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96화 (38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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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아무튼 그렇게 무사히 통로를 지나 3계층까지 올라간 우리였지만, 통로를 빠져나가자 바로 거대한 몬스터의 등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 사이에 3계층의 주인이 부활한 모양이다.

    다만, 그 3계층의 주인은 지금 누군가와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대장! 그러니까 우리한텐 아직 무리라니까!"

    "교관이라고 불러! 그리고 하기 전부터 포기하지 마!"

    "아니! 아무리 하기 전이라도 이건 너무 결과가 명백…!"

    "시끄러! 쫑알쫑알 떠들 힘 있으면 얼른 가!"

    "우아아악! 길드 간부란 사람이 길드원 잡네!"

    진지하게 전투를 벌이는 것 치고는, 뭔가 소란스러워 보였지만.

    심지어 들려오는 목소리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거 설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그림이 대충 그려졌지만, 그래도 일단 모험가로서의 매너는 지키는 게 좋겠지.

    우르르 나가면 몬스터 스틸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나는 우리 애들을 통로에 대기기키고, 나 혼자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역시 무리! 칼도 안 박혀! 앨리시아 대자아앙!"

    "바보 녀석! 계층의 주인한테 아무런 기술도 안 쓰고 검 한 번 휘두른 다음에 징징 짜지마! 스킬을 써라! 스킬을!"

    역시나.

    앨리시아와 아라크네의 삼인방이었다.

    분명 저 삼인방은 원래 파티 멤버가 더 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앨리시아한테 뭔가 밉보이기라도 한 걸까? 요즘 유독 열심히 구르네.

    아무튼 상황은 꽤나 위험해보였다.

    전사 둘에 사제 하나. 수가 적다고는 하나 밸런스 자체는 나쁘지 않다.

    전사 둘이 어그로를 분산해가며 탱커 역과 딜러 역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동안, 사제가 위험한 쪽의 체력을 채운다.

    전법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실력이었다.

    계층의 주인을 쓰러뜨리기엔 전사 둘의 데미지가 부족해보였고, 또한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엔 사제의 마나가 부족해 보였다.

    뭐, 앨리시아가 있으니까 위험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앨리시아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한쪽다리를 까딱까딱 거리면서 뭔가 안달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튼 이거 어쩌지.

    쟤들이 출구 쪽을 꽉 틀어막고 있는 바람에 도저히 지나갈 틈이 안 보였다.

    이거 영락없이 이대로 기다리고 있어야하는 건가?

    "우와아앗!"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드디어 지루한 대치구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칸나가 계층의 주인의 공격을 칼로 막아내면서 뒤로 물러나가다, 그만 눈에 미끄러져 넘어진 거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

    일견 위험해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저쪽엔 앨리시아가…어? 야! 너 뭐해?!

    당연히 앨리시아가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쪽을 쳐다봤지만, 정작 그 앨리시아는 어째선지 칸나가 아니라 이쪽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런!

    계층의 주인이 칸나를 공격하기 직전, 나는 황급히 놈에게 성자의 파동을 날렸다.

    완전히 스틸처럼 되어버렸지만, 뭐 구해준 거니까 괜찮겠지. 모르는 애들도 아니고.

    "어, 어? 구원?!"

    "야, 멍하니 있지 말고 공격…!"

    서걱!

    내가 그렇게 외칠 것도 없이, 갑자기 계층의 주인의 머리가 날아가면서 그대로 그 몸이 허물어졌다.

    말할 것도 없이 앨리시아였다.

    아차, 역시 괜히 나섰던 건가.

    "칸나!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앨리시아는 촤악 하고 멋들어지게 검을 휘둘러 바닥에 피를 뿌리더니, 칸나를 돌아보며 일갈했다.

    "미안! 대장! 그래도 구원 앞에서 멋진…으아아악! 아파아! 탭! 탭!"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오르려던 칸나는 바로 앨리시아한테 안면을 잡혀서 아이언 클로를 당하게 됐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칸나 쟨 참 생각이 없이 사는 것 같단 말이야.

    "아, 그 뭐냐. 앨리시아 미안. 난 또 위험한 줄 알고 나섰는데."

    "으, 응? 아니, 뭐, 됐어. 조금 위험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고, 어차피 계속 놔뒀어도 얘들끼리 잡진 못했을 테니까."

    앨리시아는 여전히 칸나에게 아이언 클로를 건채로, 반대 손을 휙휙 휘두르면서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다행이다. 시원스런 성격인 건 여전한 모양이다.

