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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계층
"네, 넵!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귀여운 실비아는 내 말에 제대로 낚여서는 내 팔을 잡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비아에게 유도되어 따라간 곳은 바로…엄청나게 호화로워 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디아나와 갔던 두 곳과는 다른 곳이었지만, 여기도 그곳들에 절대 지지 않을 정도로 호화롭기 짝이 없었다.
어쩐지 다른 곳으로 안 빠지고 계속 귀족가 안에서만 걷더라.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어. 얘 귀족 영애였지.
그것도 공주랑 소꿉친구 먹을 정도로 엄청나게 높은 신분의.
"왜 그러십니까? 맘에 안 드십니까? 죄송합니다. 시장하실 거라 생각하셔서 그만 제일 가까운 곳을…다시 안내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더 좋은 곳이…."
"아니아니아니. 맘에 들어. 맘에 드는데 말이야. 돈이…."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라니, 혹시 성 안에 있는 궁중요리사라도 찾아가려고?
정말로 그런 데가 있기는 있어?
"도, 돈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내겠습니다!"
든든하다. 실비아야. 너무 든든해.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던전에서조차 널 이렇게 든든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거늘….
"아니. 그게 아니라. 어차피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니까, 간단히 끼니만 때우는 걸 이런 고급 음식점에서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어디 좀 더 없을까?"
레이첼 누님에게 식사 대접을 할 곳을 찾기 위해서니, 원래대로라면 저렴하고 적당한 곳이라는 표현은 하면 안 되겠지만.
나는 지금 이 사건으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실비아에게 저렴하고 적당한 곳이 바로 내가 원하던 그곳이야.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실비아는 자기가 돈을 내도 아무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의견을 존중하는지 조금 생각하다가 다시 날 안내해줬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이었다.
저렴하고 적당한 곳이라면서 데려온 것 치고는 상당히 고급스러웠지만, 역시 귀족의 기준은 나랑 좀 다른 거겠지.
역시 귀족은 귀족이구나.
그러고 보니 디아나는 엄청나게 높으신 분이어도 그런 티를 한 번도 안냈는데 말이야.
가출 생활이 길었던 탓에 서민들의 생활도 익숙한 걸까?
아니면 그냥 실비아가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는 걸까?
왠지 이쪽에 무게가 실리는군.
나랑 만나기 전까지는 항상 공주와 같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아니. 왕실 친위대였잖아. 분명 공주랑 딱 붙어서 성에만 있었을 거야.
나는 새삼 실비아가 달리 보이면서, 일단 눈앞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대충 간단한 요깃거리를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확실히 디아나와 갔던 곳들보다는 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종종 보이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원래 세계로 치면 패밀리 레스토랑 중에서도 조금 더 고급스런 부류라는 느낌이다.
"괜찮은 곳이네."
"그, 그, 그렇습니까아…."
그리고 식당 안내가 끝나자마자 다시 경직된 실비아.
지금은 내 앞자리에 앉아서 나와 마주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눈을 돌리기도 쉽지 않았다.
실비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하아하아 하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실비아는 여길 어떻게 알게 됐어?"
아까 전에 안내됐던 식당이라면 성에서 가끔 외식하는 기분으로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여긴 아니다.
이곳의 위치는 귀족가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변두리쯤에 위치하는, 성에만 있었다면 좀처럼 오지 않았을 장소였다.
"다, 다른 기사 동료들에게 들었습니다. 가끔 순찰을 돌 때, 배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괜찮은 식당이 있다고."
과연. 역시나 실비아 본인도 와본 건 처음이라는 건가.
하지만 이정도 식당을 그 정도 취급이라니.
그 다른 기사 동료라는 녀석들도 물가 개념은 실비아랑 비슷한 모양이네.
"하, 하지만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긴 테이블도 그리 넓지 않고…."
"덕분에 이렇게 실비아랑 지근거리에서 마주볼 수 있잖아?"
"으으으읏…!"
"야, 야. 가게 안에서 이상한 소리 내지 마라. 오해받잖아. …혹시 해서 묻는데, 너 지금 느낀 건 아니지?"
