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91화 (37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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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좋아! 이번에야 말로 연못에 간다!"

    물고기 떼를 처리하고, 나는 황급히 벗겨졌던 갑옷을 걸쳐 입은 후 외쳤다.

    방금 전에 심한 꼴을 당한 주제에 너무 건강한 거 아니냐고?

    그야 건강할만하지! 내가 어딜 공격당했는지 생각해보라고!

    우리 천사님이 물건을 쓰담쓰담 해주셨는데 건강해지지 않을 놈이 어디 있겠어?

    오히려 너무 건강해져서 아들이 바지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을 정도였다.

    "잠깐만요! 아까부터 뭔가요? 연못이라뇨?"

    아무튼 의욕 넘치는 날 이번에는 마틸다가 제지했다.

    아, 그런가. 설명을 안 해줬던가.

    그땐 레이아도 파티에 합류하기 전이었으니까 설명을 한 번 해줘야겠지.

    나는 1계층에서 조난당했을 때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얘기하고, 거기 덧붙여 내 추측도 모두에게 말해줬다.

    "어떻게 생각해?"

    "음. 이 몸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네. 그땐 개미굴 같은 특수 계층의 존재도 몰랐을 때니 이 몸도 별 신경 쓰지 않았었네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가능성은 충분해보이네. 하지만 그런 옛날 일을 잘도 기억해냈구먼."

    "훗. 천재라고 불러줘도 돼."

    "하여간 자네는 조금만 칭찬해줘도 기고만장해져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디아나는 밉지 않다는 듯 곱게 눈을 흘겼다.

    "아무튼 그럼 다들 그 연못을 조사하러 가는 건 찬성이지?"

    "자, 잠깐만요. 설마 지금부터 조사하러 가자는 건 아니겠죠?"

    "응? 왜?"

    "왜라니…대체 며칠 걸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 거리를 다시 돌아가서, 1계층으로 또 이동하고, 대체 던전에 얼마나 오래 있을 셈인 건가요?!"

    아, 그런가. 아무래도 1계층이다 보니 너무 약해서 별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틸다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던전에 흐르는 마나에 익숙하지 않은 마틸다는 이렇게 던전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모양이니까.

    그리고 3계층의 마을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며칠에 걸쳐 겨우 여기까지 와서는, 이렇게 4계층 모습을 잠깐 구경만 하고 가는 건 너무 시간 낭비이긴 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이번엔 그냥 4계층을 탐험하고, 1계층은 다음 탐험 때 가는 걸로 하자."

    "엣? 그, 그렇게 쉽게?"

    "응? 왜? 뭐 문제 있어?"

    "아, 아뇨. 당신이 그렇게 쉽게 의견을 굽히는 게 의외다 싶어서요."

    "넌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파티장으로서, 그리고 클랜장으로서 타당한 의견이 있으면 수용한다고."

    뭐, 이것도 평소 행실 문제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내가 마틸다한테는 유독 못되게 군 감도 없잖아 있고.

    "그리고 너도 힘든 거잖아? 무리시킬 수는 없지."

    "아…다, 당신…. 어쩜 그렇게…."

    아니. 그러니까 넌 사랑에 빠지는 게 너무 빠르다고.

    "크, 크흠! 크흠! 그럼 이번에는 4계층을 탐험하는 거지?"

    "사라야. 헛기침이 너무 티 난다. 왜 질투나?"

    "아야! 아파! 때리지 마! 사람은 할 말 없으면 괜히 폭력을 휘두른다고…아야!"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은!"

    아니.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반쯤은 진짜로 아프거든?

    너 사냥 좀 했다고 그새 또 렙업했냐? 슬슬 다시 데미지 들어오는 거 봐. 진짜 용사란 직업 사기라니까.

    아니 뭐, 그 사기인 용사를 1 대 1 결투에서 이기기도 한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야.

    "좋아. 그럼 이대로 쭉 걸어가 볼까?"

    "음. 그렇게 하게. 아참. 자네. 오기 전에 길드에서 4계층의 지도는 사온 게지?"

    "아, 응. 그런데?"

    "그렇다면 지도에 주의하면서 가도록 하세. 이 근처는 별로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왜? 좀 더 멀리 가면 뭐 문제라도 있어?"

    "음. 이 계층은 조류도 신경을 써야 하네. 특히 우리 쪽에는 수영을 못하는 자들도 있지 않은가."

    과연. 여러모로 다른 계층들과는 차별화된 계층이란 건가.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조심조심 주변을 탐험해보기로 했다.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물고기형과 식물형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걸 제외하면 뭔가 특별한 건 없었다.