    근데 앨리시아. 슬슬 칸나가 죽으려고 하고 있는데.

    네 팔을 열심히 탭하던 손이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다고.

    "그보다 오랜만이군. 너흰 4계층에 다녀온 거냐?"

    "그래. 맞아."

    "진짜 잘 나가는군. 그래서, 다녀와 본 소감이 어때?"

    "어렵더라고. 한동안 고생할 것 같아."

    뭔가 다른 클랜 애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긴 했지만, 나는 그냥 대답하기로 했다.

    앨리시아 얘는 워낙 그런 세세한 거 신경 안 쓰는 성격으로 보이기도 하고, 모험가 선배로서 뭔가 조언이라도 해주려는 걸 수도 있고.

    "하핫. 그렇단 말이지? 그거 잘…크흠. 뭐, 거긴 워낙 특수하니까 어쩔 수 없지. 말 그대로 한동안 고생하면서 익숙해질 수밖에 없어. 천천히 하라고. 천천히. 처음에는 3계층 마을에서 오가면서 말이야."

    하지만 의외로 기대했던 조언은 꽤나 정석적인 수준에서 그쳤다.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호탕하게 웃을 때마다 그 손에 안면을 잡히고 매달려있는 칸나가 대롱대롱 흔들리는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런 애를 가지고 놀았단 말이지.

    혹시 전에 때릴 때는 얘 나름대로 봐준 건가?

    나는 살짝 오한이 들었다.

    "구원 대체 언제까지 어머, 당신은…."

    "헉! 사라! 물러서! 앨리시아한테 가까이…."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새끼야!"

    "아, 알았어. 진정해."

    너 레즈 아니라고 생각해 줄 테니까. 칸나 시체 들이밀면서 협박하지 말아줘.

    참고로 말하지만 난 절대 협박에 굴한 게 아니다.

    실제로 앨리시아가 사라한테 눈길 한 번 안 줬으니까 믿어 보려는 것뿐이다. 암. 그렇고말고.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우리 애들이 통로에서 다들 올라오자, 그제야 뒤에 있던 세레나와 에이미도 내게 인사를 해왔다.

    비록 계층의 주인에게서 마석을 캐내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뭔가 타이밍이 너무도 절묘했다.

    마치 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음. 자네들인가.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꽤나 의욕이 넘치는구먼."

    "다, 당연하지. 얘들보다 늦게 모험가가 됐으면서 어느새 앞서나가 있는 댁들을 보니 우리 클랜도 면목이 안서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제야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

    얘들이 구르는 이유는 우리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전에 앨리시아한테 끌려가면서도 우리한테 원망의 시선을….

    이거 괜히 미안해지네. 아니. 내가 잘못한 건 딱히 없지만 말이야.

    게다가 아라크네 클랜 정도의 거대 클랜이면 우리와 비슷한 레벨 대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굳이 얘들이 찍힌 걸 보면 역시 그냥 이 삼인방이 운이 없는 거다.

    "호오. 그런 이유인 겐가? 그래서 간부인 자네까지 나서서 말인가?"

    "그, 그럼! 우리 아라크네도 최고의 클랜이라는 자부심이 있지. 우리 애들이 남보다 뒤처지는 꼴은 못 봐! 그리고 얘들은 이래 봬도 우리 클랜의 동 레벨 대 애들 중에선 최고의 기대주로 꼽히는 애들이라고!"

    "어? 그런 거야?"

    "…네. 부끄럽지만 일단은…."

    "아아 너무해. 그 표정, 못 믿으시는 거죠?"

    아니. 난 또 그냥 앨리시아한테 뭔 잘못을 저질렀던 건 아니었나 싶었지.

    실제로 지금 막 칸나는 목숨을….

    "아, 아무튼 너희 이제 3계층 마을까지 돌아가는 거지? 그럼 가, 같이 어때?"

    "너희도 돌아가게? 그럼 그럴까?"

    돌아간다는 말에 뒤에 있던 세레나와 에이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걸 보고도 거절할 수 있을 정도로 난 냉혹한 놈이 아니었다.

    앨리시아 이거, 머리 좀 썼군. 그래도 우리 애들한테 백합의 마수를 뻗으려고 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자, 잠깐 구원!"

    "응? 사라는 반대야? 하지만 우리도 마틸다가 힘들어하고 있고, 앨리시아랑 같이 가면 편하긴 할 걸? 괜찮아. 네 정조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

    "바, 바보야. 그런 게…휴우. 알았어."

