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97화 (381/1,205)

397====================

4계층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너무 서두르다 다치지 말고 느긋하게 하라고!"

"대장님 말이 백번 맞아! 제발! 제발 천천히 좀…."

"대장이라고 하지 말랬지! 적어도 교관님이라고 해라!"

"아윽!"

칸나 쟨 끝까지 저러고 싶을까.

그리고 미안. 장담은 못하겠다.

뭐 일단 1계층 연못을 조사할 생각이니까 한동안 4계층에서의 진전은 없겠지만 말이야.

힘내라.

3계층의 마을에 돌아온 직후, 길드까지 올라와서 아라크네의 애들과 헤어졌다.

삼인방은 오랜만에 지상에 올라온 게 얼마나 기쁜 건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감격해하고 있었다.

듣자하니 저번에 3계층에서 우리와 만난 이후로 처음 지상에 올라온 거라나 뭐라나.

저러다 쟤들은 지상보다 던전의 마나에 더 익숙해지는 거 아닐까.

"하아아아…지상의 공기는 왜 이리 맛있는 걸까요? 여신님의 은총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것 만 같아요."

그리고 지상에 올라와 감격해하고 있는 애가 또 한 명, 우리 파티에도 있었다.

뭐, 내 추측에 따르면 여신님의 은총이란 게 아주 틀린 말도 아니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저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뭔가 던전에 데리고 다니는 게 미안해졌다.

아무리 자기가 원해서 따라온 거였다곤 해도 말이다.

어쩌면 마틸다 하고는 나중에 제대로 얘기를 해봐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마석부터 교환 하는 게 우선이다.

"……저기. 디아나?"

"음? 뭔가?"

"다른 애들 다 가는데. 안 가?"

"실비아양도 있지 않나. 왜 이 몸에게만 그러는 겐가? 이 몸이 있으면 곤란한 일이라도 있나?"

아니. 실비아는 원래부터 아무 일 없으면 날 졸졸 따라다니는 애니까…응. 그래. 실은 조금 곤란해.

그도 그럴 게, 너 나 혼내려고 남아있는 거잖아.

"아, 아니. 별 일이다 싶어서."

"오늘은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기분이라서 말일세."

"그, 그렇구나. 그럼 난 일단 마석 교환하고 올게."

"음. 얼른 다녀오게."

젠장. 역시 혼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건가.

아니, 그야 던전에서 그렇게 섹스까지 한 건 내가 좀 심하긴 했지만 말이야.

반성하고 있다니까. 그 이후론 성실하게 행동했잖아.

사라가 자극하는 바람에 조금 욕구 불만이 돼서 그랬던 것뿐이야. 용서해줘.

라고 말하면 사라랑 그런 짓까지 했었냐고 더 화내겠지.

아무래도 디아나한테 혼나는 건 회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레이첼 누님. 저 왔어요. 여기 마석 교환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구원씨. 네. 마석 받았습니다. 4계층은 어떠셨어요? 다른 계층들과는 많이 달라서 놀라셨죠?"

"네. 역시 모험가란 극한 직업이네요."

"후훗. 그런 구원씨는 지금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떠오르는 다크호스지만요."

"그, 그런가요?"

"그럼요.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제시하셨잖아요. 사실 조금 굉장한 거예요. 이제 막 4계층에 진입하신 분이 이렇게까지 고평가를 듣는 건 처음 아닐까요? 과연 성자 전설을 만드실 분이네요. 저도 담당자로서 콧대가 높아져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시는 레이첼 누님을 보니 저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습니다.

아니. 뭐 성기로 길 뚫기는 그냥 게임을 해서 아는 거지만.

"자, 그럼 여기 정산금이에요."

"감사합니다. 아, 참. 그리고 레이첼 누님."

"넷?!"

어라, 갑자기 왜 이렇게 눈을 빛내시는 거지.

살짝 기대하게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이러니까 말하기 부담스럽잖아.

"아, 아뇨. 그게…어쩌면 다음 탐험 때 새로운 발견을 또 하게 될지도 몰라서요. 기대해주시라고요."

"……그런가요."

우와. 순식간에 엄청나게 기운이 빠졌어.

뭐지? 대체 나한테 뭘 기대하신 건데? 이런 거 말고 내가 레이첼 누님께…앗. 혹시, 설마….

아니. 까먹은 거 아니다. 그럼. 내가 미인과의 약속을 까먹을 리 있나.

"그, 그리고 누님. 전에 말했던 식사, 시간은 언제쯤 가능하세요? 누님은 항상…."

"언제든지요!"

역시 이걸 기대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나랑 식사하는 게 그렇게 기쁘신 건가?

하지만 레이첼 누님,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꼬드겨도 냉정하게 거절하셨잖아?

그야 그때에 비하면 내가 잘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누님이 그런 걸로 사람을 차별할 정도로 약아빠진 사람은 아닐 거다.