    아직 물에 떠서 하는 전투까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일단 이렇게 바닥을 이동하는 거라면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물고기형 몬스터들은 성자 스킬이 그대로 먹히니까 더욱 그랬다.

    조금 성가신 점이 있다면, 물고기들이 사방에서 재빠르게 덮칠 때 대처가 늦어진 다는 점. 그리고 디아나를 제외하면 아직 다들 평범한 식물과 식물형 몬스터를 구분해낼 수 없다는 점일까.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사라! 뒤!"

    "읏! 꺄악!"

    앞에서 덮쳐오는 물고기들의 어그로를 끌면서 내가 상대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다른 물고기 무리들에 덮쳐왔다.

    지금 우리 진형은 맥주병 셋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 디아나, 맥주병 셋, 사라라는 진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땅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헤엄을 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여차할 때 이동속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물속에서는 사라의 좋은 청력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내가 어그로를 끌고 있던 물고기떼를 공격하느라 정신이 없던 사라는 뒤에서의 기습을 곧바로 눈치 채지 못했다.

    다행히도 공격을 받기 직전 가까스로 몸을 옆으로 피했지만, 그렇게 이동한 끝에는 전에 만났던 그 촉수 식물 놈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라의 몸에 덩굴들이 휘감기는 걸 보면서, 나는 곧바로 성역 선포를 최대 범위로 발동했다.

    식물의 어그로는 끌지 못하겠지만, 후방에서 기습을 가한 물고기들의 어그로는 몽땅 끌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 애들도 성역 선포의 영향에 들어와 버리기는 하지만, 잠깐이라면 괜찮겠지.

    물론 내가 풀어주지 않는 한 계속 효과가 누적되니, 자주 사용할 수는 없는 전법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물고기들의 어그로를 전부 끌었다고 생각되자마자 바로 성역 선포를 해제하고, 나는 열심히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성자의 전력을 두른 내 손발과, 맥주병 실비아가 열심히 다가와서 휘두르는 검으로 겨우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나는 황급히 사라에게 향했다.

    "사라!"

    그리고 거기에는…덩굴에 붙잡혀 반라가 된 채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라의 모습이 있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예스! 예스!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라고! 이런 전개를 원했어! 잘한다! 너야말로 교과서에 실릴만한 모범적인 촉수다! 그래! 촉수는 미녀를 능욕해야 제 맛이지!"

    참고로 이렇게 내가 곧장 사라를 구해주지 않고 떠들어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다 당해봐서 아는 건데, 저 촉수 식물 녀석의 덩굴은 데미지가 없더라고.

    처음엔 내 방어력이 너무 높아서 못 느끼는 건 줄 알았는데, 디아나의 말에 따르면 그게 아니라는 모양이다.

    녀석은 사람을 완전히 벗긴 채 통째로 잡아먹는 몬스터로, 잡아먹히기 전까지 데미지는 거의 없는 수준이라나.

    때문에 난 촉수에게 반쯤 벗겨진 사라의 모습을 이렇게 맘 놓고 구경할 수 있다는 거다.

    애초에 내 주먹과 발로는 저 촉수에게서 사라를 구해줄 수도 없고 말이다.

    일단 열심히 성자의 전력을 발동하여 식인식물을 공격해봤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덩굴에 나마저 휘감기는 꼴이 될 것 같아서, 나는 한 발짝 훌쩍 물러난 채 외쳤다.

    "오오오! 가슴! 가슴을 공격하는 거냐! 가슴의 겉을 원모양으로 감싸서 튀어나오게 만들다니! 네가 페티시란 걸 좀 아는구나! 그래! 그거야!"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맘 놓고 떠들 수 있는 것도, 물속에선 이렇게 떠들어봤자 우리 애들한텐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리액션만 취해주면 아무 문제될 거 없다.

    나는 다급한 표정으로 디아나와 실비아를 바라보면서 손짓을 해댔다.

    사라를 구할 수 있는 건 디아나의 마법이나 실비아의 검밖에 없다는 듯이.

    물론 그런 와중에서 내 입에서 나오고 있는 소리는 달랐지만 말이다.

    "야! 촉수! 참고로 사라의 매력 포인트는 엉덩이다! 좀 더 엉덩이를 강조하는 자세로 만들어봐! 그 탄력 있는 엉덩이의 매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보라고!"

    "…아까부터 바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은 했네만."

    "……어?"

    사라가 촉수에 휘감긴 모습을 보고 뜨겁게 달아오른 내게, 갑자기 찬물을 확 끼얹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찬물을 끼얹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이미 물속이지만.

    "자네 지금 뭐라고 한 겐가."

