 들은 얘기가 있을 리가."

    "음? 왜 그렇게 단언을 하는가? 자네도 알지 않나. 바넷사는 유능하다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얘, 웬만하면 집밖에 안 나가잖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네 말일세. 그건…집사 아닌가. 집에 있으면서 관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걸세. 뭐 아무튼 바넷사. 그래서 들은 얘기 있나?"

    디아나는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바넷사를 힐끔 쳐다보더니, 내게 강한 눈빛을 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뭐야 저 반응. 난 그냥 바넷사를 조금 놀리려고 했던 것뿐인데.

    혹시 내가 모를 뿐, 밖에 잘 나가지 않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만약 그런 거면 미안해지는데. 아무리 사정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닐세. 자책하지 말게. 정보를 알려줬다는 기사도 숨기는 눈치였다고 하니, 아마 성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얘기일걸세."

    디아나는 바넷사를 다독이듯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꾸짖는 것 같은 시선을 보냈다.

    아니. 그러니까 몰랐다니까 그러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만약 나라에 관한 중대한 얘기라면 아무리 비밀이라도 조금은 소문이 났겠지. 오는 동안 거리에 그런 소문도 전혀 없지 않았나.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닐 걸세. 기껏해야 공주가 또 사고라도 쳐서 꾸중을 들은 것이겠지."

    "그런거면 실비아의 힘이 필요하고 뭐고 할 것도 없지 않아?"

    "그런 공주라도 꾸중을 들으면 풀이 죽을 걸세. 그럴 때 제일 필요한 건 곁에서 위로해주는 친구 아니겠나."

    과연. 그런 건가. 그런 거라면 아귀가 맞아 떨어지기는 하네.

    정보를 알려줬던 기사도 한시를 다투는 일은 아니라고 하기도 했고.

    하지마 디아나. 그런 공주라니. 뭐, 나도 그 표현엔 동의하지만 너도 참 가차 없구나.

    "그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여자가 겨우 꾸중 좀 들었다고 풀죽을 것 같진 않은데요."

    게다가 사라는 한 술 더 떴다.

    여전히 사라의 안에서 공주의 평가는 최악인 모양이다.

    "그래? 확실히 자유분방한 성격이지만, 자기 잘난 맛으로 산다는 인상은 없었는데."

    오히려 공주라는 신분 치고는 엄청 털털한 편 아니었던가?

    아마 일반적인 공주였다면 자기보다 신분도 한참 낮은 나한테 그런 식으로 애교 떨거나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사라가 날 찌릿하고 노려봤다.

    "구원은 속고 있는 거야. 하는 짓이 완전 여우라고. 그 말투. 그 태도. 자기가 꼬드겨서 안 넘어올 남자는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온 몸에 넘쳐흐르잖아."

    아…그러고 보면 그럴지도.

    확실히 그런 쪽으로 생각하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라고 생각해.

    무엇보다 매혹이 패시브로 발동되는 것 같은 여자인걸.

    까놓고 말해서 나도 너희 없었으면 바로 넘어갔을 걸.

    나는 옆에 앉은 레이아의 등을 찬찬히 쓰다듬으면서 마음속으로만 가볍게 반론했다.

    참고로 이거 괜히 만지고 있는 거 아니다.

    방금 사라가 공주 욕을 할 때 어째선지 우리 천사님이 깜짝 놀라셨거든.

    하는 짓이 여우라는 말에 반응한 걸까? 구미호도 일단은 여우니까.

    뭐, 그렇다고 해도 우리 천사님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여우같은 짓은 전혀 안 하시지만.

    오히려 그 정 반대다.

    순수와 천연. 그거야 말로 우리 천사님을 지칭하는 말이지.

    하여간 우리 천사님은 귀엽다니까.

    "뭐, 아무튼 무슨 일인지 이 몸이 굳이 알아볼 필요는 없겠지. 내일 실비아양이 돌아오면 그때 듣도록 하세."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 이 얘기는 끝이라는 듯 차를 쪼르륵 마셨다.