"아, 안 느꼈습니다! 안 느꼈습니다아!"
이거 수상한데. 하지만 이런 곳에서 확인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기엔 너무 보는 눈이 많다.
방금 실비아의 부끄러워하는 소리에도 이미 충분히 이목이 집중됐으니까 말이야.
"바벳 경! 바벳 경 아니십니까?!"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주목하게 된 사람들 중에는, 우연히도 실비아를 아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실비아가 던전에 갈 때처럼 완전 무장은 아니었지만, 약식이나마 기사 갑옷을 차려 입은 여성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하앗, 하아…마, 마일러 경?"
그리고 실비아도, 그 기사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설마 이 사람이 여길 알려줬다는 그 기사 동료라든가, 그런 건가?
무슨 그런 우연이….
"역시 바벳 경이시군요! 오랜만입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대체…아니. 그보다 바벳 경이 여기 왜…."
기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뭔가 눈치 챘다는 듯 갑자기 내 쪽을 쳐다봤다.
"그, 그렇다면 이 분이…으읍!"
야. 사람이 왜 이런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안 그래도 요즘 밖에 나올 때마다 이거 뒤집어쓰고 있느라 귀찮아 죽겠는데.
기사가 성자라고 외치기 전에, 나는 간신히 기사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었다.
"쉬이이잇. 조용히. 알겠죠?"
내가 기사의 얼굴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조용히 그렇게 속삭이자, 기사는 알겠다는 듯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이 미미하게 붉어진 건, 결코 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크으. 이제 내 외모가 귀족들한테도 먹히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거지.
역시 잘생긴 게 최고야.
"마, 마…흐아으…마일러 경이야 말로 여기 무슨 일이십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실비아가, 조금 안절부절못하더니 나와 기사의 사이에 몸을 들이밀고 외쳤다.
덕분에 나와 더 가까워져서 잠시 바르르 떨었지만, 다른 여자를 내게서 떼어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모양이다.
우리 애들이랑 내가 아무리 노닥거려도 질투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던 실비아지만, 역시 얘도 사람인 이상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 리가 없지.
처음 보는 실비아의 질투하는 모습에, 나는 조금 기뻐졌다.
상으로 나중에 귀여워해주자.
뭐, 받으면 실비아는 죽으려고 할지도 모르는 상이지만.
"저야 순찰을 돌고 조금 틈이 생겨…크흠. 그보다 바벳 경. 얘기 들으셨습니까?"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농땡이를 폈다고 말하려다가, 내 눈치를 보고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바꿨다.
"얘기…말입니까?"
"네. 여왕님께서 드디어 공주님께…크흠."
아니. 그러니까 내 눈치 보지 말고 좀 끝까지 말하라고. 궁금하잖아. 뭔데?
"아니. 이 얘기를 하기에는 장소가 좋지 못하군요. 바벳 경의 사정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언제 시간이 나신다면 한 번 성에 들러주십시오. 공주님께서 바벳 경의 도움을 필요로 하실 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얘기입니까?"
기사의 말을 듣고, 그때까지 반쯤 흐물거리던 실비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매번 느꼈던 거지만 얜 참 집중력이 엄청나다니까.
아까 식당을 안내할 때도 그렇고, 뭔가 다른 집중할 게 생기면 나한테 녹아내리던 것도 순식간에 잊어버리니.
뭐, 그 엄청난 집중력 때문에 나랑 단 둘이 있는 상황이 오면 행복한 감정에만 집중하느라 그렇게 심하게 녹아내리는 건지도 모르지만.
"네. 한시를 다투는 긴급한 일은 아닙니다만, 중요도를 놓고 본다면 상당히."
"으으음…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방해해서 미안했습니다. 그럼 전 이만.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성자님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기사는 내게도 조그맣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귀족으로 보이는 기사님한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란 소리까지 듣다니. 나도 꽤나 출세했네.
"펠리시아가…대체 무슨 일이…."
그리고 기사의 얘기를 들은 실비아는, 그 이후로 계속 안절부절 못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와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는데도 진동도 안 할 정도로 말이다.