    "사, 사라를 빨리 구해줘!"

    "방금 이 몸의 귀에는 전혀 다른 말이 들렸네만."

    제, 젠장! 내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발기를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도 있는 녀석이 이런 실수를!

    위험해! 진짜 위험해! 구원 일생일대의 위기다!

    "아, 아뇨. 그냥 어차피 안 들리니까 제스쳐로 다급함만 전해지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호오. 그래서 엉덩이인가."

    "그, 그보다 사라부터…!"

    "이미 구했네."

    "으, 응?"

    황급히 다시 사라 쪽을 돌아보자, 사라를 휘감고 있던 촉수는 어느새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사라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갑옷과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입으면서, 눈가에 살짝 눈물을 띄우고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머리와 내 머리에는 기다란 공기방울이 이어져 있었다.

    대, 대체 어느 틈에….

    "사, 사라야! 진정해! 잘 생각해봐! 칭찬한 거야! 엉덩이가 예쁘…."

    "이, 이, 이, 변태가! 흐ㅡㅡ…!"

    옷가지를 대충 걸친 사라는 재빨리 내게 다가오더니, 싸대기를 날렸다.

    물의 저항 때문에 막거나 피하는 게 불가능한 속도는 아니었지만, 저걸 막거나 피하면 오히려 더 큰일 난다는 사실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순순히 그 공격을 뺨으로 받아냈던 건데, 어째선지 사라가 곧장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공기방울에서 머리가 쏙 빠져 가라앉은 바람에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지금 그거 신음소리였지?

    …어? 아차! 성자의 전력 안 풀었다!

    "자네 또 무슨 짓을 한 겐가!"

    "아니. 잠깐만! 이번엔 정말 실수야! 실수로 성자의 전력을 안 푼 것뿐이야!"

    "뭐라고오?!"

    "잠깐. 화나는 건 알겠는데, 우선은 사라부터 어떻게 하는 게 먼저야. 그, 그러니까 일단 디아나 넌 다른 애들이랑 같이 다른데 보고 있어."

    "여기서 하겠다는 겐가!"

    "아, 안 해! 그래도 절정은 느끼게 될 거 아니야! 아니면 뭐, 그럼 얠 이 상태로 그냥 내버려둘까?! 금방 끝날 테니까!"

    "누, 누가 금방 끝난다는 거야!"

    어느새 사라가 일어서서는 공기방울에 얼굴을 집어넣고 있었다.

    다리를 오므린 채 후들후들 떨고 있고, 얼굴도 새빨개져서는 살짝 눈물을 글썽이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니. 사라야. 지금 강한 척 할 때가 아니잖아. 사과는 나중에 할 테니까 우선 얼른…."

    "구원씨? 왜 그러세요?"

    그때 후방에 있던 레이아가 다가와서 공기방울에 얼굴을 집어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개헤엄이기는 했지만, 셋 중 제일 빨리 헤엄이 익숙해지신 모습이었다.

    뭐, 천사님이 저렇게 헤엄치는 모습도 뭔가 갭이 느껴져서 귀엽긴 하지만…아니! 지금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아니. 레이아. 그러니까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빨리 끝낼 테니까 뒤 좀 돌아….."

    "아, 안 빠르다니까! 난 그렇게 쉬운 여자가…!"

    얜 이런 상황에서 왜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거야?!

    아니, 그야 나도 누가 나한테 조루라고 하면 이런 상황일 지라도 저렇게 나오긴 하겠지만 말이야!

    "으아아아아! 얘기 복잡해지니까 사라 넌 조금 조용히 있어!"

    "흐으ㅡㅡ…!"

    반쯤 패닉상태에 빠진 나는 주저 없이 사라의 가슴을 덥석 잡았다.

    난 여전히 성자의 전력을 풀지 않은 상태였고, 그 손에 가슴을 잡힌 사라는 그대로 다시 밑으로 주저앉아버렸다.

    "자!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지! 다들 뒤 돌아있어!"

    "엣? 에엣?!"

    "지, 진심인가?! 진심으로 여기서 그런 짓을 하겠다는 겐가?!"

    "그럼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잖아!"

    "우, 우으으! 우으으으!"

    디아나는 어째선지 자기가 사라보다 얼굴이 더 새빨개져서는 날 노려보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포기한 얼굴로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여전히 당황하고 있는 레이아도 뒤로 돌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이쪽과 연결되어있던 공기방울을 없애고, 자신과 레이아, 마틸다와 실비아의 머리를 연결하여 뭐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러자 이쪽을 향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걸어오던 실비아와 마틸다 역시 곧바로 몸을 뒤로 돌렸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한 시 전후로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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