지금까지 알고 지낸 성격도 그렇고, 애초에 신분도 그럴 신분이 아니다.

안내원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길드장의 따님이라고.

그리고 그 길드장은 디아나랑 말을 놓는 사이다.

잘나가는 걸로 따지면 나한테 절대 꿀릴 누님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들이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피곤하다는 식의 말을 하기도 했었고.

혹시 이제 와서 내가 좋아지셨나?

아니. 그럴 리는 없나. 그럴만한 사건이 전혀 없었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몸을 겹친 적은 있지만, 내가 엄청난 테크닉을 자랑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로 사람을 좋아하게 될 정도로 음란한 누님으론 안 보이고 말이다.

그럼 그건가. 그냥 단순히 친해져서 그런 건가.

친구랑 같이 식사하는 걸 기뻐하는 의미에서.

…슬프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 이쪽이었다.

"언제든지라니…누님 볼 때마다 일하고 계시던데요? 심지어 전에 봤을 때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계셨잖아요."

"구원씨랑 약속 잡은 날에는 휴가내면 되요!"

"네? 괜찮은 건가요? 겨우 저랑 밥 한 끼 먹으려고 휴가는…."

"괜찮아요! 엄청 쌓였거든요! 하지만 좀처럼 쓸 기회가 없어서…."

그런 건가. 어쩐지 이상하게 기뻐한다 싶었더니.

아무래도 누님은 휴가를 쓸 수 있게 되는 게 기뻤던 모양이다.

쳇. 그럼 그렇지.

아니. 뭐 내가 누님을 노리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 어딜 감히 내가 우리 예쁜 애들을 놔두고 그런 생각을 하겠어.

"그럼 누님 편한 날로 정해주세요. 저도 아무 때나 가능하니까요."

"그런가요? 그럼 내일 바로…아니. 잠깐만요. 요즘 밖에 다닐 일이 없어서 옷이…응! 내일 모레! 내일 모레 어떠세요?"

누님…한창 때의 여성분이 밖에 입고 다닐 옷도 없다니…대체 얼마나 일중독인 거예요.

나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지적이고 상냥한 누님의 이미지가 조금씩 박살나는 기분이 들어서 살짝 슬퍼졌다.

"네. 그럼 내일 모레로. 만나는 건 어디서 만날까요?"

"앗. 그렇군요. 길드에서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니까…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레이첼 누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조그만 메모지를 꺼내서 뭔가를 적더니 건네줬다.

가슴의 주머니에서 펜을 꺼낼 때 가슴이 출렁이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레이아 보다 작다고는 하지만 역시 이 누님도 상당한 공격력을 자랑하신단 말이지.

타이트한 안내원 복의 조끼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여기로 데리러 와주실 수 있을까요?"

"네? 여기는…서, 설마 누님의…."

"후훗. 아쉽게도 본가는 아니에요. 길드의 안내원들이 모여서는 기숙사에서 혼자 살고 있거든요."

"아니. 혼자 사시는 거면 더…아, 아무튼. 저한테 알려주셔도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요? 저와 구원씨 사이잖아요?"

얼마 전에 앨리시아한테도 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말이야.

레이첼 누님 같은 미인이 이렇게 윙크를 하면서 말하니 꽤나 느낌이 달랐다.

아니. 앨리시아도 미인이긴 미인이지만 말이야.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

"저, 저희 사이요?"

"네. 바로…."

레이첼 누님은 그렇게 말하더니 살짝 나한테 손짓을 했다.

내가 홀린 듯이 귀를 가져가자, 누님이 비밀 얘기를 하듯 입 옆에 손을 세우고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성자 전설을 써나가실 분과,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볼 안내원 사이잖아요."

누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혀를 내밀면서 윙크를 했다.

젠장! 그렇죠! 그거야 그렇겠죠!

알고 있었으면서 잠깐 기대한 내가 바보였어!

아니! 아쉽지 않거든?!

만약 누님이 날 좋아한다고 했어도 거절해야하는 입장이니까 말이야!

오히려 다행이라고! 그럼! 다행이고말고! 젠장!

"그럼 내일 맞이하러 갈게요…."

"후훗. 네. 아 참. 구원씨. 미안해요."

"네? 뭐가?"

"…자네들 참 즐거워 보이는구먼."

"으헉! 잠깐! 디아나! 기다려! 진정해! 이건…!"

"자네 이 몸이 여기 남아있는 이유를 설마 짐작 못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요! 그럴 리가요? 엄청 반성하고 있는 걸요!"

"그러면서도 노닥거렸단 말인가!"

"잠깐! 여기엔 다 이유가…!"

"시끄럽네! 자넨 어디 한 번 제대로 혼쭐이 나봐야겠네! 따라오게! 끄으으응…. 씨잉…."