"실비아."
마침 아까 전 그 기사가 가게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더 이상 실비아를 이대로 내버려둬선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내게 익숙해지는 특훈이니 뭐니를 할 때가 아닌 모양이네.
"네? 아, 네. 무슨 일이십니까."
"갔다 와."
"네, 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거잖아?"
"아, 아닙니다. 마일러 경도 한시를 다투는 일은 아니라고 했으니, 그 정도는…구원님?"
세차게 손을 흔들며 부정하는 실비아의 손을 꽉 잡아도, 역시나 실비아는 진동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랑 손을 잡고 있어도 떨지 않으면서, 신경이 안 쓰인다고?"
"아, 아우…."
그제야 실비아는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역시나 반응이 평소와는 달랐다.
이건 나와 이렇게 손을 잡고 있는 걸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들켜서 부끄럽다는 반응이라고 봐야겠지.
"괜찮으니까 다녀와. 소중한 친구잖아.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도움이 필요할 땐 곁에 있어줘야지."
"하, 하지만 그렇다면 던전은…."
"그게 뭐 급하다고. 여신님이 기한을 정해준 것도 아니고, 좀 늦게 가면 되지. 너 빼놓고 안 갈 테니까 다녀와. 일단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라도 해야지."
"…네. 그럼 죄송합니다만…."
"아니. 죄송할 거 없다니까. 다녀와."
"넵! 일단은 무슨 일인지 알아만 보고 오겠습니다. 오늘은 조금 무리라도, 내일까진 확실히 돌아오겠습니다."
"괜찮아. 급할 거 없이 천천히 해도 되니까."
"네. 구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만약 우리 도움이 필요한 일이면 말하고."
"넵!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황급히 식당을 나섰다.
역시 말론 부정했지만, 속으론 친구가 엄청나게 걱정됐던 모양이다.
그렇게 실비아를 보내고, 나는 실비아를 잘 보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다시 포크를 들었다.
자, 남은 스테이크를…잠깐.
그리고 그제야, 나는 스스로의 중대한 실책을 눈치 챘다.
패밀리 레스토랑 한 가운데에 앉아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혼자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덩치 큰 남성.
아, 아니야! 이건 아냐!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너희도 봤잖아! 원래는 엄청난 미녀랑 같이 식사하고 있었다고!
방금 와서 못 본 놈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 외모를 봐라.
이 외모가 어디 같이 먹을 사람 하나도 못 구할 걸로…젠장할 로브!
이거 벗으면 엄청난 미남이 튀어나온다고! 진짜라고!
물론 그렇게 변명할 수도 없었고, 나는 굴욕을 맛보면서도 꾸역꾸역 스테이크를 입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나도 나가면 되지 않냐고?
난 먹던 걸 남기고 그냥 가버릴 정도로 예의 없는 놈이 아니야.
그것도 고기를 남기다니! 천벌 받을 일이지!
참고로 말하자면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레이첼 누님이랑 내일 여기 또 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아…내일 또 여기 와야 되는 건가.
다른 색 로브라도 하나 더 살까…아니. 이거 디아나랑 깔 맞춤 한 거였지.
우울하다.
아니야. 다르게 생각하자.
오히려 같은 로브를 입고 와서 자랑해주는 거야.
레이첼 누님을 데리고 와서 말이야. 내가 이런 미인이랑 식사도 할 수 있는 놈이라고 만천하에 알려주겠어.
아니. 만천하에 알리면 우리 애들 귀에도 들어가니까…으아아! 아무튼!
아무튼 그렇게 해서 레이첼 누님과 갈 식당 알아보기는 무사히 완료할 수 있었다.
도중에 다른 이벤트가 발생해서 실비아와 떨어지긴 했지만, 일단 내일까진 돌아온다고 했으니 레이첼 누님과 식사를 다녀와서 사정을 들어보면 되겠지.
나는 목표를 달성하고 덤으로 배도 적당히 채운 난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택에 돌아갔다.
절대 혼밥의 굴욕을 잊기 위해서 황급히 돌아간 게 아니다. 가벼운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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