    사라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뒤에 있던 마틸다의 안색을 보자 더 이상 반대하긴 힘들다는 걸 느꼈는지 가볍게 승낙해줬다.

    "좋아! 그렇다면 가자고!"

    앨리시아가 시원하게 외치면서 칸나의 안면을 드디어 놔주고 내 어깨에 팔을 두르려고 했다.

    아아. 저렇게 맥없이 눈 위로 쓰러져 파묻히다니. 칸나. 넌 생각도 없고 여자치고 색기도 안 느껴지는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명복을 빌어주지. 돌이켜보면 명랑하고 제법 재미있는 녀석이었어.

    "네. 그래요!"

    그리고 나와 앨리시아의 사이에 레이아가 쏙 들어와서는 내 품에 쏙 매달렸다.

    "레, 레이아. 이제 4계층에서 벗어났으니까 이렇게 달라붙을 필요는…진형도 갖춰야 되고."

    "어머? 그런가요? 죄송해요."

    레이아는 살포시 얼굴을 붉히면서 살짝 아쉽다는 듯 내게서 떨어졌다.

    크흑. 그런 표정 짓지 마. 괜히 더 달라붙어 있고 싶잖아.

    하지만 그랬다가는 우리 대마법사님이 드디어 폭발…어? 디아나 쟤 왜 흡족하게 웃고 있냐?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3계층 마을까지 아라크네 애들과 함께 가게 됐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칸나는 살아있었다.

    사제 셋이 모여서 힐을 퍼부어줘야 하긴 했지만.

    저거 장담하는데 계층의 주인한테 입은 피해보다 앨리시아한테 입은 피해가 더 컸을 거야.

    "그건 그렇고 역시 전위가 많으니까 편하긴 하네."

    그래서 현재 우리 일행은 전위 다섯에 후위 넷이라는 구성이 됐다.

    때문에 성역 선포는 쉽사리 쓰지 못하게 됐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역시 진행이 한결 편했다.

    전위 쪽 애들은 비교적 신경써줄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후위 쪽 애들은 몬스터한테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큰일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불안 하지만, 그런 걱정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정신에 한결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우우…죄송합니다…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아, 아니. 그야 4계층에선 좀 더 노력을 해야겠지만, 실비아는 충분히 잘 해주고 있어. 다만 전위가 이렇게 있으니까 후위진을 안전히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뿐이야."

    "그, 그렇지? 전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라고! 그, 그래! 혹시 생각 있으면 우리 클랜에 말해봐. 너희랑 우리 사이잖아. 전위의 파견 정도는…."

    그런 나와 실비아의 대화를 듣고, 옆에서 앨리시아가 왠지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면서 대화에 껴들었다.

    "아니. 괜찮아."

    하지만 난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괜히 우리 애들 말고 다른 애들 껴 있으면 성자 스킬 쓰다가 골치 아파질 수도 있으니까.

    얼마 전에도 내 스킬에 영향 받은 게 사라였으니 망정이지, 나랑 관계도 없는 여자였다고 생각하면…상상만 해도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그, 그러냐…그, 그래도 앞으로 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혹시 필요하면 말 하라고!"

    "그래.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맙다."

    "오, 오우. 뭐, 너랑 내 사이잖냐."

    "너랑 내 사이가 대체 뭐라고…."

    "뭐야? 너 이 새끼 널 남자로 만들어준 게 대체…으읍!"

    나는 황급히 앨리시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안 그래도 지금 난 디아나 눈치 봐야 되는 상황인데 그런 말까지 하지 말라고!

    네가 그 말 할 때마다 우리 애들이 괜히 기분 나빠진단 말이다!

    "하, 하긴! 클랜끼리 협약도 맺은 사이고 말이지! 그러고 보니 어때? 뭔가 새로운 비밀 통로 같은 건 알아낸 거 있어?"

    어차피 정기적으로 서신을 통해 알려주기는 했지만, 나는 굳이 그런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이스 플레이다. 기가 막힌 화제 전환이야.

    "으, 으음…난 잘 몰라. 요즘은 얘들 데리고 3계층에 틀어박혀 있었거든."

    앨리시아는 내 손에 입이 막힌 채로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고개를 홱 돌려서 입을 떼어내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냐…."

    칸나, 세레나, 에이미. 너희 진짜 고생 많았겠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명복을 빌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냥 우리가 던전 진행 속도를 늦추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의 얘기지.

    뭐, 확실히 요즘 좀 천천히 진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긴 했지만, 얘들이랑 속도를 맞춰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핫. 너무 실력이 뛰어난 것도 문제란 말이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조언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고치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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