    사라도 공주 얘기를 계속 하는 건 싫었는지 그 이후로 그에 관한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애초에 공주와 만난 적도 없는 레이아는 처음부터 얘기에 껴들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마틸다도 추기경이라는 높으신 신분이니 공주랑 한두 번쯤은 만난 적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얘기에 껴들지도 않고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하네.

    마틸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마틸다는 어째선지 날 살짝 노려보고 있었다.

    한 손은 그 매끈한 배를 붙잡고, 다른 한 손은 앞에 놓은 음식을 깨작이면서.

    쟨 또 왜 저래. 감사 인사를 듣는다면 모를까, 노려봐질 일은 안 했는데.

    너 자기 손목이나 좀 확인해봐라. 오늘 저주 엄청나게 풀어줬다고.

    아무튼 언제나 구석에서 날 빤히 쳐다보던 실비아가 사라져서 조금 쓸쓸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곧바로 바넷사부터 붙잡았다.

    "바넷사."

    "네. 무슨 일이십니까?"

    "그, 아깐 미안."

    "…뭐가 말입니까?"

    "아니. 아까 집밖에 잘 안 나간다고 한 거 말이야. 난 그냥 좀 놀려주려고 말했던 건데,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

    내가 그렇게 사과하자, 바넷사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는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서있었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 사과했잖아. 한 대 때리려고?

    "…아닙니다. 구원님이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바넷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몸을 홱 돌려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으, 응? 야. 잠깐. 나라면 괜찮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붙잡아 봐도 얼굴을 다시 내 쪽으로 향하는 일 없이 말이다.

    뭐야 저거. 신경 쓰이잖아.

    여자는 비밀이 있는 편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슈퍼집사는 비밀이 너무 많단 말이야.

    뭐, 안 알려줄 거면 됐다.

    일단 사과는 제대로 받아줬고, 지금은 바넷사가 한 말을 진의를 파헤치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바로 우리 디아나와 행복한 밤을 보내야한다는 중요한 일이!

    "으으으으으음…."

    마냥 들뜬 나와는 다르게 디아나는 뭔가 어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샤워를 마치고 온 디아나는 아까부터 계속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날 빤히 바라보고 말이다.

    "디아나, 왜 그래?"

    "오늘 자네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뭣?! 그새 잊었는가! 오늘은 자네에게 상냥하게 안 하는 날일세!"

    아, 그거 아직도 하는 거구나.

    미안. 완전히 깜빡 잊고 있었어.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 이후로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 셋 다 모습을 한 번도 본적 없으니 말이야.

    나 오늘 내내 마틸다나 실비아랑 놀았는데…왠지 조금 미안해지네.

    아니, 둘 다 그냥 놀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겸사겸사 나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거니 미안할 일은 없지만 말이야.

    "디아나, 그래도 이제 우리 둘만의 시간이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니! 오히려 둘만 있으니 더 그래야 하네! 자네는 혼 좀 나봐야 하네! 대체 사라양한테 왜 들킨 겐가! 이 몸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아는가! 사라양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네!"

    "그래도 원인을 따지고 보면, 사라가 던전 안에서 내 물건을 만지작거린 게 원인이니까.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잖아. 디아나만 던전 안에서 나랑 그런 짓 한 게 아니야."

    "대체 어떤 논리로 그렇게 되는 겐가?! 오히려 더 부끄럽네!"

    "디아나도 참. 어쩔 수 없네. 그래서 결국 어쩌겠다는 건데?"

    "어쩔 수 없는 건 자네일세!! 벌일세! 벌!"

    "뭐? 벌은 어제 사라한테 이미 충분히 받았는데?"

    뭐, 그걸 벌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좀 너무 즐거웠지만.

    결국 내가 이기기도 했고.

    "그건 그거! 이건 이거일세! 애초에 말일세! 자네 저번에 벌이라면서 이 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 못하는 건 아니겠지!"

    아, 과연. 그러고 보니 그랬지.

    설마 나한테 벌 줄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건가. 이거 위험한데.

    뭐어, 솔직히 말해서 전혀 무섭지 않지만.

    나에겐 잠자리에서 그 어떤 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성자 만세. 여신님 만만세란 거다.

    "그렇구나. 그럼 오늘은 내가 다 벗고 저택 안을 산책하는 걸로?"