디아나는 점프해서 내 귀를 잡더니 그대로 끌고 가려고 했지만, 디아나가 아무리 힘을 써봤자 내가 끌려가질 리가 없었다.

"으아아악! 디아나! 아파! 용서해줘!"

그리고 분위기를 읽은 나는 바로 아픈 척을 하면서 몸을 숙이고 끌려가는 연기를 해줬다.

디아나야. 나밖에 없지?

"크흠. 따, 따라오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혼신의 연기 덕분인지 다행이도 디아나한테 크게 혼나지는 않았다.

던전에서 섹스를 한 건 결국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데다가 시간이 흘러서 디아나도 화가 많이 풀린 상태였고, 레이첼 누님과 담화를 나눈 건 애초에 디아나가 문제였으니 말이다.

디아나가 나한테 말도 없이 그렇게 늦지 않았다면, 레이첼 누님이 날 도와줄 일도 없었을 거다.

그거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한 거라고 변명하자, 디아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납득을 해줬다.

…뭐, 보답으로 누님과 식사 약속을 잡았단 얘기는 안 했지만.

아니. 바람피우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걸릴 거라곤 아무것도 없지만, 왠지 말이야.

이런 분위기에서 말했다가는 더 혼날 게 빤히 보이잖아?

아무튼 디아나와의 1대1 면담에서 겨우 풀려난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파티장다운 일부터 하기로 했다.

던전을 나왔는데 무슨 파티장 운운이냐고?

던전 안이 아니더라도 처리해야할 일이란 게 있는 법이라고.

예를 들어 마틸다 같은 파티원과의 상담 말이다.

던전행을 그렇게 힘들어 하는 걸 보니 꽤나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어쩌면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야 마틸다가 빠지는 건 우리로서도 타격이 있었다.

일단 든든한 힐러가 한 명 빠진다는 점.

힐러는 레이아도 있고, 정말 여차하면 내 힐링 섹스도 있는데 무슨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특히 힐링 섹스는 일단 발동만 시키면 소모 값 없이 무한대로 치료가 가능한 스킬이니만큼,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힐링 섹스는 전투 중에 사용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지금은 그럴 일이 거의 없지만, 나중에는 전투 중에 지속적으로 힐이 필요할 때도 올 거다.

그럴 때 만약 레이아만으로 힐량이나 마나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역시 힐러가 둘이 있는 편이 안정감이 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틸다가 있으면 후위가 더 든든했다.

애초에 마틸다의 스탯은 대사제의 스탯이 아니라 성기사의 스탯이니까 말이다.

이 세계의 시스템이 다른 그레이트 어스의 시스템과 같다면, 마틸다의 스탯은 지금 성기사의 스탯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거다.

같은 직업에서 전직할 수 있는 직업은 특정 위치에서 서로 간에 변경이 가능하다.

사제에서 전직할 수 있는 대사제와 성기사가 신전에서 직업을 바꿀 수 있듯 말이다.

다만 서로 간에 변경을 하더라도 사용 가능한 스킬만 변할 뿐, 스탯은 그대로 유지가 된다.

성기사에서 대사제로 변경하면 성기사의 스킬은 사용 불가능해지고 대사제의 스킬들을 사용 할 수 있게 되지만, 스탯은 여전히 성기사의 스탯이라는 거다.

그런 고로 마틸다는 후위에 있으면서도 그 스탯에 힘입어 후위진의 마지막 방패 역할을 해왔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틸다에게 던전에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로서도 큰 손실이었다.

나로서도 되도록 그렇게 안 됐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힘들어하는 애를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지.

그런 고로 나는 마틸다의 방을 찾아와 문을 두들겼지만, 안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설마 여기 없는 건가.

"바넷사!"

"무슨 일이 십니까?"

"우왓! 진짜로 튀어나왔다!"

그냥 장난삼아 허공에 불러본 거였는데. 얘 뭐야. 무서워.

"……용건이 없으시면 전 이만…."

"아, 아니. 잠깐. 혹시 마틸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내가 물어본 거지만 진짜 알 것 같아서 무서워.

"방에 계십니다만."

거 봐 알고 있잖아.

그것도 ‘계신다고 생각합니다만.’이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계십니다만’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했어.

얘 뭐야 진짜. 아니 그보다 이 세계의 집사란 대체 뭐야. 혹시 집사가 최강 클래스인거 아냐?

"노크해도 대답이 없는데?"

"…아마 주무시는 게 아닐까요? 꽤나 피곤해보이셨습니다만."

"아, 그, 그런가. 응. 그래. 고마워."

"네. 그럼 전 이만."

……아무래도 오늘 마틸다와 대화하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낮잠을 너무 잤더니 잠이 안오네요.

그런고로 한 편 더 써서 투척.

디모스 // 감사합니다. 393화에서 지적해주신 부분들 수정했습니다.

asfdgads // 감사합니다. 395화에서 지적해주신 부분들 수정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