    "아, 아, 아, 안 할 걸세! 바보가아아!"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디아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외쳤다.

    과연 대마법사님.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아주 잘 짐작하고 계시는 모양이다.

    "뭐야 그럼. 오늘은 날 기분 좋게 해주지 않는 다거나?"

    "당연하지 않나! 그 정도는 기본일세!"

    "내가 기분 좋게 해줘도 싫은 표정을 짓고?"

    "다, 당연하지 않나!"

    대답하는 디아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디아나 스스로도 아는 모양이다. 그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그야 그렇겠지. 나라도 자신 없을 것 같아.

    사라나 디아나, 레이아가 봉사를 해주는데 싫은 표정을 짓고 있으란 거나 마찬가지잖아.

    음. 그렇게 생각해보니 자신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래.

    하지만 지금 디아나는 그걸 해보이겠다고 선언한 건다. 그렇다면….

    "오늘은 하루 종일 키스도 절대 안 하고?"

    "다, 다, 다, 당연하지 않나아! 흐이잉!"

    야. 자기가 대답해놓고 울려고 하지 마라.

    그야 나도 조금 심술궂은 질문을 했다고는 생각하지만 말이야.

    뭐, 미안하니까 일단 제대로 원하는 반응을 보여줄까.

    "뭐어어! 너, 너무해!"

    나는 최대한 충격 받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만약 디아나가 한 말을 정말로 실행할 거라면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충격 받았을 거다.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끝까지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야 처음 정도는 디아나도 노력하겠지만 말이야.

    "흐, 흠! 벌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걸세!"

    눈가에 고인 눈물을 살짝 훔치고, 디아나는 될 대로 되라는 듯이 그렇게 외쳤다.

    "그런가…당연한 건가…. 그래서, 그런 당연한 것들 말고 구체적으론 어떤 벌을 줄 건데?"

    "……아무것도 안 할 걸세."

    "응?"

    "자네는 이 몸이 뭘 하든 좋아할 변태 아닌가! 그러니 아무것도 안 할 걸세! 자네가 뭘 해도 아무 반응도 안 할 걸세! 혼자 알아서 하게!"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후, 훗. 아무리 자네라도 이런 대응은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구먼. 후회하고 반성하는 게 좋을 걸세."

    "진심으로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소리야?"

    "왜! 왜 눈을 빛내는 겐가! 안 되네! 벌일세! 생각을 좀 하게! 밖으로 데려가거나 하려고 하면 용서하지 않을 걸세!"

    "쳇."

    "쳇?! 체엣?! 밖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던 겐가?!"

    "그, 그런 생각 안 했어."

    "거짓말! 하지! 말게! 이 변태가아!"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날 토닥토닥 때려댔다.

    디아나, 오늘은 상냥하게 안 하는 거 아니었어?

    아, 이거 안마가 아니라 공격이지.

    "뭐, 뭐어. 진정해. 일단 눕자."

    나는 미소가 지어지기 전에 토닥토닥 공격을 중단시키고, 디아나를 침대로 유도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미소를 지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장단정도는 맞춰줘야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겠는데, 그냥 나 혼자 하라고? 디아나는 전혀 장단 안 맞출 거니까?"

    "음. 역대 최고로 재미없는 섹스를 하면서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하도록 하게. 자네 같은 변태에겐 이게 가장 특효약이겠지."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생각해도 명안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논리적으론 맞는 말이다.

    디아나 말대로 역대 최고로 재미없는 섹스를 해버리면, 그야 나도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할 거다.

    다만 그 작전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이야. 디아나와의 섹스가 재미없는 섹스가 될 리가 없잖아.

    디아나 얘 자길 너무 과소평가 하는 거 아닌가?

    아니. 그건 아닐 텐데. 디아나는 자기 자신이 예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성격이다.

    그렇다면 사랑 없는 섹스는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거야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디아나가 끝까지 사랑 없는 섹스라는 태도를 관철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자신의 테크닉을 자신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그 이전에 디아나는 날 너무 좋아하니까 말이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중간부터 내용 완전히 수정했습니다.

    지적해주신 hendell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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